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랑 사이의 거리가 필요할까? 

저자 김혜령의 심리학 도서 <불안이라는 위안 : 마음이 요동칠 때 되뇌는 다정한 주문> 속의 흥미로운 내용을 살펴보자.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에 빠져있을 때는 이렇게 생각한다.

'서로 사랑하는데 무슨 거리가 필요해? 이렇게 꼭 붙어있어도 아쉬운데...'

 

시간이 흘러 여전히 사랑에 빠져있지만, 한 번씩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사람이랑 거리가 좀 필요할 것 같아.'

여기서 '거리'란 두 가지를 말한다.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

 

365일 중 300일 이상을 한 공간에서 보내는 가족.

우리는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잘하지 않는다. 즉, 물리적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지만 심리적 거리의 경우는 다르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사춘기부터 또는 내 방을 갖게 된 즈음부터 우리는 머릿속에 나만의 세계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때부터는 오롯이 나만이 출입할 수 있는 어떤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부모님, 남자친구 또는 여자친구가 그 공간에 출입하려고 하는 일이 생기면, 그때부터는 거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데, 이게 바로 '심리적 거리'다.

 

저자는 대표적인 예가 사랑과 집착을 혼동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연인의 휴대폰이나 사적인 영역까지 모두 꿰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경우, 혼자만 간직하고픈 고민이나 내밀한 감정까지 공유하자고 조르는 경우, 도통 혼자 있을 틈을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해당된다.

 

연인이라면 무엇이든 똑같이 해야 하고, 똑 같은 감정을 느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상대에게 요구할 때, 상대는 사랑으로 느끼지 않고 집착이 아닌가 혼동이 생기기 시작한다.

사실 이런 감정은 본능에 가깝다.

상대와의 차이를 없애고 완전히 일치하려고 하는 욕망,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분리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이런 두려움은 자연의 일부였던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철저히 혼자 살아가야 하는데서 오는 '실존적 불안'이라고 말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랑에 대해서도 기술을 배우고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처럼 사랑에 여러번 실패를 경험하고도, 원인을 가려내지 못하고 실패를 반복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안전거리'를 유지하라고 말한다.

 

▶상대의 본래 모습을 존중하는 것.

▶꽃이 아름답다고 함부로 꺾어서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없는 것처럼, 상대의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 그게 물리적 공간이라면 그 공간 또한 지켜주는 것.

▶때로는 뒤에서 지켜보는 것.

 

건강한 사랑은 서로를 성장시킨다.

서로를 다독이고 지지해주면서,

잠재된 역량을 발휘하게 하기 때문이다.

- <불안이라는 위안> 중에서 -

 

 

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영화 인터스텔라.

<인터스텔라>는 아름다운 영상미와 스토리 특유의 재미뿐 아니라, 실제 우주 과학에 기반해서 제작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어렵게만 느껴졌던 우주 과학에 대한 사람들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과학이 녹아 든 소설, 영화,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죠.

대중문화에서 나타난 과학을 관찰하면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서울대에는 이공계열 학생들과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이 함께 듣는 교양 수업이 있는데, 이 수업에서는 대중문화를 통해 과학과 우리 사회의 관계를 분석한다고 하네요.

이 강의를 담당하는 과학 철학자이자 소통하는 과학자 홍성욱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과학에 기반한 영화가 나왔을 때 SNS에서 사람들 반응을 보면서, 이런 댓글을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00학 전공자로서 말씀 드립니다. 이 영화에서 이 부분은 사실과 다릅니다.’


주로 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이런 댓글을 많이 달고는 합니다.

과학을 토대로 한 영화를 보며 그 속의 디테일에 대해 틀린 점을 찾는 걸 좋아하고, 또 과학적 사실이 얼마나 들어맞는지에 따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죠.


물론 과학에 무관심하고 대충 검증하는 대중문화 생산자들도 문제가 있지만, 모든 것을 과학적 설명의 완결성을 통해서만 평가하려는 태도에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문화를 마치 과학의 일부로 생각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인공적으로 생명을 만들어내는 일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전인 <프랑켄슈타인> 같은 작품은 과학적으로 완전히 틀렸고, 읽을 가치조차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오만한 태도죠.



대중문화 속 과학에 대해 맞다 틀리다를 논하기보다는, 과학과 인문학이 만나는 접점을 찾아 과학의 일부가 녹아든 대중문화가 도대체 세상에 대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또 작가는 이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했는지, 이것이 오늘날의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다양한 소설 작품과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한 번쯤 고민해보아야 할, 우리 삶과 직결된 과학적 쟁점들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해보시기 바랍니다.


생명 윤리, 프라이버시, 인간과 사이보그의 경계에 대한 문제 등, 과학의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이론과 수식에서 벗어나, 과학을 문화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해갈수록 그것이 대중문화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알아야 먼저 기회를 찾아내고 잡을 수 있으니까요.


프랑켄슈타인에서 AI까지, 과학과 대중문화의 매혹적 만남. 홍성욱 저 <Cross Science> <Change Ground>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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