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주의 Valueism :

가시화된 '자본'이 아닌, 돈과 같은 자본으로 변환되기 전의 '가치'를 중심으로 사회가 움직이는 개념.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는 실용성(사용가치, 이용가치)이나, 윤리적이고 정신적인 관점에서 진, 선, 미, 애 등 사회의 존속에 도움이 되는 '가치'를 중심으로, '희소성'이나 '독자성' 등과 함께 경제적 실용성, 정신적 효용,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위 등을 포괄한다.


2008년 9월의 리먼 사태로 금융세계가 실물경제와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느낀 사람이 많아졌다. 수학자들이 동원되어, 만든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을 정도의 복잡한 금융 상품을 만들었다. 개별 지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다루기 힘든 금융 상품으로, 리스크를 획기적으로 줄였다면서 대량 판매를 한 것이 결과적으로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자본주의와 금융업계에서 일어난 비극은 교환수단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극단적인 방향으로 밀고 나간 데서 비롯되었다. 돈은 가치의 교환, 보존, 기준 척도 등으로 기능하며, 은행이나 증권도 산업 활동과 가계 살림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해왔고 (금융경제, 자산경제), 원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돈벌이라는 수단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그것만 쳐다보면서, 결과적으로 실물경제(소비경제)나 사람들의 생활과 전혀 관계없는 데서 돈만 움직였다.



유통되는 돈의 90%는 자산경제 부문에서 생겨난다. 실물경제에서 쓰는 돈은 전체 화폐 유통량의 10%도 안 된다. 큰돈을 굴리고, 주식을 사고팔고, 이자 수입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소수의 사람들이 운용하는 자산경제가 돈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 경제는 10%의 소비경제에 90%의 자산경제가 올라탄 형태로 구축되어 있다. 자산경제는 소비경제에서 발생하는 금리나 수수료로 성립되므로 소비경제가 약간만 변동해도 크게 움직인다. 지금 이 비율은 점점 더 커져 경제는 더욱더 불안정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오히려 소비를 하지 않게 되었고, 실제로 선진국에서 소비경제는 위축되고 있다. 미니멀리스트가 늘어나고, 유니클로나 No Brand(무인양품)처럼 싸고 좋은 제품을 구할 수 있으며, 돈이 많이 드는 차나 집은 사지 않고도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자본주의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에 균형을 잡고 싶어 하는 인간은, 아주 놀라운 풍요를 선사한 금융의 괴물 같은 힘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돈이 돈을 낳고, 그저 돈다발을 쌓아올리는 데 혈안이 된 세상에 사람들은 넌더리를 내고 다른 방안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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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자산경제가 점점 확대되고 있어, 전 세계에서 금융자본은 투자처를 찾아 헤매고 있다. 이율이 좋은 금융 상품이 없어졌기 때문에 돈은 있지만 투자할 데가 없는 상황이다. (자산 보유 계급의 이야기)


일본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4천조 원을 초과하여 역대 최고가 되었고, 소프트뱅크는 사우디 정부 등에서 자금을 조달해 100조 원의 펀드를 만들고 전 세계의 테크놀로지 기업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도 100조 원의 현금을 어떻게 굴려야 할지 몰라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이처럼 자산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돈이 여기저기 정체되기 시작하여, 마땅한 투자처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자금 조달이 용이한 환경이기 때문에 역으로 돈의 가치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그와 반대로 늘리기가 어려운 신뢰나 시간, 개성 같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의 가치가 올라가고 있다.


돈의 중요성이 그동안 지나치게 강조되었고, 돈이 안 되는 일, 재무제표에서 자산 취급을 못 받는 항목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떤 것은 누구도 존재 가치를 느끼지 못하지만 돈이 되기에 떠받드는 일마저 있었다. 이런 체제를 주도하는 자본가들과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가 너무나 달라서 서로 위화감을 느끼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돈의 힘이 강해지고 사람들이 느끼는 가치와는 동떨어진 채 돈이 홀로 증식해갔다. 돈은 가치를 내팽개쳤고, 이에 반발한 사람들은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돈은 안 되지만, NGO나 NPO의 사회 공헌 활동이나 가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어 한다.


IT 등의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생겨나자 여러 분야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문자는 전자화되며 긴 역사를 가진 종이를 여러 선택지 중의 하나로 만들었고, 가치의 교환도 전자적으로 처리되므로 기존의 '돈' 역시 가치를 매개하는 한 가지 수단으로 바뀔 것이다. 요컨대 돈이 유일한 수단으로 군림하던 '독점'이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가치를 보존, 교환, 측정하는 수단이 꼭 돈이어야 할 이유가 없어지고 있다.


