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Michael Houseman은 '고객 상담 직원들' 중에서, 재직기간이 다른 이유(=이직률)를 밝히기 위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3만여 명의 직원들 자료를 받은 하우스먼은 처음엔, 그들이 과거 직장에서의 '이직 정도'에 따라 '최근 직장의 재직기간'이 차이가 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는 '아니올시다'였다.


최근 '5년 동안 5차례 이직'한 직원들이 '5년 동안 같은 직장'을 다닌 직원들보다 이직 확률이 더 높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재직기간이 다를까?


다른 단서를 찾던 하우스먼은 3만여 직원들 자료 중, '어떤 인터넷 브라우저'를 사용했는지에 관한 정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브라우저 선택은 순전히 취향의 차이이지 재직기간과 상관있겠어?'


그런데 분석 결과를 본 그는 깜짝 놀랐다.

웹브라우저로 크롬, 파이어폭스를 사용한 직원들이 익스플로러나 사파리를 사용한 사람들보다 재직기간이 15% 더 길었다.


이 결과가 우연이라고 생각한 하우스먼은 직원들의 '결근일 수' 자료를 가지고 똑같은 분석을 했다.

그런데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크롬과 파이어폭스 이용자가 익스플로러나 사파리 이용자보다 결근하는 확률이 19% 낮았다.


추가로 하우스먼은 '업무 수행 평가' 자료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판매 실적, 고객 만족도, 평균 통화 지속 시간 등 거의 300만 건의 자료를 모아 분석했다.

결과가 예상되는가?


크롬과 파이어폭스를 활용한 직원들의 판매 실적이 훨씬 좋았고, 평균 통화시간은 짧았으며, 고객 만족도는 높았다. 크롬이나 파이어폭스를 이용하는 직원들은 익스플로러나 사파리를 이용하는 직원들이 입사 120일 후에야 달성 가능한 업무 수행을 90일 만에 보여주었다.


직원들의 재직 기간, 성실성, 업무 수행 능력이 브라우저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크롬, 파이어폭스를 쓰던 직원들이 모든 척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원들을 차별화한 요인은 바로, 그들이 '브라우저를 획득한 방법'에 있었다.

PC를 구입하고 나서 컴퓨터를 켜면, 윈도우에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이미 내장되어 있다. 맥을 사용한다면 사파리가 설치되어 있다.


고객 상담 직원들 가운데 3분의 2가 내장된 브라우저를 그대로 사용했는데, 이들은 '더 나은 브라우저가 있지 않을까?'하는 의문조차 품지 않았다.


크롬이나 파이어폭스를 사용하려면 좀 더 관심을 갖고 수완을 부려 '다운로드'를 받아야 한다. 내장된 기능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주도력을 발휘해' 더 나은 선택지를 찾는 것이다.


주도력(主導力)

미미하다 해도 이만큼의 주도력이 작업 수행 능력을 예측할 수 있는 단서가 된 것이다. 내장된 원래의 브라우저를 그냥 쓴 상담 직원들은 맡은 다른 일에도 비슷한 성향을 보였다.



그들은 회사에서 준 각본대로 판매했고, 고객 불만을 접수할 때도 회사가 마련한 표준 절차를 따랐다. 자신의 직무를 회사가 정한 대로 고정불변의 것으로 여겼고, 자기 일에 불만이 생기면 결근을 시작하다가 결국 사직했다.


주도적으로 브라우저를 크롬이나 파이어폭스로 바꾼 직원들은 자신들의 일에 조금 다르게 접근했다. 그들은 고객 불만을 해소하고 상품 판매에 새로운 방법들을 모색했다.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일단 바로잡으려 노력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주도적으로 개선했기에 그들은 이직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일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재창조해 나갔다. 이와 같이 '재창조'하는 사람들은 조직에서 일반적이지 않다. 예외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오리지널스 Originals : 유일한, 독특한 특성을 지닌 사람들...

애덤 그랜트 와튼스쿨 최연소 종신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고객 상담 직원의 3분의 2가 이미 내장된 브라우저를 그대로 사용하듯, 우리도 삶에 주어진 대부분을 바꿀 생각을 않고 그냥 받아들입니다.


