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각자 다른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함께 논의하면 정보가 풍부해진다.

-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하루에 몇 번씩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이 의사결정은 혼자가 아닌 주로 집단에 의해 이뤄지는데, 개인보다는 다수의 선택이 더 탁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말 '집단 의사결정'이 더 효과적일까?

안타깝게도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집단이 개인보다 더 어리석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2003년 2월 1일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대기권에서 재진입 하려다 기기 고장으로 상공에서 폭발해, 탑승중이던 승무원 7명이 전원 사망했다. 모두에게 충격과 슬픔을 안겨준 대참사였다.

 

그런데 사고 조사 후 NASA가 이 비극적인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하지만 피할 수 없었던 이유는 '잘못된 집단 의사결정'이었다.


당시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NASA의 집단 의사결정 과정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는데, 그들은 최악의 상황을 애써 피함으로써 위험을 고려하지 않았고, '집단사고'에 빠져 회의에서 반대 정보를 논의하는 것이 불가능한 분위기였던 것이다.


'집단사고'란 결속력이 높은 소규모의 집단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억제하고, 합의를 쉽게 이루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의사결정 과정을 말한다. 반대 의견을 내세울 수 없는 조직에서는 집단사고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데, 이로 인해 비극적인 참사를 일으킨 NASA가 바로 전형적인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집단 의사결정이 개인 의사결정보다 잘못될 확률이 높다. 도대체 왜 우리는 머리를 맞댈수록 더 어리석은 결정을 하게 되는 걸까? 책 <일취월장>의 저자 신영준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첫째는 '정보신호' 때문입니다. 다른 구성원이 공개적으로 말하는 정보를 존중하다 보니, 자신이 아는 바를 밝히지 못하는 거죠. 예컨대 정보를 더 가진 직원이 있으면 내 의견과 같지 않아도, 상대가 옳을 거라 생각해 내 의사를 개진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회적 압력' 때문인데, 사람들은 사회적 압력을 느끼면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침묵을 선택하게 됩니다. 당신이라면 반대 의견을 내놓으려고 할 때, 그 의견을 주장한 사람이 상사라면 쉽게 반대할 수 있나요? 


셋째는 '극단화'로, 집단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더 극단적인 결론으로 이끈다는 것.


넷째 '정보누락', 다수가 호응하는 정보를 더 신뢰하게 만들어, 소수의 정보는 무시됩니다.


이러한 영향력과 4가지 문제가 집단에서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패를 줄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반대자를 내세우는 것'이다.

반대 의견을 내는 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고, 특히 회의 때 직급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악마의 변호인 Devil's Advocate 혹은 레드팀 제도를 활용해도 좋은데, 악마의 변호인은 무조건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을 뜻하고, 레드팀은 본래 팀의 실행계획을 비판하거나 무산시키는 임무를 받은 팀을 말한다.


그러니 진정성 있게 반대하는 사람이나 팀이 있다면, 성공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적극 활용하면 좋다. 한 실험에서 진정성 있는 반론자는 형식적인 악마의 변호인보다 해결책을 48%나 더 많이 내놓았고, 그 질도 좋았다고 한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유일한 죄는 '의견차이'일 뿐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이제는 죄를 바꿔야 합니다. 서로에 대한 의견 차이를 죄로 여기는 '죄'를 용서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집단 의사결정'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으로 향할 수 있으니까요."


조직에서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리나요?

그렇다면 당장 반대자를 내세우세요!


일을 성취하여 월등히 성장한다 <일취월장>

일을 잘하기 위한 8가지 원리를 알려주는 비즈니스 지침서입니다.

일취월장
국내도서
저자 : 고영성,신영준
출판 : 로크미디어 2017.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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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변에서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사람들과, 그저 꿈만 꾸는 사람들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차이점은 기꺼이 실패할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이고, 부딪혀 깨지고 불태울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기도 하지요.


야망을 가지고 성공하기를 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그건 단지 욕망일 뿐이지요. 꿈을 위해 기꺼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나요? 실제로 중요한 것은 이상향 도달에 실패함으로써 우리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정의하게 되고, 그 실패가 우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소 우리 스스로를 얼마나 우울하게 만드나요? 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느라, 얼마나 많은 인생의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지 아십니까? 가끔 살다 보면 우리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없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꿈을 찾아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실망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많은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겠지요. 또 많은 고통도 마주할 것입니다. 좌절도 있고 패배도 있겠지요.


우리는 살면서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현재가 미래와 연결된다는 사실을 믿어야지요. 신, 운명, 인생, 카르마 등 뭐가 됐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현재가 미래로 연결된다는 믿음이, 우리의 마음이 따라갈 자신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험한 길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인생의 모든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부모로부터 여러 훌륭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중에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사랑하는 일에 도전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그 일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세요. 그리고 현실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그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타인의 생각의 결과물에 불과한 함정에 빠지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내 내면의 목소리를 삼키지 못하게 하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의 가슴과 영감은 진정 원하는 바를 알고 있습니다. 실패해도 다시 시도한다면, 그리고 또다시 시도한다면, 그것은 끝이 아니지요. 절대 마지막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인생이란 건 결국 난타전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센 주먹을 날리느냐가 아니라, 끝없이 맞으면서도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계속 전진하는, 그게 바로 진정한 승리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우리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겁낼 필요가 없지요. 그건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보다 훨씬 나은 사람들입니다. 꿈을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그리고 항상 웃음 짓도록 하세요. 가다가 넘어지는 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냥 다시 일어서면 되는 겁니다.


