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소실되었다고 여겨졌던 400년 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직접 쓴,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편지 원본이 최근 발견된 것을 살펴보자.


2018년 9월 21일 세계적인 저널 네이처 (Nature, The International Weekly Journal of Science)의 뉴스란에는 황당하면서도 과학 역사가들에게 놀랄만한 기사 한 편이 실렸다. 기사의 리드는,

Discovery of Galileo’s long-lost letter shows he edited his heretical ideas to fool the Inquisition


이탈리아 베르가모 대학의 과학 역사학자 살바토레 리치아르도 Salvatore Ricciardo 박사가, 다른 곳도 아닌 이름만으로도 겁나 유명한 ‘영국왕립학회’ 도서관에서 1616년 갈릴레이에 대한 첫 종교재판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단서였던 1613년 12월 21일 <카스텔리에게 보내는 편지> 원본을 발견했다.


그가 이 편지를 발견한 과정은,

① 갈릴레이의 서한을 받은 사람들의 추가적인 코멘트를 연구하고 있었다.

② 영국왕립학회의 온라인 카테고리 검색에서 ‘카스텔리’를 검색했다.

③ 뜬금없이 1613년 10월 21일로 표기된 갈릴레이의 편지를 발견했다.

④ 12월 21일에 작성된 그의 편지였고, 아래에는 정확히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약자 서명 G.G.가 있었다.


심지어 이 원본 편지는 1840년 왕립학회 카탈로그에서도 1613년이 아닌 1618년으로 분류된 사실을 보면, 찾지 못한 역사적 기록들이 아직 더 많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 카스텔리에게 보낸 갈릴레이의 편지가 왜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것일까?

이야기는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으로 종신형을 선고 받았던 1633년보다 20년 이전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609년 당시 파도바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망원경이 발명됐다는 얘기를 풍문으로 듣고는, 그 망원경보다 훨씬 배율이 높아서 달까지도 자세히 볼 수 있는 ‘최신 망원경’을 제작했다.

덕분에 그는 달이 완벽한 구체라는 주변의 잘못된 인식을 깨고, 실제 달의 울퉁불퉁한 모습을 소상히 밝혀내게 되었다.


너무 신이 났던 갈릴레이는 열심히 금성과 목성 등 여러 행성들의 움직임과 상 변화를 관측했고, 마침내 금성 Venus의 상 변화가 기존의 ‘천동설’과 맞지 않는 패턴을 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놀랍게도 이것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힘을 싣는 금성의 상 변화였던 것.


이러한 천체 관측을 토대로 완성된 갈릴레이의 천문학 책, <시데리우스 눈치우스 Sidereus Nuncius>는 ‘지동설의 증거’를 분명히 나타내주는 책이었다.


때마침 당시 피사 대학 교수이자 갈릴레이의 베프 동료였던 베네디토 카스텔리는 갈릴레이의 팬덤을 자처하며 이에 적극 동조했다. 1613년 12월 12일 토스카나 궁전에서 열린 조찬회에 초대받은 카스텔리는, 동석한 같은 대학교 교수인 코시모 보스칼리아가 지동설이 성경 말씀에 위배된다고 디스를 하자, 이에 빡쳐서 지동설 옹호의 열띤 랩배틀을 시작했다.


당시 독실한 신자이자 토스카나 대공의 엄마인 크리스티나 부인도 가세해 열렬한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이렇게 세상은 자신의 ‘앎과 모름’ [일명 무식함]을 스스로의 믿음과 헷갈리는 사람과 사태가 허벌나게 엄청 많다. 모르면 가만히 있으면 중간씩이나 가나…?) 그러나 갈릴레이의 발견을 토대로 한 카스텔리의 설득은 결국 실패했다. (소한테 경을 아무리 읽어준들 무슨 소용… 이것도 사람과 짐승의 차이?)


너무나 우울한 나머지 그는 갈릴레이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그리하여 바로 그 1613년 12월 21일 갈릴레이는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와 프톨레마이오스 Ptolemy의 천동설이 틀렸으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옳다’라는 글과 함께 천동설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이들을 돌려 까는 편지를 무려 일곱 장이나 작성하여 카스텔리에게 보낸다.


