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선고를 받은 한 남자가 있었다.

이릉(李陵)이라는 죄 없는 젊은 장수를 변호하다가, 황제의 미움을 산 게 원인이었다. 이릉은 漢나라의 뛰어난 무장으로 보병 5천 명을 거느리고 그 열 배가 넘는 흉노군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화살과 무기는 모두 바닥 났고 흉노군에 투항하고 만다. 이 일로 漢武帝는 매우 진노했다.


황제의 눈치를 살피던 대부분의 신하들은 하나같이 이릉의 일에 침묵했다. 그 와중에 오직 한 사람만이 이릉을 변호하고 나섰다.


‘이릉은 충신입니다. 그의 충절은 이미 수많은 전투에서 증명되었고, 집안 대대로 漢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명문가입니다. 어찌 그가 오랑캐 흉노에게 항복할 수 있겠습니까? 이릉은 어쩔 수 없이 거짓 항복을 한 것입니다.’




이릉을 변호하던 그 남자는 결국 옥에 갇히게 되었고, 사형선고까지 받게 된다.

당시의 법으로 사형을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50만전의 막대한 돈을 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궁형을 받아 내시가 되는 방법이었다.


그는 하급관리로 많은 돈이 있을 리 만무했고, 생식기를 제거 당하는 궁형은 사대부에게 죽음보다 무서운 치욕의 형벌이었다. 그는 선택의 기로에서 최고의 능욕인 궁형을 자청한다.

죽음보다 더 수치스러운 궁형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과업인 ‘사기 史記’를 완성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사마천’이다.

그는 기원전 145년 중국 섬서성 용문에서 태어났다. 황제 측근으로 각종 기록을 담당하던 아버지 사마담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학문에 정진했다.


10살 때부터 경전을 암송하고, 17살 즈음 당대 최고의 대유학자 동중서의 문하생이 되어 ‘춘추’등의 역사철학을 배운다.

20대에는 아버지 권유로 역사 유적지를 찾아 중국 천하를 방랑하는데, 이는 훗날 <사기> 저술의 큰 밑거름이 된다.


38살 때인 기원전 108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만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관으로서 역사서를 편찬하는 일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사관 집안으로 자부심이 강했던 아버지 사마담이 죽기 전 남긴 유언, ‘역사서의 완성’을 평생 자신의 사명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40대에 접어든 사마천은 조정의 일과 <사기> 저술이라는 두 가지 일을 해내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그의 기구한 운명이 시작되었다. 그의 나이 47살이 되던 해에 일생일대의 큰 사건, 바로 이릉 변호 건으로 황제에게 바른 말을 하다가 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상황은 갈수록 꼬여만 가더니, 결국 이릉이 흉노에게 벼슬까지 받고 병법을 가르쳤다는 근거 없는 소문마저 돌았다. 이성을 잃은 한무제는 이릉의 가족을 몰살시킨 다음, 역적을 옹호한 죄로 사마천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사마천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대로 억울하게 죽기보다 치욕스럽지만 궁형을 자청한 것이다. 그는 이 시기 꼭 올바른 사람이 승리하는 것도 대접받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지난날 일어났던 역사적인 일들을 되돌아봄으로써, 붓으로 세상의 부조리와 인간적 가치를 되살려 후세에 전하려 했다.


궁형을 당한 이후 <사기>의 저술 방향은 크게 바뀐다.

漢나라와 황제를 칭송하던 그가 황제에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고, 권력층의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하며 세태를 풍자했다. 또한 사회적 약자, 민중의 삶을 역사의 전면에 끄집어냈다.


2100년 전 당시 민중을 역사의 전면에 끌어냈다는 점은 파격적인 발상으로, 이는 사마천이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현실의 부정부패를 과감히 비판하고 정의와 의리를 칭송하는 내용은, 사마천 이후의 역사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는 <사기>를 읽으며 인생의 의미와 처세의 태도, 그리고 인간관계 등에 대해 깊이 사색할 수 있다.

<史記>는 130권, 총 52만 6천 500자로 그 양이 방대하다.

전설 속 중국의 시조인 황제부터 요.순 임금, 하-은-주 왕조, 춘추전국시대, 진시황의 천하통일, 7년에 걸친 楚漢쟁패, 유방이 세운 한나라까지 3000년의 역사를 기록했다.


