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폭탄이 세계 도처에서 터지고, 사람이 인공지능에게 살해당하고, 유전자 조작으로 신분이 선택된다.

인간이 과학기술을 통제하지 못하면 벌어지는 해프닝이다.


인간은 불과 몇 천년 전까지만 해도 오늘 먹을 식량을 걱정했지만, 이제는 자그마한 플루토늄 폭탄 하나로 도시를 날려버리는 기술을 갖게 되었고, 자신보다 뛰어난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런 과학기술을 두려워하고, 대중문화는 그 두려움을 활용하여 이야기를 지어낸다.


소설과 영화 속에서 인간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연구하여 위기를 자초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과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배울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이 있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홍성욱 교수의 <크로스 사이언스>다.




이 책은 인간이 과학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야기 두 편을 소개한다.


첫째는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경쟁을 다룬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이다.

여차하면 핵무기를 쓰겠다는 공포감을 상대에게 심어주기 위해, 미국과 소련은 저마다의 방법을 만들어낸다. 미국은 핵무기 권한을 장군에게 넘기는 ‘R 작전’을 개발했고, 소련은 ‘둠스데이 머신’을 만들었다.


R 작전 : 적의 급습 시 낮은 지위의 사령관도 핵 보복 명령을 할 수 있는 비상 전시작전.

둠스데이 머신 : 소련이 핵무기를 한 방이라도 맞으면, 모든 핵무기를 자동으로 작동시키는 시스템. 일단 작동되면 해제하는 방법이 없다.


이는 상호확증파괴전략 (MAD, Mutual Assured Destruction)을 따른 것이다.

적이 공격하면 반드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으로 반격할 것이라는 의사표시다. 한마디로 전 세계가 쑥대밭이 된다는 뜻이다. 그런 공포감으로 전쟁이 억제된다는 게 이 MAD 전략의 핵심이다.


그래서 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전쟁 억제력이란 적에게 공포심을 안겨주는 예술입니다.”


다행히 현실에서는 핵 억제가 원리대로 잘 작동했지만, 영화 속에서는 미군 장교 한 명이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핵무기를 자기 마음대로 출격하게 한다.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지만 결국 핵폭탄 하나가 소련 땅에 떨어졌고, 그렇게 미국과 소련은 상호확증파괴를 시작하게 된다.


‘R 작전’은 미군이 실제로 운용한 작전이며, 핵무기 경쟁 당시 미국과 소련이 가지고 있던 핵무기 개수는 각각 4만 6천기였다. 영화는 충분히 현실이 될 수 있었다.

핵폭탄을 만들기 위해 인류는 상대성 이론부터 시작해서 양자물리학, 핵물리학, 최첨단 엔지니어링 기술을 이해했지만, 인간의 정신은 그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고문을 즐기면서도 카메라를 잘 만드는 일본 사람들, 발전한 기술 문명을 책임질 수 없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이 영화의 주제다.

핵무기로 대표되는 현대 과학기술과 이를 적절하게 통제할 수 없는 인류를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만든 기술로 파멸에 이르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이다.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들어낸 과학자의 이름이다. 괴물은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고 그저 괴물이라 불린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내팽개치고 도망갔다는 것이다.

누가, 왜 자신을 만들었는지 알기 위해 괴물은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쫓았다. 그 과정에서 실수로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동생을 죽이기까지 했다.


마침내 어느 설산에서 괴물과 박사는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괴물은 박사에게 마지막 부탁을 한다.

짝을 만들어 달라고… 그러면 더 이상 누구도 해치지 않고 짝과 함께 숨어살겠다고…… 프랑켄슈타인은 그러겠다고 약속했지만 나중에 이를 번복한다. 괴물이 후손을 낳으면 인간 사회에 큰 위협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화가 난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을 다시 쫓으며 소설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프랑켄슈타인>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책 <크로스 사이언스>는 자신의 피조물을 버리고 도망가거나 자신이 초래한 문제를 회피하는 등, 과학을 만들어낸 사람이 그 결과에 온전히 책임지지 못하면 자신과 주변을 파멸시키게 된다.


지식이 책임감 있게 사용되지 못하고, 통제가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이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다.

너무 빨리 발전하여 그 방향과 속도를 통제하기 힘든 과학기술에 대해 인간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지금도 또 다른 괴물과 이상한 핵무기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공지능일 수도, 유전자 조작 기술일 수도, 새로운 무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와 소설을 통해 배웠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과학에 책임져야 하고, 지나친 두려움이나 낙관은 좋지 않다는 것을.


책 <크로스 사이언스>는 대중문화를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학을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

그러기 위해 무엇을 논의해야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문과생들이 열광한 서울대 최고의 '융합과학' 강의, 홍성욱 저 <크로스 사이언스 Cross Science : 프랑켄슈타인에서 AI까지, 과학과 대중문화의 매혹적 만남><책그림>을 참고




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영화 인터스텔라.

<인터스텔라>는 아름다운 영상미와 스토리 특유의 재미뿐 아니라, 실제 우주 과학에 기반해서 제작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어렵게만 느껴졌던 우주 과학에 대한 사람들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과학이 녹아 든 소설, 영화,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죠.

대중문화에서 나타난 과학을 관찰하면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서울대에는 이공계열 학생들과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이 함께 듣는 교양 수업이 있는데, 이 수업에서는 대중문화를 통해 과학과 우리 사회의 관계를 분석한다고 하네요.

이 강의를 담당하는 과학 철학자이자 소통하는 과학자 홍성욱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과학에 기반한 영화가 나왔을 때 SNS에서 사람들 반응을 보면서, 이런 댓글을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00학 전공자로서 말씀 드립니다. 이 영화에서 이 부분은 사실과 다릅니다.’


주로 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이런 댓글을 많이 달고는 합니다.

과학을 토대로 한 영화를 보며 그 속의 디테일에 대해 틀린 점을 찾는 걸 좋아하고, 또 과학적 사실이 얼마나 들어맞는지에 따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죠.


물론 과학에 무관심하고 대충 검증하는 대중문화 생산자들도 문제가 있지만, 모든 것을 과학적 설명의 완결성을 통해서만 평가하려는 태도에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문화를 마치 과학의 일부로 생각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인공적으로 생명을 만들어내는 일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전인 <프랑켄슈타인> 같은 작품은 과학적으로 완전히 틀렸고, 읽을 가치조차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오만한 태도죠.



대중문화 속 과학에 대해 맞다 틀리다를 논하기보다는, 과학과 인문학이 만나는 접점을 찾아 과학의 일부가 녹아든 대중문화가 도대체 세상에 대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또 작가는 이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했는지, 이것이 오늘날의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다양한 소설 작품과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한 번쯤 고민해보아야 할, 우리 삶과 직결된 과학적 쟁점들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해보시기 바랍니다.


생명 윤리, 프라이버시, 인간과 사이보그의 경계에 대한 문제 등, 과학의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이론과 수식에서 벗어나, 과학을 문화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해갈수록 그것이 대중문화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알아야 먼저 기회를 찾아내고 잡을 수 있으니까요.


프랑켄슈타인에서 AI까지, 과학과 대중문화의 매혹적 만남. 홍성욱 저 <Cross Science> <Change Ground>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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