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웨스트항공은 지난 20여 년 미국에서 가장 수익을 많이 낸 항공사다. 여러 부문에서 항상 최고 점수를 얻지만, 단 한 가지 음식만은 예외다.


이 항공사는 기내식을 제공하지 않는데, 만약 기내식에 신경 쓰면 정시 출발.도착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항공사는 기내식을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가 디지털 콘텐츠 비즈니스에서도 일어나고 있는데, 중국판 카카오톡으로 불리는 '위챗'의 경우다. 2013년 위챗은 중국을 넘어 해외로 급속히 퍼지는 상황에서 뉴스 서비스 제공을 시작했는데, 그 방식이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이 아니라,

더 적은 것을 제공할 것이다.

오전 8시와 오후 8시

하루 두 번만 소식을 전하겠다.



뉴스는 실시간 서비스가 일반적인 상식이지만 위챗은 그것을 따르지 않았다. 아울러 뉴스가 한번 올라올 때 수백 건 소식을 올리지 않고, 한 화면에 모두 잡힐 정도의 단 4개 기사만 올렸다. 뉴스 선정도 알고리즘을 통하지 않고 편집자가 직접 선정해서 그런지, 업데이트되는 기사들은 트래픽을 전혀 끌어올리지 못했다. 더 심각한 건, 그 기사를 교체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며, 사용자가 그 서비스를 언제 사용하는지도 전혀 데이터화하지 않았다.


그간 뉴스는 인쇄물에서 디지털로, 데스크톱에서 스마트폰으로 미디어를 갈아타면서 더 빠른 속보, 더 많은 주문형 정보, 더 자주 업데이트되는 콘텐츠를 제공하도록 진화했는데, 위챗의 뉴스 서비스는 그 어느 것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용자의 40%가 위챗의 뉴스를 보러 왔고, 무려 53%가 매일 기사를 클릭한 것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이자 세계 일류기업 컨설턴트인 바라트 아난드는 그의 저서 <콘텐츠의 미래>에서 이렇게 썼다.


"역설적으로 위챗은 더욱 혁신적인 모습을 갖추기 위해 오히려 더 줄여갔습니다. 사람들은 개인화보다는 누구나 다 읽는 중요한 뉴스를 원했고, 북적대는 것보다는 간소한 걸 찾았고, 수많은 정보에 방해받기 싫어하며, 큐레이션을 원했던 거죠. 결국 적어질수록 더 많아지고, 버릴수록 더 채워진 것입니다. 콘텐츠 제공의 선택지가 많은 상황에선, 하나의 선택을 할 때마다 반드시 다른 선택을 포기해야 합니다."



콘텐츠 비즈니스에선 '무엇을 제공하느냐?'보다는 '무엇을 제공하지 않느냐?"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혹시 지금 하고 있는 일에도 이 사례를 적용할 여지는 없을까요? 저도 많이 줄이고 있는데, 더 줄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집중~ 집중!!!


바라트 아난드 저 <콘텐츠의 미래>를 참고


블로그 포스팅으로 낯선 디지털을 익히기 시작한지 어제로 정확히 7개월. 매일 12시간 이상 모니터와 책으로 헤맨 덕분에, 갈 길은 아직 멀지만 이젠 디지털 낙제 수준은 넘어섰다고 자평하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밑도 끝도 없이 이 디지털 세상은 도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져서, 6월 초 들어 33살 일본 젊은이가 쓴 머니 2.0(MONEY 2.0)을 받아 오늘까지 다섯 번을 읽었지요.


디지털 세상의 변화를 흐름으로 읽어 내기는 아직 실력이 많이 모자라고, 키워드 한 조각씩으로 이어 붙여 기록으로 남기려 합니다. 이 책을 요약하고, 베끼고, 편집하고, 비틀어 약 50개 내외 포스트로 쓸 수 있겠네요. 타이틀도 중요하니 '키워드로 읽는 디지털 세상과 미래'라고 해볼까요?


