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뒤 많은 사람들이 애플에 대해 남의 살림살이 걱정을 하곤 했다.

‘잡스가 없는 애플은 이제 끝났지 뭐,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그렇지만 잡스가 없는 애플의 시가 총액이 사상 최초로 1조 달러를 돌파했고,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값어치를 지닌 기업으로 지위를 굳혔다. 물론 돈 가치가 많이 떨어진 이유도 한 몫 거들었겠지만…

주가가 3배나 뛰었으며, 2010년 이래 현금 보유고 역시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 애플.

 

 

이런 애플의 기록적인 성장 뒤에는 ‘팀 쿡 Tim Cook’이 있다.

그가 애플의 CEO를 맡게 되었을 때, 거의 대다수 사람들은 우려를 표했다. 사람들은 잡스의 후계자로 ‘조너선 아이브’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플을 이끌어 온 스티브 잡스와 가장 비슷한 인물은 조용한 막후의 관리자 ‘팀 쿡’보다는, 애플의 디자인을 총괄 지휘했던 수석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가 더 가까웠다.

수석 디자이너에 비해 대중에게 알려지지도 않았던 CEO ‘팀 쿡’, 하지만 애플을 정상에 올려놓은 그의 성과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의심할 수 없다.

 

팀 쿡은 애플의 흑자 전환에 기여한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다.

만성적인 악성 재고에 시달리던 애플은, 그가 애플에서 일을 시작한지 단 7개월 만에 재고 회전주기를 30일에서 단 6일로 줄였고, 판매되지 않은 맥의 재고량도 4억 달러어치에서 7,800만 달러로 감소했다.

팀 쿡이 만든 재고관리 시스템은 애플의 기록적 성장의 촉진제로 작용했다. 심지어 애플의 재고는 1999년 단 2일치로 줄어들었고, 이는 업계의 롤 모델이던 델 Dell의 수준도 넘어서는 것이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팀 쿡은 애플에 새로운 가치관을 심고 있다.

성소수자의 권리와 박애주의, 기업 다양성,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잡스가 지휘하던 애플에서 다소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았던 사회 기여에 대한 역할도 놓치지 않고 있다.

 

애플은 팀 쿡의 지휘 아래 세계 최초로 1조 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지만, 사실 그가 한 일은 그 이상이다. 애플을 더 나은 회사로 만들었고, 세상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 언론인 찰리 로즈와의 인터뷰에서 팀 쿡은 이렇게 말했다.

 

“잡스는 제가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애플을 이끌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지켜보며 심사 숙고했을지는 누구나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항상 잡스가 저를 선택한 것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잡스의 유산인 애플을 성장시키며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회사에 쏟아 붓고자 노력하겠지만, 저는 결코 잡스와 같아지는 것을 목표로 삼지는 않았습니다. 팀 쿡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팀 쿡 뿐이니까요.”

 

세계 최고의 브랜드 애플을 이끌어 나가는 수장 팀 쿡.

애플이 나아갈 미래의 방향을 이해하기 위해선, 팀 쿡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더 저렴한 대량직구 amazon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팀 쿡의 리더십과 경영철학 그리고 애플이 꿈꾸는 10년 후 미래.

린더 카니 저 <팀 쿡 Tim Cook : 애플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조용한 천재> <Change Ground>를 참고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현대 기술로 만들어낸 기기에 늘 둘러싸여 있다. 너무 익숙해져서 그것이 실제로 얼마나 교묘하게 디자인되어 있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그곳에 숨어있는 작은 미스터리들도 많다.

 

컴퓨터 키보드에는 왜 다리가 있을까? 헤드폰과 이어폰은 어떻게 진동하는 걸까? 왜 USB는 한번에 잘 꽂히지 않는 걸까?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한번 찾아보자.

 

1) 적외선 코드

이건 TV가 리모컨과 대화할 때 사용하는 언어이다. 리모컨은 TV에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모든 파장의 빛을 사용할 수 있다. 만들기 가장 편리한 적외선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신호를 보내는데 적외선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고, 모든 신호가 평평한 적외선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짧은 깜빡 거림이다. 이것은 일종의 모스 부호처럼 특정 메시지를 암호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해서 TV는 리모컨의 어떤 버튼을 눌렀는지 인식하는 것이다. 메시지는 1과 0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록 모든 깜빡임이 너무 빨라서 신호 전달의 대기시간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TV의 언어로는 0은 적외선 파동 사이에 짧은 포즈고 1은 더 긴 포즈이다.

 

2) 키보드의 다리

키보드를 좀 더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어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 때문에 있는 것은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사실은 키보드가 바닥에 딱 붙어 있는 것이 손목에는 더 좋다.

이 다리는 타이핑하는 글자를 더 잘 보이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키보드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Fㄹ’과 ‘Jㅓ’에 있는 조그만 돌기이다. 이 돌기들은 양손 타이핑을 할 때 키보드를 보지 않고도 양손이 정위치에 오도록 가이드하는 역할을 한다.