국가 발행의 통화가 아닌 다른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가치를 교환할 수 있게 되면, 이용자는 가장 편리한 쪽을 선택할 것이다. 국가 발행의 통화이든, 기업이 발행하는 포인트이든, 비트코인 같은 가상통화이든 상관없다. 직접 만나 교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치'가 상품이라면, '돈'은 상품의 판매 채널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돈은 한 푼도 없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있고 페이스북 팔로어가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업을 하려 한다면? 곧바로 타임라인에서 동업자를 찾고,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자금을 모으고, 필요하면 팔로어에게 지식과 경험을 빌릴 수 있다. 이 사람은 화폐로 환산하기 어려운 '다른 사람의 주목'이라는 가치를 필요할 때에 인맥, 돈, 정보 같은 가치로 전환할 수 있다.


10억 원의 저축과 100만 명의 팔로어 중 무엇이 더 나은지는 사람에 따라 달리 생각하겠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인터넷 덕분에 자신의 가치를 보존할 방법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21세기북스의 <머니 2.0>을 참고

공유경제 (共有經濟)

Sharing Economy :

물품을 소유의 개념이 아닌, 서로 대여해 주고 차용해 쓰는 개념으로 인식하여 경제활동을 하는 것.


Sharing Economy : 2008년 미국 하버드대 법대 로렌스 레식 교수가 처음 사용한 말로, 한번 생산된 제품을 여럿이 공유해 쓰는 협력소비를 기본으로 한 경제 방식을 말한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특징인 20세기 자본주의 경제에 대비해 생겨났다.


즉, 물품은 물론, 생산설비나 서비스 등을 개인이 소유할 필요 없이 필요한 만큼 빌려 쓰고, 자신이 필요 없는 경우 다른 사람에게 빌려 주는 공유소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최근에는 경기침체와 환경오염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사회운동으로 확대돼 쓰이고 있다.



최근 10년 동안 기존 경제나 사회 체제를 근본적으로 뒤엎는 개념으로, 돈과 경제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을 미치는 변화의 흐름은 '분산화'라 할 수 있다. 기존의 '중앙집권화'에 의해 질서를 유지하던 경제나 사회 체제에 정면으로 반하는 개념이다.



조직의 중심에는 반드시 관리자가 있고, 정보와 권력을 집중시킴으로써 문제 발생 시 곧바로 대응하는, 근대사회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었다. 편재된 '정보의 비대칭' 상황에서, 대리인이나 중개인을 허브로 하여 중앙의 허브에 정보와 힘을 집중하여 전체를 움직여왔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항상 연결될 수 있다. 앞으로는 사람만이 아니라 사물 간에도 접속돼 있을 것이고, 온라인에서는 사람, 정보와 사물이 직접적으로 항상 연결되어 있게 된다. 허브로서 대리인이 개입할 필요가 없어지고, 정보의 비대칭성이 사라지면서 전체가 뿔뿔이 분산된 네트워크형 사회로 변해갈 것이다.


분산화가 진행되면 정보나 사물의 중개가 아닌, 독자적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경제 체제를 구현하는 존재가 큰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권력은 중앙집권적인 관리자에서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개인에게로 옮겨갈 것은 필연적인 사실이다.


공유경제는 사회는 분산되어 있지만 항상 연결되어 있어야 비로소 기능할 수 있다. 인터넷이 생활의 모든 영역을 연결하여 상품과 서비스를 공유할 수 있는 범위가 지구 전체로 확대되었고, 거대한 경제체제가 이미 탄생했다.


공유경제 비즈니스는 권한이 분산되어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에서 성공한 전형적인 사례로, 운영자는 서비스나 상품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지원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얼마나 뛰어난 경제체제를 설계하고 구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의 대표주자인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사람이나 자산을 고용이나 소유하지 않는다. 단지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지불을 중개하며, 신뢰성을 높이는 최소한의 역할만을 하면서 잘 운용되는 경제체제를 만들었을 뿐이다.


유휴자산을 활용하여 수익을 얻고자 하는 개인을 대상으로 적절한 보상 설계를 하고, 고객 만족을 추구하는 서비스 제공자는 이용자들의 추천을 받아 더 많은 수입을 얻게 한다. 또 이용자들 간의 대화방으로 소통 기능을 제공함으로써, 이용자의 선택에 힘입어 자유롭게 발전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역설적으로 공유경제가 가장 발전한 나라는 중국이다. 사회 인프라가 잘 정비된 미국이나 일본은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면, 기존 서비스와의 마찰 때문에 법 개정 등을 할 필요가 있고, 정착하기까지 비교적 긴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중국은 지난 10여 년간의 급성장으로 인프라가 정비되지 않아, 새로운 서비스가 출현하면 엄청난 기세로 단숨에 확산된다. (이를 등 짚고 뛰어넘기 'Leapfrog 현상'이라 한다.)


지금까지의 공유경제 체제는 '대리인형 사회'와, 앞으로 본격적으로 '네트워크형 사회'의 장점을 혼합한 하이브리드형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북스의 <머니 2.0>을 참고

열심히 일했지만 정작 모인 돈은 없을 때, 수많은 건물 중 내가 지낼 제대로 된 방 하나 없을 때, 우리는 세상이 불평등하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불평등을 더 느낄수록 수명까지 짧아지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고 말하는 책이 있습니다.

