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현대 기술로 만들어낸 기기에 늘 둘러싸여 있다. 너무 익숙해져서 그것이 실제로 얼마나 교묘하게 디자인되어 있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그곳에 숨어있는 작은 미스터리들도 많다.

 

컴퓨터 키보드에는 왜 다리가 있을까? 헤드폰과 이어폰은 어떻게 진동하는 걸까? 왜 USB는 한번에 잘 꽂히지 않는 걸까?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한번 찾아보자.

 

1) 적외선 코드

이건 TV가 리모컨과 대화할 때 사용하는 언어이다. 리모컨은 TV에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모든 파장의 빛을 사용할 수 있다. 만들기 가장 편리한 적외선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신호를 보내는데 적외선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고, 모든 신호가 평평한 적외선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짧은 깜빡 거림이다. 이것은 일종의 모스 부호처럼 특정 메시지를 암호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해서 TV는 리모컨의 어떤 버튼을 눌렀는지 인식하는 것이다. 메시지는 1과 0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록 모든 깜빡임이 너무 빨라서 신호 전달의 대기시간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TV의 언어로는 0은 적외선 파동 사이에 짧은 포즈고 1은 더 긴 포즈이다.

 

2) 키보드의 다리

키보드를 좀 더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어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 때문에 있는 것은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사실은 키보드가 바닥에 딱 붙어 있는 것이 손목에는 더 좋다.

이 다리는 타이핑하는 글자를 더 잘 보이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키보드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Fㄹ’과 ‘Jㅓ’에 있는 조그만 돌기이다. 이 돌기들은 양손 타이핑을 할 때 키보드를 보지 않고도 양손이 정위치에 오도록 가이드하는 역할을 한다.

 

3) USB 플러그

사람들의 화를 돋우려고 특별히 만들어진 것처럼 호박엿 같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하지만 단순한 사실을 알고 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USB가 플라스틱 부분과 함께 이런 형상으로 만들어진 이유는, 컴퓨터에 잘못된 방향으로 끼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USB를 거꾸로 끼우면 작동하지 않는다. 플라스틱 부분이 없어서 USB를 잘못 끼울 때마다 다시 뽑았다 꽂아야 한다면 더욱 짜증날 것이다. 성가신 플라스틱 조각이 우리를 돕고 있는 것이니 생각을 바꾸자.

USB의 삼지창 표시가 보이는 쪽으로 끼우면 실패는 없다.

 

4) 균형이 맞지 않는 모터

뭔가 균형이 맞지 않고 투박하고 흔들린다고 그 물건이 전혀 쓸모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모르고 있을 수도 있지만, 사실 균형이 맞지 않는 모터를 우리는 매일 사용하고 있다.

이 모터는 정말 작다. 연필 끝보다 조금은 더 크겠지만, 스마트폰의 각 부분에 여러 개가 숨어 있다.

 

모터들은 추를 회전시키는데 반달 모양으로 생겨서 움직임이 고르지 않은 힘을 생성한다. 빠른 회전 때문에 이 힘은 주변의 것을 한 방향으로만 미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방향으로 민다. 그야말로 좌충우돌하는 것이다.

 

이 혼란은 단순히 진동처럼 우리에게 느껴지지만, 피자배달 알림이 뜨거나 기다리던 메시지가 왔을 때마다 이 작은 불균형 모터는 그 알람을 느낄 수 있도록 진동을 만들어낸다.

 

 

5) 스마트폰으로 만드는 올림픽 메달

2020년 도쿄 올림픽과 장애인 올림픽을 위해 일본은 모든 메달을 재활용 기기로 만든다고 한다. 전자제품 폐기물 수집은 올해 3월 말에 이미 끝났다고 한다.

광산에서 나온 금은동이 아닌 스마트폰과 노트북, 카메라에서 추출한 광물을 쓴다. 5백만개 이상의 스마트폰에서 30.3Kg의 금과 4.1톤의 은, 2.7톤의 동이 이미 추출되었다. 이 재료는 믿을만하니 걱정하지 마시라.

스마트폰이 비싼 것도 조금은 이유가 있는 셈이다.

 

6) 미니 잭에 있는 선

이어폰 플러그의 금속 부품 사이에 작은 선이 들어가 있다. 2개가 있는 것도 있고 3개가 있는 것도 있는데, 아주 오래된 미니 잭에는 오직 하나밖에 없다.

이 선은 플라스틱처럼 폴리머 물질로 만들어져 있어 전기 신호를 전달하지 못한다. 이 선들의 주요 목적은 정보를 전달하는 각기 다른 채널의 전기 자극을 분리하는 것이다.

 

선이 하나만 있는 것은 모노 사운드 신호만 제공한다. 선이 2개인 플러그는 신호를 분리할 수 있어서 스테레오 사운드를 전달할 수 있다.

요즘은 모든 음악을 스테레오로 만든다. 왼쪽과 오른쪽 이어폰이 약간 다른 트랙을 들려준다. 이렇게 해서 소리의 깊이와 복잡함이 잘 전달된다.

 

3개의 줄이 있는 헤드셋은 스테레오 사운드를 재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마이크도 같이 가지고 있어서 핸즈프리 장치로 사용할 수 있다. 그저 장식은 아닌 것이 분명하고, 줄이 있으면 쬐끔은 멋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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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충전기의 잡동사니 기호

충전기에는 이상한 기호가 너무 많아서 상당히 지저분해 보인다. 하나씩 살펴보자.

항상 인증마크가 있다. 예를 들어 CE 같은 마크는 사용 가능할 정도의 좋은 품질이고 관련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은 집 모양은 이 기기가 오직 가정용으로만 적합하다는 표시이다.

 

겹사각형 표시가 중요한 것인데, 이것으로 충전기가 이중 절연 처리가 되어있어 감전을 막아줄 것임을 뜻한다. 그리고 X 표시가 되어있는 휴지통은, 이것이 기기의 폐기물로 재활용되어야 한다는 표시이다.

원안에 들어있는 VI 표시는 충전기의 효율성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 IV가 있으면, 이것은 미국 표준이라는 뜻이다. 단지 원안에 V만 있다면, 이 충전기는 유럽 표준에 맞다는 표시이다.

출처 : <Bright Side Korea>

일당 독재국가이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나라, 싱가포르. 그 싱가포르가 성장해온 과정을 알아보자.

63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크기 722㎢로 세계 177위의 영토, 인구는 560만명으로 인구밀도 세계 3위, 1인당 GDP 기준 세계 8위, 천연자원도 전혀 없고 물부터 모래까지 모든 것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

 

그러나 인구의 17%가 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 지구상 백만장자가 가장 밀집된 나라다.

녹색의 청결하고 깨끗한 거리에 구걸하는 거지가 한 사람도 없다. 실업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1965년 8월 싱가포르는 말레이 연방으로부터 탈퇴함에 따라 신생독립국이 된다.

독립해 떨어져 나온 싱가포르는 당시 뭐 하나 제대로 된 산업기반도 없었고, 영토가 너무 좁아 농업을 하기도 어려웠으며, 제조업을 하기에는 기술이나 자본도 없고 인구도 적은 아무런 비전이 없는 나라였다.

 

 

싱가포르의 지도자 리콴유는 그야말로 멘붕이 된다.

냄새 나는 빈민가와 수없이 많은 갱단이 거리를 지배하는 도시. 취약한 입법 체계, 교육받지 못한 국민, 만연한 부패 그리고 아주 적은 소득을 가진 국민들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리콴유는 싱가포르가 지정학적으로는 매우 좋은 자리에 위치했다는 것을 이용해보기로 한다. 배들이 지나가는 거점으로 아주 훌륭한 위치였다.