 

3) USB 플러그

사람들의 화를 돋우려고 특별히 만들어진 것처럼 호박엿 같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하지만 단순한 사실을 알고 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USB가 플라스틱 부분과 함께 이런 형상으로 만들어진 이유는, 컴퓨터에 잘못된 방향으로 끼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USB를 거꾸로 끼우면 작동하지 않는다. 플라스틱 부분이 없어서 USB를 잘못 끼울 때마다 다시 뽑았다 꽂아야 한다면 더욱 짜증날 것이다. 성가신 플라스틱 조각이 우리를 돕고 있는 것이니 생각을 바꾸자.

USB의 삼지창 표시가 보이는 쪽으로 끼우면 실패는 없다.

 

4) 균형이 맞지 않는 모터

뭔가 균형이 맞지 않고 투박하고 흔들린다고 그 물건이 전혀 쓸모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모르고 있을 수도 있지만, 사실 균형이 맞지 않는 모터를 우리는 매일 사용하고 있다.

이 모터는 정말 작다. 연필 끝보다 조금은 더 크겠지만, 스마트폰의 각 부분에 여러 개가 숨어 있다.

 

모터들은 추를 회전시키는데 반달 모양으로 생겨서 움직임이 고르지 않은 힘을 생성한다. 빠른 회전 때문에 이 힘은 주변의 것을 한 방향으로만 미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방향으로 민다. 그야말로 좌충우돌하는 것이다.

 

이 혼란은 단순히 진동처럼 우리에게 느껴지지만, 피자배달 알림이 뜨거나 기다리던 메시지가 왔을 때마다 이 작은 불균형 모터는 그 알람을 느낄 수 있도록 진동을 만들어낸다.

 

 

5) 스마트폰으로 만드는 올림픽 메달

2020년 도쿄 올림픽과 장애인 올림픽을 위해 일본은 모든 메달을 재활용 기기로 만든다고 한다. 전자제품 폐기물 수집은 올해 3월 말에 이미 끝났다고 한다.

광산에서 나온 금은동이 아닌 스마트폰과 노트북, 카메라에서 추출한 광물을 쓴다. 5백만개 이상의 스마트폰에서 30.3Kg의 금과 4.1톤의 은, 2.7톤의 동이 이미 추출되었다. 이 재료는 믿을만하니 걱정하지 마시라.

스마트폰이 비싼 것도 조금은 이유가 있는 셈이다.

 

6) 미니 잭에 있는 선

이어폰 플러그의 금속 부품 사이에 작은 선이 들어가 있다. 2개가 있는 것도 있고 3개가 있는 것도 있는데, 아주 오래된 미니 잭에는 오직 하나밖에 없다.

이 선은 플라스틱처럼 폴리머 물질로 만들어져 있어 전기 신호를 전달하지 못한다. 이 선들의 주요 목적은 정보를 전달하는 각기 다른 채널의 전기 자극을 분리하는 것이다.

 

선이 하나만 있는 것은 모노 사운드 신호만 제공한다. 선이 2개인 플러그는 신호를 분리할 수 있어서 스테레오 사운드를 전달할 수 있다.

요즘은 모든 음악을 스테레오로 만든다. 왼쪽과 오른쪽 이어폰이 약간 다른 트랙을 들려준다. 이렇게 해서 소리의 깊이와 복잡함이 잘 전달된다.

 

3개의 줄이 있는 헤드셋은 스테레오 사운드를 재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마이크도 같이 가지고 있어서 핸즈프리 장치로 사용할 수 있다. 그저 장식은 아닌 것이 분명하고, 줄이 있으면 쬐끔은 멋져 보인다.

 

더 저렴한 건강식품

 

7) 충전기의 잡동사니 기호

충전기에는 이상한 기호가 너무 많아서 상당히 지저분해 보인다. 하나씩 살펴보자.

항상 인증마크가 있다. 예를 들어 CE 같은 마크는 사용 가능할 정도의 좋은 품질이고 관련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은 집 모양은 이 기기가 오직 가정용으로만 적합하다는 표시이다.

 

겹사각형 표시가 중요한 것인데, 이것으로 충전기가 이중 절연 처리가 되어있어 감전을 막아줄 것임을 뜻한다. 그리고 X 표시가 되어있는 휴지통은, 이것이 기기의 폐기물로 재활용되어야 한다는 표시이다.

원안에 들어있는 VI 표시는 충전기의 효율성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 IV가 있으면, 이것은 미국 표준이라는 뜻이다. 단지 원안에 V만 있다면, 이 충전기는 유럽 표준에 맞다는 표시이다.

