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고 맛있고 간편한 한국인의 Soul Food ‘라면’.

무게 120g 열량 500Kcal, 전 세계 1년 판매 약 1,000억개.

이런 라면의 인기는 바다건너 미쿡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음식이 아니라 돈으로 쓰임새가 바뀌어서 문제지…


미쿡의 교도소는 우리가 생각하는 교도소와는 쬐끔 다르다.

교정 서비스 위탁업자 즉, ‘민간 교도소’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에게 죄수는 곧 ‘돈’이다. 죄수들이 많을수록 지원금이 더 나오고, 이를 위해 정치권에 로비를 하기도 한다.


2010년 애리조나 주는 인권침해 소지에도 불구하고 불법이민자 단속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일명 ‘SB1070’ 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법안을 공동 발의한 36명 의원 가운데 자그마치 30명이 교도소업자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수감자들을 더 늘리기 위한 로비였던 셈.


2012년 통계로는, 미국 인구 10만명 당 707명이 감옥에 갇혀있었다. (러시아 474, 우크라이나 286명, 폴란드, 터키, 헝가리, 체코, 영국, 스페인, 호주 등의 순서로 200~130명 정도)

통계로만 봐도 미국이란 나라는 너무나도 쉽게 압도적인 감옥행 사회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미쿡의 감방정책이 뜻하지 않게 재미진 현상을 만들어냈다.

전통적으로 교도소 암시장은 담배나 우표가 돈의 역할을 대신해왔는데, 이젠 라면이 그 자리를 정복했다.


애리조나 대학 깁슨 라이트 gibson-light.com는 60명 죄수들과 인터뷰를 통해,

<라면정치 : 현대 미국 감옥에서의 비공식 돈과 저항의 논리 Ramen Politics : Informal Money and Logics of Resistance in the Contemporary American Prison>라는 한 편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라면의 환율’을 정리해놓은 것이었다.

교도소 매점에서 파는 라면의 공식 가격은 59센트, 하지만 이 라면이 암시장으로 넘어오면 가치가 몇 배나 뛰어오른다.


라면 1개는 $2짜리 담배와 교환 가능하고, 2개가 있으면 $11짜리 티셔츠를 구할 수 있다. 죄수들은 라면 하나를 얻기 위해서 다른 죄수들의 빨래를 대신해주거나 침대 청소를 해주기도 한다. 심지어 카드게임의 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대체 무엇이 이런 라면의 인기를 만들어낸 걸까?

미쿡은 높은 수감률 때문에 교도소가 늘 초만원사례다. 민간업자들은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것을 줄인다. 그 중 가장 줄이기 쉬운 비용이 바로 ‘식비’다. 더구나 정부의 지원은 매년 3~5%씩 감축되고 있다.


미쿡 정부가 직접 운영하던 교도소도 비용절감을 목적으로 식당만은 사설업체에게 위탁했다.

깁슨 라이트에 따르면 한 끼당 $2였던 식비가 사설업체가 식당을 맡은 후 $1.47~$1.25까지 내려왔다고 밝혔다. 하루 3번 더운 음식이 한 번은 찬 음식으로 바뀌고, 주말엔 2끼밖에 제공되지 않는 교도소도 있었다.

이러니 수감자들은 늘 굶주릴 수밖에 없었고, 교도소 내에서 음식은 이전보다 더 가치 있는 물건으로 대접받게 됐다.


따뜻하고 국물이 있고 열량이 높으면서 맛까지 좋은 라면은, 수감자들에게 자연스럽게 큰 인기를 끌게 된 것. 게다가 유통기한도 길고 규격화된 크기 덕분에, 기존에 담배가 수행하던 화폐의 역할까지도 라면이 떠맡게 되었다.



교도소에서 라면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는 한 권의 책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죄수들의 라면 레시피를 다룬 책 <교도소 라면 Prison Ramen>의 저자 알바레즈 Gustavo Alvarez는, 90년대 초와 2010년에 2번의 수감생활을 경험한적이 있다.


그의 첫번째 수감생활과는 다르게 두번째엔 항상 음식 부족에 시달려야 했고, 죄수들 스스로 라면을 이용한 다양한 요리법을 개발해 허기를 달랬다고 한다.

이미 유튜브에선 감방레시피를 이용한 수많은 라면요리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이다. 그뿐만 아니라 라면은 교도소 내에서 평화의 전도사 역할까지 한단다.


히스패닉과 흑인 간의 갈등이 엄청 심각해져 폭발 직전까지 갔을 때, 라면 파티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고 알바레즈는 말했다.


안타깝게도 미국의 교도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런 라면의 인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중간계’의 판타지 같다.


출처 : <티슈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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