이 점은 영국 해군기지를 만들었던 이유였고, 그들이 당시 국가 GDP의 20%를 차지하며 경제에 매우 중요한 역할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7년 영국군 철수계획이 발표되고, 싱가포르는 답이 없는 상황에서 큰 위기를 맞는다.

 

리콴유는 주변환경이 급격하게 변함에 따라 내수 위주로의 성장은 불가능함을 깨닫고, 수출주도형 경제정책을 위한 산업화를 시작했다. 일단 그러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했다.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저축을 하거나 돈을 빌려와야 하지만, 싱가포르 같은 나라에 돈을 빌려주는 나라는 없었다.

 

리콴유는 외국기업 투자유치 전략을 썼다.

한편 한국은 미국, 독일, 일본 등으로부터 돈을 빌려와서 산업화를 시작했는데, 이를 차관경제라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어렵사리 돈을 빌려와 산업화를 위한 마중물을 댔다. (물론, 일부 떡을 떼서 숨긴 것은 일단 접어두고…)

이 두 방법은 비슷해 보이지만 큰 차이가 있는데, 한국은 외국에서 빌려온 돈으로 자국 산업을 만들고 키우는 것임에 반해, 싱가포르의 투자유치는 외국기업들을 싱가포르에 자리잡도록 하여 나라를 산업화하는 방식이다.

 

싱가포르는 세계적인 항구로 쓰일만한 기막힌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바다의 주유소, 정비소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싱가포르 정부는 파격적인 개방정책을 펼쳤다.

관세를 거의 없앴고, 소득세율을 기존 40%에서 4%로 낮췄으며, 해외 이자에 대한 소득세 면제 등 외국기업 유치에 온 힘을 쏟았다.

 

정책은 잘 먹혀 들었고 외국인 투자유치로 수출주도형 공업화를 통해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후 싱가포르는 이 외자유치 공업화 추진과 함께 물류, 금융, 관광, 비즈니스 서비스의 중심지로 변신을 꾀한다.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니 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싱가포르에 아시아지역 본부를 설립했다.

 

 

안정된 치안, 첨단화된 인프라, 각종 비즈니스 지원 서비스, 전 국민이 영어 회화 가능, 높은 교육 수준을 갖춘 인재들로 지금 싱가포르에는 전세계 금융기관들이 모두 진출해있다.

그렇게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비즈니스 및 금융 허브가 되어갔다.

 

또한 과거 단순조립식의 제조업을 탈피하여 고부가가치 제조업으로의 전환에 성공한다.

전자, 바이오, 화학, 석유화학 등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했다. 글로벌 석유화학 회사들의 정유공장과 저장시설을 유치했고, 현재 세계 최대의 선박용 석유거래시장이 바로 이곳이다.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싱가포르는 자유무역주의에 기초하여 시장메커니즘에 따라 효율적 자원배분을 추구하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적절한 산업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이쯤에서 리콴유가 생각했던 국가의 경제성장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리콴유는 세계화 추세에서 수혜자가 되기 위해 법과 제도를 흐름에 맞게 정비한 것이 적중했다고 생각한다. 엄격한 법치를 실시했고 투명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놀랍게도 5천 년 역사의 중국 사람들로 전세계에서 부정부패가 없는 가장 깨끗한 정부와 나라를 만들었다. 물론, 그것이 가혹한 ‘Penalty System’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원성은 있지만…)

 

 

합의를 하면 반드시 지켰기 때문에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도 얻었다. 비즈니스에서 지금의 중국처럼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영원히 기회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싱글리시라 불리는 영어를 제1언어로 만들었다. 중국계 사람들이 주류이고 다민족 국가인 싱가포르에서 영어를 뿌리내리기 위해 강제하지는 않았지만, 학교 수업에는 무조건 영어만 사용한다.

 

그리고 부정부패를 없앴다.

독재와 권위주의 국가로서 언론자유도 최하위, 민주주의 지수도 최하위다. 하지만 청렴도에서는 세계 5위로 가장 깨끗한 나라로 인식된다.

뇌물을 주고 받으면 엄벌에 처했고, 공무원에게 아주 많은 연봉을 줌으로써 나라 정책을 연구하고 수립하는데 가장 좋은 인재들이 모이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싱가포르 국민들의 교육은 필수이고, 지도층은 창의성과 배우려는 자세, 좋은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실행력 그리고 개혁에 대한 국민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작은 나라 싱가포르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배경을 살펴보았다.

싱가포르는 일당 독재국가로서 성공한 전세계적으로 드문 경우이기 때문에, 여러 독재국가들의 롤모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간혹 싱가포르를 아주 잘사는 북한으로 묘사하기도 하는데, 북한이 이런 성공노선을 밟기에는 실질적으로 매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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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사례를 보았을 때, 경제성장에 민주주의가 유리한지 독재가 유리한지와 같은 정치체제 논의는 근본적으로 그릇된 논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제성장을 일구는 요소들은 사실 뻔하다.

경쟁력을 갖추어 좋은 재화 혹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은 강력한 동기요인(인센티브)이 있을 때 작용된다.

 

그리고 경제성장은 정치체제가 아닌, 성장을 하고자 하는 리더가 국민을 성장의 길로 이끌 때 가능한 것 아닐까?

<Bright Side Korea> <BetterLife>를 참고

일단 태어났으니 사는 인생이라지만, 한 번은 묻고 싶다고?

행복이란 게 있나…? 이 나라에…?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

 

행복은 한 가지 욕망이 충족된 상태와 새로운 욕망이 형성되는 상태, 그 중간에 존재한다. – Caed Budris –
행복은 단지 욕망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행복은 일시적인 것이다. 늘 새로운 욕망이 따르기 때문이다. – James Clear -

 

행복은 고난과 고통을 초월하여 힘의 고양과 충만을 경험하는 것이다. 바로 힘이 증가되고 있다는 느낌, 저항을 극복했다는 느낌을 말한다. 행복한 인간이 되기 위해 자신의 의지와 생명력을 강하게 단련해야 한다. – 니체 –
진정한 의미의 행복한 인간은 고난과 고통이 없기를 바라지 않고, 그런 것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평정과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 야스퍼스 –

 

1) N포 세대, 헬조선은 어디에서 왔을까?

 

가난하고 추웠던 1960~70년대를 지나, 따뜻한 물이 쏟아지고 고개를 돌리면 상점과 편의시설들이 천방지축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왜 행복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1인 국민소득은 영국, 프랑스와 비슷해졌고 촛불시위를 지나 민주화는 꽃을 피웠는데, 왜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가난한 것일까?

왜 N포 세대가 등장해 결혼, 육아, 취업을 포기하며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걸까?

지금 한국은 민주화의 역설, 풍요의 역설에 빠져있다.

 

2) 절망의 나라에서 산다는 것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이전 세대들보다 많이 배웠으며, 많은 스펙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취업률은 현저히 줄고 있으며,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줄고 있다.

 

과거 1960~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이루던 시기, 가난하고 배우지 못했던 당시 세대들은 고도성장기의 분위기와 함께 급격하게 성장하며 성취감을 맛봤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경제 성장은 더뎌졌으며, 대학졸업자의 수에 비해 그들이 일할만한 일자리는 절반에 불과하다.

이제 우리 사회에는 본격적인 조정과 혁신이 필요하다.

 

3) 해답은 ‘사회의 품격’에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살만한 한국이 될까?

어떻게 해야 ‘포기 없는 대한민국 클라스’를 만들어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 여기서 클라스는 ‘품격’을 말한다. 따라서 품격을 높이면 가능한 일이 되는 셈이다.

 

사회의 품격을 높이면 분노를 줄일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는 연대 있는 사회가 가능하다.