때로는 우리가 넘어질 수 있습니다. 반드시 넘어지지요. 우리는 자신의 길에 대해 의문과 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그 실패를 받아들이고 잘 다루기만 한다면, 실패는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알지 못하는, 우리 자신에 대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겁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위대함을 깨닫게 될 겁니다.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Don't Give Up" 중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정작 모인 돈은 없을 때, 수많은 건물 중 내가 지낼 제대로 된 방 하나 없을 때, 우리는 세상이 불평등하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불평등을 더 느낄수록 수명까지 짧아지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고 말하는 책이 있습니다.

오늘은 <부러진 사다리>를 소개합니다.


사다리는 불평등을 이야기할 때 자주 쓰이는 은유입니다. 사다리의 높은 층은 더 나은 지위와 소득, 안정, 미래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높은 층에 올라가기 위해 애를 쓰지요. 물론 열심히 일할수록, 능력이 있을수록, 더 대우를 받아야 하기에 사다리는 필요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사다리 간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생깁니다. 현대의 사다리는 밑에서 시작했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위 사다리로 올라갈 수 없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사다리 손잡이가 중간쯤에서 몇 개 부러지고 없어진 것이지요. 사람들은 신세 한탄을 해보기도 하고, 나라 탓을 해보기도 하다가, 결국 체념하고 하루를 살아갑니다. 


스스로 흙수저라 부르며 쓴웃음을 지으면서 지나치기도 하지요. 하지만 불평등은 생각보다 더 깊숙이 우리 내면에 침투합니다. 가끔은 나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며, 개인과 사회를 병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비행기를 한번 보죠. 비행기는 사다리가 물리적으로 구현되어 있는 공간입니다. 맨 위에는 일등석이 있고, 넓은 좌석, 맛있는 음식, 여유로움이 있지요. 그 밑에 비즈니스석이 그리고 그 밑에 이코노미석이 있습니다. 


연구진이 신기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일등석이 존재하는 항공편이, 모든 좌석이 동일한 항공편보다 기내 난동 발생률이 4배나 높다는 것입니다. 특히 비행기를 탑승할 때 일등석을 지나쳐서 입장해야 하는 경우, 기내 난동 발생률이 또 2배 높아졌습니다. 


일등석 사람은 먼저 탑승해서 편히 쉬고 있는데, 나는 무거운 짐을 질질 끌면서 그 옆을 지나칠 때, 우리는 불평등을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코노미석의 승객들도 비행기를 탈 정도이기에, 그들이 정말로 가난한 상태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가난과 불평등은 다른 문제입니다. 

불평등이 심해지면 실제로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빈곤감을 느낍니다. 일등석을 마주친 이코노미 승객들처럼 말이지요. 


소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그래프로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각국의 1인당 소득과 건강, 사회문제 지수를 비교해보면, 특정한 패턴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득불평등과 건강, 사회문제 지수를 비교하면, 명확한 패턴이 발견됩니다. 불평등할수록 건강이 나빠지고 사회문제가 심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왜 불평등과 같은 추상적인 요인이, 건강과 같은 신체적인 문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걸까요? 실험과 연구 끝에 저자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불평등은 사람이 더 큰 위험을

감수하게 만들고,

빨리 살고 일찍 죽자 식의

충동적인 인생을 강요한다.



생명체는 주변 환경이 나쁠수록 지금 당장 먹을 수 있는 것, 즉시 가질 수 있는 것에 집착합니다.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오늘 하루 잘 사는 것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오늘의 100달러를 받는 것과 다음 주에 150달러를 받는 것을 선택하라고 하자,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늘의 100달러를 선택했습니다. 불평등, 즉 내가 가난하다고 느끼는 감정이 우리를 즉각적인 만족, 충동적인 행동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불평등이 심한 곳일수록 사람들이 마약과 알코올을 남용할 확률이 높으며, 흡연, 과식, 운동 부족 비율이 높다고 합니다. 결국 불평등에 따라 사람의 수명까지 달라집니다. 이 그래프는 미국과 캐나다의 각 주별 사망율과 소득 불평등에 따라 그린 것입니다. 불평등이 심할수록 사망률이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여기 그래프에 나온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한 곳인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죠. 그러나 비교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더 잘 사는 사람과 비교한 미국인들은, 스스로를 사다리의 밑바닥으로 던져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가난한가 부유한가는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을 사다리의 밑바닥으로 억지로 던져 넣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부러진 사다리>는 상향 비교와 하향 비교를 적절하게 사용하라고 말하고 있지요. 

비교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매일매일 비교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저자는 차라리 현명하게 비교하라고 말하고 있네요. 


자신보다 나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을 주기에 필요하지요. 하지만 이런 상향 비교는 사람을 지치게 만듭니다. 그래서 마음이 허전하거나 우울해진다면, 자신이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전에 더 부족했던 자신을 떠올리면서, 지금 많이 나아졌다는 것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한 편으로는 부서진 사다리를 고치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부의 평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심한 불평등은 줄이자는 것입니다. 


적어도 사다리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이 마음먹고 노력한다면,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의 높이, 그 정도의 사다리를 만들어보자는 것입니다. 이는 어떤 정치적 성향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며, 사회의 건강과 개인의 건강을 위한 문제입니다. 


<부러진 사다리>는 말합니다.

불평등은 생과 사의 문제이다.


여러분도 부러진 사다리를 마주해 좌절한 적이 있으셨나요? 우리는 이 사다리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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