이 편지가 나중에 여기저기 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사본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사본을 보게 된 피렌체의 신부인 니콜로 로리니, 평소에 지동설을 겁나 싫어했던 그는, 1615년 2월 7일 이 ‘카스텔리에게 보낸 편지’가 갈릴레이의 이단 신봉을 명백히 보여주는 증거라며 로마 교황청에 고발하게 된다.


이로부터 열흘이 지난 2월 16일 갈릴레이는 카스텔리에게 보낸 ‘편지 원본’을 냉큼 돌려받아, 자신과 친한 피에로 디니 신부에게, ‘로리니 신부같이 사악하고 무지한 샤끼들이 나를 모함한다’라고 토로하면서, ‘이게 내가 진짜 작성한 원본 편지의 사본이오!’라며 그것을 로마에 보내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실제로 로리니가 전달한 사본과 갈릴레이가 원본이라고 주장한 사본 사이에는 문맥상 성경을 디스하는 수준이 상당히 달랐다.


로리니의 사본 : 성경을 글자 그대로만 보면 다수의 ‘틀린’ 명제들이 있다 (강한 어조 디스)

갈릴레이의 사본 : 성경을 글자 그대로만 보면 다수의 ‘진리와 다르게 보이는’ 명제들이 있다 (의견 수준)

로리니의 사본 : 성경은 가장 기본적인 교리를 ‘왜곡하는 것’을 삼가지 않았다

갈릴레이의 사본 : 성경은 가장 기본적인 교리를 ‘가려놓는 것’을 삼가지 않았다

로 각각 표현이 되어 있었다. 문맥 차이만으로도 이단 신봉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아주 민감한 차이였다.


그나마 당시엔 성직자들 사이에서도 ‘가설’이라면 ‘지동설’을 용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는데다, 로리니가 전달한 사본 역시 ‘신빙성이 없다’라며 (그래서 갈릴레이가 편지 원본을 냉큼 돌려받았구먼… 영특한 선구자!) 결국 갈릴레이의 무혐의로 일단락되었다.



그 후 갈릴레이가 실제로 카스텔리에게 보낸 원본 편지의 존재는 세상의 관심에서 묻혀졌고, 둘 중 어떤 게 진짜 원본인지는 400년 더 지난 올해 여름까지도 아무도 아는 넘들이 없었다.

드디어 2018년 9월 21일 갈릴레이의 이 원본 편지가 세상에 공개되었는데, 그 결과 충격적인 반전이 400년 만에 드러난 것이다.


갈릴레이가 카스텔리에게서 돌려받은 편지 원본은 피에로 디니 신부에게 사본을 만들어 보내기 전 중간중간에 줄을 치며 수정한 것이 드러났으며, 수정 전후의 글씨가 모두 갈릴레이의 필체임이 확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정되기 전의 원래 문구대로라면 로리니 신부가 제출한 내용이 원본과 일치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당시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에 갈 수 있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원본 문구를 수정했고, 오히려 로리니가 악의적으로 수정했다며 ‘거짓 해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은 아름답지만 추악한 것이여~)


만약 그 당시 로리니 신부의 사본이 원본과 같다고 밝혀졌다면, 갈릴레이는 ‘이단 신봉’이라는 죄를 1633년의 종교재판보다 17년이나 일찍 감당했을 것이며, 그의 유명한 저서인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 Dialogo di Galileo Galilei Linceo Matematico Sopraordinario>나 <새로운 두 과학 Discorsi E Dimostrazioni Matematiche> 등은 세상에 나타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4세기가 지나서 돌이켜보는 갈릴레이와 로리니 신부의 갈등… 그리고 종교재판이라는 종교의 허무맹랑한 독선… 기존의 통념과 지식을 그대로 믿으려는 자들과 스스로 확인하려고 했던 이들 사이에서의 갈등과 알력이 아니었을까?


