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 세계 2위 경제대국 ≠ 민주주의 국가
중국은 오직 중국공산당만이 집권하는 1당 독재국가다. 공산당이 국가 위에 존재한다.
최고 권력자 시진핑, 그는 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당에서도 최고 지위를 가지며,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원수직인 국가주석이기도 하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부패지수를 살펴보면, 중국의 부패지수는 2018년 전세계 87위로 정말 형편없는 실정이다. 그리고 언론자유지수도 176위로, 최악의 수준이다.
경제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여전히 부패가 만연하고 표현의 자유도 없다.

그럼에도 중국공산당은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1949년 이후 70년 넘게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어떻게 그런 공산당이 세계에서 제일 사람이 많은 나라를 지배할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공산당의 과거 행적을 살펴봐도 중국 인민들이 정권의 어떤 정당성에 근거해서 지지하는지 의문이 든다.

보통은 정권의 정당성이 없으면, 그 정권은 오래갈 수 없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진리이다.
책 <하버드 중국 특강>에서 하버드대 중국 정치 전문가 엘리자베스 페리 Elizabeth J. Perry 교수는, 중국공산정권의 정당성에 대해 분석했다.

 


막스 베버 Max Weber (1864~1920)는 모든 권력은 정통성을 확보해야 지속적일 수 있고, 그런 권력이 합법적 기구들을 통해 강제력을 가지고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 받는다고 보았다.
막스 베버는 지배의 정통성을 획득하는 방법으로 3가지를 들었다.

1) 전통적 권위
원래 그래왔으니까라는 역사적 축적이 바로 그것이다. 관례적으로 권위를 가진다. 오랜 시일에 걸친 전통과 관습을 토대로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왕정시대의 중국 황제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는 무너졌고, 중국의 절대 군주체제는 사라졌다.

2) 합리적-법적 권위
만들어진 법에 대한 믿음과 절차를 바탕으로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을 뜻한다. 민주주의 사회의 체제 정당성이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3) 카리스마적 권위
특정 인물의 신성성, 영웅성을 이용하여 권위를 얻는 방법이다. 카리스마적 권위는 유지가 어렵고 카리스마가 존재할 때, 위의 2가지 형태의 권위로 전환시켜야 한다.
과거 마오쩌둥(모택동)은 카리스마적 권위가 있었다고 본다. 뛰어난 군사전략가이자 이론가로서 혁명을 성공시켰고, 천하를 얻은 인물로 아직도 많은 중국인들은 마오를 숭배하고 있다.

 


그렇지만 마오쩌둥은 40여년 전에 죽었다. 카리스마적 권위는 무너졌고, 소련의 공산체제가 무너진 것도 25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중국공산당은 여전히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심지어 중국 시민들은 당에 대한 지지가 대단하며, 공산당을 비판하는 곳에는 네티즌들이 옹호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많은 학자들 또는 중국측 매체에서는, 중국공산당은 그들이 일궈낸 성과로 인해 인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역시 사실일 수 없다.
비록 중국이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하더라도, 과거 중국 공산당이 주도한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등은 정말 크게 실패한 정책이었다.

 


이렇게 성과 자체도 지지부진하다 보니 중국공산당은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역사’를 말한다.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지만, 중국공산당은 일천한 역사를 지닌 정당으로 집권 이후 인민들은 굶주렸다. 중국공산당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시진핑은 3년 전인 2016년 5월 사회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을 모셔다 놓고, ‘중국의 사회주의 관행에 적합한 새로운 분석적 접근법’을 개발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갑작스러운 이론정립 과업에 공산당의 지도력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이는 지식인들에게 공산당의 통치와 관련한 학술적, 논리적 근거를 만들라는 지시였음에 다름 아니다.

공산당은 이들에게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고, 지식인들은 공산당을 위해 역사 왜곡 혹은 역사 다시쓰기 작업을 통해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할 것이다.
‘중국은 위대하다. 그런 중국을 공산당이 건국했고, 공산당이 계승한다. 그리고 공산당은 중국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 것이다.’

이런 과정을 보면 마치 김일성이 황장엽을 통해 주체이론을 만들어 자신을 신격화한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북한은 1930년대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결과로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고, 북한의 공산혁명도 이룩할 수 있었다고 말하면서 우리의 민족사도 날조했다.

그리고 항일정신이 북한 김일성 사상의 뿌리깊은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북한은 일본과 아직 국교를 맺지 않았다. 물론 일본은 맺고자 했으나, 북한은 이를 거부했다.
현재 일본과 국교를 맺지 않은 나라는 북한이 유일하다.