디지털 네이티브 digital native :

디지털 언어와 장비를 마치 특정 언어의 원어민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들은 학창 시절부터 줄곧 개인용 컴퓨터나 인터넷을 사용하며 자란 세대다. 일반적으로는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를 가리킨다. 컴퓨터가 없는 시대는 상상할 수 없고, 당연히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의 시대를 모르고, 그 전과 후를 비교할 수도 없다. (비교할 필요도 없겠지만...)


휴대전화나 인터넷이 생겼을 때도, 이로 인해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고, 그들은 그냥 눈앞에 있는 편리한 도구를 사용했을 뿐이다. 휴대전화가 보급될 때의 여러 논쟁에 대해서도 당연히 알지 못한다.




그 당시에는 '사회가 엄청나게 진보한다는 주장'과,

'범죄에 이용되어 무서운 세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규제해야 한다'라며 걱정했던 사람도 아주 많았다.


SNS가 확산될 때도 어른들은 '만남 사이트나 아동 매춘의 온상이 될 테니 빨리 규제해야 한다'는 신문기사와 전문가 칼럼에 신나게 맞장구를 쳤었다. 그러나 디지털 네이티브는 그저 편리하고 재미있는 서비스를 접해 즐겁게 가지고 놀았을 뿐이었다. 10년이 지나는 지금은 자연스러운 사회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비트코인, 블록체인, 토큰경제 등의 논란도 그런 기시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것들이 없던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은, 지금까지 사회를 지배해온 경제적 사고와는 동떨어진 것을 보고,

'국가의 통제나 중앙 관리자가 없는 화폐는 있을 수 없다.'

'신종 사기'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던 것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단시간 화제를 불러 모으다 지금은 수면 아래로 잠수해 버렸지만, 세상의 의견은 정확히 둘로 나뉘었다.

'금융을 바꿀 혁신적인 테크놀로지'

vs.

'순전한 사기이며 매우 수상쩍은 것'


금융계 관계자나 경제학자들은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기존의 금융이나 경제 틀에 익숙한 사람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규칙이 전혀 다른 신종 통화가 등장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대학생은 오래전부터 익숙한 금융 시스템이 비트코인과 함께 운용되기 때문에, 아마도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의 뇌는 상식으로 자리 잡은 틀 안에서 생각하거나 판단하고, 새롭게 탄생하는 기술을 편견 없이 보기는 어렵다. 지금도 어른들은 하루 종일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젊은 사람들을 보고 혀를 찬다.


컴퓨터  ⇒  인터넷  ⇒  휴대전화  ⇒  SNS  ⇒  비트코인  ⇒  블록체인  ⇒  토큰경제

▷ 토큰 (token) : 상품권, 교환권, 선물권, 주차권, 증표


지금의 초등학생부터는 '토큰 네이티브'로 세대의 분류가 바뀌지 않을까? 태어난 순간부터 비트코인이나 블록체인을 접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돈과 경제를 파악할 것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마저 짐작도 하지 못하는 서비스가 끊임없이 생겨날 것이다.


10~20년 후 토큰경제나 인공지능을 능숙하게 사용하며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MR)에 몰두하는 젊은이들을 미덥지 않게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신진대사를 되풀이하며 세상은 진화를 거듭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태어났을 때 쓰이는 테크놀로지를 자연스러운 세계의 일부로 느낀다. 15세에서 35세 사이에 발명된 테크놀로지는 새롭고 신나는 것으로 느끼고, 35세 이후 발명된 테크놀로지는 인간 본성에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더글러스 애덤스, 영국 작가 -



스펙은 누군가 원하는 '통일성'이다. 그렇다면 '열정과 패기'는 어떻게 할 것인가?

2002년, 한 신문사의 인터넷 자유토론방에 짧은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그 글은 10만명의 시민을 시청 앞 광장으로 불러 모았지요.


"죽은 이의 영혼은 반딧불이 된다고 합니다. 광화문을 우리의 영혼으로 채웁시다. 광화문에서 미선이 효순이와 함께 수천 수만의 반딧불이 됩시다. 검은 옷을 입고 촛불을 준비해 주십시오. 집에서 나오면서부터 촛불을 켜 주십시오. 저 혼자라도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주, 다음 주, 그 다음 주. 광화문을 우리의 촛불로 가득 채웁시다."