‘비로소 다시 태어나도 한국에 살고 싶습니까?’라는 물음에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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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갖기를, 그러나 ‘바꿀 수 있는 것’은 과감히 바꾸는 용기를 발휘하기를, 아울러 ‘이 둘을 구별하는’ 예리한 지혜를 갖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 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 -

 

‘아픈’ 대한민국에 사회학이 보내는 치유의 메시지.

이재열 저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 : 한강의 기적에서 헬조선까지, 잃어버린 사회의 품격을 찾아서 서가명강 4> <Knowledge Talk>를 참고

세상은 오늘도 여전히 지정학적 충돌과 분쟁으로 몸살을 겪고 있다.

산유국들이 집중된 중동지역은 싸움질과 협박이 지속되고 있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만든 갈등에 화병으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에너지 문제는 생존과 직결되므로 각 나라들이 사활을 거는 주제다.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대두된 셰일혁명은 미국이 더 강한 나라가 될 것임을 보여주는 결정적 이벤트였고, 어쨌건 노력의 결실로 미국은 에너지 안보로부터 꽤나 자유로워졌다.

 

1970년대 이래 오일쇼크로 에너지 안보가 흔들릴 수 있음을 경험한 미국은, 마침내 셰일혁명을 이끌어냄으로써 그 부담을 덜어냈을 뿐 아니라, 역으로 에너지 수출국으로 변모했다.

세계 최대 소비국인데도 쓰고 남는 에너지를 수출한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렇다면 세계 제2의 경제대국 중국은 어떤 에너지 정책을 가져가고 있을까?

중국은 경제 발전에 따른 에너지 수요가 급속하게 증가했다. 그러니 석유와 석탄 등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전통적인 에너지 안보관을 줄곧 유지해왔다. 즉, 에너지의 공급과 가격 측면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그러다 최근 최악의 미세먼지 사태와 기후 변화 등 환경문제로 인해, 저탄소 경제체제를 반영한 새로운 에너지 정책을 수립 중에 있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1990년대 석유 수입국으로 전환되면서, 에너지 확보를 위한 중국의 고민이 시작됐다.

 

세계 2위 소비국으로 바뀐 중국은 에너지 시장에서 큰손이 되었고, 석유시장의 물리적 수급상황을 압박하며 유가의 장기적 상승추세를 유지시키면서, 국제정치적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특히 대형 국유 메이저 에너지 회사들을 통해 공격적으로 유전개발과 석유공급 확보에 치중함으로써, 다른 주요 에너지 소비국들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시진핑 체제로 넘어간 이후 중국은 에너지 확보라는 차원을 넘어 기후변화 대응, 자원순환 이용, 환경오염 해결과 연계하여 에너지 문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미세먼지를 보면 환경문제의 심각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세먼지 분포 (버클리어스 측정)

이것 때문에 새로운 에너지 정책들을 실시하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에너지 총량 규제

그동안 에너지 절약보다는 안정적인 확보에만 힘을 쏟았다. 그러다 최근 에너지 소비절약을 정책과제로 내놓는 변화를 선택했다.

국제사회의 비판과 자국민들의 불만 고조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석탄 사용을 감소시키려고 노력 중이다.

 

2) 국내공급 우선 전략

에너지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대외의존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상황에서 현재는 석탄, 천연가스, 우라늄 등 자원의 순수입국으로, 그 중 석유의 해외 의존도가에 육박했다. 그래서 자체적인 에너지를 확보하고자 탐사 확대, 에너지 비축, 유류 및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

 

3) 저탄소 녹색전략

지금도 석탄 위주 에너지 체제로서 소비 비중은 세계 평균 35.8%보다도 훨씬 높은 66%에 달한다. 이에 시진핑은 천연가스, 원전, 신재생 에너지를 적극 발전시키고 석탄 소비 비중을 낮추는 등, 에너지 소비구조의 최적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려는 계획이다.

 

대기오염의 주범인 석탄 소비를 통제하겠다고 하지만, 다른 대체 에너지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미래에도 석탄은 여전히 주된 에너지원일 것이다.

그럼에도 대체 에너지 비율을 높이려는 중국은 동부 연해지역에 새로운 원전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전 프로젝트를 잠시 중단한 바 있으나, 결국 매년 6~8개의 새로운 원전 건설계획이 확정되었다.

 

지금까지 중국의 에너지 정책 및 방향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는데, 2019년 현재 그 에너지 정책이 어떻게 실현되고 현실에 적용되는지 몇 가지 기사를 통해 살펴보자.

 

1) 석유 및 천연가스 분야

중국 정부는 새로운 유전개발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세계 최대 셰일가스 보유국으로, 미국과 호주의 매장량을 합친 것의 2배에 달하는 막대한 보유량을 자랑한다.

다만 지하 수백 미터에 매장된 미국의 상태와는 달리, 중국에서는 셰일가스의 80%가 지하 3천500미터의 깊은 땅속에 있어, 기존의 수압 파쇄공법으로는 채굴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중국은 이것 때문에 강력한 충격파를 이용한 채굴공법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는 원자폭탄의 기폭장치에 쓰는 원리로 실제 핵 과학자들이 개발한 방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공법을 적용하는 것은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하에서 강력한 충격파는 인공지진을 만들어내면서 대규모 인명 피해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2) 핵 발전

계획대로 중국은 원전사업에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19년 현재 핵발전소 44기를 가동 중인데, 2030년까지는 100기를 가동한다는 목표다.

한국은 원전을 없애자고 난리인데, 중국은 연안에 100기의 핵발전소를 세우고 있는 것.

 

연안지역을 보면 실제로 한반도에 설치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핵발전소는 용수공급이 원활해야 하므로 바닷가에 짓는 것은 당연하고, 자기네 땅 연안에 원전건설한다는 데 입방아 찧을 명분은 그리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핵발전소는 자연재해 시 심각한 문제가 발생되고, 중국의 핵발전소 핵심 장비에 대한 안정성이 아직 충분한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반도 핵의 고

또한 핵발전소 가동 중 방사능 누출사고가 발생하면 편서풍을 타고 12시간 이내에 한반도에 도착하는데, 중국정부가 이런 사고를 스스로 인정하고 후속 조치를 하겠느냐는 의문도 그대로 남아있는 실정이다.

거기에다 한국과 가장 가까운 산둥성 해상에 핵발전소를 띄워놓고 가동하겠다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이미 해상원전을 가동 중인 러시아는 바다에 떠있는 해상원전이 지진으로부터 더 안전하다고 홍보하고 있으나, 그린피스를 비롯한 환경단체들은 해상원전을 떠다니는 체르노빌이라고 부르며 반대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북극에 위치한 페베크라는 도시의 전력공급을 위해 해상원전을 가동하기로 했다. 인구도 거의 없고 별도의 발전소 설치가 어려운 북극지방에서 해상원전이 이용되는 것과, 서해 앞바다 코앞에서 떠다니는 것은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문제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중국이 해양굴기를 과시하면서 군사력을 증강시킬 명분을 만드는 행위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3) 태양광 발전

중국은 친환경 에너지 비중을 높인다고 태양광 발전의 건설 속도를 높이고 있다. 현재 전 세계 1위 국가다. 미국보다도 2배 많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

중국의 태양광 패널은 햇빛이 강하고 사람이 살 수 없는 내몽골 고비사막 등 환경이 좋지 못한 곳에 건설되었다.

 

문제는 태양광 패널설비의 수명이 생각보다 짧은 20~30년에 불과하다는 것이. 특히 폐기하는 태양광 패널은 재활용이 쉽지 않다. 또한 중국에는 태양광 전지 재활용에 대한 규제가 없어 패널 쓰레기가 엄청나게 쌓일 전망이다.

유럽에서는 태양광 패널 판매 시 생산자가 재활용 의무까지 지도록 했지만, 중국은 그런 제도나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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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셰일혁명으로 당분간 에너지 걱정은 덜었지만, 중국은 살펴본 것처럼 아직도 답이 안 나오는 실정이다.