북한은 공산당 역사를 김일성 개인의 투쟁사로, 우리 민족사를 그들의 혁명사상에 따른 혁명사로 날조했다. 그리고 그들의 혁명사상은 이후 정치교육의 필수 내용이 되어 체계화된 주체사상의 기반이 되었다.

한편 싱가포르의 리콴유는 중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중국인은 국가가 이끄는 지도부가 강력해야 평화와 번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앞으로도 이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을 것이고, 그것은 공산주의 이념보다도 우선시되는 중국인의 신념 체계이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이 중국을 통일한 성과가 있다고는 하지만, 통일은 이미 청나라 시절에 이루어져 있었다.
중국인들이 분열된 중국을 원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이점 역시 중국공산당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역사’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론적으로, 중국공산당이 중국을 지배할 정당성은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중국공산당은 정당성이 필요하다. 중국은 앞으로도 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경제실적을 내든,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든,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지배의 정당성을 갖춰나가려 할 것이다.
<BetterLife>를 참고

사형 선고를 받은 한 남자가 있었다.

이릉(李陵)이라는 죄 없는 젊은 장수를 변호하다가, 황제의 미움을 산 게 원인이었다. 이릉은 漢나라의 뛰어난 무장으로 보병 5천 명을 거느리고 그 열 배가 넘는 흉노군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화살과 무기는 모두 바닥 났고 흉노군에 투항하고 만다. 이 일로 漢武帝는 매우 진노했다.


황제의 눈치를 살피던 대부분의 신하들은 하나같이 이릉의 일에 침묵했다. 그 와중에 오직 한 사람만이 이릉을 변호하고 나섰다.


‘이릉은 충신입니다. 그의 충절은 이미 수많은 전투에서 증명되었고, 집안 대대로 漢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명문가입니다. 어찌 그가 오랑캐 흉노에게 항복할 수 있겠습니까? 이릉은 어쩔 수 없이 거짓 항복을 한 것입니다.’




이릉을 변호하던 그 남자는 결국 옥에 갇히게 되었고, 사형선고까지 받게 된다.

당시의 법으로 사형을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50만전의 막대한 돈을 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궁형을 받아 내시가 되는 방법이었다.


그는 하급관리로 많은 돈이 있을 리 만무했고, 생식기를 제거 당하는 궁형은 사대부에게 죽음보다 무서운 치욕의 형벌이었다. 그는 선택의 기로에서 최고의 능욕인 궁형을 자청한다.

죽음보다 더 수치스러운 궁형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과업인 ‘사기 史記’를 완성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사마천’이다.

그는 기원전 145년 중국 섬서성 용문에서 태어났다. 황제 측근으로 각종 기록을 담당하던 아버지 사마담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학문에 정진했다.


10살 때부터 경전을 암송하고, 17살 즈음 당대 최고의 대유학자 동중서의 문하생이 되어 ‘춘추’등의 역사철학을 배운다.

20대에는 아버지 권유로 역사 유적지를 찾아 중국 천하를 방랑하는데, 이는 훗날 <사기> 저술의 큰 밑거름이 된다.


38살 때인 기원전 108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만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관으로서 역사서를 편찬하는 일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사관 집안으로 자부심이 강했던 아버지 사마담이 죽기 전 남긴 유언, ‘역사서의 완성’을 평생 자신의 사명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40대에 접어든 사마천은 조정의 일과 <사기> 저술이라는 두 가지 일을 해내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그의 기구한 운명이 시작되었다. 그의 나이 47살이 되던 해에 일생일대의 큰 사건, 바로 이릉 변호 건으로 황제에게 바른 말을 하다가 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상황은 갈수록 꼬여만 가더니, 결국 이릉이 흉노에게 벼슬까지 받고 병법을 가르쳤다는 근거 없는 소문마저 돌았다. 이성을 잃은 한무제는 이릉의 가족을 몰살시킨 다음, 역적을 옹호한 죄로 사마천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사마천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대로 억울하게 죽기보다 치욕스럽지만 궁형을 자청한 것이다. 그는 이 시기 꼭 올바른 사람이 승리하는 것도 대접받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지난날 일어났던 역사적인 일들을 되돌아봄으로써, 붓으로 세상의 부조리와 인간적 가치를 되살려 후세에 전하려 했다.


궁형을 당한 이후 <사기>의 저술 방향은 크게 바뀐다.

漢나라와 황제를 칭송하던 그가 황제에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고, 권력층의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하며 세태를 풍자했다. 또한 사회적 약자, 민중의 삶을 역사의 전면에 끄집어냈다.


2100년 전 당시 민중을 역사의 전면에 끌어냈다는 점은 파격적인 발상으로, 이는 사마천이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현실의 부정부패를 과감히 비판하고 정의와 의리를 칭송하는 내용은, 사마천 이후의 역사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는 <사기>를 읽으며 인생의 의미와 처세의 태도, 그리고 인간관계 등에 대해 깊이 사색할 수 있다.