10만명을 모을 수 있었던 이 글의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온 걸까요?

광고대행사 TBWA Korea의 박웅현 크리에이티브 대표가 말하길, 그 힘은 미디어가 아니라,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Everything Changes' 점점 빠르게만 바뀌고 있는 세상. 그 안에서 'Nothing Changes'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하네요. 그것이 바로 '본질'이라고 합니다.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 그 중 우리에게 기억되는 것은 과연 몇 개나 될까요? 살아 남은 것들의 대부분은 본질을 잃지 않은 것들입니다. 우리가 본질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죠.


중요한 건 본질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본질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박웅현 대표는 15년이나 넘게 수영을 해왔다고 합니다. 지금도 거의 매일 아침마다 레인을 30바퀴씩 돈다고 하네요.


그런데 사실 박웅현 대표의 운동신경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처음 한 달 동안 25미터를 가뿐히 가는데, 그는 무려 3개월이나 걸렸거든요. 더욱 놀라운 건 50미터까지 가는데 6개월이나 걸렸다는 겁니다.


결국 같이 시작한 사람들이 상급반으로 갈 때까지 혼자만 나머지 반에 남아 있었죠. 하지만 절대 그만 두지 않고, 그저 자기 몫을 꾸준히 해나갔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이렇게 묻더라네요. "당신, 창피하지 않아? 도대체 그 상황을 어떻게 견디는 거야?"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네요. "창피하냐고? 전혀. 잘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땀을 흘리려고 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수영을 배우는 본질을 '땀 흘리는 것'으로 정한 겁니다. 수영을 배우는 목적을 '수영을 잘하는 것'으로 생각했다면, 일찌감치 포기했겠지요. 그러니까 그런 그에게 실력이 빨리 늘지 않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거죠. 이렇듯 본질이 무엇이냐에 따라 흔들림이 달라지는 겁니다.


미국의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컬럼비아 대학을 한번 볼까요? 이 학교는 2년 동안 전공을 정하지 않습니다. 문학, 역사, 철학, 이과 과목 2가지, 쓰기, 음악, 미술, 이렇게 교양만 배우게 합니다. 즉, 컬럼비아 대학의 '교육의 본질'은 교양과 삶의 태도를 가르치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어떻습니까?

중고등학교 교과 과정에서 예체능 과목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습니다. 수능시험 잘 봐서 좋은 대학 가는 걸 교육의 본질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지식은 본질을 익힌 후에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SKY에 합격하는 게 공부의 본질은 아닙니다. 공부를 통해 내가 풍요로워지고, 사회에서 경쟁력이 될 진짜 실력을 쌓는 게 그 본질이지요.




박웅현 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스펙은 그야말로 포장일 뿐이다. 스펙만을 강요하는 사람은 덩치만 큰 빈 수레와 같다."

"기업들이 스펙을 보니 무시하지는 못하겠지만, 스펙보다 그 사람이 진짜로 가지고 있는 게 무엇인지가 더욱 중요한 겁니다."


"저는 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기준점을 밖에 찍지말고 안에 찍어. 실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별을 만들어낼 수 있어. 그러면 언젠가 기회는 오기 마련이야. 반드시 본질적인 것을 열심히 쌓아 둬!"


제가 생각하는 본질의 기준은 이런 겁니다.

내가 하는 행동이 5년 후의 나에게 긍정적인 체력이 되는 것. 무언가를 할 때는 이 말을 중심에 놓고 생각해 보세요. '이게 나한테 진짜 도움이 될 것인가?'


제 경험상, 돈은 본질이 아닙니다. 돈을 따라가면 재미가 없고, 재미를 따라가면 돈은 따라오더군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내 실력은 무엇인지,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지를 고민해보고, 그것을 따라가세요.


박웅현의 <여덟 단어>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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