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스페인 백작부인이라고 여기는 섹시한 여성, 북극곰에게 목숨 건 애정공세를 하는 서커스 단원, 가학.피학성애 공상에 시달리는 영화제작자, 정상인이라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위험하고 불안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그런 사람으로 정해져 있던 걸까? 아니면 현재 드러난 모습 외에 다른 숨은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

심리학 서적에 빠져 본 적이 있는가?
사람들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등이 궁금해서다. 하지만 이런 상대의 심리에 대한 궁금증은 어느 순간부터 점점 자신의 내면을 향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또 어떻게 죽을 것인가? 등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여전히 그 해답을 찾는 건 쉽지 않고, 사실은 다른 잘난 듯 보이는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책 <어느 날 나는 그들이 궁금해졌다>는 소설 형식의 독특한 심리학 서적이다. 앞서 말한 정상인이라면 절대 하지 않는 위험하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컬럼비아 대학교의 심리학 박사학위를 가진 저자 로버트 아케렛은, 이 사람들을 도와 심리치료를 진행한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어느 날, 자신이 상담했던 그들을 찾아보기로 한다. 치료 후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직접 만나보고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나오미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자.

나오미는 아케렛 박사가 뉴욕시티 칼리지의 상담사 겸 심리치료사로 일할 때 만난 첫 환자다. 행동과 옷차림이 굉장히 부적절해 수업 분위기를 흐린다는 이유로, 대학 측이 직업 상담을 가장해 그에게 상담을 보낸 것이다.

 


그녀는 아주 매력적인 젊은 여자로, 아름답고 육감적인 미인이었다. 스스로 자신이 스페인 백작의 부인이라는 망상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첫 상담부터 섹시한 옷과 도발적인 자세로 아케렛을 시험한다. 하지만 몇 차례의 상담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숨겨진 감정을 드러내고, 부모와 이웃 모두를 증오한다고 말한다.

그녀의 비정상적인 행동 속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실 나오미는 태어나면서 부모로부터 외면을 당한다. 그녀의 엄마는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느님이 딸을 주어 ‘자신을 벌했다’라고 믿는다.

 


처음에는 사내아이가 아닌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자라면서는 사내아이처럼 군다는 이유로, 성숙해진 후에는 섹시하다는 이유만으로 부모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 당한다.

심지어 그녀의 엄마는 어린 딸에게 모욕적인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 아버지 역시 딸이 성적으로 성숙하기 시작하자 벌레라도 된 것처럼 멀리하기 시작한다.
때문에 그녀는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점차 자신을 왜곡하며, 자신이 스페인 백작부인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저자는 그녀의 팜(므)파탈적인 모습과 낮은 자존감 등은 어릴적 거부당했던 트라우마에 대한 방어장치였다고 말한다. 마지막 치료가 끝나고 30년이 지난 후 나오미는 어떤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까?
사람들은 어떤 상황이나 사실에 따라 누군가를 판단하고 또 이해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일상이 철학자라 불리는 알랭 드 보통은,
‘우리는 모두 심리학적으로 조금씩 이상한 존재다. 문제는 우리는 그 사실을 모르며, 그 누구도 이상한 점을 말해주지 않는다’는데 있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과 오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이 치유 받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마 상대방이 당신에 대해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않은 채 온전히 관심을 기울이며 말을 들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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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는 건 영원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가장 친한 친구나 심지어 가족들조차도 말이다.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이 해석하는 틀의 방향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서로 다름의 차이를 비교하고 인정한다는 것 아닐까?

로버트 U. 아케렛 저 <어느 날 나는 그들이 궁금해졌다 : 심리치료, 그 30년 후의 이야기> <북올림>을 참고

예전에 들었던 재미있는 이야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찾아 정리해보겠습니다.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사실을 TV 방송에서 리메이크했던 것 같은데, 원래 제목은 '정신병원 들어가기'였던 것 같습니다. 부제는 'The truth is beautiful and terrible!'로 제가 임의로 달아봅니다.


1972년 10월, 정신과 의사를 찾은 한 남자.

"이상한 소리가 자꾸 들려요! 텅 빈 듯하고 둔탁한, 맞아요!!! '쿵' 소리가 들려요!"

의사 : '쿵'이라고요?

"네, 쿵이요!!! 쿵!"

학계에 단 한 번도 보고된 적 없었던 '쿵!' 소리 환청으로, 그 남자는 정신과 의사와 20분 정도 면담 후 정신병원 입원에 성공했다.


같은 시각 심리학자, 대학원생, 화가, 주부 등으로 구성된 7명의 정상인들 역시 꾸며낸 다양한 증상으로, 각기 다른 정신병원 입원에 성공한다.


이 실험 연구의 주동자는 바로,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 교수 '데이비드 로젠한'이었다. 그는 병원에 입원 후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을 했다.

▷ 다른 환자들 도와주기

▷ 법적 조언해주기

▷ 수영장에서 놀기

하지만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본 의사가 로젠한에게 내린 진단은 '정신분열증 (조현병)'이었다.


한편, "당신은 미치지 않았어요. 병원 조사하려고 들어온 거 맞죠?"

그런데 가짜 환자의 정체를 단번에 눈치챈 진짜 환자들도 많았다. 어쨌든 그 후 로젠한은 52일 만에 '일시적 정신 회복'으로 퇴원했다.


데이비드 로젠한 David Rosenhan

(1929 ~ 2012)

심리학자,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


그런 후 다시 모인 8명의 공갈 공범자들.

8명 모두 입원 후 정상적으로 생활했지만,

정신분열증 (조현병) 7명

조울증 1명

8명 전원이 정신병 환자로 진단을 받았던 것. 최소 7일, 최장 52일, 평균적으로 19일간 입원했다.


이후 1973년 1월, 정상과 비정상을 분류할 수 있다는 확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 한편의 논문이 <사이언스>지에 실렸다.

제목은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 On Being Sane in Insane Places>이었다.

로젠한의 논문은 정신 장애가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들을 구분할 때, 현존하는 형태의 진단이 매우 부정확하다고 결론지었다.


로젠한의 가짜 실험에 정신 의학계는 크게 분노했다.

하지만 그중 한 병원이, 진짜 환자와 가짜 환자를 정확히 가려내겠다며 로젠한에게 도전장을 낸다.

그리고 3달 후 그 병원은, 로젠한이 보낸 100명의 환자 중 91명의 가짜 환자를 찾아냈다고 승리의 확신에 찬 목소리로 연락한다.

그러나 그 도전에 로젠한은, 아예 환자를 단 한 명도 보내지 않았다.



로젠한의 실험은 분명 결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연구 결과에는 분명한 진실이 있다.

꼬리표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결정한다.

로렌 슬레이터, 심리학자


선입견을 가지자 가짜는 진짜가 되었고, 의심을 더하자 진짜는 가짜가 되었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생각 한끝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하루오분>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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