사마천은 <사기>를 통해 성공과 실패의 법칙, 부와 권력의 비밀, 인간과 사회에 관한 모든 것을 밝혀내려 했다. 여기서 ‘모든 것’이란 말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사기>에는 황제나 고관대작, 영웅과 권세가뿐 아니라 상인과 농사꾼, 심지어 자객과 도굴꾼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종류의 인간 군상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펼치는 생생한 언행은 마치 우리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리고, 언제든지 자신의 처지에 대입하여 삶의 지혜를 얻어낼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특히 사마천 본인이 절실하게 경험했듯,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좌절과 시련을 어떻게 돌파하고 위대한 삶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지 풍부한 사례와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3천년 역사에서 찾은 지혜의 보고 <사기 인문학>을 한 번 읽어보면 어떨까?


한정주 저 <사기 인문학> <북올림>을 참고




인공지능의 자율주행 차 시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데, 그 시대도 그냥 공짜로 우리한테 올까? 자, 그러면 내 차를 하나 골라보자.


내 차는 내가 결정한다고?

“자율주행 차의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 프로그램을 직접 선택해주세요.”


상황#1 직진하면 여러 명이 사망하게 됩니다. 방향을 바꾸면 한 명만 사망하게 됩니다. 어떤 것으로 프로그래밍 할까요? ⇒ 그거야 선택의 여지가 있겠어요? 당연히 방향을 바꿔서 희생자 수를 줄여야죠.


상황#2 직진하면 보행자 여러 명이 사망하고, 방향을 바꾸면 운전자가 사망합니다. 당신의 차를 어떻게 프로그래밍 할까요? ⇒ 보행자 우선? 운전자 우선? 와~ 어떻게 하지? 여러 명을 살리자고 나를 희생하는 건 좀 아니잖아? (운전자 한 명이 낫지! 여러 사람 죽일거야? 돌대가리에 븅~신 같은 인공지능(사람?), '그 자리에 정지하는 선택'은 왜 없나?)




어렵다! 어려워~!

그냥 차를 사지 말고 이대로 살자.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제3자라면 당연히 다수의 희생보다는 소수의 희생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운전자가 되면,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프랑스 툴루즈 고등연구소의 장 프랑스와 보네퐁 Jean-Francois Bonnefon 교수는 이 문제에 관해 설문조사를 했는데, 76%가 보행자 10명 대신 운전자 한 명을 희생하는 쪽이 더 도덕적이라 판단했다.

반면 이렇게 보행자 보호 모드로 프로그램 된 자동차를 구입하겠냐고 물었을 때는 50%가 동의하지 않았다.


‘당연하지! 자동차는 운전자의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하지만 본인이 보행자여도 그런 선택을 할까? 이 문제는 ‘트롤리 딜레마 Trolley Dilemma라고 하는 유명한 윤리 논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트롤리란 흙이나 바위 등을 운반하는 일종의 화차를 말한다.


영국의 윤리 철학자인 필리파 푸트 Philippa Foot (1920~2010)가 처음으로 제안한 것을,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 Michael Sandel (1953~) 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책에서 언급해 화제가 되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롤리가 달리고 있습니다. 선로 위에는 5명의 인부가 일을 하고 있고, 이대로 두면 그 5명은 반드시 죽게 됩니다. 방법은 단 하나, 선로 변환기로 트롤리의 방향을 바꾸는 거죠. 그런데 다른 선로 위에는 한 명의 인부가 있습니다. 당신은 트롤리의 방향을 바꿀 건가요?”


당연히 다수의 희생보다는 소수의 희생이 낫지 않겠어요? 이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85%가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답했다.


“네, 이번에 당신은 육교 위에서 고장 난 트롤리가 5명의 인부를 향해서 달리는 걸 목격하죠. 당신 옆에는 뚱뚱한 사람 한 명이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몸무게가 적어 육교에서 떨어져도 트롤리를 멈추게 할 수 없죠. 뚱뚱한 사람을 떠밀 경우 확실히 트롤리를 멈추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뚱뚱한 사람을 육교 아래로 떨어트리겠습니까?” 


천만에, 그건 살인이죠! 이 문제에 대해 응답자의 78%가 뚱뚱한 사람을 육교 아래로 밀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것이 때로는 합리적으로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생명의 숫자를 기준으로 도덕적 판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말입니다. 자율주행 차는 보행자 안전모드로 해야 할까요? 아니면 운전자 안전모드로 해야 할까요?

그 대답은 참 힘들다고나 할까? 에러 떴다!

Error~ Error!! 시스템 재부팅 중~~~!

급정지모드를 쌈빡하게 잘 만들어!


<EBSCulture>를 참고




아담 스미스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시장경제의 원리가 그 나라의 부를 증대시킨다고 했던,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학자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상징으로 대접받는다.