출처 : <Bright Side Korea>

미국에서는 매년 600만개 이상의 신생기업이 탄생한다.
포춘 선정 100대 기업으로 자리잡은 구글, 시스코, 오라클은 10년 전만 해도 주식시장에 상장조차 하지 못했다. 유튜브, 핀터레스트가 전 세계 수십억 명을 연결하지만, 이들은 설립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실제 1937년 S&P500 기업의 평균 수명은 75년이었으나, 최근 그것이 15년으로 줄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오늘날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개념의 시대’로 평가하며, 앞으로의 CEO는 큰 그림을 생각하는 것은 물론, 상품과 서비스, 경영 스타일을 통해 삶에 의미를 불어넣어줄 유머를 갖춘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유머라…? 평소 실없는 인간들은 좋아라 하겠네.ㅋ)

앞으로 기업에 필요한 건 순발력과 상상력 그리고 분석력인데, 이런 분야를 모두 갖춘 ‘디자인 Design 관점’을 가진 경영자 혹은 리더가 DEO인 셈이다.

 


CEO 대신 DEO를 꿈꾸자! 
DEO로 성장하는 방법과 그 주요 특성은,


1) DEO ‘모호해도 괜찮아!’
한국에서 현재 가장 주목 받는 기업 중 하나인 카카오의 대표는 대학원에서 산업디자인학을 공부했다. 배달의 민족 대표 역시 디자인 대학원을 나왔고 디자인 직군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DEO 리더십이 한국에서도 발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전통적인 CEO와 DEO형 리더는 공통적으로 자신감이 넘치고 이성적이며 경쟁적이다. 이 공통점 외에는 거의 모든 특성이 상대적으로 다르다.

CEO : 최고 경영자, 권위적, 선형적인 사고, 계획에 의한 실행, 안정과 질서 유지, 존경 받길 원함, 정확성 요구, 행동을 대표, 일방적 커뮤니케이션, 매뉴얼 고수, 실패를 좋아하지 않음, 위험에 민감

DEO : 최고위급 파트너, 영감 소통, 시스템적 사고, 실험과 임기응변, 도움되는 혼란 허용, 존경심 획득, 모호해도 OK, 필요시 직접 실력 행사, 네트워크 형성, 필요시 수용 및 반복, 실수 통한 학습, 새로운 경험에 개방적

CEO의 특성과 비교되는 DEO의 특성으로는 권위적인 대신 영감을 불어넣어 준다는 것, 정확하지 않고 모호해도 괜찮다는 점,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보다는 네트워크를 추구하며, 매뉴얼을 고수하는 대신 필요할 경우 수용과 반복, 실수를 통해 배운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2) DEO ‘시스템적으로 사고하는 기술’
그렇다면 앞으로의 리더인 DEO로 성장하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책 <DEO의 시대가 온다>의 저자는 TED 강연 큐레이터, 미국 최고의 식품 및 음료 연구소 맷슨의 대표 DEO 등 분야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해서, DEO로 성장하는 방법을 분석했다.

우선 공통적으로 6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①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
② 리스크 감수
③ 시스템적 사고
④ 직관
⑤ 사회적 지능
⑥ 끝까지 진행해서 일을 마친다

 


이중 직관과 함께 가장 오랜 경험과 사고를 요하는 특성은 시스템적 사고다.
시스템적 사고란 간단히 말해 연결고리를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A가 B의 원인이므로 A를 해결하면 B도 해결할 수 있다는 선형적 사고를 넘어, 모든 것을 하나의 생태계로 인식한다. A는 B, L, X에 영향을 미치고, 어떤 때는 Z에까지 영향을 준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평소에도 여러 개 채널에 집중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코카콜라의 인간과 문화 연구부서 디렉터는 변화를 위해 2개 채널에 동시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인터넷이나 인구통계학처럼 폭넓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거시적인 힘을 추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보다 다양하고 지역적 영향력이 있는 문화적 추세에 주목하라는 얘기다.

이 외에 맥락을 이해하는 지식과 직접적인 경험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루 동안 다른 사람과 일을 바꿔서 해보고 서로를 위한 개선책을 기록해 비교해 보는 방법, 컴퓨터 화면으로 읽던 보고서를 출력해 회의실이 아닌 외부에서 회의를 진행해 보는 것 등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면, 시스템의 숨은 부분을 찾아낼 수 있고 나아가 시스템적 사고를 습관화 할 수 있게 된다.

 

 

오늘만 특가! 품목 모음


물론 이 과정에서 우리는 실패할 수도 있다. 실제로 변화를 위해 기업이 기울인 노력의 70%는 실패하니까. 하지만 배우고 훈련해서 전진하도록 돕는 실패는 똑똑한 실패다. 똑똑한 실패는 변화를 넘어선 혁신을 일으킬 것이다.
지금부터 DEO로의 성장을 꿈꾸자.

