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성실하고, 착하고, 공부 잘하고, 잘 생긴 남자 대학생이, 여학생들과 미팅 중에는 관심을 독차지하다가 제 짝을 골라서는, 밥 먹을 때 '쩝~쩝~' 소리 내는 것 때문에 가차 없이 차이는 경우가 있지요?


제아무리 첫인상이 좋다 해도 부정적인 단점을 접하게 되면, 좋던 인상도 사라지게 마련인데, 오늘은 긍정보다 강한 부정의 힘에 대해 알아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심리학자인 엘리자베스 루카스 Elizabeth Lukas (1942~) 교수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딸기 실험'을 했습니다. 딸기 바구니에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상한 딸기가 약 15% 정도 섞여있었습니다.

- 한 그룹의 아이들에게는 싱싱한 딸기를 골라서 그릇에 담게 하고,

- 또 다른 그룹은 상한 딸기를 골라서 별도의 그릇에 담도록 했지요.


아이들은 신이 나서 열심히 딸기를 선별했습니다. 선별작업을 끝내고는 아이들에게, 바구니에 싱싱한 딸기의 양이 얼마나 되었는지 질문했습니다.


그 결과, 싱싱한 딸기를 골라낸 아이들은 거의 정확한 답변을 내놓은 반면, 상한 딸기를 골라 담은 아이들은 싱싱한 딸기의 양이 실제보다 훨씬 적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싱싱한 딸기가 전체의 반도 안된다고 답변했지요. 동일한 실험을 여러 성인 집단에게 반복했을 때에도 결과는 비슷했습니다.


또 다른 조사를 볼까요?

아이가 성적표를 집에 가지고 왔습니다. '영어 - 수, 국어 - 수, 과학 - 미, 수학 - 가'였습니다. 학부모가 '수'가 2개나 있다고 반응을 보였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좀 다릅니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성적표에서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곳이 어디인지 조사 결과, 77%가 '수학 - 가'라고 답했지요.


어떤 부정적인 정보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다른 긍정적인 정보보다 부정적인 것을 더 중요하게 인식하는데, 이것을 '부정성 효과 Negativity Effect'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의 인상을 결정짓는 것도 긍정적인 특징보다 부정적인 특징이 더 크게 작용하지요.

멋진 헤어스타일, 잘 생긴 외모, 패션 감각이나 호감도보다는, 험한 말, 나쁜 버릇, 지저분한 행동 등 부정적인 특징들이 더 크게 부각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이 상품을 선택할 때에도, 부정적인 정보는 긍정적인 정보보다 상대적으로 두드러지게 보입니다. 며칠 전 '사람의 지혜'에 관한 글에서도 썼듯이 뻔히 같은 말인데도, 지방이 20%인 고기보다는 살코기가 80%인 고기를 더 좋아합니다. 부정적인 정보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것이지요.


'부정성 효과'는 원시시대부터 맹수들의 공격에서 생존하기 위해, 부정적 정보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데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는데, 그렇게 본다면 인간 진화의 산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생존을 위한 위험 회피나 위험 관리 본능에 그 뿌리가 있다는 거네요.


그러나 단점만 보다 보면, 그보다 더 큰 장점을 놓칠 수도 있겠지요.


EBS Culture <세상의 모든 법칙>을 참고하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몽상을 즐겼다. 그가 '상대성이론'의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것은 16살 때. 현대 물리학의 근본이 된 그 이론은 머릿속에서 구현된 갖가지 실험에서 출발했는데, 그중 특히 빛과 나란히 달리면 빛이 어떻게 보일지, 그리고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상상했다.


"내가 만약 아주 빠르게 빛을 따라가면, 결국 빛과의 속도 차이가 없어지겠지... 이때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본다면 내 얼굴이 보일까 보이지 않을까?"


그는 비록 이런 생각을 할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이를 통해 이제껏 물리학에서 만들어냈던 법칙 중 가장 인상적인 법칙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몽상 중에 뛰어난 아이디어가 떠오른 사례들이 제법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찰스 다윈과 프리드리히 니체 같은 사상가들은 자신의 아이디어 비결로, 몇 시간이고 생각에 잠기는 습관을 말했다. 다윈은 생각을 깊이 하기 위해 '생각의 산책로'가 필요했고, 니체 역시 자신의 생각을 다듬기 위해 몇 시간이고 자연 속을 걸어 다녔다.



한 날 한 시가 바쁜 오늘날의 관점으로 본다면, 이런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비생산적인 것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역사 속 위인들이 이 과정을 가장 생산적인 활동으로 여겼다는 것은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들의 습관이 과연 우연일까? 아니면 정말로 어떤 효과가 있는 것일까?

호주 애들레이드 대학의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피오나 커는 '사색의 역할'을 이렇게 설명한다.


몽상과 사색을 통해 생각을 정처 없이 떠돌게 만들다 보면 우리 기억의 파편들은 서서히 통합되어 가는데, 어느 순간 비선형적(nonlinear)인 연결이 시작되는 바로 그때, 우리는 문제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특히 복잡한 문제를 가지고 있거나 혹은 창조적인 해법과 아이디어를 필요로 할 때, 이러한 과정은 우리에게 놀라운 결과를 가져다주기도 하지요.


그녀가 강조하는 몽상과 사색은 사실 우리 일상에서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외부 정보에 휘말려 집중하지 못한 생각의 파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몽상과 사색은 의도적인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학자들은 많은 연구를 통해 일주일에 한 번, 생각만을 하기 위한 2시간을 강조한다.

'2시간의 법칙'

오로지 생각만을 하기 위한 2시간을 따로 떼어놓고, 스마트폰, 노트북 등 전자기기를 포함한 모든 정신 사납게 하는 요소들을 치운 뒤, 필기구와 노트만을 가지고 방안에 홀로 앉아 일과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나는 지금 나의 일에 열의를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목적 없이 행동하는가?'