 

아담 스미스는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우리는 그에 대해 잘 모른다. 조금 비틀어지고 그럴듯한 아래의 내용만 반복해서 들었을 뿐이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건 푸줏간 주인, 술집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생각 덕분이다. 우리는 그들의 박애심이 아니라 자기애에 호소하며, 우리의 필요가 아닌 그들의 이익만을 그들에게 이야기할 뿐이다.”

 

그는 사람들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체제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모두에게 만족을 주고, 모든 이들의 부를 증대시킨다고 주장한다. 이기심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면서, 모두를 이롭게 하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급진적인 자본주의자들 혹은 각종 규제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일부 세력들은 자신들의 이기심과 탐욕을 긍정하고 변호한다.

자신들의 탐욕이 모두를 이롭게 하고 있다면서, 내가 돈 버는데 방해 좀 하지 말라고 그 욕심을 정당화한다. 또 사회가 자신들의 탐욕을 방해한다면서, 아담 스미스를 인용해 자유경제를 주장한다.

 

그러나 시장의 원리를 말하기 전에 매우 중요한 전제가 하나 빠져있다.

우리는 국부론의 이기심보이지 않는 손만 보았지, 그가 말한 도덕철학과 정의는 배운 적이 없다그의 첫 번째 저서 <도덕감정론>에서 이야기하는 사회질서는 어떤 원리로 작동되는지 알아보자.

 

우리 사회는 나름대로 질서 있게 돌아간다.

아담 스미스는 무엇이 사회질서를 만드는지 고민했고, 그 원리는 인간의 감정에 근거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이기적이라 하더라도 그 천성이 타인에게 관심을 가진다. , 나는 타인에게 관심을 갖고, 반대로 타인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역지사지 해본 다음 타인의 감정과 행동의 타당성을 판단한다. 이를 공감 sympathy’이라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타인도 나를 역지사지하고 나의 감정과 행동을 판단한다.

 

타인의 인정은 나를 기쁘게 하고, 부정은 나를 불쾌하게 한다. 당연히 나는 부정보다는 인정을 받기 원하기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잇는 행위를 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타인이 아니기 때문에 타인의 마음을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를 통해서 타인의 입장이 되어본다.




, 우리는 경험을 바탕으로 공평한 관찰자를 마음속에 만들고, 그 공평한 관찰자가 나의 행동이 옳았는지 잘못되었는지 판단함으로써, 우리의 행위를 스스로 평가하고 타인의 행동도 판단한다.

그러나 세상은 불확실함으로 가득 차있다. 좋은 마음으로 했던 행동의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고, 나쁜 마음으로 한 행동의 결과가 좋을 때도 있다.

 

한편 실제 세계에서는 결과만을 보고 칭찬하거나 비난이 주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를 통해 우리 스스로를 위로한다.

열심히 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우리는 졌지만 잘 싸웠다고 위로하고, 부득이하게 불운이 닥쳤을 때는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위로한다.

 

우리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면서 묵묵하게 자기 길을 걷는 사람을 지혜롭다고 칭찬하지만, 타인의 평가에만 목을 메고 과정보다 결과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을 살고 있다.

이들은 자기 마음속의 공평한 관찰자를 무시하고, 결과에 기반한 타인들의 평가에만 집중한다.

 

아담 스미스의 도덕사상은 간단하다.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의 공감에 충실 하라는 것이다. 그는 제한 없는 이기심을 허용하지 않았다. 제한 없는 이기심은 공평한 관찰자의 공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은 노동운동을 보더라도 공평한 관찰자의 공감이 다르게 작용함을 느낀다.

1970년대 기계만도 못한 취급을 받던 재봉틀 공장 노동자들의 분노에는 공감하지만, 21세기 연봉 1억원의 귀족 노조들의 투쟁에는 공감하지 않는다.


인간은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의 판단을 일반적 규칙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고려하는 감각 곧 의무감 sense of duty’ 혹은 도덕감을 형성한다. 그리고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가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행위에 대해서는 법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이를 정의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들은 아담 스미스에 대해 이기심을 조장하는 최초의 경제학자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는 내면의 공평한 관찰자의 공감이 전제되어야 함을 강조했고, 정의를 해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가 법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개인의 무한한 이기심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 적은 없다.

 

먼저 정의와 도덕감이 전제된 이후에 시장경제를 논하는 것이 아담 스미스 사상의 핵심일 것이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가 내 속에서 잘 작동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쫓지는 않는지, 나의 모든 행동이 양심껏 거리낌이 없는지 등,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가 정말 공평해지도록 타인의 입장을 이해해보는 습관, 그리고 삶을 다양한 경험으로 채우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BetterLife>를 참고



도움이 될만한 책 한 권을 소개하겠습니다.

