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우주가 한 점에서 폭발로부터 시작했다고 배우기는 했지만, 이거 정말 믿어도 되나?

아주 작은 점에서 거대한 우주와 수천억 개의 은하들, 그 안에 수수천억 개의 별들, 그 언저리에서 돌고 있는 태양계와 지구, 그 안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 그리고 사람들…


그런데 이 모든 게 뻥! 대폭발로부터 시작했다니, 사실 ‘빅뱅’이라는 이름 자체도 원래는 ‘팽창우주론’을 조롱하는 별명이었다.


세기의 천재 과학자 프레드 호일 (영국 천문학자 1915~2001)은 팽창우주론에 대해 아주 큰 뻥~이라나 뭐라나 하며 경멸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식 명칭으로 굳어져버렸다.


1927년 벨기에의 천재 수학자 조르주 르메트르 (Fr. Georges Lemaitre 벨기에 천문학자 1894~1966)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만약 아인슈타인이 맞는다면, 이 우주는 절대 정지해 있을 수 없으며 끊임없이 팽창해야 하기 때문에, 반대로 과거로 계속 돌아가면 한 점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단지 수학적인 계산 결과로 알아낸 것이었지만, 그냥 펑! 하고 우주가 탄생했다고 들리는 바람에 당시엔 누구도 그걸 믿지 않았다. 그야말로 뻥! 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르메트르의 또 다른 직업은 바로 성직자였는데, 교황청에 소속된 신부가 내놓은 과학적 연구 결과는 모두에게서 의심 받았다.

‘진짜로 당신은 종교적 신념 없이 오직 과학만으로 이 결론에 도달했는가?’

비록 르메트르는 결백했지만, 대중의 시선은 차가웠고 그것을 외면했다.


1951년 교황은 르메트르의 ‘빅뱅우주론’을 성경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결과라고 특별히 공개 발표했다.

우주가 한 점에서 폭발하는 모습은, ‘빛이 있으라’라는 창세기의 구절처럼 들렸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기네들 종교에 꼭 들어맞는 현상이라고 치부했을까?

르메트르는 종교와는 관계가 없다고 끝까지 부정했지만, 이미 대부분의 과학자들도 등을 돌렸고 발표했던 프랑스어 논문은 조용히 매장되어버렸다.


르메트르가 빅뱅이론을 발표한지 2년 후인 1929년 천문학계의 방탄소년단 BTS인 에드윈 허블 (미국 천문학자 1894~1966)이 등판했다.

그는 우주에 있는 대부분의 은하에서 ‘적색편이’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적색편이 : 멀어지는 물체가 방출하는 빛의 파장이 늘어나 보이는 현상


빛의 파장은 이해가 쉽지 않으니, 소리로 예를 들어보자.

소방차가 사이렌을 울리면서 내게로 다가왔다가 다시 멀어져 간다. 확실히 소방차가 멀어질 때의 소리는 길게 늘어진다. 파장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빛의 경우에는 파장이 늘어나면 빨개진다고 보면 정확하다.


즉, 적색편이를 보이는 우주의 은하들은 모두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바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말이다.


인지도와 명성으로 보면 시골 사제 수준의 르메트르와는 차원이 달랐던 허블의 주장은 굉장히 허벌나게 큰 이슈가 되었다.

“우주는 현재 팽창하고 있다.”

거꾸로 생각하면 과거에 은하들은 훨씬 가까웠을 것이며, 아주 오래 전 초기 우주로 돌아가면, 결국 한 점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달한다.


‘빅뱅이론’을 이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1946년 미국의 천문학자 조지 가모프 (1904~1968)가 나타났다.

빅뱅이론을 따라 우주가 시작했던 그 당시 상황을 아주 정확하게 계산해냈다.

고시원의 작은방에서 전기 난로를 켜면 따뜻하지만, 같은 난로를 들고 큰 집으로 이사가면 추워지는 것처럼, 대폭발 직후 뜨거웠던 초기 우주 역시 팽창하며 점차 식었을 것이라고 추측한 그는,

‘만약 빅뱅이론이 맞는다면, 아직 그 열기가 미세하게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 뉴저지 벨 연구소의 펜지어스와 윌슨 두 콤비 과학자는 오늘도 묵묵히 안테나의 노이즈를 줄이기 위해 비둘기 똥을 치우고 있었다. 그런데 똥을 아무리 깨끗하게 치워도 도저히 없앨 수 없었던 모든 방향에서 오는 미세한 노이즈, 그건 바로 조지 가모프가 찾고 있던 흔적이었다.