이런 현상은 '정당화 이론'과 맞닿아 있습니다.

현상 유지를 괜찮고 합법적이라고 합리화하도록 동기부여된다는 것이죠. 기존 현상을 정당화하면 고통을 완화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감정적 진통제인 셈입니다.


그러나 주어진 상황을 묵묵히 따르기만 한다면, 세상을 더 낫게 만들 대안을 찾는 창의적인 의지를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더 나은 상황을 만들고 싶나요?

오리지널스가 되고 싶나요?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주도적으로 자신이 지닌 비전을 실현해 나가야 합니다. 웹브라우저같이 작은 부분에서 놀라운 단서를 찾고 개선해 나가세요.


합리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맞춘다.

비합리적인 사람은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애쓴다.

따라서 진보는 전적으로

비합리적인 사람에게 달려 있다.

- 조지 버나드 쇼 -


애덤 그랜트 저 <오리지널스>를 참고



장기간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는 자기계발서.

성공한 사람들의 가슴을 흔드는 강연.

감동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과 현실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조언을 듣고 있으면, 함께 가슴이 끓어오르는 느낌을 받는다.


▷나도 이렇게 할 수 있어!

▷저 사람도 했는데 내가 왜 못해?

▷나도 열심히 노력해야지, 파이팅!

불타오르던 당시의 다짐들,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나요?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동기를 부여하지요. 하지만 마음을 흔들던 그들의 이야기와 조언은 금세 잊히고 맙니다. 왜 그럴까요? 분명 내 마음은 움직였는데 말이지요.


타인을 통한 동기부여가 얼마나 지속되는지는 개인의 몫입니다. 대부분이 쉽게 잊히는 이유는 바로, '다른 사람의 동기는 나의 동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기를 받았다는 느낌과 그 느낌이 나에게 작용하는 것에는 어떠한 인과관계도 없으니까요.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나만의 동기'가 필요한데, 목표가 현실이 되도록 도와주는 나만의 동기가 바로, '마음속의 스프링'입니다.


이 스프링은 초기에는 작은 자극에도 쉽게 튀어 오르는 놀라운 탄력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마음의 스프링은 아쉽게도 쉽게 탄력을 잃고 맙니다. 탄력은 곧 타성으로 변하고 무늬만 스프링으로 남게 되죠.


더 이상 스프링이 튀어 오르지 않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기대나 성과는커녕 '이만하면 됐다'라고 주저앉습니다. 주저앉은 마음과 함께 스프링도 드러눕고 말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때가 마음속 스프링에 탄력을 주어야 할 시기입니다. 추락하는 의욕이 속도가 붙을 바로 그 시점에 우리의 심리 스프링이 작동하기 때문이지요.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모멘텀'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모멘텀을 만들기가 쉽지는 않은 일이지요. 그 순간을 견디고 이겨내는 과정이 생각만 해도 힘겹고 어려울 것 같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무언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역경, 다짐과 같은 어려운 것들을 한 번에 이룰 수 있는 큰 동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부담스러운 마음은 스프링의 탄력은커녕 타성만 더 높일 뿐입니다.



스티브잡스는 어느 연설에서 말했습니다.

"진짜로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이 지금 가진 생각에 'No!'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모멘텀을 만들고자 한다면, 역경과 고난의 극복이 아닌, 바로 이 생각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제일 쉬운 것부터 시작하기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가는 것

그리고 그런 성공의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바로 모멘텀을 높이는 일입니다. 한 번의 작은 성공은 자연스럽게 다른 일에도 활용될 수 있는 내공으로 쌓이니까요.


장기적인 대형 프로젝트가 있다면 더욱더 목표를 잘게 나눠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요. 하나씩 순서를 정해 작은 목표를 달성해 나가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덜어낼 뿐만 아니라, 과부하 걸린 업무 탓에 일을 미루고 싶은 마음과 실제 미루는 행동도 줄어들 테니까요.