만약 당신이 때로 실수한다면,
이는 무언가 혁신적인 것을
하고 있다는 신호다.
- 우디 앨런 -

마리아 쥬디스, 크리스토퍼 아일랜드 공저 <DEO의 시대가 온다 : 디자인적 사고로 인재관리, 시스템, 경영을 새롭게 모색하는 Rise of the DEO> <Knowledge Talk>를 참고

지금의 샤넬을 있게 만든 절대적인 인물, 칼 라거펠트 Karl Lagerfeld는 1933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스웨덴 출신으로 독일 함부르크에서 연유 사업을 꽤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덕분에 칼 라거펠트는 비교적 부유한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고, 전쟁 중에 그의 가족도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그림에 뛰어났고 유년기부터 옷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어렸을 때 옷을 만지면 대략 언제 만들어진 옷감인지 파악할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그가 19살 되던 1952년, 패션의 중심인 파리로 이주하게 된다. 옷에 있어서는 탁월한 천재성을 보이던 그는 파리로 옮긴지 2년만에, 국제 양모사무국이 주최한 디자인 대회에서 당당히 코트부문 1위에 올랐다.
이때 1등을 하면서 당시 거장이자 브랜드 발망을 만든 피에르 발망 밑으로 들어가게 된다.

칼 라거펠트의 초창기 디자인들은 큰 호평을 받지는 못했다.
실제 20대 때 내놓은 디자인들은 각 매체에서 호평보다는 악평을 많이 받았다. 이후 약 9년간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하며 실력을 쌓은 그는 1963년 독립을 선언하고,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길을 걷기로 한다.
이것은 나중에 칼의 신의 한수가 된다.

 


프리를 선언한지 1년만에 그는 끌로이의 디자인팀에 합류하고, 다음 해에는 펜디의 디자인팀에도 합류하게 된다. 프리랜서 디자이너였으므로 한 브랜드와만 작업을 하지 않고 다양한 브랜드와 작업을 할 수 있었는데, 당시 너무 예술성과 최고급에만 치중되어있던 파리의 패션 디자인에 환멸을 느끼고, 좀 더 대중적이고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는 옷을 만들기 시작한다.

프리랜서 이전의 브랜드 디자이너 때는 대세를 따라가며 만들던 옷이 별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지만, 그만의 길을 걸으면서 대중적으로나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82년 세계 패션 역사에 길이 남을 깜짝 발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샤넬의 칼 라거펠트 영입이었다.

당시 파리의 패션계는 매우 보수적이었다. 예술적인 옷과는 거리가 먼 기성복을 만드는, 심지어 프랑스인도 아닌 독일인인 그를 샤넬이 영입한다고 했을 때, 내외부적으로 엄청난 반발이 있었다.
하지만 샤넬의 소유주들은 갈수록 샤넬의 명성이 떨어지고 감각도 올드 해진다고 판단하여, 분위기를 뒤엎을 게임메이커로 그를 영입한 것이었다.

1982년 1월, 첫 샤넬의 컬렉션 무대를 선보인 그에게 언론들은 죽은 샤넬을 환생시켰다며 극찬했다.
1984년 그는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면서, 지금까지의 샤넬 제국을 만드는데 절대적인 인물이 되었다.
샤넬의 시그니처인 샤넬의 로고, 트위드 수트, 까밀리아, 퀼팅백 등은 모두 그가 창조해낸 작품들이다.

그는 샤넬의 디자인을 젊은 세대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감각으로 바꾸지만, 소재는 프랑스에서도 하이엔드 공방에서 공수 받는 최고급만을 사용해서 젊은 감각의 최고급 럭셔리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나갔다.
실제로 그의 최근 컬렉션들을 보면 옷은 물론이고, 컬렉션의 무대 하나하나를 어떻게 70, 80이 넘는 나이에 그런 현대적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 칼 라거펠트까지, 샤넬, 펜디, 칼 가러펠트 등 총 3개의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최근 펜디에서 필라의 로고를 오마쥬한 감각을 보면, 나이를 거꾸로 먹는 감각을 보여주는 듯한 모습이다.

 


책을 좋아하는 독일인답게 그 역시 독서를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출판업과 서점 사업을 하는 7L의 소유주이기도 하고, 그의 집에는 20만권 이상의 책을 보유하고 있다.
또 사진에 관심을 보이며 이를 배운 후부터는 광고캠페인과 패션 잡지의 화보 촬영을 직접 하는 등, 사진에서도 엄청난 감각을 보여주었다.

그 역시 톰포드와 비슷하게 완벽주의자 성향을 보이는데, 그의 이미지를 통일하기 위해 언제나 블랙수트, 블랙 선글라스, 백발의 포니테일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부 활동을 할 때 포니테일과 선글라스를 착용하지 않으면, 절대 촬영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2000년도 당시 남자 옷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에디슬리먼의 디올 옴므의 스키니진을 입고 싶었지만,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13개월 동안 42Kg을 감량할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그의 재산은 약 2천억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는 디자인 활동을 위해 파리의 고급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그의 집은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수많은 책으로 보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또 얼마 전에는 고향인 함부르크에 있는 그의 맨션이 매물로 나왔었는데, 기품 있는 이 집 앞에는 엘베강을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져 있고, 집 전체는 대리석과 각종 고급 가구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 집의 가격은 약 120억원이었다.

그의 반려묘이던 고양이 슈페트 라거펠트 역시 엄청난 팬을 가지고 있는데, 이 고양이는 칼과 함께 전용기를 타고 다니며 2명의 전용 집사와 전문의까지 있다.
고양이의 인스타그램이 따로 있는데 팔로워만 12만명이고, 2014년에는 광고출연으로만 약 35억원을 벌었다고 한다.