값싼 에너지는 혁신을 이끌어내는 인프라이지만, 그렇다고 가격만 싸고 환경을 오염시킨다면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BetterLife>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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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일본에서 방영된 TV 드라마 <야반도주 사무소>에서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야반도주를 돕는 컨설팅 회사 라이징선이 등장했다. 이 드라마는 투기 광풍이 불던 도쿄 주식시장의 급락을 시작으로 부동산 폭락, 경기 침체, 디플레이션을 겪으며 맞이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배경이었다.

그렇지만 <야반도주> 소재는 드라마 픽션이 아닌, 실제 일본에서 벌어진 ‘인간증발’을 다룬 ‘논픽션’이었다.

 

버블경제가 꺼지며 불황이 지속되자 서민들은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당시 샐러리맨 대상 소액 고리대금업인 ‘사라리만 킨유’가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나갔고, 대부업체들은 야쿠자와 손잡으며 연 100%가 넘는 폭리를 착복했다.

사람들은 눈덩이 이자를 갚지 못했고, 야쿠자의 협박에 견디다 못해 야반도주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잃어버린 10년은 1980년대 일본의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 형성된 거품이 꺼지기 시작한 1991년부터 2002년까지 이어졌던 극심한 장기 경제침체 기간을 말한다.

그 당시 일본에선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길래 그들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걸까?

 

일본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주식시장의 고평가와 함께 거품경제 기간 동안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폭등했다. 1989년 일본의 주가수익비율이 무려 67에 이를 정도로 버블 정점에 달해,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버블시장이 출현했다.

 

결국 공격적인 금리 인상과 공급과잉 때문에 1990년부터 일본의 자산시장이 무너졌다. 특히 가격 붕괴가 심화된 1991년부터는 경제성장률마저 떨어지는 등 본격적인 불황의 징후가 나타났다.

1980년대 4.6%였던 연평균 성장률은 버블 붕괴 이후인 1992년부터 2001년까지 0.9%대로 하락하고 말았다.

 

더불어 일본 기업과 가계도 심각한 손실을 입었다.

1990년 일본 명목 GDP가 449조 엔이었는데, 주택과 주식 가격 폭락으로 사라진 자산 가치가 당시 GDP의 3배가 넘는 1,500조 엔이었다.

 

부동산 버블 당시 주택을 구입했던 가계의 손실도 막대했다. 거품경제 기간 동안 부동산을 구매한 가정을 하나만 예로 들어 살펴보자.

만약 자산 15억에 부채 10억을 가진 가계가 있다고 하면, 이 가계는 10억의 빚을 얻고 자신의 순자산 5억을 투입해 15억짜리 집을 구입한 셈이다.

 

그런데 1991년부터 부동산 폭락으로 집값이 50% 하락, 7억 5천이 됐다면 어떨까?

이 가계의 순자산은 마이너스 2억 5천이 되어버린다. 바로 이런 치명적인 타격으로 일본 시민들은 불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때로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야반도주 사무소>를 연출한 감독 하라 타카히토는 말한다.

“버블의 붕괴는 비극적이었습니다. 부채 액수와 상관없이 대출받은 사람들은 자살했죠. 일가족 전체가 자살하는 일도 있었고, 야반도주해서 신원을 바꾸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한 가족들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한 나라의 경제 침체는 그 나라와 국민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일본의 야반도주 현상에는 버블 붕괴라는 경제적 사건과 일본인 특유의 수치심과 체면 코드도 결합되어 있는데, 일본 연구의 대표 저서로 꼽히는 <국화와 칼>에서는, ‘일본인들은 윗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감정’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만일 실수해서 수치심이 느껴질 때는 과도하게 자책하며, 결국 예의를 지키고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증발이나 자살을 택한다고 한다.

증발한 사람들을 찾는 탐정 후루우치 사카에도 일본인들의 특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일본인들은 마치 약한 불 위에 올려진 압력솥 같은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러다 압력을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수증기처럼 증발해버린다.’

 

이처럼 한 나라의 특정 현상은 단순히 일시적인 발생이 아닌, 경제와 문화의 복합적인 특징 안에서 나타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사회 현상에는 경제 침체의 그림자가 오래도록 드리운 경우가 많다.

경제적 사건을 모르고선 그 사회의 내막을 이해하기 힘든 이유는, 돈과 관련된 경제 그 자체의 영향이 서민들에겐 불가피하게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는 현실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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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지금도 매년 1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자발적 실종으로 증발한다는 추정치가 있다. 이는 일본의 자살자보다도 4배나 더 많은 숫자다.

현재 일본 경제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왜 여전히 증발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물의 이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거의 비슷한 비율로 숨어 있다.

- <스푸트니크의 연인> 무라카미 하루키 -

 

홍춘옥의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레나모제의 <인간증발>,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Change Ground>를 참고

한국군도 참전했던 베트남 전쟁에서, 1975년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을 지원한 미국을 퇴출시키며 공산 통일을 달성했다.
그리고 인접국가인 캄보디아와 라오스 또한 그 영향을 받아 공산화되었는데, 중국과 베트남 전쟁의 시발점은 바로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전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잔혹함을 넘어 대학살의 끝판왕 킬링필드로 악명 높은 캄보디아의 폴 포트, 그가 이끄는 크메르루주 정권은 베트남과 국경 문제로 잦은 분쟁을 겪었고, 캄보디아 내의 베트남계 주민 박해와 공포 정치가 극에 달했다.
갓 통일된 베트남은 여세를 몰아 크메르 루주 정권으로부터 망명한 사령관 헹 삼린을 앞세워 캄보디아 프놈펜을 점령, 희대의 악귀 폴 포트를 몰아내고 친 베트남 정부 수립을 도왔다.

간단히 말해서 베트남이 자기 국민들 괴롭히고 국경을 자주 침범하는 옆 나라 캄보디아로 쳐들어가서 혼내주고, 옆 동네 친한 동생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중국이 개입하게 된다.

 


중국은 사실 베트남에게 당한 폴 포트 정권을 지원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 악귀 폴 포트 정권을 왜 중국이 지원…?
그건 폴 포트의 앞 정권이 미국이 밀어주던 론 놀 정권이었고, 이 친미파 론 놀을 몰아낸 게 폴 포트였기 때문이었다. 미국-소련 냉전시대의 민주주의냐 공산주의냐의 ‘너 죽고 나 살자’의 팽팽한 힘 겨루기 상황.

여하튼 중국은 예전부터 베트남을 살짝 낮춰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실제로 중국이 옛 소련 빼고는 주변 국가를 높게 쳐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한국 사람들이야 중국으로부터 배울만한 게, 거의 모두 하지 말아야 할 것들뿐이지만, 자기 자신들한테 중화의 중국은 그만큼 찬란하고 위대해야 하니까~!

중국 입장에서는 베트남이 건방지게 자기들이 지지하는 정권을 몰아내고 새로운 정권을 세웠던 것.
‘너희들 당장 캄보디아에서 안 나가? 안 나가면 우리가 쳐들어간다~!’라는 명목으로 베트남과의 국경선에 군대를 밀집시켰다.

1979년 1월 중국은 56만명을 베트남 국경에 집결시키고 위협하다가, 2월 덩샤오핑은,
‘동맹국 캄보디아의 침공과 베트남 내 중국계 화교 추방’ (베트남은 인정하지 않았으나, 일부 사례가 있었음.)을 이유로, ‘베트남에 대한 징벌적 군사행동’을 발표하고 선전포고 후 국경을 넘어 베트남을 침공했다.