바로 남충식 저 <기획은 2형식이다>입니다.

이 책은 풍부한 실제 사례와 함께 실무적으로 응용 가능한 기획 관련 도서입니다.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므로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기획'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회사 기획서, 게임 기획, 광고 회사 등이 떠오르는데, '기획'은 어떤 대상에 대해 그 대상의 변화를 가져올 목적을 확인하고, 그 목적을 성취하는데 가장 적합한 행동을 설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기획'은 무엇인가를 얻고 싶다면, 반드시 사전에 필요한 사색(思索)의 과정이라 생각됩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거나, 성공적인 삶을 꿈꾸기 전에 '인간의 욕망'부터 탐색해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기획과 계획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획(企劃)은 도모한다는 뜻이고, 계획(計劃)은 셈하고 계산한다는 의미로 그 차이가 있습니다. 기(企)에는 사람(人)이 들어있고, 계(計)에는 사람(人)이 없습니다. 계획은 컴퓨터에게 시켜도 할 수 있지만, 기획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라네요.


기획은 본질적으로 인간이 더 좋은 가치를 만들고자 의도적으로 어떤 일을 도모하는, 인간 고유의 '문제의식'과 '해결 본능'이 어우러진 아날로그적 사고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을 전문가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기획자도 전문가입니다.


전문가를 전문가라고 인정하는 것은 사실 특정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문제의 원인을 밝혀주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기 위해 잠시 타임머신으로 1952년 12월로 돌아가 봅니다.

그해 우리나라는 6.25 전쟁 중이었으며 많은 유엔군이 전사했습니다. 유엔군 사령부는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부산에 당시에는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를 조성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던 아이젠하워가 유엔 사절단과 함께 유엔군 묘지를 참배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미군에 전해졌습니다. 한겨울 흙으로만 겨우 덮어놓은 묘지를 차마 보여줄 수 없었던 미군은 한국 측에 푸른 잔디를 입혀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렇지만 한겨울에 푸른 잔디가 있을 리 만무했지요. 공사기한은 겨우 닷새로 여러 건설회사들이 모두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사람들은 '겨울에는 잔디가 없다'라는 '객관적 사실'을 문제로 규정하며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만은 이 문제를 다르게 인식했습니다. 푸른 잔디 대신 낙동강 주변의 보리싹을 파다가 옮겨 심어, 황량한 유엔묘지를 '푸른 공원'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문제의 본질을 '겨울에 잔디가 없던 것'이 아니라 '푸르름이 없는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지요.


또 다른 예로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히딩크는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정확히 제시했고 이를 해결한 기획자였습니다. 온 국민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한.일 월드컵은 '마법의 힘'이 아니라 '기획의 힘'이었습니다.


히딩크라는 전문가는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남다르게 규정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하나같이 한국 축구의 문제는 '기술'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히딩크는 다르게 인식했고, 한국팀에 관한 각종 정보들을 살펴보며 '문제의 관점'을 구조화했고, 그 결과 진짜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체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엄청난 논란이 일었지만, 그는 강력한 체력 강화 훈련을 바탕으로 4강 신화를 만들어냅니다.


이처럼 기획이란 보이지 않는 문제점을 찾아내 '눈에 보이는 해결책'으로 만들어 주는 일입니다. '문제의 본질'을 찾아내 단순하게 만드는 일이며,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혹시 사실과 현상만을 보고 본질을 혼동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상은 복잡하지만 본질은 단순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면, 사색과 함께 삶의 기획서를 작성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남충식 저 <기획은 2형식이다> <북올림>을 참고



여행은 정신을 젊어지게 하는 샘이다.

- 안데르센 Hans C. Andersen -


언제나 젊게 살고 싶은 욕망을 놓고 싶지는 않죠? 그래서인지 우리는 늘 여행을 생각합니다.


여행은 설렘의 단어입니다.

여행은 우리를 탐험가로 만들어줍니다. 일상과는 다른 타이틀을 갖게 되는 만큼, 새로운 경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행은 인내심의 결과입니다.

잠깐이라도 떠날 수 있는 주말을 위해 평일 5일을 참고 지내며, 장기간 떠날 수 있는 여름휴가를 위해 기꺼이 몇 계절을 이겨냅니다.

여행은 현실을 이겨내는 원동력입니다.

여행을 향한 기대감은 그 어떤 지루함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여행은 꿈꾸는 시간입니다.