 

더 저렴한 대량직구 amazon


고양이 사료나 간식 등의 광고 요청도 물밀듯이 들어오지만, 그런 광고를 찍기에는 고양이가 너무 기품있다고 칼 라거펠트가 광고를 거부한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 그에게도 피해갈 수 없는 단 한가지가 있었으니, 바로 죽음이었다.

그는 2018년부터 급격히 허약해지면서, 2019년 2월 19일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가 패션계뿐 아니라 전 세계에 남긴 유산은 아마도 평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실질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업을 패션계에 첫 뿌리를 심은 인물이었으며, 독일인으로서 파리의 패션문화를 바꿔놓은 인물이기도 했다.

<Money Swagger>를 참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이건 아주 간단하다.
'경쟁하지 않는 것.’
경쟁이 치열한 이유는 서로 비슷한 기준으로 비교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성능, 비슷한 디자인, 비슷한 가격, 차이점이 크지 않아서 하나의 파이를 수많은 제품들이 나누어 가진다.

그 대표적인 것이 자선단체이다.
자선모금 업계는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 중의 레드오션이다. 수천 개의 자선단체들이 저마다 구호를 외치면서 사람들의 동정심에 호소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전략을 세운다.
좀 더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은 광고 캠페인을 만들고, 화려한 모금행사를 하고, 부자에게 더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경쟁을 더 가속화하고 비용만 늘어나게 할 뿐이다.
사람들은 점점 죄책감을 유발하는 광고에 피로감을 느껴 기부금은 줄어들게 된다.

 

영국 코믹 릴리프 모금 캠페인

점점 악화되는 상황에서 한 자선단체는 아주 독특한 생각을 했다.
‘왜 기부금 홍보는 동정심이나 죄책감에 호소해야 할까?’
‘기부가 진짜 재미있는 행사나 축제가 될 수는 없을까?’
경쟁자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옳을 거라고 생각지 않고,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의심한 것이다.

그로부터 탄생한 것이 영국의 자선단체 ‘코믹 릴리프 Comic Relief’이다.
수다쟁이로 소문난 런던의 여행사 직원이 친구들에게 공약을 한다. 자신에게 후원을 한다면, 24시간 동안 말하지 않고 조용히 있을 거라고…
친구들은 여성에게 500파운드를 후원했으며, 이것은 코믹 릴리프에 전달됐다.

온몸이 털로 뒤덮인 남성미 넘치는 맨체스터 남자는 털을 밀어버리는 공약으로 500파운드를 모금한다.
이것은 코믹 릴리프가 만든 ‘빨간 코의 날 Red Nose Day’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누구든 부담 없이 1파운드의 빨간 코만 사면, 이 모금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제각기 장난스러운 공약을 걸어 친구들에게 모금을 받거나, 길거리에서 재미난 복장으로 사람들로부터 기부금을 받는다. 이 기부 문화가 영국 전체에 퍼지면서, 이제 빨간 코의 날은 모든 영국 사람들이 국경일처럼 기다리는 날이 되었다.

코믹 릴리프는 ‘블루오션 시프트 Blue Ocean Shift’를 이룬 대표적인 사례다.
블루오션 시프트는 조직의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벗어나 경쟁이 없는 블루오션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2005년에 발간된 <블루오션 전략>은 당시 전 세계 기업에 블루오션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저자 김위찬과 르네 마보안이 12년의 연구 끝에, 블루오션으로 이동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한 것이 책 <블루오션 시프트>다.

블루오션 전략가들은 업계의 조건을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전략가라면 이런 조건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재구성해야 한다.
그래서 책은 경쟁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누가 경쟁의 기준을 정했는지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 기준을 만들었다면, 그 기준은 틀릴 수 있으며 다른 더 좋은 기준이 있을 수 있다.

경쟁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려면, 우리는 자신에게 더 맞는 조건, 사람들이 더 사랑하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코믹 릴리프의 재미, 상호작용, 소속을 상징하는 물품 등의 새로운 가치 요소가 추가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기존의 기부업체가 소규모든 대규모든 비슷하다면, 코믹 릴리프의 경쟁요소는 많이 다르다. 전략적으로 덜 중요한 경쟁요소는 제거하거나 낮추고, 중요한 요소 몇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기업이 아닌 우리 자신에게도 이런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내가 속한 업계의 주요 경쟁요소를 나열하고, 주변 동료들과 나의 그래프를 그려보자.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요소를 낮추고 어떤 가치 요소를 새로이 창출할 것인지, 나만의 조건과 기준을 발견해 나가면서 고민해보자.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경영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한 사람이 이득을 보려면 다른 사람들이 희생해야 한다는 경쟁과 분할로 점철된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은 경쟁을 뛰어넘는 조직과 개인이다.”