<史記>는 130권, 총 52만 6천 500자로 그 양이 방대하다.

전설 속 중국의 시조인 황제부터 요.순 임금, 하-은-주 왕조, 춘추전국시대, 진시황의 천하통일, 7년에 걸친 楚漢쟁패, 유방이 세운 한나라까지 3000년의 역사를 기록했다.


사마천은 <사기>를 통해 성공과 실패의 법칙, 부와 권력의 비밀, 인간과 사회에 관한 모든 것을 밝혀내려 했다. 여기서 ‘모든 것’이란 말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사기>에는 황제나 고관대작, 영웅과 권세가뿐 아니라 상인과 농사꾼, 심지어 자객과 도굴꾼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종류의 인간 군상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펼치는 생생한 언행은 마치 우리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리고, 언제든지 자신의 처지에 대입하여 삶의 지혜를 얻어낼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특히 사마천 본인이 절실하게 경험했듯,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좌절과 시련을 어떻게 돌파하고 위대한 삶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지 풍부한 사례와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3천년 역사에서 찾은 지혜의 보고 <사기 인문학>을 한 번 읽어보면 어떨까?


한정주 저 <사기 인문학> <북올림>을 참고




좋아하는 일을 지키는 건 어렵다.

특히 당신이 리더라면 또는, 언젠가 리더가 될 당신이라면...


육상선수 출신으로 달리기를 좋아하던 이 남자는 달리기를 도와주는 신발을 수입해 팔기 시작한다. 직원들 역시 대부분 육상선수 출신이어서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잘 이해했고, 신발 파는 일을 좋아했기 때문에 초반에 사업은 순조로웠다.


그러나 신발이 잘 팔릴수록 그 남자와 직원들의 삶은 고달파졌다. 사장이자 리더였던 그는 신발 수입을 위해 무리하게 무역금융을 써야 했고, 직원들은 그들대로 남의 제품을 언제까지 팔 수 있을지 스스로 질문하며, 위태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리더는 한 가지 결심을 하고 직원들 앞에서 이야기한다.

"우리는 더 이상 다른 기업 브랜드를 판매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 자신만의 방식과 아이디어, 브랜드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는 포기를 뛰어넘는 도전을 감행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그 결정이 지금의 '나이키'를 만들었다. 그는 나이키의 창립자 Phil Knight였다.


지금 내가 팀장이든, 팀원이든, 인턴이든 여부는 중요치 않다. 어떤 위치에 있던 가장 중요한 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이다. 그게 결국 '이기는 힘'이다.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 내 심장이 뛰는 열정의 대화를 따라 일을 선택하는 것. 힘들어도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명확하다. 그래야 치열함 속에서도 재미를 찾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미래에 내가 리더가 되었을 때 조직과 일하는 직원에게도 그런 생생한 삶을 선물할 수 있다.



책 <혼 창 통 2: 결국 이기는 힘>의 저자는, 무자비한 열정, 1%의 소수만이 가진 성공의 기질보다는, 나이키의 창립자 필 나이트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잘 해내기 위해 노력하고, 직원들과 함께 성장하는 리더가 된 우리 시대의 영웅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 리더십의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는 나영석 PD의 이야기는 더 흥미롭게 읽힌다.

그는 2017년부터 모든 프로그램을 후배 PD 들과 공동 제작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신혼일기> <윤식당> <알쓸신잡> 등이 그런 경우다.


그는 후배들과 협업을 하면 '나'라는 틀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좋은 작가와 좋은 PD를 키우는 일이 결국에는 자신의 성공률을 높이는 일이라고 말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눈빛이 다르다. 그리고 그런 탁월한 인재를 영입하는 일은 결국 리더와 조직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제일기획 부사장에서 서점 주인이 된, 카피라이터 최인아의 생각법에 대해서도 다룬다. 직장에서 부사장으로, 부사장을 벗어나 작은 서점을 운영하기까지 제3자가 보기에는 상관관계를 찾기 어렵다.


그녀는 서점을 단순히 책 파는 곳이 아닌, '생각을 담는 그릇, 새로운 생각의 씨앗이 발화하는 공간'이라는 자신만의 언어로 정의하며 생명을 불어넣었다.


큰 조직 속에서 글을 쓰고 직원을 관리하는 일이나, 작은 공간에서 책을 판매하는 것 모두 '창의적인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그녀에게는 같은 일인 것이다. 작은 서점이 창의적인 공간으로 명명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더 이상 소속이나 위치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가변적이며 함께 일하는 사람에 의해 좌우될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 그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는 힘을 발견하는 것이 '결국 이기는 힘'이다.