 


이제부터 전쟁의 본론이다.
사실 베트남의 주력군은 캄보디아에 주둔하고 있었고, 중국도 베트남을 위에서 치고 내려가면 이 캄보디아 주둔 정규군이 베트남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거라는 쓰리쿠션 원리를 믿고 침공을 했는데, 아~? 실상은 그렇게 안 돌아가는 게 문제가 된다. 세상살이 뭔가 이해관계가 걸리면 다 문제가 생기는 법. 중화사상의 착각은 한결 더 그렇겠지…?

베트남과 중국 국경에서 전쟁을 하는 베트남 군대는 정식 군대가 아닌, 예비군이던 민병대 출신들이었는데, 이들이 과연 누구냐?
과거 베트남 전쟁에서 정글을 누비며 미군을 토끼몰이하고 통일을 이룩한, 베트콩의 베테랑 퇴역 군인들이었던 것이다.ㅎㅎㅎ

반면에 중국은 처음엔 심천 주둔의 광동군부의 정규군이 내려왔으나 뺨 맞고 아구창 터지고 쩔쩔매다가, 결국 중국 전체에서 가장 덩치도 크고 용맹하다는 산동성 제남군부에서 긴급 공수해 보충을 했다. 하지만 1960~70년대 문화대혁명 여파로 근대화에 총체적으로 실패한 정규군이었고, 전혀 정규군대답지 못한 정규군대였다.

 


수적으로 한참 열세인 베트남 예비군은 퇴각하며 피해를 주는 방법으로, 영리하게 정글을 누비며 중국군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고 도시를 하나씩 하나씩 야금야금 내주며, 하노이에서 필살의 반격 한방을 노리고 있었다.
매 전투마다 심각한 출혈을 당하며 조금씩 진군하던 중국군은 작전대로가 아닌, 훨씬 많이 손해 보며 진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대목에서 중국은 시대의 정신승리를 선포하게 된다.
‘베트남에게 징벌을 완료했다'라고 일방적으로 선포하며, 베트남에서 군대를 무작정 철수시키기 시작한 것이었다. 실제로는 겨우 북부지역 몇 군데를 점령했지만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곧 치러질 하노이에서는 베트남군이 제대로 벼르고 있어서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 뻔한 상황이었기에, 더 내려갈 수 없어 그냥 후퇴하고 말았던 것. 중국은 3월 16일 베트남 영토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그 후 중국은 중국대로 ‘우리가 이겼다! 베트남에게 징벌을 완료했다’라고 대대적인 선전을 하고, 베트남은 베트남대로 ‘우리가 중국을 물리쳤다! 중국을 몰아냈다.’라고 자축하게 되는데, 실제로 누가 이겼는지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침공을 시작하고 점령도 해놓고, 말도 안 했는데 뭐가 남는 장사라고 그냥 돌아가나?

중국 내에서 이 전쟁에 대한 평가를 살펴보면, 성과에 대해서는 정량적 숫자를 들이대며 나열해 놓았고, 이는 베트남에게 준 피해를 부각시켜 열세였던 베트남 민병대 예비군한테 발린 중국군의 정성적인 패배를 감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영향으로 전쟁 당시 중국군 내에서 발견된 심각한 지휘체계의 부재, 낙후된 군사 장비 등에 대한 깊은 반성과 현대화의 의지를 보여주며 발전의 발판으로 삼았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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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은 이 전쟁을 '중국의 승리'로 아직도 역사를 배우고 있을 것이다.
그때 후퇴를 안 했더라면, 역사에 영원히 남을 미국을 패퇴시킴과 함께 중국도 때려잡았다는, 베트남의 확실한 대박기록을 남길 수 있었을 텐데… 아~ 아쉽고도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베트남에는 역사상 한국군이 가장 지독한 독종들이고 싸움도 귀신같이 잘하는 군대라는 전설이 남아있다.

<NGC 다큐멘터리> <9G 미니다큐 TMI>참고

공산당 1당 독재하의 중국의 정치체제는, 대부분의 독재국가들처럼 권력의 견제 기능이 떨어져 당연히 부패가 만연하다. 또한 유난히 관계를 중시하는 ‘꽌시 문화’ 때문에 뇌물과 향응이 사업에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뇌물 없이 사업하는 것은 사업을 안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중국이 진정한 글로벌 리더로 발돋움하고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부정부패를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차고 넘친다.

2012년 11월 중국 공산당 총서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그리고 국가주석을 위임 받아, 명실공히 중국의 최고지도자에 오른 시진핑은 강력한 반 부패정책을 시작했다.
약 6년 반이 지난 현 시점에도 중국은 1949년 정권 수립 후 가장 강력한 반 부패운동의 소용돌이에 싸여 있다.

지금까지 100만명 넘는 공무원들이 징계를 받았고, 고위 관료도 수천 명이 처벌을 받았으며, 압박 때문에 자살한 관리만 수백 명이다.
2014년 밥 데이비스 Bob Davis 월스트리트저널 중국경제편집장은, 중국의 반 부패운동은 시진핑의 권력 강화를 위한 숙청작업인 동시에, 부패를 뿌리뽑기 위한 진정한 노력 두 가지를 모두 의미한다고 말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시진핑은 정적들을 정조준하고 있었으며, 라이벌이던 보시라이는 부패혐의로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권력 양대 산맥을 이루었다가 하루아침 무기징역으로 평생 감옥살이를 하게 된 것이다.
과거 마오쩌둥과 장쩌민 역시 정적을 반부패라는 이름으로 제거했다. 그러나 정적을 제거하면 그것으로 끝냈다.

그렇지만 지금은 더욱 빡세고 광범위하게 반 부패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국가부주석 왕치산은 반 부패운동을 직접 지휘하고 있는데, 그는 시진핑의 오른팔이자 유능한 경제관료로 경제개혁 문제에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왕치산은 반 부패운동을 3단계로 구분한다.
1단계 : 겁주기 단계
2단계 : 상호견제와 시스템 도입
3단계 : 청렴한 자만이 공직을 담당

일당 체제의 특성상 상호견제와 시스템을 구비하는 것이 매우 어려우니 쉬운 개혁이 아님을 잘 알고 있으며, 중국은 현재 1단계인 겁주기 단계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일당 독재체제에서 청렴한 나라를 만든 싱가포르처럼 되고자 목표한다.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조사한 2017 아시아-태평양 부패인식조사 결과, 부패가 늘어났다고 느껴지는 국가 1위에 중국이 올랐다. 오랫동안 그 난리를 쳤음에도 전혀 개선되지 않은 모습이다.
응답자의 3/4이나 중국의 부패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고, 기본적인 서비스 이용에도 뇌물을 준 적이 있다는 사람의 비율이 응답자의 26%에 달했다고 한다. 오히려 부패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2018년말 시진핑은 그 동안의 강도 높은 반 부패운동의 결과 압도적인 성과를 거뒀다고 스스로 평가했지만, 객관적 자료나 실제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정황은 찾아보기 힘들다.
2012년부터 2018년 동안의 부패인식지수도 별로 변동이 없었고, 세계 80위였던 부패순위가 87위로 더 안 좋아졌다. 아직 진행 중이라지만 현재까지 나아진 것이 없다.
결국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정적을 제거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좀 더 타당한 해석으로 보인다.

중국의 역사와 그들의 권력 유지 전략을 살펴보면, 과거의 거의 모든 반 부패운동이 실제 개혁보다는 정적 제거와 권력 강화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역사 2천년을 분석하면, 진나라부터 청나라까지 49개 왕조를 거친 282명의 황제가 중국을 통치했다. 여기서 몇 가지 교훈을 짚고 넘어가자.

1) 영원히 존재하는 왕조는 없다
평균 존속기간은 70년으로 3년만에 사라진 후한(947~950)부터, 289년간 이어진 당나라(618~907)도 있었다. 중국 공산당은 1949년 정권을 잡았으니 현재 70년이 되었다.

