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모임에서 봤던 여성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당신.

그녀와 짧게 대화를 나누고 밥 한번 같이 먹자며 전화번호도 교환했다. 얼마 후 메시지를 보내려는데, 아뿔싸! 그녀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름을 다시 물으면 좋지 않은 인상을 받을 텐데... 이런 상황, 한 번쯤 겪어본 적 있나요?

기술 발전 덕분에 우리는 예전처럼 많은 정보를 머릿속에 넣고 다니지 않아도 되지만, 일상에서 소소한 것들을 머릿속에 담아두는 것은 아직도 중요하다.


새로 만난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 홈페이지 비밀번호 등은 까먹으면 곤란해지니까. 지금부터 사소하지만 중요한 정보를 쉽게 외울 수 있는 '네 가지 소소한 팁'을 소개한다.




1)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라


연구진은 기억력 대회 우승자들의 뇌를 비슷한 IQ, 나이, 성별을 가진 일반 사람들과 비교했는데,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은 시력과 공간을 주관하는 뇌의 영역이 일반 사람들의 뇌와는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은 숫자, 얼굴 그리고 추상적인 개념들까지 상상력을 동원해, 외우고 싶은 것들을 머릿속에서 기억하기 쉬운 이미지로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핵심은 단순히 기억해야 할 대상을 머릿속으로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그와 상관없는 것들과 관련지어 우스꽝스러운 조합을 만드는 데 있었다.


예를 들어 쇼핑 목록을 외워야 한다면 치즈를 손에 얹은 채 균형 잡는 모습을 상상하고, 달걀을 코 위에 놓고, 우유를 어깨 위에 얹는 사진을 머릿속에 그리면 훨씬 기억이 잘 나게 된다.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이렇게 조금은 황당무계한 상상을 통해 머릿속에 새겨보라.


2) 여러 장소에서 외워라


미시건 대학 연구진은 학생들을 두 팀으로 나눈 후, 두번에 걸쳐 영어 단어를 외우게 했다. A팀은 두번 다 같은 방에서, B팀은 각각 다른 방에서 외우게 했고 잠시 후 시험을 치렀는데, B팀이 A팀보다 53%나 더 많은 단어들을 맞춘 것이다.


우리는 환경과 연관 지어 정보를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그 때문에 색다른 환경에서 공부할수록 그 내용을 기억해내기가 더 쉽다.


3) 읽고 듣는 것을 동시에 하라


푸에르토리코 대학 연구진은 스페인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영어로 책을 읽게 했고, 다른 그룹은 책을 읽는 동시에 영어 오디오로도 듣게 했다. 그 걸과, 읽고 들었던 학생들이 조용히 읽기만 한 학생들보다 여덟 번의 테스트에서 모두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우리는 여러 가지 경로로 정보를 접할수록 더 확실히 뇌에 그것을 각인시킬 수 있다.


4) 얼굴을 기억하려면 코에 집중하라


사람의 얼굴은 머릿속에서 이미지로 저장하는 게 어렵다. 얼굴을 잘 기억하는 것은 성격과 관련이 있다고 연구되었는데, 외향적인 사람들은 내향적인 사람들보다 얼굴을 더 잘 기억한다고 한다.


그러나 내향적이라도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할 수 있는 비법이 있다. 바로, '상대방의 코를 보는 것'

한 이론에 따르면, 상대방의 눈을 보는 것보다 코나 코의 왼쪽을 보면서 대화를 할 때, 얼굴 전체를 한번에 볼 수 있어 더 잘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기억을 보다 잘 할 수 있는 <소소한 팁>을 요약하면,

1) 머릿속에 우스꽝스러운 그림 그리기

2) 여러 장소에서 외우기

3) 읽고 듣기를 동시에 하기

4) 얼굴 기억은 코에 집중하기



기억력은 얼마나 노력하느냐의 문제다. 그러니 기억력이 나쁘다고 불평하지 말자.

꾸준히 노력하면 당신도 '기가 메모리 기억력 왕'이 될 수 있다.


Reader's Digest <Secrets to a smarter you>

Lifehack.org <How to memorize things quicker than other people>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 1위는 ‘김’씨입니다. 압도적으로 천만 명이 넘고 당연히 여러 분파가 있지요.

많은 순서대로 Top 5 통계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① 김(金) 1070만 21.5%

② 이(李)  730만 14.7%

③ 박(朴)  420만  8.4%

④ 최(崔)  233만  4.7%

⑤ 정(鄭)  215만  4.3%


위의 Top 5만으로 2,670만 명인데 한국 인구의 절반이 넘습니다.

6위~10위는 강씨, 조씨, 윤씨, 장씨, 임씨까지 더하면, 10대 성씨만으로 전체 인구의 65% 정도 된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성종 때 (15세기 후반, 연산군의 아버지) 문서 기록을 보면, 사람들의 이름이 말동, 합이, 자질금 등으로 대부분 성이 없었답니다.