이렇게 하나씩 해냈다는 만족감과 성취감이 마음속 스프링에 기름칠을 하기 시작하면, 무엇을 하더라도 쉽게 지치지 않는 강인함 또한 자라나게 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목표의 크기와 그에 따른 하위 목표들을 세우는 데 있어 수학 공식같이 딱 떨어지는 법칙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공한 사람들의 노하우, 비결 등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해법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죠.


모두 외모와 성격이 다르듯,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는 심리 스프링 역시 다르기 때문입니다. 처한 환경과 목표에 따라 다른 스프링을 갖고 있음을 인정한다면, 상대방의 다른 기준, 다른 속도를 의식하고 연연하는 힘겨운 시간을 떨쳐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타인에게서 받은 동기가 오래가지 않아 고민이라면,

나 자신만을 들여다보고,

제일 쉬운 것부터 시작하여,

내 리듬에 맞는

다음 단계를 찾아보기

를 떠올려 보세요.


이렇게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나의 스프링에 기름칠을 해보세요.

당장엔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남들이 아닌 자신이 세운 기준을 향해 꾸준히 나가다 보면 반드시 깨닫는 날이 올 겁니다. 그 순간이 바로 스스로의 변화를 발견하는 짜릿한 '모멘텀'이었다는 것을.


제이슨 워맥, 조디 워맥 공저 <의욕의 기술>을 참고



일반적으로 자신이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설정할 때, 그에 해당하는 롤모델로부터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롤모델만의 특별한 방법이나 그들의 사상, 행동, 습관 등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받고자 하죠.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돈이 많은 사람인가요? 혹은 행복한 사람인가요? 어쩌면 다른 가치가 중요한 분도 있겠죠.


그런데 혹시 롤모델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가진 적 없나요?

'이 사람은 너무 대단해서 내가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아.'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 사람처럼 될 수 있지?'


아마도 롤모델의 성공신화나 그들의 엄격한 자기관리 같은 일화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일러주는 것을 넘어 그들과의 격차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기도 할 겁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롤모델의 그림자에 묻혀서,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포기하는 것이 답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건 다 아시죠? 왜냐하면 롤모델과 본인의 격차는 양적인 차이일 뿐, 방향을 설정하는 데는 큰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어떤 방법을 통해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가질 수 있는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흉내내기'입니다.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 내가 설정한 롤모델을 지속적으로 흉내 내는 것입니다.


나의 이상향, 나의 롤모델을 가면으로 만들어서 계속 얼굴에 써보는 것입니다. 이 방법을 언급한 사람은 유명 배달 어플인 '배달의 민족'의 CEO 김봉진씨인데, 그는 성공한 CEO뿐만 아니라 굉장한 다독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다독가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다독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다독가라는 가면을 쓴 모습을 지속적으로 타인에게 보였습니다. 읽은 책을 SNS에 업로드한다던가 하는 방법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도 처음에는 가면이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계속 다독가 이미지를 노출시키다 보니 어느새 다독가로 알려지게 되고, 꾸준히 노력하여 실제 다독가가 되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가면을 쓰는 것으로 내가 되고 싶은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는 걸까요? 그건 바로 가면을 계속 쓰다 보면, 내 뇌가 이 가면이 진짜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랍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윌리엄스에 따르면, 생각보다 우리는 자신의 뇌를 속이기 쉽습니다. 하버드에서 생리학을 가르치기도 했던 그는, 우리의 뇌가 생리현상에 반응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떨고 있는 자신의 손을 보면 더 무섭고, 자꾸 웃으면 더 행복해지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되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가면이 진짜 자신의 모습인 것처럼 자신의 뇌를 속여서 그 모습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혹시 이루고 싶은 모습이 있나요?

그렇다면 가면을 한 번 써봅시다.

예쁘고 멋진 녀석으로 골라 얼굴에 써봅시다.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나요?


김봉진의 <책 잘 읽는 방법>을 참고



체스게임 = Skavlan Magnus Carlsen  vs.  Bill Gates =

한 TV 프로그램에서 단 1분 20초 만에, 빌 게이츠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며 무릎을 꿇었다. 두 사람이 체스의 말을 옮긴 횟수는 총 9번에 불과했다.