2) 왕조 몰락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정치 엘리트의 반란이었다
외적 침입이나 민중의 반란이 아닌, 정치 엘리트에 의해 왕조가 바뀌었다. 이는 한국의 역사를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중국이나 한국이나 농민 반란군이 끊임없이 봉기했고 많은 지지를 받았음에도 정권 탈취는 실패했다.

3) 제 명에 물러난 황제는 절반밖에 안 된다
나머지 절반은 살해, 퇴위 강요, 자살 강요 등 비정상적이고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다. 황제 폐위의 원인이나 왕조의 몰락 이유는 서로 비슷했다. 사회 내부나 외적이 아닌 정권 내부의 엘리트에 의해서였다.

결론을 정리하면, 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가장 큰 위협 요소인 정권 내부의 엘리트 집단을 단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천안문사태 때 엄청난 민중들이 들고 일어났지만, 공산당은 꿈쩍하지 않았고 민주화는 실현되지 못했다. 결국 권좌를 차지한 입장에서는 주변 엘리트들을 잘 관리하고 이들이 엉뚱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단속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시진핑은 권력을 잡자마자 반 부패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공안황제로 불리던 저우융캉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또 라이벌이던 보시라이 충칭시 당서기를 비롯해 수만 명의 관료들을 처벌했다. 특히 장쩌민 쪽 사람들인 상하이방 관료들이 많았다.

장쩌민은 1993년부터 2003년까지 중국공산당 제3대 주석으로 당과 정부의 최고지도자였다. 그는 임기가 지나 공직에서는 은퇴했으나 여전히 막후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장쩌민 쪽 인사들이 주요 타깃이 되었던 것이다.

시진핑은 중국 5천년 역사에서 배운 그대로 주변 엘리트들과 라이벌들을 반 부패정책을 통해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것으로 투명한 사회를 만들고 개혁을 이루고자 할 수 있겠으나, 실제 국가 청렴도를 높이지 못할 경우 오히려 정적 제거에 대한 부작용으로 새로운 정적들이 와신상담하며 때를 기다릴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정치적 반대파가 지금은 잠복해 숨죽이고 있으나 민심의 변화가 나타나면 태세를 전환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권력 집중을 위해 반 부패운동을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로 그 칼이 자신의 목을 겨눌 수도 있다. 모든 정책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 부패운동을 나쁘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패는 국민을 힘들게 하고, 각종 부조리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온 나라를 불행하게 만든다.

모두가 부패한 사회에서는, ‘부패’라는 무기가 권력자들간의 무기로 자주 돌변한다. 털면 먼지가 천지사방 떨어지기 때문이다.
개인적 일탈과 부도덕함을 스스로 간직한 채, 정적 혹은 경쟁자를 제거하는 행위는 비단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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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국의 반 부패운동은 이를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사회에 만연한 부패를 체제의 문제로 보지 않고 그저 개인의 부도덕과 일탈로 본다면, 진정하게 청렴한 사회로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의 구조 내에 부패를 조장하는 요인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공식적인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저 부패 대상을 찾아서 벌주는 데만 급급하다.
시진핑 이하 중국공산당의 반 부패운동에 대한 판단은 아직까지 이른 듯하다. 그럼에도 시진핑은 이미 상당 기간 지속해 온 반 부패운동을 성공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BetterLife>를 참고

지금까지의 배터리 관련된 변천사 상식과 기술을 한번 살펴보자.
우리는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동영상과 여타 콘텐츠를 쉽게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휴대할 수 있는 전기 배터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배터리라는 이름은 1749년 4월 29일,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 (100달러 지폐의 표지모델 겸 프랭클린 다이어리의 주인공)이 직렬로 연결시킨 라이덴병을 이용한 전기실험 결과를 발표할 때 처음 사용했다.
그렇다면 지금과 비슷한 ‘근대 전지’의 발명은 누가 했을까?
바로 이탈리아의 과학자 알렉산드로 볼타가 구리와 아연판 사이에 소금물을 적신 천을 겹쳐 쌓아 올린, ‘볼타 전지’를 발명하면서 주목 받게 되었다.

그리고 1896년 어느 회사의 ‘콜롬비아 망간 건전지’가 아연-탄소 전지를 이용했던 1886년의 ‘Gassner 모델’을 기반으로 한 첫 번째 상용 1차 전지로 탄생하게 된다. 이 회사는 더 나아가 1955년 그곳에서 근무하던 후이스 어리라는 캐나다 화학 엔지니어가 ‘알카라인 건전지’를 탄생시켰고, 비로소 이 건전지가 시장에서 초대박을 치게 된다.

 


그러나 이런 1차 전지는 일회용이라 쓰고 나면 새 것을 다시 사야 하고, 계속 쓰레기를 배출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생겨난 기술이 바로 재충전이 가능한 ‘2차 전지’가 주목을 받게 되었다.
1859년 충전지라 부르는 2차 전지의 시초인 납 축전지가 가스통 플란테에 의해 처음 탄생했다. 바로 납 전극과 인산화 납 전극 판 사이에 고무판을 겹쳐 돌돌 말아서 황산에 담근 형태였다. 이 2차 전지는 아직도 자동차에 사용될 만큼 우리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이 2차 전지를 스마트폰 배터리로 사용한다면, 사람이 들고 다니기에는 휴대성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1980년 미국의 물리학자 존 굿이너프 교수는, 이온 형태의 리튬이 한 전극에서 다른 전극으로 이동하는 새로운 타입의 리튬 배터리를 발명하게 된다.

 


‘리튬 Li’은 원소 주기율표 상에서 가장 가볍고도 가장 큰 전기화학적 전위를 가진 원소 중 하나다. 그러니 이 조합은 가장 콤팩트하고, 가장 가벼우면서도, 동시에 가장 높은 전압을 만들게 한다.
덕분에 리튬-이온 배터리는 건전지 시장에 마실을 나왔다가 곧바로 진짜 인싸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리튬-이온 배터리 내에서 리튬은 코발트, 니켈 혹은 철과 같은 전이 금속과 산소와 함께 결합하여 Cathode 전극을 형성한다. 충전하는 동안 배터리에 전압이 인가될 때, Cathode 전극으로부터 양으로 대전된 리튬 이온은 전극끼리는 만나지 못하게 하고, 이온만 지나갈 수 있도록 구멍이 송송 뚫려있는 ‘분리막’을 지나 그라파이트 Anode 전극으로 이동하여 리튬 금속이 된다.

이것이 바로 완충 상태인데, 여기서 Anode 전극은 우리말로 음극재라고도 하는데, 국내에서는 POSCO에서 유일하게 이 음극재를 생산하고 있다.

 

 


우리가 이 충전된 배터리를 사용하여 방전시키면, 이것은 다시 리튬 이온으로 변환되어 Anode에서 Cathode 전극으로 돌아간다. 이때 회로 내 전자의 이동은 우리가 사용할 전류를 만들어 내는데, 이것이 휴대폰과 같은 전자기기에 탑재되면서 우리가 휴대하며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비록 그 동안 많은 연구개발을 통해 리튬-이온 배터리에 사용되는 전이 금속에 따라 배터리 셀은 더 큰 용량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만큼 더 불안정해지면서 ‘발화현상 Thermal Runaway’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런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에는 리튬과 니켈-코발트-망간 삼총사를 한 곳에 모아 안정적인 리튬 전극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더불어 이 Cathode 전극은 발화 문제로부터 안전하게 되었다.

1997년에는 리튬 폴리머 배터리가 처음 출시됐다. 이로 인해 배터리는 더 이상 액상이 아닌 고체 폴리머 합성물 내에 전해질을 갖게 되면서, 단단한 금속 케이스가 아닌 다양한 형태의 배터리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리고 현재는 더 나아가 배터리를 매우 안전하게 마음대로 씹고, 뜯고, 맛보고, 자르는 기술까지 발전되고 있다.

