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을 사회 현실에 기대어 핑계대면서, 많은 가능성을 체념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곤하지요. 그게 비록 현실이라곤 하지만, 내가 해볼 수 있는 방법으로 좌충우돌하면서 앞으로 나가보는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때론 위로도 필요하겠지만, 열심히 해봐야 할 부분에선 이 악물고 해볼 필요가 분명히 있지요. 진짜배기 현실 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이겠습니다.


임경선의 <태도에 관하여> 책에서, 하루를 좀 더 견고하게 살기위한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옮겨봅니다.


첫째, '생각'하고 '행동'하기보다, '행동'하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자

생각하는 것에 너무 중점을 두다 보면, 나도 모르게 미루고 하지 않을 부정적인 이유를 생각하게 돼요. 나한테는 무리니까, 난 이것밖에 못하니까, 이런 스스로에 대한 선입견을 만드는 거죠.


물론, 자신의 수준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현실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큰 용기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무언가 실천하는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선만 긋는 것과는 다릅니다.



머릿속이 잘 정리되지 않을 때는 일단 용기있게 그 상황에 나를 던져보세요. 그 행동이 곧 나의 생각을 다듬고 정리해 줄 테니까요.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나를 '이렇다'라고 단정 짓는 것입니다.


둘째, 무조건 즐겁고 보람찬 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 동료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내 일은 배움도, 재미도, 보람도 없어. 그래서 깔끔하게 월급 받은 만큼만 하려고 해. 난 회사의 노예가 아니니까."


이런 사람들은 보통 맡은 일에서 마음과 열정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렇다보니 대부분은 사생활을 통해 충족감을 해소하려 합니다. 문제는 그 사생활이 재미있어야 하는데, 그걸 재미있게 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지요. 그만큼 일의 문제는 내 삶에 가장 깊은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아 새로운 길을 선택해도, 언젠가는 또다시 객관적인 평가와 마주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일이 내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탓하기 전에, 내가 먼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 안될까요?


내가 먼저 마음을 담지 않으면, 그 어떤 일이라도 내 주변에서 계속 겉돌기만 합니다. 결국 일의 재미는 스스로 찾아야 하는 주관적인 문제지요. '나는 일을 사랑해'라고 말하지 않으면, 일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겁니다.


셋째, 인간관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는 이렇게 말했지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한다고 하면, 당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당신은 모두를 기쁘게 할 수 없다."


그렇습니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시간과 마음을 더 써도 모자랄 판인데, 마음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오는 공허함을 억지로 채울 필요는 없지요. 내가 '나' 다울 수 있는 인간관계에 집중하면, 어떤 사람들과 있어야 진정으로 편안할 수 있을지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또한 인간관계는 저마다 생로병사 운명이 있어서, 절친한 관계였다가 별다른 일이 없었음에도 자연스럽게 소멸하거나 서먹해지기도 하는데, 이때는 자연스럽게 흘려보내고 애매한 채로 놔둘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마도 그 관계는 서로에게 충분히 매료되지 않았거나, 누군가는 좋아하는 척하며 애만 쓰고 있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인간관계를 가급적 '관리'하지 않고 살아가면 홀가분해집니다. 갈 사람은 가게 되어있고, 돌아올 사람은 분명히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으니까요. '관계의 상실을 인정할 용기'가 있다면, 어느덧 관계는 재생되어 있기도 합니다.


▶ '행동'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 즐겁게 일하는 방법을 찾으면서

▶ 인간관계에 자유로운,

그래서 삶에 기분 좋은 긴장감이 깔려있는, 그런 하루를 살도록 실천하자는 말입니다.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보세요. 같은 삶이라도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지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니까요.


임경선 <태도에 관하여>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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