진행자가 물었다.

"빌, 당신에게도 지적 능력에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있나요?"

"물론입니다. 칼센과 체스를 둘 때죠!"


빌게이츠와 체스를 둔 상대는 마그누스 칼센. 칼센은 체스 계의 전설 카르포프를 꺾고 랭킹 1위에 올랐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열세살에 불과했다. 하지만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그가 두는 수가 그의 랭킹에 비해 그다지 훌륭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버팔로대학 컴퓨터과학과 Ken Regan 교수는,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보는 체스 소프트웨어로 선수들을 평가해왔다.

"칼센의 수는 훌륭하지만, 다른 선수들에 비해 결코 뛰어나지 않습니다. 컴퓨터가 추천하는 최선의 수와 거의 일치하게 두는 선수는 라디미르 크람니크입니다."


그럼에도 세계 챔피언은 왜 크람니크가 아닌 칼센일까?

그 해답은 칼센의 수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수가 상대에게 미치는 영향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칼센이 두는 말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상대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다.


체스 컴퓨터 분석가 Guy Haworth는 칼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의 기량은 말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즉, 더 이상 수가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그의 주요 전술은 일부러 게임을 복잡하게 만들어, 상대를 시간에 쫓기게 만드는 거죠.


보통 40수 정도 진행되면 선수들은 시간을 의식하기 시작합니다. 칼센의 대국을 분석해보면, 대략 40수 쯤 상대의 실수가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칼센은 바로 그때 최악의 퍼즐 속으로 상대를 끌고 들어가 혼란을 일으키는 거죠."


이와 비슷한 경우는 복싱에서도 볼 수 있다. 복싱 역사상 최고의 헤비급 챔피언 '블라디미르 클리츠코'. 19번의 방어전을 승리로 이끌며 11년 동안 권좌를 지켰던 그의 챔피언 벨트를 빼앗은 선수는, 바로 약체로만 여겨졌던 '타이슨 퓨리'였다. 우스꽝스러운 복장으로 기자회견장에 나타나는 등, 괴상한 행동을 하던 퓨리가 이길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오른손잡이였던 퓨리가 경기 중반이 되었을 때, 갑자기 왼손잡이 아웃복서로 포즈를 바꿨기 때문이다.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자세를 바꾸는 것은 퓨리에게도 분명 불리했지만, 클리츠코가 경험한 당황스러움은 훨씬 컸다. 클리츠코는 결국 퓨리의 변칙적인 움직임에 적절히 대응 못해 패배했다.


이 말을 반드시 기억하자.

경쟁에서는 실력과 기량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상대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욱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에 이기기 위해 완벽해질 필요는 없다.


상대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혼란을 주는 것만으로도, 상상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메시 MESSY
국내도서
저자 : 팀 하포드(Tim Harford) / 윤영삼역
출판 : 위즈덤하우스 2016.12.21
상세보기

팀 하포드의 <MESSY : 혼돈에서 탄생하는 극적인 결과>를 참고


열심히 일했지만 정작 모인 돈은 없을 때, 수많은 건물 중 내가 지낼 제대로 된 방 하나 없을 때, 우리는 세상이 불평등하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불평등을 더 느낄수록 수명까지 짧아지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고 말하는 책이 있습니다.

오늘은 <부러진 사다리>를 소개합니다.


사다리는 불평등을 이야기할 때 자주 쓰이는 은유입니다. 사다리의 높은 층은 더 나은 지위와 소득, 안정, 미래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높은 층에 올라가기 위해 애를 쓰지요. 물론 열심히 일할수록, 능력이 있을수록, 더 대우를 받아야 하기에 사다리는 필요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사다리 간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생깁니다. 현대의 사다리는 밑에서 시작했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위 사다리로 올라갈 수 없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사다리 손잡이가 중간쯤에서 몇 개 부러지고 없어진 것이지요. 사람들은 신세 한탄을 해보기도 하고, 나라 탓을 해보기도 하다가, 결국 체념하고 하루를 살아갑니다. 