좀 허황된 이야기가 전개되는 꿈. 여행지가 배경이라면 가능하지요.


여행은 영화입니다.

자주 떠날 수 없기에, 여행 중 일어날 상황에 대해 몇 번이고 리허설합니다.


여행을 통해 일상에서 표출하지 못했던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 보세요. 모든 것을 내 스스로 결정하며, 그렇게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도 여행은 특별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여행을 생각할 수밖에 없죠.


동시에 여행은 늘 아쉽습니다.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여행을 특권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행을 떠난다'는 표현을 할 때 주로 함께 쓰이는 문구를 아시나요?

'일상을 벗어나'

'자유를 찾아서'


여행이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평소 우리 일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여행이 자유를 찾기 위해서라면, 자유란 지금 가질 수 없는 걸까요?


일상을 벗어나고 싶다는 말은, 지금의 일상이 즐겁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리고 자유도 마찬가지지요. 지금이 자유롭지 않다는 전제...


우리의 일상이 항상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고, 무엇인가 구속된 상태였던 건가요? 일상을 부정적인 의미로 평가하는 습관, 이제는 좀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일상은 도전의 연속이다.

도전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 나갈 수 있다.

도전 역시 모험심이 필요한 행동입니다. 그래서 일상이야말로 여행의 연속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우린 모두 떠도는 사이에 어른이 된다.

일상이야말로 진짜 장거리 여행이다.

나는 장거리 여행을 일상처럼 하기보다,

일상생활을 장거리 여행처럼 사는 게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행에서 열정을 유지하기는 쉽지만,

일상은 가장 큰 도전이기 때문이다.

타이완 여행작가 란바이퉈 藍白拖

<돌아온 여행자에게>에서


어쩌면 우리는 여행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일상이 즐거울 수 있도록, 일상에서 자유를 느낄 수 있도록, 일상을 탐험가의 자세로 계획하고 단련하며, 꿈꾸던 목표가 현실이 되는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는 것. 일상이 곧 여행이 아닐까요?


여행은 특별한 사람만이 받는 혜택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모두 여행자니까요.

항상 원점으로 돌아오는 연습을 끊임없이 지속하는 여행자...


돌아온 여행자에게
국내도서
저자 : 란바이퉈 / 이현아역
출판 : 한빛비즈 2018.02.05
상세보기

<체인지 그라운드>의 '일상생활을 여행으로 바라보는 법'을 참고했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사람들과, 그저 꿈만 꾸는 사람들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차이점은 기꺼이 실패할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이고, 부딪혀 깨지고 불태울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기도 하지요.


야망을 가지고 성공하기를 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그건 단지 욕망일 뿐이지요. 꿈을 위해 기꺼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나요? 실제로 중요한 것은 이상향 도달에 실패함으로써 우리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정의하게 되고, 그 실패가 우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소 우리 스스로를 얼마나 우울하게 만드나요? 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느라, 얼마나 많은 인생의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지 아십니까? 가끔 살다 보면 우리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없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꿈을 찾아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실망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많은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겠지요. 또 많은 고통도 마주할 것입니다. 좌절도 있고 패배도 있겠지요.


우리는 살면서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현재가 미래와 연결된다는 사실을 믿어야지요. 신, 운명, 인생, 카르마 등 뭐가 됐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현재가 미래로 연결된다는 믿음이, 우리의 마음이 따라갈 자신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험한 길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인생의 모든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부모로부터 여러 훌륭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중에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사랑하는 일에 도전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그 일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세요. 그리고 현실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그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타인의 생각의 결과물에 불과한 함정에 빠지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내 내면의 목소리를 삼키지 못하게 하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의 가슴과 영감은 진정 원하는 바를 알고 있습니다. 실패해도 다시 시도한다면, 그리고 또다시 시도한다면, 그것은 끝이 아니지요. 절대 마지막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인생이란 건 결국 난타전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센 주먹을 날리느냐가 아니라, 끝없이 맞으면서도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계속 전진하는, 그게 바로 진정한 승리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우리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겁낼 필요가 없지요. 그건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보다 훨씬 나은 사람들입니다. 꿈을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그리고 항상 웃음 짓도록 하세요. 가다가 넘어지는 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냥 다시 일어서면 되는 겁니다.


때로는 우리가 넘어질 수 있습니다. 반드시 넘어지지요. 우리는 자신의 길에 대해 의문과 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그 실패를 받아들이고 잘 다루기만 한다면, 실패는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알지 못하는, 우리 자신에 대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겁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위대함을 깨닫게 될 겁니다.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Don't Give Up"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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