<혼 창 통 2: 결국 이기는 힘>을 참고

세상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거나, 아니면 나를 세상에 맞추는 것입니다. 모두가 안 된다고 말할 때 그 모두가 틀렸음을 증명하거나, 아니면 내가 틀렸음을 인정해야 하지요.


그나마 흔적을 남기는 사람 그리고 영웅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세상을 바꾸고 모두가 틀렸음을 증명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말을 잘 듣지 않지요. 가지 말라는 곳을 꼭 가려하고, 평온함을 떠나 모험을 하려고 합니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상을 찾아 떠납니다.


신화 속에서 그리고 역사 속에서 영웅들은 한결같이 반란자의 사명의식을 갖고 있지요.

<혼창통>으로 세상을 바꾼 기업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이지훈 교수는, 여러 기업가들을 계속 취재하면서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기업가의 여정이 조지프 캠벨이 말한 신화의 공식과 일치한 것입니다.


<혼창통> 그 두 번째 이야기인 책 <결국 이기는 힘>은,

'성공적인 기업가와 예술가의 시작도 반란자였다'라고 말합니다.


근대 3대 건축가로 꼽히는 르 코르뷔지에의 삶이 그랬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기존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늘 의문을 품었지요. 부모에게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질문 세례를 퍼부었고, 존경하는 스승의 생각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르코르뷔지에는 '거스르는 용기'를 가졌다고 말합니다. 젊은 시절 그는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 선언했습니다. 당시 건축은 특권 지배계급의 예술로 여겨졌지요. 사람의 편리함보다 전통과 장식을 중시했습니다.


코르뷔지에는 자동차가 사람을 편하게 한 것처럼, 건축 또한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안전하게 빛과 바람과 자연을 누리며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 그는 '유니테 다비타시옹'이라는 최초의 고층 아파트 양식 건물을 짓습니다.


혹평이 쏟아졌지요. 빈민굴이고 정신병을 일으키게 하는 돼지우리라 불렸고, 정부 부처마저 위생법을 어겼다며 철거 소송을 벌였지요. 그러나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주거 혁신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이동 혁신의 헨리 포드, 정보 혁신의 빌 게이츠와 비견됩니다.



콘크리트로 지어져 비용이 저렴했고, 사람의 인체 구조를 반영하여 활동 반경을 설계했기에 편리했습니다. 코르뷔지에로 인해 도시에 사는 수백만 명의 일반 서민 거주지가 해결되었고, 그의 아파트는 현대 도시 설계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는 인정받은 뒤에도 결코 한자리에 머물지 않았지요.


<결국 이기는 힘>은 '진정한 예술가는 누구나 반란자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결코 현상에 안주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화 <왕의 남자> <사도>로 유명한 이준익 감독은 예술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예술가란 지금 있는 자리에서

가장 멀리 달아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당신은 어떤 반란자의 사명의식이 있나요?

▷당연시되는 관행들을 보면서 분노한 적이 있나요?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생각한 적 있나요?

▷내가 고쳐보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나요?


당신이 그런 마음을 품고 구성원들과 공유할 때, 당신의 회사는 반란자가 되는 것이지요.

반란자의 사명의식은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구성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고, 도전을 기회로 바꾸어나가는 큰 자산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어도 자신은 영웅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모든 영웅은 평범하고 불완전했습니다.


<결국 이기는 힘>은 '영웅이 전혀 영웅처럼 보이지 않는 영웅 스토리도 많다'고 말합니다.

모세는 80세 노인이고, 쿵푸 팬더의 포는 배불뚝이 판다 곰이며,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는 난쟁이족입니다. 약점을 지닌 영웅은 스토리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인위적 요소입니다.


영웅이 나와는 무관한 인물이라고 생각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바로 이 점이 전설에서, 신화에서, 영화에서 공감을 자아내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모두가 영웅입니다.

자신의 노래를 부르려는 사람, 자신의 시를 쓰려는 사람,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찾아 나서는 사람, 그들이 바로 영웅입니다. 버티는 사람, 그도 영웅입니다.



아무리 평온한 삶을 원해도, 삶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시련은 늘 닥쳐오기 마련이고 도전은 종종 우리의 등을 떠밀지요.

버티고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영웅이 됩니다.

조금씩 순서가 다르고 시작점이 다를 순 있어도, 우리 모두 영웅의 여정을 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의 관습, 규칙, 분야가 있나요?

그렇다면 <결국 이기는 힘>이 말하는 것처럼, 반란자가 되어 자신만의 영웅 서사를 써보는 건 어떨까요?


<책그림>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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