스스로 흙수저라 부르며 쓴웃음을 지으면서 지나치기도 하지요. 하지만 불평등은 생각보다 더 깊숙이 우리 내면에 침투합니다. 가끔은 나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며, 개인과 사회를 병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비행기를 한번 보죠. 비행기는 사다리가 물리적으로 구현되어 있는 공간입니다. 맨 위에는 일등석이 있고, 넓은 좌석, 맛있는 음식, 여유로움이 있지요. 그 밑에 비즈니스석이 그리고 그 밑에 이코노미석이 있습니다. 


연구진이 신기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일등석이 존재하는 항공편이, 모든 좌석이 동일한 항공편보다 기내 난동 발생률이 4배나 높다는 것입니다. 특히 비행기를 탑승할 때 일등석을 지나쳐서 입장해야 하는 경우, 기내 난동 발생률이 또 2배 높아졌습니다. 


일등석 사람은 먼저 탑승해서 편히 쉬고 있는데, 나는 무거운 짐을 질질 끌면서 그 옆을 지나칠 때, 우리는 불평등을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코노미석의 승객들도 비행기를 탈 정도이기에, 그들이 정말로 가난한 상태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가난과 불평등은 다른 문제입니다. 

불평등이 심해지면 실제로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빈곤감을 느낍니다. 일등석을 마주친 이코노미 승객들처럼 말이지요. 


소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그래프로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각국의 1인당 소득과 건강, 사회문제 지수를 비교해보면, 특정한 패턴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득불평등과 건강, 사회문제 지수를 비교하면, 명확한 패턴이 발견됩니다. 불평등할수록 건강이 나빠지고 사회문제가 심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왜 불평등과 같은 추상적인 요인이, 건강과 같은 신체적인 문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걸까요? 실험과 연구 끝에 저자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불평등은 사람이 더 큰 위험을

감수하게 만들고,

빨리 살고 일찍 죽자 식의

충동적인 인생을 강요한다.



생명체는 주변 환경이 나쁠수록 지금 당장 먹을 수 있는 것, 즉시 가질 수 있는 것에 집착합니다.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오늘 하루 잘 사는 것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오늘의 100달러를 받는 것과 다음 주에 150달러를 받는 것을 선택하라고 하자,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늘의 100달러를 선택했습니다. 불평등, 즉 내가 가난하다고 느끼는 감정이 우리를 즉각적인 만족, 충동적인 행동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불평등이 심한 곳일수록 사람들이 마약과 알코올을 남용할 확률이 높으며, 흡연, 과식, 운동 부족 비율이 높다고 합니다. 결국 불평등에 따라 사람의 수명까지 달라집니다. 이 그래프는 미국과 캐나다의 각 주별 사망율과 소득 불평등에 따라 그린 것입니다. 불평등이 심할수록 사망률이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여기 그래프에 나온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한 곳인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죠. 그러나 비교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더 잘 사는 사람과 비교한 미국인들은, 스스로를 사다리의 밑바닥으로 던져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가난한가 부유한가는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을 사다리의 밑바닥으로 억지로 던져 넣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부러진 사다리>는 상향 비교와 하향 비교를 적절하게 사용하라고 말하고 있지요. 

비교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매일매일 비교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저자는 차라리 현명하게 비교하라고 말하고 있네요. 


자신보다 나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을 주기에 필요하지요. 하지만 이런 상향 비교는 사람을 지치게 만듭니다. 그래서 마음이 허전하거나 우울해진다면, 자신이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전에 더 부족했던 자신을 떠올리면서, 지금 많이 나아졌다는 것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한 편으로는 부서진 사다리를 고치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부의 평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심한 불평등은 줄이자는 것입니다. 


적어도 사다리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이 마음먹고 노력한다면,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의 높이, 그 정도의 사다리를 만들어보자는 것입니다. 이는 어떤 정치적 성향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며, 사회의 건강과 개인의 건강을 위한 문제입니다. 


<부러진 사다리>는 말합니다.

불평등은 생과 사의 문제이다.


여러분도 부러진 사다리를 마주해 좌절한 적이 있으셨나요? 우리는 이 사다리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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