'나는 일과 인간관계 사이의 균형을 잡고 있는가?'

'작은 일이지만 커다란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이 시간을 통해 지금 곧바로 해야 할 일, 장기적인 목표를 위해 해야 할 일의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된다면, 단언컨대 이 시간은 당신이 쏟는 시간 중 가장 큰 대가를 주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일이 문제되기 전에 미리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이 시간이 아니라면 생각지 못했을 아이디어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몽상에 빠진 시간 동안 자신이 찾아낸 아이디어나 정보가 하나 둘 축적되어가면, 어느덧 이 과정 자체가 '몰입'의 순간이 되어 2시간이 결코 길지 않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런 방법으로 역사적 위인과 현대의 성공한 인물들은 '자신만의 마르지 않는 우물'을 채우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날 우리 대부분은 바쁘다는 이유로 크게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아무리 바쁜 사람이라 하더라도, 아무런 가치를 주지 않는 사소한 일에 하루 2시간 이상을 쉽게 낭비해버리곤 한다. 이에 비하면 자신의 삶을 생각하는데 일주일에 2시간을 쓰라는 것이 결코 지나친 요구는 아닐 것이다.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자신의 영역에서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은, 자신만의 시간을 확보하여 사색과 몽상을 즐긴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기술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지든, 이런 시간의 중요성을 깨우친 사람은 앞으로도 경쟁 우위를 점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기억하자.

'2시간의 법칙'

일주일에 하루, 2시간의 사색과 몽상.


혹시 누가 알겠는가?

이 방법을 믿고 실천하게 된다면, 인생의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


참고 자료 :

지도 밖 길을 걷는 체인지 메이커들의 이야기 <체인지 그라운드>

스콧 벨스키의 <그들의 생각은 어떻게 실현됐을까>

그들의 생각은 어떻게 실현됐을까
국내도서
저자 : 스콧 벨스키(Scott Belsky) / 이미정역
출판 : 중앙북스 2011.02.25
상세보기

칙센트 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

등을 참고했습니다.



웹스터 사전에서 '지혜'는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고 합니다. 

첫째, 지식 

둘째, 통찰 

셋째, 판단 또는 분별력 


이렇게 보면 지혜롭다는 것이 '똑똑하다'는 것과는 다른 게 더 많은 모양입니다.ㅎㅎ

지혜를 이루는 기둥 다섯 개를 짚어보겠습니다. (<이 방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 Thomas Gilovich & Lee Ross 저, 이경식 역)


내용에는 별로 새로운 것 없이 진부할 수도 있습니다. 늘 그렇듯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놓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으니, 다시 한번 복기하는 기분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객관성을 의심하라 


객관성은 환상이다. 모두 공감하세요?

어쩌면 객관적이라는 말처럼 주관적인 것도 없을 테니까요.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나는 객관적이라 생각하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한다고 여깁니다. 자신은 특별해서 남들보다 더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사물과 현상을 꿰뚫고 있다고 주장하지요.


정치적 신념이나 지식도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본인은 매우 적절하게 현실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우리 모두 이 지점에서 예외일 수 없지요.


그리고 다른 이들도 사물이나 상황을 자기와 마찬가지로 볼 것이라고 가정하고, 그래서 자신은 남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은 누구나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지요. 이런 논리는 그 자신에게는 합리적이라 볼 수 있죠.


그러나 이런 게 '허위합의 효과'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요. 자신의 믿음, 견해 그리고 행동이 실제보다 더 많이 합의 내용과 일치한다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식의 생각은 비일비재하고, 부정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요? 결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시각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겠지요. 여러 사실은 여러 환경과 특이한 조합을 하면서, 새로운 시각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지요.


실험에서도 이미 검증된 내용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1980년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이럴 진대, 상대방의 눈으로 바라보고 생각해보라고 권유해봐야 별로 소용이 없다는 얘기겠습니다.





객관성을 확보하는 대안은 무엇인가?

우선 '편향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편향은 언제나 나의 눈을 어지럽히고 있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견해를 얼마든지 왜곡할 수 있습니다. 말로 하면 간단하지만, 인정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지요. 심지어 자신을 반성하며 돌아볼 때조차도, 자기 안의 편향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은 이런 함정에 빠질지라도, 아무튼 끊임없이 노력해야겠지요.


사람들은 상대방과 의견 불일치가 가장 클 때, 상대방의 견해를 특히 가혹하게 평가하지요. 자신은 맞고 상대방은 틀리다면서 자기 견해의 합리성을 특별히 높게 평가하게 됩니다. 그러나 '동전에는 양면이 있다'는 것을 항상 상기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의 기대나 욕망, 경험을 배제하고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가능할까요? 가능할 것 같지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나마 가능한 것은 자기 관점이 타당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틀렸고, 다른 사람이 맞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2) 상황을 이용하라


상황이 발휘하는 힘이 있다네요.

결론적으로, 우리는 상황의 작은 변화에 큰 영향을 받는 것을 이용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Kurt Lewin의 '초점의 아주 소박한 변화'라는 발상이 있습니다. 예컨대 대부분의 CEO는 동기부여 컨설턴트를 초빙해서 직원들이 주도적으로 일하도록 독려합니다. 세상에 동기부여 강사가 그리 많은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동기부여 자체가 실질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일례로 권장하는 행동과 권장하지 않는 행동이 있다고 가정하면, 이런 경우 해법은 아주 간단하죠. 권장하는 행동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들고, 권장하지 않는 행동은 쉽게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Opt-In 설계와 Opt-Out 설계는 경우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이쯤에서 넛지 Nudge를 떠올리셨다면, 맞습니다. 같은 개념입니다. 다이어트도 마찬가지죠. 다이어트를 위해서는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자제력을 발휘해야 하지만, 다이어트를 쉽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보다 쉽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일도 쉽게 할 수 있다.