불과 100여년 전인 1900년대 초에 조선을 방문했던 미국인 선교사 엘리제 셰핑 (서서평, 1880~1934)이 조선을 순회하면서 이런 글을 남겼답니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500여명 중 이름이 있던 사람들은 단 10명뿐이었다. 여인들은 돼지할머니, 큰년, 작은년 등으로 불리고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성씨를 쓰지 않은 건 반드시 조선시대 얘기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이전 고려시대 그리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 때도 성씨가 있는 사람들보다는 없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을 쓰지 않았습니다.


성씨가 늘어나게 된 이유?


16세기 후반까지 조선의 전체 인구 중 성씨를 가진 사람은 약 10%에 불과했답니다. 이 10%도 당시 왕족과 관리들 그리고 족보를 가진 양반들 숫자까지 모두 합한 것이었죠. 한마디로 왕족과 양반을 제외한 중인, 상민, 천민들은 성이란 게 없었다고 보면 정확하겠네요.


조선 전기의 사회적 신분 구성을 대략 보면,

양인 ? 양반 10%, 중인 10%, 상민 30%

천민 ? 노비 50%

로 되어있었고, 관직이 있는 사람들은 성을 붙였지만 그 숫자마저 아주 미미했습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을 거쳐 선조와 광해군에 이르러 성을 가진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출발점은 바로 ‘공명첩’ 때문이었죠. 공명첩이란 ‘돈을 내고 벼슬을 사는 것’으로, 특히 광해군 때 나라 곳간의 재정 확보를 위해 많이 팔아먹었답니다. 임진왜란으로 당시 나라 재정은 이미 거덜난 상태였다네요.


돈만 내면 천민도 양반이 되고, 비록 명예직이지만 벼슬자리까지 얻던 시기였답니다. 매관매직은 고려시대 때부터 있었지만, 광해군 시절부터 본격화 된 것이랍니다. 상황이 이러니 논밭 팔고 살림 팔아서 명예 벼슬을 얻는 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지요.


나라 전체적으로는 당시 3년마다 호적을 정리했는데, 그때마다 성씨를 가진 인구가 조금씩 늘어난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으니, 점점 양반이 늘어난 것이죠.


그런 후 전 국민이 성씨를 가지게 된 것은, 1909년 일제의 ‘민적법’에 따른 결과였습니다.

이때 양반, 상민 구별 없이 모두 성을 갖게 되었는데, 노비들은 대부분 주인의 성을 따랐습니다. 가끔 한자의 획을 잘못 써서 아주 희귀한 성씨가 나오기도 했지요.


김씨와 이씨를 많이 선택한 이유?


그것은 당시 성을 신고하던 시기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조선은 ‘전주 이씨’가 세운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구한말에는 세도가 ‘안동 김씨’의 힘이 대단했죠. 사람들은 이왕 골라잡는 것 남들이 다 알만한 힘있고 유명한 성씨를 선택한 듯합니다.


이런 행태가 너무 낯뜨겁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옛 가야왕의 성씨였던 ‘김해 김씨’나 신라 왕의 성씨였던 ‘밀양 박씨’ 또는 ‘경주 김씨’를 선택했습니다.

오래 전에 사라진 나라로 후손들이 누군지 아무도 알 수 없었고, 비록 없어졌지만 그래도 한때 왕족의 성이니, 나름 뿌리가 있고 폼도 나는 쪽으로 골라잡은 것이겠죠.


한 마을의 노비들이 통째로 전부 같은 성씨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농촌에 보면 유독 집성촌들이 많은데, 예컨대 낙향한 가난한 양반 집이 하나 있으면 성씨가 없던 마을의 부락민들이 돈이나 곡식을 주고 부탁하며 같은 성씨로 입문을 하는 식이었답니다.


어떤 경우에는 마을 사람들이 의견을 모아 마을 전체가 통째로 같은 성씨가 되기도 했고, 지역 유지의 경우 그 가문의 노비와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그 사람의 성을 따르기도 했답니다.


우리나라 족보는 대부분 가짜?


성씨와 함께 엉터리 족보도 함께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왕가의 후손이고 명문가의 자손일 수는 절대로 없을진대…ㅋㅋ 족보가 있다고 한들 실제 족보일 확률도 희박하겠죠. 어쨌든지 10%만 믿으면 되겠네요.


해방 직후까지 가짜 족보를 만들어주고 한 재산씩 모은 브로커들이 많았다네요. 많은 경우 남의 족보를 빌려다가 선대는 그대로 베끼고 아래 대는 현재의 가족과 친척들을 집어 넣어서 위작을 만들었답니다.

족보에 나와있는 조상들 중 6대 이상이 자신의 실제 조상일 가능성도 10%라고 보면 되겠네요.



어찌 보면 족보가 그렇게 망가져버린 것이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군요. 아니었으면 족보 따지면서 귀족입네 양반입네 하는 족속들이 지금도 설쳐대고 생활 속 계급투쟁까지 따라다니면, 그것도 큰 사회문제가 됐을 테니까요.

그냥 모두 함께 고귀해지면서, 다 같이 평등해진 세상이 더 낫겠지요.ㅋㅋㅋ


<꿀잼역사>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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