꼴통들의 견해가 갈릴레이의 이름처럼, 갈릴 수밖에 없었던 시절의 가장 핫했던 과학과 역사의 이야기다.


<Unrealscience>를 참고




지구 속이 비어있다는 최초의 '지구공동설'을 주장한 사람은, 중세 철학자인 '브루노 Bruno' (1548~1600)였다.


브루노 Giordano Bruno :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근교의 노라에서 태어나 '노라 사람'이라고 칭한다. 처음엔 도미니코회 수도사였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를 공부하고, 당시의 기하학, 천문학에도 통달했다. 1576년 아리우스 설을 지지했다는 의심을 받아 고발되어 수도원을 탈출하였으며, 로마와 독일로 방랑하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강의하고 저서를 라틴어로 출판. 1592년 2월 이단재판소에 체포되어 7년에 걸친 고문과 심문 끝에, 1600년 2월 이단의 판결을 받아 화형으로 사망함.


그의 학설은 신을 일체의 차별, 대립, 모순을 하나로 귀착시키는 무한한 존재라 하고, 이 신의 무한한 전개로서 우주의 무한성을 주장한다. 우리의 행성계에 관해서는 코페르니쿠스 설을 지지하고, 나아가 우주 안에는 태양계와 같은 모양의 세계가 무수히 존재한다고 하여 코페르니쿠스를 넘어서고 있다.


그 후 1692년 핼리혜성을 발견한 '핼리 Edmund Halley' (1656~1742년), 오일러 방정식의 스위스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오일러 Leonhard Euler' (1707~1783), 그리고 1906년 미국의 <The Phantom of the Poles>의 저자 '윌리엄 리드 William Reed'에 의해서도 주장되었다.


'마셜 가드너 Marshall Gardner'는 1920년에 신빙성 있는 자료와 함께 저서 <지구 내부로의 여행>에서, 지구는 그 속이 차있는 구체가 아닌 텅 빈 구체이며, 지구 내부에는 또 다른 태양이 존재하고, 고도의 문명세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가드너가 주장했던 지구공동설은, 지구는 대폭발 이후 불덩이가 소용돌이 회전운동으로 탄생한 것이고, 회전할 때의 원심력에 의해 무거운 물질은 바깥쪽으로 나와 두껍고 딱딱한 지각을 형성했고, 속은 텅 빈 형태로 굳어졌다고 했다. 마치 도자기가 회전틀에서 속이 비어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지구의 자전 속도는 시속 1,600Km, 초당 27Km가 넘는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므로, 지구 속이 암반이나 지층으로 가득 차 있다면, 지구는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났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반 알렌 Van Allen이 발견한 지구의 방사능 복사 띠는 지구공동설을 뒷받침한다.

반면에, 허구의 SF 분야에서는 쥘 베른의 소설 <지구 속 여행>에 의해 대중화되었고, 헐리우드 영화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로 제작되기도 했다.


1950년 5월 칠레 대지진, 1964년 5월 앵커리지 대지진 등, 당시 대지진의 충격으로 지구가 거대한 종이 울리듯 오랫동안 진동하는 현상이 관측된 것도 지구 속이 비었다는 증거로 보고 있다. 또한, 실제 지구의 무게는 지표면 전체의 무게에도 미치지 못하며 오히려 더 가볍다고 한다.


많은 학자들이 실제로 지구뿐만 아니라 달, 화성, 금성 등 모든 행성의 속이 텅 비어있다고 말한다.

아폴로 12호와 14호의 착륙선으로 달 표면 충돌 실험을 했을 때, 달이 거대한 종처럼 아주 장시간 울렸고, 달에 미리 설치했던 지진계는 지표로만 진동이 전파되고 내부로는 전파되지 않아, 달의 속은 비어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최근 허블 천체망원경으로 촬영된 화성의 극지 부분에는 구멍이 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에서 외계인 접촉자라는 프랭크 스트레인지스 박사는, 이러한 정보를 NASA와 미국 정부 수뇌부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은폐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구 내부의 중심에는 하늘 가운데 내부 태양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원시 지구의 불덩어리 일부와 빛을 내는 물질 일부가 남아 텅 빈 지구 내부의 '중심 태양 The Smoky God'이 된 것이라고 한다.