아무리 큰일이라도 '문간에 발 들여놓기 기법' Foot in the Door Technique 를 쓰면 쉬워진답니다. 크고 어려운 일이라도,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면 훨씬 수월해진다는 얘기지요. 어떤 일이라도 일단 시작해 보는 것, 발을 문간에 들여놓으면 엄청난 일도 보다 쉽게 해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3) 언어를 이용하라


언어 자체가 지혜의 바탕이지요. 누구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늘 잊고 사는 것이 '언어의 힘' 같습니다.


동일한 실험의 심리게임을 '공동체 게임' 그리고 '월스트리트 게임'으로 각각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이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그 명칭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공동체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서로 협력하는 게임이라고 인식했고, '월스트리트 게임'으로 참여한 사람들은 냉혹하기 짝이 없는 경쟁 사회를 상상하며 게임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 기업에서 팀의 명칭만 바꿔도 창의력이 향상됐다는 얘기가 많았지요.


언어가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바로 주관적인 해석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생각과 달리 모든 상황에서 일관된 행동을 하지는 않습니다. 누가 봐도 객관적 환경에서도 주관적으로 해석하며 반응하지요. 이런 모순은 우리가 생활하는 전 영역에 나타납니다.


그 모든 환경에서 우리는 주어진 수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건 수용하지만, 손해가 발생하는 건 숨깁니다. 소득의 20%를 저축할지를 물을 때와, 소득의 80%로 생활할 것인지 질문하면, 두 경우 사람들의 대답은 달라집니다.


뻔히 같은 얘기인데도, 지방이 20%인 고기보다는 살코기가 80%인 고기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부정적인 정보에 가중치를 부여하기 때문인데, 이런 언어적 행동 특성을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4) 행동은 정신을 지배한다


행동이 정신을 지배하는 원리는 무엇인가? 정신이 행동을 지배하는 것으로 알고 계셨다면, 다른 측면도 있다는 것을 한번 생각하시라는 의미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심리학의 개척자 William James. 100년도 넘은 얘기지만, 그는 아주 독특한 주장을 했습니다. '사람이 어떤 감정을 경험하는 것은, 신체가 외부 사건에 반응하는 경험이다'라고 했지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떤 감정을 경험하고, 그 감정에 따라 반응한다'라는 말과 상충하는 개념입니다.

'사람은 울기 때문에 슬픔을 느끼고, 무언가를 휘두르기 때문에 분노를 느낀다'는 얘기인데, 좌우간 그때부터 행동과 정신에 대한 연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답니다.


지금은 두 가지 다른 이론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a) 자기지각 이론 (Self-Perception Theory) : 성찰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내면적인 단서들이 부족할 때, 우리는 자기 행동과 주변 환경을 바탕으로 자신의 믿음과 우선순위를 추론한다.

가령 누군가 이태리 음식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이태리 식당에 갔던 경험을 떠올려서 추론한다는 것입니다.


b) 페스팅거 이론 (Festinger Theory) : 누구나 자기의 행동, 믿음, 가치관과 우선순위의 불일치를 해소한다. 그러니까 부조화를 줄이는 방식이 작동한다는 뜻인데, 이른 바 '인지 부조화'를 줄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이, 과식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칭합니다.


결론은, 우리의 행동은 정신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결정이 내려지면 합리화는 시작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도록 심리적으로 강요받습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실이지요. 부모는 자녀 양육에 쏟는 모든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관련된 노력을 이상화합니다. 자녀를 기르는 것은 보람되고 기쁜 일이지만, 어떤 것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은 그 일을 높이 평가하도록 강요받는 것은 사실이지요. 때로는 그 일이 그렇게 행복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구매한 제품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조립식 가구처럼 구매한 후 추가로 자기 노력을 들여야 하는 제품에 더 애착을 갖는다지요? 그렇듯이 같은 제품이라도 더 비싼 돈을 주고 산 물건을, 보다 소중히 여기는 것도 같은 경우지요. '비싼 만큼 값을 한다'는 인식도 한몫하는 걸까요?


합리화를 알아차려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합리화할 때 알아차립니다. 쉽지 않은 일인데, 한번 거꾸로 생각해 보면 됩니다. 다른 사람이 똑같은 합리화를 할 때, 자신은 어떻게 반응할지 스스로에게 되물어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5) 확증편향을 극복하라


특히 기업의 관리자들께서는 주의 깊게 읽으셔야 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신뢰하는가?

체리피킹의 오류 :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나 자료만을 선택적으로 제시하는 오류를 말합니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예로 들어서, 과학적인 원리를 입증하려는 학자들이 자주 빠지는 오류입니다.

이념과 선입견은 어떤 것을 잘 볼 수 있도록 렌즈 역할도 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들을 걸러버리는 필터 역할도 합니다.


이성이냐 직관이냐

어떤 사람들은 직관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직관적인 인상은 순간적인 정보만을 바탕으로 하지요. 따라서 이 정보가 믿어도 되는지의 면밀한 검토 없이, 불완전하거나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은 하지 않습니다. 즉 이성적인 생각이 관여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직관을 믿어야 할 때와 이성을 믿어야 할 때를 구분해야 하는데, 이 구분이 여전히 쉽지 않지요.


확증편향 (Confirmation Bias)

확증편향이란 것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오류를 피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령 신제품을 출시할 때 시장에서 환영받을 조짐을 찾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반면에, 그렇지 않을 조짐을 찾는 것은 좀 덜 자연스럽고, 어려운 일입니다. 인간이 늘 그렇듯이 어떤 사실을 지지하는 정보는 항상 중심에 놓고, 부정하는 정보는 제외해 버립니다. 이런 과정에서 체리피킹과 이성, 직관의 오류가 모두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확증편향을 극복할 수 있는가? 할 수는 있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지요.