빅뱅의 결정적인 근거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이게 바로 ‘우주배경복사’다.

우주 전역에 배경으로 남아있는 복사에너지를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수수께끼는 남아있었다. 어떻게 우주 곳곳 전혀 다른 곳에서 날아오는 흔적들이 균일하게 같을까?


쉽게 말하면, 한 점으로 구겨져 있던 종이를 폈다 해도 꼬깃꼬깃해야지 너무 깨끗하게 우주가 펴져있는 건 이상하다는 뜻이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 ‘인플레이션 이론’이 등장한다. 인플레이션은 우주가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나게 급팽창했다는 이론이다. 빅뱅 직후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우주가 팽창했기 때문에, 팽팽하게 잡아당긴 비닐랩처럼 우주가 균일하게 펴졌고, 그래서 우리는 모든 방향에서 동일한 노이즈를 현재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정말로 우주는 균일할까?

만약 그렇다면 우주에서는 어떤 것도 만들어질 수가 없다. 완벽하게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입자들은 모든 방향에서 균형이 잡혀있기 때문에, 뭉쳐져 원자핵을 만들거나 별을 이루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또 혼란에 빠졌다.

빅뱅의 증거로 사방에 균일하게 퍼진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했는데, 이게 균일하면 곤란한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친구가 먹던 아이스크림을 한입만 달라고 졸랐는데, 막상 한입 먹으라고 친구가 내민 쪽에 고춧가루가 붙어있는 상황이다.


누군가 외쳤다. 적당히 균일하긴 한데, 확대해보면 아주 미세한 오차가 있는 건 아닐까?

매끄러운 꿀 피부도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복잡하게 보이는 것처럼…

이걸 검증하기 위해 NASA는 새로운 우주선을 우주로 쏘아 보냈다.


1965년 지상에서 관측했던 균일한 우주배경복사, 하지만 우주에서 본 건 달랐다. 1992년 NASA의 COBE가 보내온 사진과 2012년 NASA의 WMAP, 2013년 ESA의 플랑크가 불균일한 우주배경복사 관측에 성공했다.


그리고 우주가 평균적으로는 균일하지만, 작은 범위에서는 불균일하다는 놀라운 결론에 도달한다.

우주 전체는 팽창할 만큼 균일하지만, 곳곳에서는 무언가 나타날 수 있을 만큼 뒤죽박죽 요지경이라는 말이다. 딱 그 적정선을 지키며 지금의 우주 그리고 우리 주위의 모든 것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또는, 수많은 우주 중에서 적정선을 지켜낸 우주만 살아남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2018년 8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전 세계의 천문학자들이 모였다. 그리고 2달 후 10월 26일 국제천문연맹(IAU)에 소속된 모든 회원들은 투표를 했다.

바로 ‘허블의 법칙’으로 불리던 ‘우주팽창의 법칙’을 ‘허블-르메트르의 법칙’으로 그 이름을 바꾸자는데 동의하는 투표였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르메트르를 기억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빅뱅이론을 처음 유도한 르메트르.

그 후 벨기에에서 꿈에 그리던 아인슈타인을 만났지만 형편없다는 비난을 들었던 르메트르.

허블 보다 이미 2년이나 먼저 우주의 팽창을 추측했고, 지금은 허블상수로 불리고 있는 ‘은하의 후퇴속도와 은하까지의 거리와 관련된 숫자’도 비교적 정확하게 계산했던 르메트르.


투표 결과는, 무려 78%가 이름을 바꾸는데 동의했고, 결국 ‘허블의 법칙’은 ‘허블-르메트르의 법칙’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이제 전 세계 모든 교과서에는 르메트르의 이름이 실리게 되었고, 우리는 최초의 ‘빅뱅이론’을 제시한 사람으로 그를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덜 알려진 과학자의 연구를 인용한다고 해서, 이미 널리 알려진 유명한 사람들의 업적이 깎아 내려진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과학 연구를 홀로 외롭게 역경을 딛고 나아가는 천재들의 영웅담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태도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구하는 숨은 과학자들을 더욱 슬프게 하는 건 아닐까?


많은 이들의 땀과 노력으로 끝없이 작은 도약을 이뤄내는 것, 이게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과학일 것이다.

그리고 ‘빅뱅이론’도 그렇게 탄생했다는 걸 잊지 말자.


함께 읽으면 좋은 글 (클릭)

2018/12/21 - [신비의 요지경] - 엘론머스크의 시간과 우주, 자연시스템 증강현실 게임


<Unrealscience>를 참고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