현대 과학으로 풀지 못하는 오로라는 지구 내부 태양의 반사 현상이며, 각 행성에서 관측되는 극광 현상도 같은 결과라고 주장한다.


지구를 포함한 모든 행성의 양극에는 형성 당시 자전운동의 결과로 생긴 공동(空洞)으로 통하는 구멍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지구 중력은 지구 중심의 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외곽 또는 표피 내부의 한 가운데 있다고 주장한다.



1968년 11월 23일 인공위성 ESSA 7호가 찍은 북극 사진에는 구멍이 뻥 뚫려있는 북극의 모습이 찍혔다. 하지만 지하 세계로 통하는 입구가 쉽게 발견되지 않는 것은, 특수한 에너지의 방호막에 의해 가리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에너지 장막은 매년 수차례 열리며, 극에 있는 구멍뿐 아니라, 바다에도 약 8개가 더 있다고 한다.


그 외 구체적인 증거로는,

▷새나 동물들이 겨울철에 오히려 더 추운 북쪽을 향해 이동하는 것

▷북극의 어떤 한계 위도를 지나면 날씨가 점차 따뜻해지는 사실

▷북쪽에서 나오는 난류와 따뜻한 바람

▷열대 식물의 종자나 싱싱한 봉우리가 달린 나뭇가지가 북쪽에서 밀려나와 바다에 떠다니는 현상

▷북극 바다에 뜬 담수 빙산

▷북극에 꽃가루 등이 포함된 붉은색 눈이 내리는 현상

▷북극으로 갈수록 코끼리, 거북, 악어 등의 열대 동물이나 파충류가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는 사실

▷북극 하늘에 해면이나 육지가 비치는 현상

▷북위 82도 이북에서는 나침반의 지침이 정상 상태를 잃고 계속 회전하는 현상

등 수많은 증거들이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남극과 북극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고 지표와 지구 속을 연결한다는 것이다.


1997년 1월 6일 국내 각 일간지에는 AP연합통신 기사로, 미국과 러시아가 지난 40여 년간 군사 목적으로 130만 회에 걸쳐 수집한 북극 바다에 관한 극비 정보가 처음으로 공식 공개되었다.


그 내용으로는,

'북극해의 물이 그린란드와 노르웨이 북단 사이의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통로인 이른 바 '물굴뚝'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물굴뚝은 폭이 수 Km 밖에 안 되고 지속 시간도 짧아 열려 있는 순간을 포착하기는 어려우나, 일정한 주기로 개폐운동을 한다고 밝혔다.


이 기사에는 북극 바다 밑에 지구 표면과 지구 속이 통하는 입구인 물굴뚝이 실제로 개방되어 있으며, 북극해의 조수가 이 구멍을 통해 일정한 주기를 갖고 지구 안팎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공식 확인해준 것이다. 바로, 지구공동설이 사실로 드러난 것.


그리고 지표 밑 수백 Km의 지구 중심부에서 1994년 10월부터 미 우주항공국으로 복잡한 수학적 암호로 된 전파를 보내오고 있다는 뉴스가 NASA 소식통을 인용하여 외신과 국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지하세계의 고지능 생명체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하며, 과학자들이 이 암호를 푸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다만, 지구 과학으로는 지하세계로 전파를 보낼 수 있는 기술이 없는 반면, 지저문명은 지구보다 훨씬 기술이 발달한 수준에 있고, 전파를 보낸 주체는 우리를 잘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들을 잘 모른다는 사실이 과학자들을 당혹하게 만들고 있다.


지구공동설과 지저 문명에 대한 경험자들의 주장이나 이야기는, 앞으로 포스트에서 설레발을 하나씩 베끼고 엮어볼 예정임.


출처 : <더스토리> <Daily News Stories> <Amazing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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