악마의 대변인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어떤 사안에 대해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도록 하는 현명한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널리 사용되는 발상은 아닙니다. 기업이든 종교집단이든 악마의 대변인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보이는 것과 다르다는 인식을 해야 합니다. 일단 의심해 보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어떤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면, 그 정보가 적절한 것인지 잘 따져보아야 합니다. 쉽게 저장된 정보는 오류를 포함할 수 있으니,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정보를 받아들이기 전에 그 판단부터 해봐야지요.


다원적 무지를 극복해야 합니다.

기업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인데,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행동하는 대로 행동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것을 '집단적 무지'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회의 때 많이 발견할 수 있는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신의 생각을 말해 봅시다'의 방법이 있지만, 이렇게 하면 소수 의견은 언제나 묻혀버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전체 의견을 꼭 들어야 할 때에는, 무기명으로 메모를 하여 제출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회의 방법만 바꿔도 획일적인 생각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식은 언제나 나에게 좋은 정보는 수용하고, 나쁜 정보는 제외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쉬운 내용인 것 같지만, 의외로 읽기가 쉽지 않은 책이군요. 그리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내용인 것 같지만, 우리는 이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다시 오류의 함정에 빠지곤 합니다.


책 <이 방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 The Wisest One in the Room이었습니다.



자주 쓰이는 말 '팩트폭행, 팩트폭력' =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팩트, 즉 모두가 인정할 만한 사실을 제시하며 잘못된 점을 꼬집어 설명하는 행위


폭행, 폭력이라 부르는 만큼, 때로는 상대에게 아프게 타격을 주기도 합니다. 맞는 말이기 때문에 딱히 반박할 수도 없지요.


이것의 시작은 엉터리 선동과 여론 조작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언론의 기사나 시국을 시원하게 꼬집고, 사람들에게 통쾌함과 웃음을 선사했지요. 조금은 긍정적인 의미로 일상생활이나 SNS에까지 많이 쓰이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외국에서 'Stop Using Facts!'라는 말이 먼저 유행되었습니다. 팩트폭행은 인터넷 여론의 자정 작용을 도와줍니다. 일부 정치인의 몰상식과 무능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에 '사이다 팩트폭격기'로 불리며 속을 후련하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팩트폭행이라는 글이나 덧글을 보면, 가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그저 말로 남을 헐뜯고 깎아내리는 단순한 언어폭력마저도, 팩트를 제시했다는 것만으로 팩트폭행으로 둔갑하기 때문입니다.


폭행을 가한 가해자들이 팩트폭행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서, 오히려 자신은 사실만을 말하는 팩트폭격기(?)라며 의기양양해 합니다. 인터넷에서는 팩트폭행의 문제가 더 빈번하고 심각합니다.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에서는, 말이 관계를 쌓기 위한 도구가 아닌 대결의 도구가 되기 쉽습니다.


서로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 그리고 다시 안 봐도 될 수 있는 상황은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할 필요가 없게 만들고, 앞에서는 하지 못할 말들을 거리낌 없이 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말은 도구로만 행세하고, 그 행위는 지식 자랑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팩트폭행은 말 그대로 사실만을 말하는 건데,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속에 내포된 2가지 의미를 살펴보죠.


1) '가르치기'와 '네가 틀렸어'

"그거 읽어본 적은 있냐? 가서 논문하고 책부터 좀 읽어보고 와라."

"해외서 몇 년 살아봐서 아는데, 괜히 아는 척하지 마라."

"뭣도 모르면서 글 쓰고 있네."


팩트를 제시한 것 같은데, '토론'이 아닌 '가르치기'가 됐군요.

원하지 않는 가르침은 상대방을 나보다 낮은 존재로 바라본다는 의미입니다. 결국은 네가 틀렸으니, 내가 가르쳐주겠다는 의도지요. 가르치는 것은 오직 상대방이 가르침을 원할 때 뿐입니다. 원하지 않는 가르침은 조언이 아닌 '폭행이나 폭력'이기 쉽지요.


2) 인신공격

"꼭 머리 나쁜 애들이 저런 말하더라."

"애인도 없이 집에 처박혀 있는 애들이 아는 척한다."

"사회문제에 관심도 없는 애들이 있어 보이려고 덧글 쓰지."


우리는 가끔 상대방의 의견이 잘못된 경우, 그 의견을 비판하지 않고 상대방을 비난합니다. 상대방이 무식하고 몰상식하기 때문에 그런 잘못된 의견이 나온다는 '인신공격'으로 연결됩니다.



그렇지만, 그의 의견이 틀렸다고 해서 그가 부족한 사람은 아닐 겁니다. 우리 모두 완벽한 존재가 아니며, 선동에 취약하고 공부도 부족하지요. 누구나 처음부터 팩트를 모두 알 수는 없습니다. 가끔은 팩트라는 어떤 사실이 뒤바뀌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잘못된 주장을 한다면 그 주장을 비판해야지요. '네가 틀렸어'가 아니라, '네 의견이 틀렸어'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팩트폭행은 무엇일까요? 과연 올바른 팩트폭행이란 게 존재나 할까요?

토론이나 언쟁의 목적은, 자신이 올바르다 생각하는 것을 논리적으로 제시해 상대를 설득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내 주장에 수긍하고, 내 논리를 이해하고, 내 방향에 공감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럴 때 팩트폭행을 하면서 상대를 깎아내리고, 무시하고, 비난하면, 상대방은 오히려 자신의 주장을 보호하려 하지요. 자신의 주장과 자존심을 동일시하면서 반발하게 됩니다. 그래서 팩트폭행은 도덕성의 문제를 넘어서,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자제 되어야 한다고 보입니다.