 


책 <블루오션 시프트>에는 이런 경쟁을 뛰어넘은 여러 조직을 소개한다.
정교한 실력이 아닌, 통합과 평화라는 가치를 내세운 이라크 청년 오케스트라, 객실의 크기가 아닌 수면 환경에 초점을 맞춘 호텔 시티즌 M, 감금이 아닌 갱생을 목적으로 하는 교도소를 만들어 재범률을 낮춘 말레이시아 정부의 사례까지, 모두 틀에 박힌 경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장을 만들면서 성공을 이루었다.

경쟁에서 지쳤다면,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가고 싶다면, <블루오션 시프트>의 다음 질문에 대답해보자.
‘기존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정에 당신은 어떻게 이의를 제기할 것인가?’

김위찬, 르네 마보안 공저 <블루오션 시프트 : 경쟁 없는 새로운 시장으로 이동하는 법><책그림>을 참고

포브스 2018년 순위 발표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브랜드 가치가 가장 높은 기업은 애플이었다.

그러면 전 세계 모든 패션 브랜드 중에서 가치가 제일 높은 기업은 어디일까?

그 1위는 ‘루이비통 LOUIS VUITTON’이다.

매년 나이키와 1,2위 자리를 놓고 다투지만, 이번 왕관은 루이비통이 차지했다.


루이비통은 단순히 하나의 브랜드가 아닌 세계 최대의 패션&주류 그룹인 Louis Vuitton & Moet Hennessy, 줄여서 LVMH이다.


주류를 제외하고 패션 쪽만 보더라도 패션 제국이라는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데, LVMH안에 속한 루이비통 이외의 패션 관련 브랜드만해도 디올, 펜디, 지방시, 켄조, 마크제이콥스, 셀린느, 로로피아나, 리모와 등이 있고, 거기에 불가리, 위블로, 태그호이어, 제니스 등의 시계 브랜드, 겔랑, 메이크업포에버, 프레쉬, 베네피트같은 코스메틱, 그리고 세포라, 르 봉마르쉐 백화점, DFS면세점 같은 유통망까지 보유하고 있어 그야말로 패션하우스의 어벤져스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제국을 가진 루이비통도 처음에는 포장가게부터 시작했다는데, 그들은 어떻게 이런 패션 제국을 만들었는지 기록을 뒤져 정리해보자.



창립자는 루이비통 Louis Vuitton이다.

1821년 프랑스 동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14살에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집을 나왔는데, 어린 나이에도 그가 첫 목표로 삼은 도시는 파리였다. 당시엔 비행기나 기차는 커녕 자동차도 없던 시절이었다.

온갖 허드렛일로 입에 풀칠을 하며 대도시를 향해 조금씩 이동하면서, 2년만에 파리에 도착했다고 한다.


파리에 도착하면서부터 그는 상류층이 이용할만한 여행용 고급가방을 만들어야겠다는 꿈을 가진다. 실제로 이때는 여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곧 상류층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귀족이 아닌 일반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며 자신이 살던 도시 외에는, 평생 동안 다른 곳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루이비통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파리에서 가장 유명했던 가방 장인을 찾아갔고, 그의 제자로 들어가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배우며 그가 한 일은 귀족들의 짐을 싸주는 일이었다.

그런데 루이비통의 짐 싸는 방법은 섬세하고 고급스러운 디테일이 남들과는 달라, 귀족들 사이에서 최고의 포장 전문가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나폴레옹 3세의 황후인 외제니의 전담 패커가 되었다.


1854년 루이비통은 그간의 노력을 마침내 보상받게 된다. 외제니 황후의 후원으로 자신의 매장을 열었는데, 그가 파리에 온지 17년만의 일이었다.

루이비통의 이름을 걸고 낸 매장은 포장전문 가게였다. 이미 귀족들 사이에서는 최고로 포지셔닝 되었고, 거기에다 황후의 전속 패커라는 이력이 이미 붙어 있었다.


그의 포장가게는 말 그대로 번창하며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했고, 그 당시 프랑스의 경제적 호황과 맞물려 대박이 났다. 돈 버는 사람은 물론이고 당시 휴양지로 여행을 가는 사람도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한다.

그 당시 제작됐던 여행용 트렁크들은 목재로 만든, 무겁고 관처럼 생겨 쌓기가 매우 어려운 모양이었다.




루이비통은 파리에 온 후 20년이 넘는 동안 꿈꾸었던 여행용 트렁크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제작된 트렁크는 캔버스를 사용해 가볍고 전체가 각진 사각형 모양으로 여러 개를 적재하기도 편했다.

또한 프랑스 상류층들이 좋아할만한 고급스러운 디자인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가 트렁크를 발매하자마자 후원자였던 황후는 물론이고, 사회 저명 인사들이 루이비통 트렁크를 구입하면서 발매 초기부터 대단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는 디자인이나 상표 등의 지적재산권이라는 개념이 없거나 모호하던 시절이었다. 루이비통이 만든 트렁크가 인기를 끌자, 많은 공방들이 비슷한 스타일의 모조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루이비통과 그의 아들 조르주 비통은 모조품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고, 다른 모조품과 차이점을 한눈에 알려주려는 목적으로 그들은 역사적인 ‘다미에 Damier 문양’을 개발했다.