우리는 전기차도 만들고, 전기 비행기, 전기구이 통닭도 먹고 싶지만 유감스럽게도 자원은 무한하지 않다. 바로 그 ‘리튬 Li’, 전 세계 매장량의 75% 이상이 칠레-볼리비아-아르헨티나 3국 경계의 남미 삼각지대에 옹기종기 매장되어 있다. 이로 인해 시장에서는 수요에 비해 리튬 공급이 부족되는 현상이 지속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다.

그래서 리튬을 대체할 수 있는 2차 전지 기술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그 원소가 바로 소금인 ‘나트륨 Na’이다.
나트륨은 양이 풍부한 만큼 자원 고갈의 염려가 없으면서 리튬과 비슷한 화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차세대 2차 전지 재료로 주목 받고 있다.

그러나 나트륨은 기본적으로 리튬보다 무겁고 크기도 크기 때문에, 전송 속도나 에너지 밀도에서 차이가 나는 단점을 극복해야 한다.
현재 나트륨 이온 배터리가 상용화 단계에서 연구되고 있지만, 완전히 리튬을 대체하기에는 아직 연구를 더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메이저 자동차 회사들의 배터리 사업 진출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으며, 약 1년 전에는 일본의 초 거대기업에서도 리튬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POSCO가 남미 삼각지대 중 한 곳인 아르헨티나 리튬 광업권을 확보하면서, 2021년부터는 연 2만5천 톤의 리튬 생산과 수급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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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 알렉산드로 볼타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만든 기적의 건전지, 그것은 이제 우리 손안의 보조배터리로 자리 잡아 언제 어디서나 예쁘고 멋진 인증샷을 찍을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빠르게 변하는 기술로 휴대용 카셋트, CDP, MP3, 노트북, 슬라이드폰, 스마트폰, 드론 등 수많은 전자기기들이 짧은 역사와 함께 나타나고 사라져 갔다.

그런데 이런 빠른 변화 속에서 단 한 가지 변함없이 이슈의 중심에 서있고, 수요나 욕구가 더욱 커져가는 것은 ‘배터리’였다.
21세기의 황금이라 불리는 2차 전지와 리튬, 그 아성에 도전하는 천일염과 다른 차세대 배터리들, 과연 이 배터리 황금 시대의 승자는, 그리고 살아남을 자들은 누구일까?

출처 : <Unrealscience>를 참고

중국 = 세계 2위 경제대국 ≠ 민주주의 국가
중국은 오직 중국공산당만이 집권하는 1당 독재국가다. 공산당이 국가 위에 존재한다.
최고 권력자 시진핑, 그는 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당에서도 최고 지위를 가지며,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원수직인 국가주석이기도 하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부패지수를 살펴보면, 중국의 부패지수는 2018년 전세계 87위로 정말 형편없는 실정이다. 그리고 언론자유지수도 176위로, 최악의 수준이다.
경제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여전히 부패가 만연하고 표현의 자유도 없다.

그럼에도 중국공산당은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1949년 이후 70년 넘게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어떻게 그런 공산당이 세계에서 제일 사람이 많은 나라를 지배할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공산당의 과거 행적을 살펴봐도 중국 인민들이 정권의 어떤 정당성에 근거해서 지지하는지 의문이 든다.

보통은 정권의 정당성이 없으면, 그 정권은 오래갈 수 없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진리이다.
책 <하버드 중국 특강>에서 하버드대 중국 정치 전문가 엘리자베스 페리 Elizabeth J. Perry 교수는, 중국공산정권의 정당성에 대해 분석했다.

 


막스 베버 Max Weber (1864~1920)는 모든 권력은 정통성을 확보해야 지속적일 수 있고, 그런 권력이 합법적 기구들을 통해 강제력을 가지고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 받는다고 보았다.
막스 베버는 지배의 정통성을 획득하는 방법으로 3가지를 들었다.

1) 전통적 권위
원래 그래왔으니까라는 역사적 축적이 바로 그것이다. 관례적으로 권위를 가진다. 오랜 시일에 걸친 전통과 관습을 토대로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왕정시대의 중국 황제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는 무너졌고, 중국의 절대 군주체제는 사라졌다.

2) 합리적-법적 권위
만들어진 법에 대한 믿음과 절차를 바탕으로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을 뜻한다. 민주주의 사회의 체제 정당성이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3) 카리스마적 권위
특정 인물의 신성성, 영웅성을 이용하여 권위를 얻는 방법이다. 카리스마적 권위는 유지가 어렵고 카리스마가 존재할 때, 위의 2가지 형태의 권위로 전환시켜야 한다.
과거 마오쩌둥(모택동)은 카리스마적 권위가 있었다고 본다. 뛰어난 군사전략가이자 이론가로서 혁명을 성공시켰고, 천하를 얻은 인물로 아직도 많은 중국인들은 마오를 숭배하고 있다.

 


그렇지만 마오쩌둥은 40여년 전에 죽었다. 카리스마적 권위는 무너졌고, 소련의 공산체제가 무너진 것도 25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중국공산당은 여전히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심지어 중국 시민들은 당에 대한 지지가 대단하며, 공산당을 비판하는 곳에는 네티즌들이 옹호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많은 학자들 또는 중국측 매체에서는, 중국공산당은 그들이 일궈낸 성과로 인해 인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역시 사실일 수 없다.
비록 중국이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하더라도, 과거 중국 공산당이 주도한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등은 정말 크게 실패한 정책이었다.

 


이렇게 성과 자체도 지지부진하다 보니 중국공산당은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역사’를 말한다.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지만, 중국공산당은 일천한 역사를 지닌 정당으로 집권 이후 인민들은 굶주렸다. 중국공산당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시진핑은 3년 전인 2016년 5월 사회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을 모셔다 놓고, ‘중국의 사회주의 관행에 적합한 새로운 분석적 접근법’을 개발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갑작스러운 이론정립 과업에 공산당의 지도력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이는 지식인들에게 공산당의 통치와 관련한 학술적, 논리적 근거를 만들라는 지시였음에 다름 아니다.

공산당은 이들에게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고, 지식인들은 공산당을 위해 역사 왜곡 혹은 역사 다시쓰기 작업을 통해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할 것이다.
‘중국은 위대하다. 그런 중국을 공산당이 건국했고, 공산당이 계승한다. 그리고 공산당은 중국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 것이다.’

이런 과정을 보면 마치 김일성이 황장엽을 통해 주체이론을 만들어 자신을 신격화한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북한은 1930년대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결과로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고, 북한의 공산혁명도 이룩할 수 있었다고 말하면서 우리의 민족사도 날조했다.

그리고 항일정신이 북한 김일성 사상의 뿌리깊은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북한은 일본과 아직 국교를 맺지 않았다. 물론 일본은 맺고자 했으나, 북한은 이를 거부했다.
현재 일본과 국교를 맺지 않은 나라는 북한이 유일하다.

북한은 공산당 역사를 김일성 개인의 투쟁사로, 우리 민족사를 그들의 혁명사상에 따른 혁명사로 날조했다. 그리고 그들의 혁명사상은 이후 정치교육의 필수 내용이 되어 체계화된 주체사상의 기반이 되었다.

한편 싱가포르의 리콴유는 중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중국인은 국가가 이끄는 지도부가 강력해야 평화와 번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앞으로도 이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을 것이고, 그것은 공산주의 이념보다도 우선시되는 중국인의 신념 체계이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이 중국을 통일한 성과가 있다고는 하지만, 통일은 이미 청나라 시절에 이루어져 있었다.
중국인들이 분열된 중국을 원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이점 역시 중국공산당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역사’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론적으로, 중국공산당이 중국을 지배할 정당성은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중국공산당은 정당성이 필요하다. 중국은 앞으로도 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경제실적을 내든,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든,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지배의 정당성을 갖춰나가려 할 것이다.
<BetterLife>를 참고

 

미국의 또라이 지도자 때문에 전 세계가 개고생을 시작하는 모습이다.