반론 할 때 내 목적을 먼저 생각해 봅시다.

비웃는 말투, 문제를 벗어난 인신공격, 남을 가르치려는 태도가 내 목적에 부합하나요? 내 목적이 그들을 낮춤으로써 나를 높이는 것인가요?


각자의 삶에서 개개인이 추구하는 가치나 생각이 일치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상대를 팩트로 폭행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 걸까요?


온라인상에서 팩트폭행이라는 명목하에 남을 깎아내리는 것이 영웅시 된다면, 일상에서조차 말로 남을 폭행하는 사태가 더 빈번해지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스스로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상대방에게 굴욕감을 주기 위해 팩트를 남발할까 두려워집니다.


팩트라는 것만으로 잘못된 목적이 정당화될까 봐 걱정됩니다. 말이 가진 힘은 굉장히 커서, 말을 어떻게 하느냐가 곧 자신을 규정하게 됩니다.

말은 행동이 되고, 행동이 습관이 되고, 습관은 인격이 됩니다.


우리가 '팩트폭행'을 시원하다라고만 생각하며 당연시 여기게 된다면, 그다음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생각해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사람들과, 그저 꿈만 꾸는 사람들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차이점은 기꺼이 실패할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이고, 부딪혀 깨지고 불태울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기도 하지요.


야망을 가지고 성공하기를 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그건 단지 욕망일 뿐이지요. 꿈을 위해 기꺼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나요? 실제로 중요한 것은 이상향 도달에 실패함으로써 우리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정의하게 되고, 그 실패가 우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소 우리 스스로를 얼마나 우울하게 만드나요? 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느라, 얼마나 많은 인생의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지 아십니까? 가끔 살다 보면 우리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없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꿈을 찾아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실망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많은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겠지요. 또 많은 고통도 마주할 것입니다. 좌절도 있고 패배도 있겠지요.


우리는 살면서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현재가 미래와 연결된다는 사실을 믿어야지요. 신, 운명, 인생, 카르마 등 뭐가 됐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현재가 미래로 연결된다는 믿음이, 우리의 마음이 따라갈 자신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험한 길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인생의 모든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부모로부터 여러 훌륭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중에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사랑하는 일에 도전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그 일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세요. 그리고 현실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그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타인의 생각의 결과물에 불과한 함정에 빠지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내 내면의 목소리를 삼키지 못하게 하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의 가슴과 영감은 진정 원하는 바를 알고 있습니다. 실패해도 다시 시도한다면, 그리고 또다시 시도한다면, 그것은 끝이 아니지요. 절대 마지막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인생이란 건 결국 난타전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센 주먹을 날리느냐가 아니라, 끝없이 맞으면서도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계속 전진하는, 그게 바로 진정한 승리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우리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겁낼 필요가 없지요. 그건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보다 훨씬 나은 사람들입니다. 꿈을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그리고 항상 웃음 짓도록 하세요. 가다가 넘어지는 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냥 다시 일어서면 되는 겁니다.


때로는 우리가 넘어질 수 있습니다. 반드시 넘어지지요. 우리는 자신의 길에 대해 의문과 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그 실패를 받아들이고 잘 다루기만 한다면, 실패는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알지 못하는, 우리 자신에 대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겁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위대함을 깨닫게 될 겁니다.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Don't Give Up" 중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정작 모인 돈은 없을 때, 수많은 건물 중 내가 지낼 제대로 된 방 하나 없을 때, 우리는 세상이 불평등하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불평등을 더 느낄수록 수명까지 짧아지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고 말하는 책이 있습니다.

오늘은 <부러진 사다리>를 소개합니다.


사다리는 불평등을 이야기할 때 자주 쓰이는 은유입니다. 사다리의 높은 층은 더 나은 지위와 소득, 안정, 미래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높은 층에 올라가기 위해 애를 쓰지요. 물론 열심히 일할수록, 능력이 있을수록, 더 대우를 받아야 하기에 사다리는 필요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사다리 간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생깁니다. 현대의 사다리는 밑에서 시작했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위 사다리로 올라갈 수 없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사다리 손잡이가 중간쯤에서 몇 개 부러지고 없어진 것이지요. 사람들은 신세 한탄을 해보기도 하고, 나라 탓을 해보기도 하다가, 결국 체념하고 하루를 살아갑니다. 


스스로 흙수저라 부르며 쓴웃음을 지으면서 지나치기도 하지요. 하지만 불평등은 생각보다 더 깊숙이 우리 내면에 침투합니다. 가끔은 나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며, 개인과 사회를 병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비행기를 한번 보죠. 비행기는 사다리가 물리적으로 구현되어 있는 공간입니다. 맨 위에는 일등석이 있고, 넓은 좌석, 맛있는 음식, 여유로움이 있지요. 그 밑에 비즈니스석이 그리고 그 밑에 이코노미석이 있습니다. 


연구진이 신기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일등석이 존재하는 항공편이, 모든 좌석이 동일한 항공편보다 기내 난동 발생률이 4배나 높다는 것입니다. 특히 비행기를 탑승할 때 일등석을 지나쳐서 입장해야 하는 경우, 기내 난동 발생률이 또 2배 높아졌습니다. 


일등석 사람은 먼저 탑승해서 편히 쉬고 있는데, 나는 무거운 짐을 질질 끌면서 그 옆을 지나칠 때, 우리는 불평등을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코노미석의 승객들도 비행기를 탈 정도이기에, 그들이 정말로 가난한 상태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가난과 불평등은 다른 문제입니다. 

불평등이 심해지면 실제로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빈곤감을 느낍니다. 일등석을 마주친 이코노미 승객들처럼 말이지요. 