오늘은 <부러진 사다리>를 소개합니다.


사다리는 불평등을 이야기할 때 자주 쓰이는 은유입니다. 사다리의 높은 층은 더 나은 지위와 소득, 안정, 미래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높은 층에 올라가기 위해 애를 쓰지요. 물론 열심히 일할수록, 능력이 있을수록, 더 대우를 받아야 하기에 사다리는 필요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사다리 간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생깁니다. 현대의 사다리는 밑에서 시작했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위 사다리로 올라갈 수 없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사다리 손잡이가 중간쯤에서 몇 개 부러지고 없어진 것이지요. 사람들은 신세 한탄을 해보기도 하고, 나라 탓을 해보기도 하다가, 결국 체념하고 하루를 살아갑니다. 


스스로 흙수저라 부르며 쓴웃음을 지으면서 지나치기도 하지요. 하지만 불평등은 생각보다 더 깊숙이 우리 내면에 침투합니다. 가끔은 나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며, 개인과 사회를 병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비행기를 한번 보죠. 비행기는 사다리가 물리적으로 구현되어 있는 공간입니다. 맨 위에는 일등석이 있고, 넓은 좌석, 맛있는 음식, 여유로움이 있지요. 그 밑에 비즈니스석이 그리고 그 밑에 이코노미석이 있습니다. 


연구진이 신기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일등석이 존재하는 항공편이, 모든 좌석이 동일한 항공편보다 기내 난동 발생률이 4배나 높다는 것입니다. 특히 비행기를 탑승할 때 일등석을 지나쳐서 입장해야 하는 경우, 기내 난동 발생률이 또 2배 높아졌습니다. 


일등석 사람은 먼저 탑승해서 편히 쉬고 있는데, 나는 무거운 짐을 질질 끌면서 그 옆을 지나칠 때, 우리는 불평등을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코노미석의 승객들도 비행기를 탈 정도이기에, 그들이 정말로 가난한 상태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가난과 불평등은 다른 문제입니다. 

불평등이 심해지면 실제로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빈곤감을 느낍니다. 일등석을 마주친 이코노미 승객들처럼 말이지요. 


소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그래프로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각국의 1인당 소득과 건강, 사회문제 지수를 비교해보면, 특정한 패턴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득불평등과 건강, 사회문제 지수를 비교하면, 명확한 패턴이 발견됩니다. 불평등할수록 건강이 나빠지고 사회문제가 심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왜 불평등과 같은 추상적인 요인이, 건강과 같은 신체적인 문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걸까요? 실험과 연구 끝에 저자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불평등은 사람이 더 큰 위험을

감수하게 만들고,

빨리 살고 일찍 죽자 식의

충동적인 인생을 강요한다.



생명체는 주변 환경이 나쁠수록 지금 당장 먹을 수 있는 것, 즉시 가질 수 있는 것에 집착합니다.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오늘 하루 잘 사는 것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오늘의 100달러를 받는 것과 다음 주에 150달러를 받는 것을 선택하라고 하자,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늘의 100달러를 선택했습니다. 불평등, 즉 내가 가난하다고 느끼는 감정이 우리를 즉각적인 만족, 충동적인 행동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불평등이 심한 곳일수록 사람들이 마약과 알코올을 남용할 확률이 높으며, 흡연, 과식, 운동 부족 비율이 높다고 합니다. 결국 불평등에 따라 사람의 수명까지 달라집니다. 이 그래프는 미국과 캐나다의 각 주별 사망율과 소득 불평등에 따라 그린 것입니다. 불평등이 심할수록 사망률이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여기 그래프에 나온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한 곳인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죠. 그러나 비교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더 잘 사는 사람과 비교한 미국인들은, 스스로를 사다리의 밑바닥으로 던져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가난한가 부유한가는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을 사다리의 밑바닥으로 억지로 던져 넣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부러진 사다리>는 상향 비교와 하향 비교를 적절하게 사용하라고 말하고 있지요. 

비교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매일매일 비교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저자는 차라리 현명하게 비교하라고 말하고 있네요. 


자신보다 나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을 주기에 필요하지요. 하지만 이런 상향 비교는 사람을 지치게 만듭니다. 그래서 마음이 허전하거나 우울해진다면, 자신이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전에 더 부족했던 자신을 떠올리면서, 지금 많이 나아졌다는 것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한 편으로는 부서진 사다리를 고치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부의 평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심한 불평등은 줄이자는 것입니다. 


적어도 사다리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이 마음먹고 노력한다면,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의 높이, 그 정도의 사다리를 만들어보자는 것입니다. 이는 어떤 정치적 성향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며, 사회의 건강과 개인의 건강을 위한 문제입니다. 


<부러진 사다리>는 말합니다.

불평등은 생과 사의 문제이다.


여러분도 부러진 사다리를 마주해 좌절한 적이 있으셨나요? 우리는 이 사다리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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