대표적 자유무역 국가인 미국이 자유무역과 거리를 두는 듯한 발언과 행동으로, 전례 없는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다. 수입품 관세 부과에 대한 계산된 트럼프의 중구난방이 그 이유다.

 

관세는 가격으로 수입품을 견제하는 제도이고, 쿼터제는 수입물량을 제한함으로써 견제하는 제도다.

자유무역체제가 시작되기 전의 세계는 관세와 쿼터제를 통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것이 트렌드였다. 현재도 완전히 개방되지 않은 국가는 여전히 이 두 가지 제도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있다.

 

한국은 자유무역체제에서 큰 혜택을 입은 나라로, 우리는 그 체제를 당연한 상식으로 여긴다.

자유무역체제의 뿌리는 데이비드 리카도 (1772~1823)의 ‘비교우위론’에서 시작했다.

 

‘한 나라의 어떤 재화가 비록 상대국의 것에 비해 뒤처지더라도, 생산의 기회비용을 고려했을 때 상대적인 우위를 지닐 수 있다는 개념’으로, 상호 무역을 통해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금이나 생산성을 고려해도 비교우위론은 성립한다.

 

미국은 자유무역의 신봉자로서 무역장벽을 세워 보호무역을 지키려는 나라에 대해, 온갖 압력을 동원해서 시장을 열도록 강요해왔다. 비교우위론은 주류 경제학에서는 절대적 진리였다.

그러던 미국이 갑자기 자유무역체제를 거스르는 보호무역을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미국이 자유무역체제를 도입한 배경을 먼저 알아보자.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4년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튼 우즈에서 금융회의가 열렸다. 미국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고 고정환율 제도를 실시하여, 각 나라 간의 환율을 안정시킨 것이다. 이것은 자유무역을 확대하기 위한 기초작업이었다.

 

미국은 솔선수범하여 시장을 개방했다.

그전까지 세계는 자국 시장은 굳게 닫은 채, 남의 것은 활짝 열기 위한 쌈박질만 했다. 자기네 물건을 팔게 해달라고 이웃 국가에 압력을 가하고, 물리적 힘도 종종 썼다.

그렇게 자국 시장은 굳게 닫은 채, 옆 나라 시장은 개방하려는 도둑놈 심보를 모두들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은 스스로 시장을 개방하고, 모든 무역 활동을 세계 최강의 미해군으로 지켜주겠다고 선언했다. 그런 후 독일과 일본에게도 이 무역체제에 동참하라고 제안했다.

자국에 이득이 된다면, 미래에 이득이 될 수만 있다면, 과거의 적인지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지정학 전략가이자 안보 전문가인 피터 자이한의 책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현재와 같은 세계 질서로 만들 수밖에 없던 한계와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승전국이었던 미국은 왜 추축국들을 점령하지 않았던 것일까? 과거 영국처럼 전 세계를 식민지화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그 답은 간단하다.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은 그런 점령지 관리에 대한 노하우도 없었다. 분명 식민지에서는 데모도 하고, 독립을 위한 시위도 하고,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것이다.

 

식민지 정책이 각 나라들이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도록 만들어, 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과거의 사례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국은 각 나라의 독립된 지위를 인정하고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얽힘으로써, 유사시 지켜준다는 약속과 함께 안보 동맹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그러면 미국은 왜 시장을 개방했을까? 미국이 시장 개방과 경찰국가를 자처한 이유는 크게 2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1) 소련에 대한 견제

소련과 맞닿은 나라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방어막으로 키우는 것이 유리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 일본, 독일 등을 식민지로 삼아 소련에 직접 대항하는 것보다, 확실한 우군으로 키우는 것이 미국 입장에서 효율적인 방법이었던 것.

 

미국 체제에 합류하면 군사력으로 보호해준다고도 약속했다.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전쟁은 그 약속을 지키고,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한 미국의 큰 그림이었다.

 

2) 중동의 석유

미국은 산유국이긴 하지만 오랜 기간 석유를 수입해온 나라다. 중동의 석유 생산국으로부터의 수송로를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 바닷길을 미해군이 잡고 있어야, 유라시아 대륙에 있는 석유를 본토로 무사히 싣고 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자유무역체제를 유지해야 할 2가지 이유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1990년 소련은 몰락했고, 미국은 혁명이라 불릴 정도의 기술 발달로 셰일오일 생산을 시작했다. 그동안 수입에 의존했었지만, 이젠 국내에서 에너지를 자급자족할 수 있음을 의미하고, 석유 수송로를 보호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기도 하다.

 

1944년 시작된 브레튼 우즈 체제의 자유 무역시대를 맞아 독일, 일본, 한국, 중국 등은 수출 위주의 전략을 펼쳐 급성장할 수 있었다. 한편 자유무역체제의 예상치 못한 부작용들이 미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해외 국가들이 싸고 질 좋은 제품을 미국시장에 팔다 보니, 미국은 전 세계에 천문학적인 빚을 지게 되었다.

 

한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아일랜드와 같은 국가들은 자유무역체제만을 위한 독특한 경제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부를 쌓을 수 있었다.

미국 입장에서는 주력 산업을 하나씩 뺏기니 미국 내 일자리가 사라져 가고, 빚만 천문학적으로 늘어가게 된다. 또 세계의 경찰 역할까지 수행하느라 미군 유지 비용도 상당했다.

 

미국은 지금껏 전 세계 국방비의 절반가량을 지출하면서 세계 각국의 교역을 보호해주고 있었다.

트럼프 주장만 해도 미국 사람들 입장에선 납득이 간다. 외국에 빼앗긴 산업을 다시 미국으로 가져와 일자리를 확보하고, 안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들에게 방위비를 청구하겠다는 것을 말한다.

 

미국이 자유무역체제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분석이 지속적으로 나온다. 언어나 행동 때문에 또라이로 묘사되는 트럼프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는 중국과 관세전쟁을 벌이고, 한국산 세탁기에 대해서도 관세를 부여한다. 또한 방위비 부담금 인상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피터 자이한은, ‘미국은 저력이 대단하기 때문에, 실패한 정책을 내놓더라도 나라가 위태로워지지는 않을 수 있다. 다른 나라는 지도자를 잘못 뽑으면 나라가 거덜난다!’라고 말한다.

아주 인상 깊은 말이다

 

동남아나 남미 국가들의 흥망성쇠는 세계의 변화와 흐름 속에서 어떤 지도자가 집권하고, 어떤 정책을 펼쳤느냐에 따라 달라져왔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했던 한국이 지금의 경제 대국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주도한 세계 자유무역체제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체제 변화에 잘 대응해서 세계적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

미국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세상이 변함에도 과거의 상식에만 의존하여 자유무역체제가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은 위험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같이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자유무역체제가 필요한 당사자는 미국이 아닌 한국이니만큼, 더 큰 관심과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그리고 ‘지도자를 잘못 뽑으면 나라가 거덜난다’라는 말은 가혹해 보이지만, 명심해야 할 말이다. 우리도 벌써 뼈저리게 경험한 사실이다. 다른 건 접어놓고라도, 한국의 다음 총선과 대선에 대한 경고다!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깨끗하고 정직하기만 해도 된다. 국민이 똑똑하니까…

1997년까지만 해도 우리보다 분명히 못하던 싱가포르가, 그들 지도자의 청렴함 하나로 지금 우리보다 2배나 더 잘 산다.

 

<BetterLife> 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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