소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그래프로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각국의 1인당 소득과 건강, 사회문제 지수를 비교해보면, 특정한 패턴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득불평등과 건강, 사회문제 지수를 비교하면, 명확한 패턴이 발견됩니다. 불평등할수록 건강이 나빠지고 사회문제가 심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왜 불평등과 같은 추상적인 요인이, 건강과 같은 신체적인 문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걸까요? 실험과 연구 끝에 저자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불평등은 사람이 더 큰 위험을

감수하게 만들고,

빨리 살고 일찍 죽자 식의

충동적인 인생을 강요한다.



생명체는 주변 환경이 나쁠수록 지금 당장 먹을 수 있는 것, 즉시 가질 수 있는 것에 집착합니다.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오늘 하루 잘 사는 것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오늘의 100달러를 받는 것과 다음 주에 150달러를 받는 것을 선택하라고 하자,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늘의 100달러를 선택했습니다. 불평등, 즉 내가 가난하다고 느끼는 감정이 우리를 즉각적인 만족, 충동적인 행동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불평등이 심한 곳일수록 사람들이 마약과 알코올을 남용할 확률이 높으며, 흡연, 과식, 운동 부족 비율이 높다고 합니다. 결국 불평등에 따라 사람의 수명까지 달라집니다. 이 그래프는 미국과 캐나다의 각 주별 사망율과 소득 불평등에 따라 그린 것입니다. 불평등이 심할수록 사망률이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여기 그래프에 나온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한 곳인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죠. 그러나 비교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더 잘 사는 사람과 비교한 미국인들은, 스스로를 사다리의 밑바닥으로 던져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가난한가 부유한가는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을 사다리의 밑바닥으로 억지로 던져 넣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부러진 사다리>는 상향 비교와 하향 비교를 적절하게 사용하라고 말하고 있지요. 

비교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매일매일 비교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저자는 차라리 현명하게 비교하라고 말하고 있네요. 


자신보다 나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을 주기에 필요하지요. 하지만 이런 상향 비교는 사람을 지치게 만듭니다. 그래서 마음이 허전하거나 우울해진다면, 자신이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전에 더 부족했던 자신을 떠올리면서, 지금 많이 나아졌다는 것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한 편으로는 부서진 사다리를 고치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부의 평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심한 불평등은 줄이자는 것입니다. 


적어도 사다리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이 마음먹고 노력한다면,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의 높이, 그 정도의 사다리를 만들어보자는 것입니다. 이는 어떤 정치적 성향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며, 사회의 건강과 개인의 건강을 위한 문제입니다. 


<부러진 사다리>는 말합니다.

불평등은 생과 사의 문제이다.


여러분도 부러진 사다리를 마주해 좌절한 적이 있으셨나요? 우리는 이 사다리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요?




아래 두 가지 능력은 많이 들어 보셨지요?

판단력 : 조직의 전략적 방향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그 방향에 맞는 현명한 결정을 일관되게 내리는 것.

결단력 : 빠르고 신속하게 행동하고, 중요한 프로젝트를 단호하게 추진하는 것.

탁월한 리더의 핵심 자질이자 기본 역량입니다.


미국 기업의 2만 명이 넘는 리더들의 성과 자료를 조사한 결과, 매우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답니다..

◆ 평균 이상 리더들 중에서는, 결단력은 그 자체로는 성공의 자질이 아니라는 결론.

◆ 판단력과 결단력을 별개로 봤을 때, 탁월한 리더가 될 가능성은 각각 판단력은 1%, 결단력은 11% (좀 의외의 결과?) 

◆ 그러나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췄을 경우, 탁월한 리더가 될 확률은 무려 88%로 나타났습니다. 놀라운 결과지요?



터널효과 (Tunneling Effect) : 원통에 눈을 대고 그 속으로 들여다보면, 세상은 원통의 지름 크기로 규정된다. 어두운 터널을 빠른 속도로 달리면, 터널 출구만 동그랗고 밝게 빛나 보이고 주변은 온통 깜깜해 진다.


동그라미 밖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니, 당연히 판단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터널시야의 함정'이라 부르는군요. 즉, 한 가지 문제나 원인에 고착되어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판단을 그르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수사관이 범죄를 수사할 때, 증거를 충분히 수집하지 않고 예단을 하면, 거기에 빠져 중요한 단서를 놓치기 쉽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내린 결론에 부합하는 증거만 받아들이고, 어긋나는 증거는 무의식적으로 제쳐놓으려 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터널 시야의 함정'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요약해 봅니다.


1) 감정이 격할 때는 판단을 피한다


아주 좋은 상황 속에서도 판단을 내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경우라면, 판단력은 급격히 저하된다. 스트레스, 분노, 두려움, 걱정, 욕심, 희열은 대표적으로 판단을 저해하는 감정이다. 가급적 중대한 결정을 미루자.


2) 대안들을 충분히 고려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모든 대안을 고려하는 것이다. 어떤 계약을 맺으러 갈 때, 몇 개의 차선책과 협상 가격의 마지노선을 반드시 정해서 가자. 이것으로 당황하지 않고 협상력을 높일 수 있음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최대한 많은 머리를 모아 가능한 대안들을 명확히 그려라.


3) 반대 견해를 구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의 견해와 반대되는 답변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질문을 의도적으로 해봐라. 그리고 상대방의 답변에 귀 기울여라. 일부러 반대 견해를 듣는 것은 상당한 고역이고 감정이 상할 수도 있는데, 이 정도의 감정적 손해는 좋은 의사결정이 가져다 주는 혜택에 비하면 정말 별 것 아니다.

감정을 분리할 줄 알아야 위대한 판단력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당신과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곁에 두라. 이것은 심리적으로, 지적으로도 굉장히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대안을 찾는데는 효과적이다.