바둑판 모양의 격자 무늬 안에 자신들의 로고를 새긴 다미에는, 많은 패션하우스들이 자신의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차별화하는 문양의 시초가 되었다.


루이비통이 사망하고 아들인 조르주 비통이 경영권을 물려받으면서, 그는 루이비통을 확장하기 시작한다.

먼저 그는 현재의 루이비통의 상징인 모노그램을 창안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루이비통의 가장 상징적인 문양이 되어있는데, 지적재산권이 애매한 바둑판 무늬에서 아예 LV를 교차하여 사용한 모노그램은, 다른 브랜드가 따라 할 수 없는 독창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더구나 트렁크에만 한정되었던 라인을 다양한 가방을 만들면서 확장해나갔는데, 지금의 대표적인 키폴백이나 스피디백 등은 모두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특히 스피디백은 길거리에서 3초에 한번은 볼 수 있는 가방이라 하여 3초백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후 1900년대 후반까지 루이비통은 대를 이어가며 계속 가족경영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1987년 루이비통은 당시 모에샹동&헤네시 그룹과 더 큰 기회를 잡기 위해 합병을 하게 된다. 이때의 합병으로 현재 LVMH 회장이자 유럽에서 가장 돈이 많은 베르나르 아르노가 등장하는데, 아르노는 자신이 가진 돈을 LVMH에 몰빵하면서 1인자가 되었고, 루이비통 가족들은 서서히 경영권을 잃어갔다.


합병 10년 후 루이비통은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를 수석디자이너로 합류시키면서, 클래식 스타일과 트렌드를 함께 잡는 브랜드로 성장한다.

루이비통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이끄는 이유로 마크 제이콥스의 힘을 무시할 수 없는데, 그는 1997년부터 2014년까지 루이비통을 이끌면서 세상에서 가장 잘 팔리는 브랜드로 만들었다.


루이비통은 현재 쟁쟁한 브랜드가 모인 LVMH 안에서도 한 해 10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려 전체 매출의 3분의 1 가량을 차지하며, 최근에는 오프화이트의 버질 아블로 Virgil Abloh 같은 신선한 인물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앞세우면서 지속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앞으로도 루이비통은 계속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최강자로 군림할 수 있을까? 아니면 새로운 강자가 그들의 자리를 대체할까?


<아보카도> <Money Swagger>를 참고




매일 접속하는 페이스북과 유튜브가 사람들을 중독시키도록 디자인되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온라인 플랫폼이 수익을 내는 방법은 클릭 수에 좌우되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클릭할수록 더 많은 광고 수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비자들을 현혹하는 '낚시 헤드라인'이 인터넷 상에 한때 유행하기도 했다.


콘텐츠가 잘 만들어졌는지, 가치 있는 내용을 담았는지와 상관없이 그저 클릭을 유도하는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썸네일로 소비자들을 속여온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얕은 속임수에 사람들은 금세 식상했고, 광고가 끊기는 등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플랫폼과 콘텐츠 기업들은 다른 방향으로 소비자를 끌기 위한 전략을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중독적인 디자인'이다.


핸드폰의 푸시 알림은 사람들이 상호작용하고 싶은 욕망을 부추기도록 디자인되었다. 푸시 알림은 메시지의 유무만 전할 뿐 무슨 내용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는데,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직접 인터넷에 접속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언제부터인가 유튜브는 보던 동영상이 끝나면 추천 동영상을 자동 재생해주는데, 끝나는 지점 없이 무한히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도 중독적인 디자인의 한 예이다. 직접 재생을 멈추지 않는 한 더 많은 시청을 할 것이고, 유튜브 플랫폼은 그만큼 더 돈을 벌게 된다.


이런 중독적인 IT 콘텐츠의 최고봉으로 '확률형 아이템'이 있다.

2000년대부터 게임에 등장한 확률형 아이템은 사용자가 임무를 수행하면 100% 아이템을 제공하던 이전 방식과 달리, 여러 번 구매해야 아이템을 얻는 확률만 가능하도록 좀 악질적으로 변경됐다.


그럼에도 이전보다 더 많은 참여와 수익을 끌어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 뇌가 불확실성으로부터 쾌감을 얻기 때문이다. 100% 확률로 보상을 주는 것보다 불확실한 확률로 주어질 때 뇌에서 더 많은 쾌감 물질이 분비되어, 아이템을 끊지 못하고 계속 덤비도록 만드는 것이다.