이를 실천했던 대표적인 인물로 에이브러햄 링컨이 있다. 백악관에 입성한 그는 대표적인 반대 세력들을 내각에 임명했다. 그렇지만 그는 역사상 가장 존경 받는 대통령이 되었다.



4) 과거의 판단을 지속적으로 기록한다


인간의 뇌는 어떤 일이 발생하고 나면, 마치 그 결과를 사전에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사후 확신 편향'이라고 한다. '나는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라고 믿는 착각,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 심리다.


그러나 많은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사전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제대로 기억조차 못한단다. 따라서 특정한 판단을 내린 근거들을 기록하고, 정기적으로 과거의 행동을 되짚어 봐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꾸준히 기록해 놓는 것은, '사후 확신 편향'을 줄이고 보다 전체적인 시각에서 다른 가능성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매우 값싸고 간편한 훈련 방법이다.


모든 판단을 내릴 때마다 일일이 위의 네 가지 것들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위험 부담이 큰 경우라면, 반드시 이것들을 하나씩 따져보자.


명심하자. '터널에 갇히는 것'은 일반 도로를 달리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 것을. 탈출구가 부족하다는 터널의 특성 때문에, 곧장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아침을 맞이하는 행동을 바꾸면 삶의 기적을 맛볼 수 있다."

모든 날은 하루에서 시작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아침이기 때문이지요.


간단한 메시지로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 10만 독자가 선택한 <미라클 모닝>의 저자 할엘로드, 그는 하루를 기적으로 만들기 위한 6가지 핵심 습관을 책에서 말하는데, 이 중에서 특히 '기록하기'를 강조합니다.



"제가 일기 쓰는 것에 대해 유일하게 후회하는 점은,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매일, 100% 달성할 수 있는 최고의 목표를 적으세요."


그가 기록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차이'에 집중합니다. 예를 들어,

▶현재 성과와 아직 성취하지 못한 성과간의 차이

▶너와 나의 차이

▶지금의 나와 이상적인 나와의 차이 등


간극을 느끼면 누구나 괴롭습니다. 성취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지요. 이제까지의 성취를 무시하고, 더 몰아세웁니다. 그런데 기록을 하면 이게 달라진답니다.


기록을 하면 1달 전, 1주 전의 나와 정확한 비교가 가능하고, '내가 어디쯤 왔나?' 나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한마디로 기록은 '막연한 차이'가 아닌 정확한 차이를 인지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쌓인 정확한 데이터로 언제든 중간평가가 가능해집니다. 중간평가 결과가 좋다면 계속하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피드백을 반영하면 됩니다. 결과적으로 더 빠르게 수정하고 개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 끝으로 제 경험상 매일 기록함으로써 성과, 감사, 결심 같은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를 더 깊이 바라볼 수 있었고, 스스로 이룬 발전에 대해 더 자주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미라클 모닝>을 통한 '삶의 변화'하는 기적은, 오늘도 수천, 수만명으로부터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삶의 기적을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한 가지를 강조합니다.


"기억은 기록을 이기지 못한다."


준비됐나요?

기적이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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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을 사회 현실에 기대어 핑계대면서, 많은 가능성을 체념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곤하지요. 그게 비록 현실이라곤 하지만, 내가 해볼 수 있는 방법으로 좌충우돌하면서 앞으로 나가보는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때론 위로도 필요하겠지만, 열심히 해봐야 할 부분에선 이 악물고 해볼 필요가 분명히 있지요. 진짜배기 현실 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이겠습니다.


임경선의 <태도에 관하여> 책에서, 하루를 좀 더 견고하게 살기위한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옮겨봅니다.


첫째, '생각'하고 '행동'하기보다, '행동'하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자

생각하는 것에 너무 중점을 두다 보면, 나도 모르게 미루고 하지 않을 부정적인 이유를 생각하게 돼요. 나한테는 무리니까, 난 이것밖에 못하니까, 이런 스스로에 대한 선입견을 만드는 거죠.


물론, 자신의 수준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현실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큰 용기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무언가 실천하는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선만 긋는 것과는 다릅니다.



머릿속이 잘 정리되지 않을 때는 일단 용기있게 그 상황에 나를 던져보세요. 그 행동이 곧 나의 생각을 다듬고 정리해 줄 테니까요.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나를 '이렇다'라고 단정 짓는 것입니다.


둘째, 무조건 즐겁고 보람찬 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 동료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내 일은 배움도, 재미도, 보람도 없어. 그래서 깔끔하게 월급 받은 만큼만 하려고 해. 난 회사의 노예가 아니니까."


이런 사람들은 보통 맡은 일에서 마음과 열정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렇다보니 대부분은 사생활을 통해 충족감을 해소하려 합니다. 문제는 그 사생활이 재미있어야 하는데, 그걸 재미있게 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지요. 그만큼 일의 문제는 내 삶에 가장 깊은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아 새로운 길을 선택해도, 언젠가는 또다시 객관적인 평가와 마주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일이 내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탓하기 전에, 내가 먼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 안될까요?


내가 먼저 마음을 담지 않으면, 그 어떤 일이라도 내 주변에서 계속 겉돌기만 합니다. 결국 일의 재미는 스스로 찾아야 하는 주관적인 문제지요. '나는 일을 사랑해'라고 말하지 않으면, 일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겁니다.


셋째, 인간관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는 이렇게 말했지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한다고 하면, 당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당신은 모두를 기쁘게 할 수 없다."


그렇습니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시간과 마음을 더 써도 모자랄 판인데, 마음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오는 공허함을 억지로 채울 필요는 없지요. 내가 '나' 다울 수 있는 인간관계에 집중하면, 어떤 사람들과 있어야 진정으로 편안할 수 있을지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또한 인간관계는 저마다 생로병사 운명이 있어서, 절친한 관계였다가 별다른 일이 없었음에도 자연스럽게 소멸하거나 서먹해지기도 하는데, 이때는 자연스럽게 흘려보내고 애매한 채로 놔둘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마도 그 관계는 서로에게 충분히 매료되지 않았거나, 누군가는 좋아하는 척하며 애만 쓰고 있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인간관계를 가급적 '관리'하지 않고 살아가면 홀가분해집니다. 갈 사람은 가게 되어있고, 돌아올 사람은 분명히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으니까요. '관계의 상실을 인정할 용기'가 있다면, 어느덧 관계는 재생되어 있기도 합니다.


▶ '행동'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 즐겁게 일하는 방법을 찾으면서

▶ 인간관계에 자유로운,

그래서 삶에 기분 좋은 긴장감이 깔려있는, 그런 하루를 살도록 실천하자는 말입니다.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보세요. 같은 삶이라도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지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니까요.


임경선 <태도에 관하여>를 참고하였습니다.


▷신은 있다 vs 없다

▷진보가 옳다 vs 보수가 옳다

▷삼성이 더 낫다 그래서 좋다 vs 애플이 낫다


그럴리가 있나... 절대 그럴 일 없어

내 말이 확실히 맞다니까

우리는 스스로의 생각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생각에 대한 믿음은 너무나 확고해서, 다른 사람들이 도대체 왜 자신과 같은 믿음을 갖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믿음이 지나치면 남들을 비판하고 비웃게 됩니다. '어떻게 이걸 이해하지 못하지? 제 정신이 아닌가봐.'


마치 큰 코끼리를 묘사하는 장님과 같습니다.

다리를 만진 장님은 기둥 같다 말하고, 귀를 만진 장님은 부채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 근거해 서로 다른 부분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맹인들은 자신의 답이 맞고 다른 이의 답이 틀렸다며 말싸움을 시작하고, 안되면 몸싸움도 벌입니다. 그렇지만 그 믿음은 한 조각의 인식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과 그 실체를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지요.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것과 같은 한 단면에 불과합니다. 그런 인식 속에서 우리는 '세상은 이럴 것이다'라는 이론을 만들어내고, 믿음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가장 위험한 믿음도 만들어냅니다. 나 자신의 사고방식에 대한 믿음입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나는 이런 것에는 서툴러

이런 믿음은 자신을 가두고 제한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계에서 생각하는 사고법, '리미널 씽킹'을 적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책 요점] 스스로를 한계 짓는 ‘생각의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혼돈으로 점철된 ‘경계 너머’를 상상할 때, 변화와 혁신의 문이 열린다고 강조한다. ‘리미널 씽킹’이라 이름 붙인 이 경계적 사고법은, 저자가 학계와 비즈니스 현장에서 수많은 사례를 통해 효과를 검증한 경험적이고 체계적인 실천법이기도 하다.


우리의 생각이 대부분 가설, 믿음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고 전제하고, 믿음에 관한 6가지 이론과 믿음의 감옥을 벗어나기 위한 9가지 실천법을 명쾌한 손그림을 곁들여 제시해줌으로써, 누구나 기회와 가능성의 세계로 진입하여 삶의 극적인 변화를 도모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기적의 리미널 씽킹>은 자신의 믿음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믿음을 들어보라고 말합니다.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음을 받아 들여보라는 것이지요.


리미널 씽킹은 '분명해 보이는 것을 다시 생각하는 사고법'입니다. 책의 저자는 수십 년 금연을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절망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거울 속에서 망가져 가고 있는 자신을 보고 금연에 성공합니다. 이 경험으로 저자는 자신에 대해, 세상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금연이 가능하다면, 다른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사실 가능한 게 아닐까? 저자는 믿음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믿음은 삶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것이지요.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복잡한 삶을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어릴 때 물에 빠져 사경을 헤맸던 아이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물을 조심해야 한다. 물은 위험하다'라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 믿음으로 아이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우리를 제한하기도 합니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물을 무서워하며, 자신의 키 반밖에 되지 않는 수영장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잘못된 믿음으로 우리는 성장의 기회를 놓치지요. 내 믿음에 부합하는 도전만 받아들이고, 자신이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분야는 포기해버립니다.


잘못된 믿음으로 우리는 인간관계를 놓칩니다. 자신과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을 무시하게 됩니다. 나를 성장하게 하는 친구를 놓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을 깨버리는 리미널 씽킹을 시도해야 합니다.


지금 자신을 제한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책 <기적의 리미널 씽킹>의 세가지 사고법을 따라 가보시지요.


1) 당신이 객관적이지 않다고 가정하기

우리는 생각보다 객관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릇된 믿음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고 부풀려 생각하면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객관적이지 않음을 계속 인식해야 합니다.


2) 자신의 잔을 비우기

기존에 가지고 있는 자신을 제한하는 믿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어쩌라고,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라는 믿음을 비워야합니다. 그리고 다시 살펴봐야지요. 내가 어떤 경험으로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한두 개의 경험을 일반화한 건 아닌지, 다른 이유가 있는데 착각한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3) 새로운 가설을 만들고 행동하기

만약 변화하고 싶다면, 자신에 대한 다른 믿음을 가지고 싶다면, 책은 이렇게 해보라고 제안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반영된 새로운 가설을 만들어라. 그 뒤 그저 그 가설이 진실인양 행동하며,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살펴보라.'


즉, 내가 어떤 사람일까 아닐까를 고민하지 말고, 일단 되고 싶은 사람처럼 행동해보고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책 <기적의 리미널 씽킹>은 말합니다.

"분명한 것은 결코 분명하지 않다. 분명해 보이는 것마저도 그렇다. 아니, 분명해 보이는 것일수록 더 그렇다."


자신에 대해, 세상에 대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으신가요?

그 믿음을 한번 깨트려보는 것,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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