콘텐츠를 제작하고 배포하는 입장에서는 더 많은 접속을 끌어내는 중독적 디자인이 효과적이지만, 소비자로서는 그런 디자인으로 과연 만족을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소비자는 자신이 접하는 콘텐츠가 가치 있는 것인지 고민하고, 관성적인 클릭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콘텐츠를 찾는 능력을 키워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클릭으로 아까운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콘텐츠 제작 회사도 그저 많은 클릭 수를 추구하기보다는 소비자를 진정으로 만족시켜 충성도를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충분히 쓸모 있지 않은 콘텐츠라고 소비자가 깨닫는 순간, 스스로 접속을 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지는 디지털과 인터넷 시대에 어느 한 쪽만 이득을 보는 착취 구조를 벗어나,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소비자가 중독의 함정에서 벗어나 건강한 콘텐츠를 찾아주어야 서로가 윈-윈 하는 콘텐츠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다.


오늘 나는 어떤 콘텐츠를 보았는지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자.

그것은 정말 의미있는 콘텐츠였는가?



망했던 무인양품, 어떻게 세계를 사로잡았나? 브랜드 없는 (無印) 좋은 제품 (良品)이라는 무인양품만의 독특한 경영 비결을 알아보자.


1) No Brand 상업주의 반대

상품에 불필요한 기능이나 특징이 없고, 대신 꼬리표에 상품의 존재 이유를 설명했다. 미니멀리즘과 간소한 라이프스타일이 유행하는 시대에 'No Brand'의 철학이 주목받고 있다. 즉 '나답게 나 자신을 사랑하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


2) No Design 디자인보다는 기능

무색.무취 디자인으로 제품의 개성을 줄이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적당한 만족감을 전달하는 것. 목표는 조금씩 생략하고, 빼내고, 간소화해서 매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3) No Marketing 마케팅 성공 방정식을 거부

성공한 많은 소비재 기업과는 달리, 대표 상품이 없는 무인양품. 목표 고객군도 없고, 각 제품별 차별화도 없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모토다.


애당초 필요 없는 일을 지나치게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것도 없다. 시간과 노력이 잘못된 방향에 투입되면, 오히려 더 많은 오류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직 구성원의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시스템이 없다면 흔히 일어나는 일들이다.


2001년 무인양품이 사상 최대 적자를 냈을 때 취임한 마쓰이 타다미쓰 회장 (松井忠三, 무인양품 전 회장) 그가 회사 정상화 해법으로 내건 것은, 구조조정이나 인건비 절감이 아니었다. 해결책은 '시스템'이었다.


그는 회사가 어려워진 가장 큰 이유는, 경험과 감에만 의존하는 경험지상주의에 있다고 말한다. 개개인이 가진 업무 스킬이나 노하우를 축적하는 구조가 없었기에, 담당자가 이직이라도 한다면 처음부터 다시 기술을 배워야 했던 것이다. 그런 식이면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대응할 수 없다.



그는 담당자가 바뀌어도 스스로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매장 매뉴얼과 본사 매뉴얼을 5년에 걸쳐 체계적으로 정비한 것이다. 무인양품의 영어 이름인 무지(MUJI)에서 이름을 딴 '무지그램'의 매장 매뉴얼은 무려 2천 페이지에 달한다.


그곳엔 상품개발, 매장 디스플레이, 접객에 이르기까지 모든 업무의 노하우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신입사원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되어 있다. 매장 디스플레이 매뉴얼은 단 한 페이지로 구성됐다.

'마네킹의 옷을 코디할 때는 실루엣을 삼각형이나 역삼각형으로 한다.'

'옷에 들어가는 색은 세 가지 이내로 제한한다.'


매뉴얼만 보고도 신입사원은 다른 직원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마네킹을 코디네이트 할 수 있다. 본사 업무매뉴얼인 업무기준서는 6,600페이지다. 새 점포 출점에 대한 판단 방법까지 정해져 있는데, 후보지에 대한 정보수집부터 현지조사, 출점 이후 판매방식 등을 매뉴얼로 만들었다.


어떤 직원이 오더라도 이미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점수를 매기고 등급으로 평가해, C 등급 이상을 받은 후보지만 검토하면 된다. 점포개발부 등 일부 부서에서는 거래처 명함을 공유하고, 상담내용을 공유한다는 것을 업무기준서에 명문으로 제도화했다. 


비고란에는 '명함을 교환한 사람의 특징이나 인상을 적는다'와 같은 어떤 데이터를 수집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이 정도는 말로 해도 되지 않을까?' 마쓰이 회장은 이런 것까지 철저히 명문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점포 분위기는 레이아웃과 상품 진열방식, 스태프의 태도, 청소방법 같은 세부사항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은 매뉴얼로 통일되어야 고객이 어느 점포에 가든 일관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고, 브랜드 정체성이 각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디테일이야말로 정체성의 주춧돌이다. 작은 것들이 더해져서 하나의 문화가 된다. 처음 방문한 사람이 무인양품에 들어오는 순간 '무인양품은 어떤 브랜드다.'라고 스스로 정의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디테일이다. 결국 시스템이 만들어야 하는 건, 기복 없는 일관된 디테일이다. 이것은 회사가 아닌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기업의 시스템과 같은, 당신의 사소한 습관 하나하나가 상대방에게 내가 누구인지 말해준다.


<無印良品 Muji Sweets Market> <버리고, 세우고, 지키기> <조선 Biz>를 참고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