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영화 인터스텔라.

<인터스텔라>는 아름다운 영상미와 스토리 특유의 재미뿐 아니라, 실제 우주 과학에 기반해서 제작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어렵게만 느껴졌던 우주 과학에 대한 사람들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과학이 녹아 든 소설, 영화,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죠.

대중문화에서 나타난 과학을 관찰하면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서울대에는 이공계열 학생들과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이 함께 듣는 교양 수업이 있는데, 이 수업에서는 대중문화를 통해 과학과 우리 사회의 관계를 분석한다고 하네요.

이 강의를 담당하는 과학 철학자이자 소통하는 과학자 홍성욱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과학에 기반한 영화가 나왔을 때 SNS에서 사람들 반응을 보면서, 이런 댓글을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00학 전공자로서 말씀 드립니다. 이 영화에서 이 부분은 사실과 다릅니다.’


주로 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이런 댓글을 많이 달고는 합니다.

과학을 토대로 한 영화를 보며 그 속의 디테일에 대해 틀린 점을 찾는 걸 좋아하고, 또 과학적 사실이 얼마나 들어맞는지에 따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죠.


물론 과학에 무관심하고 대충 검증하는 대중문화 생산자들도 문제가 있지만, 모든 것을 과학적 설명의 완결성을 통해서만 평가하려는 태도에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문화를 마치 과학의 일부로 생각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인공적으로 생명을 만들어내는 일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전인 <프랑켄슈타인> 같은 작품은 과학적으로 완전히 틀렸고, 읽을 가치조차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오만한 태도죠.



대중문화 속 과학에 대해 맞다 틀리다를 논하기보다는, 과학과 인문학이 만나는 접점을 찾아 과학의 일부가 녹아든 대중문화가 도대체 세상에 대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또 작가는 이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했는지, 이것이 오늘날의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다양한 소설 작품과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한 번쯤 고민해보아야 할, 우리 삶과 직결된 과학적 쟁점들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해보시기 바랍니다.


생명 윤리, 프라이버시, 인간과 사이보그의 경계에 대한 문제 등, 과학의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이론과 수식에서 벗어나, 과학을 문화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해갈수록 그것이 대중문화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알아야 먼저 기회를 찾아내고 잡을 수 있으니까요.


프랑켄슈타인에서 AI까지, 과학과 대중문화의 매혹적 만남. 홍성욱 저 <Cross Science> <Change Ground>를 참고




전세계 190개국 1억 3천만 명의 유료회원을 가진 세계 최대 동영상 서비스, 시가총액 1,600억 달러 (174조원)의 괴물 기업.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시장 판도를 가장 크게 변화시킨 미디어 브랜드, 넷플릭스를 탐구해보자.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서 태어나 보든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컴퓨터 과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의 창업자.


어느 날 헤이스팅스는 비디오를 빌려보게 된다. 당시는 대여료를 내고 비디오를 빌려와서 시청한 뒤 정해진 기간 안에 반납하고, 반납이 늦어지면 연체료를 내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헤이스팅스가 반납을 깜빡 했고 연체료를 무려 40달러나 내는데, 화가 난 헤이스팅스는 직접 비디오 대여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빡쳐서 1997년 (큰 사건은 홧김에 우연히 생기는 일이라고…?) 만들어진 회사가 넷플릭스였다.

넷플릭스는 인터넷(net)과 영화(flicks)에서 따온 이름으로, 컴퓨터 과학을 전공한 헤이스팅스가 인터넷으로 영화를 유통하겠다고 애초부터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엔 비디오를 우편 배달하는 사업으로 시작했다.

새롭게 등장한 미디어 저장매체인 DVD의 상용화가 시작됐는데, 헤이스팅스는 이 DVD에 완전히 꽂히게 된다. 왜냐? 무겁고 부피 크고 깨지기 쉬운 비디오보다 얇고 가벼운 DVD가 배달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대여 신청을 하면, 부직포 봉투에 담긴 DVD가 고객에게 배달되고, 반환은 가까운 우체통에 놓거나 자택 우편함에 넣으면 배달직원이 회수해가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이용요금은 대여료와 연체료를 받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는데, 헤이스팅스도 처음엔 이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특별한 발전이 없자 파격적인 변화를 주는데, 바로 연체료를 없애버린 것이다.

대신 한 달에 20달러의 구독료를 받았으며, 한 번에 3개의 DVD를 빌릴 수 있고 대여기간은 반납 전까지 무제한. 하지만 다음 DVD 대여 전에 빌렸던 DVD를 반납해야 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구독시스템을 이용한 고객들은 아주 만족했고, 넷플릭스는 점차 성장하게 된다.

그 당시 미국 비디오 대여사업의 절대적 1인자는 블록버스터였는데, 이 회사는 2013년 파산하게 된다. 넷플릭스 때문은 아니고, 그 회사 자체적으로 엉뚱한 짓을 하다가 망했다.


경쟁 기업이 사라지고 나니 넷플릭스는 자연스레 업계 1위가 됐다.

DVD 대여 사업을 시작한지 10년을 넘기던 2007년, 넷플릭스는 OTT 서비스를 시작한다. 셋톱박스 없이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동영상 서비스, 우리나라의 SK 브로드밴드, KT 올레TV, LG U+ 같은 셋톱박스가 있어야 동영상을 볼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인터넷이 되는 곳이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서비스로 요즘 대세인 유튜브도 OTT에 해당한다.



고객들은 광고 때문에 시간 낭비하는 TV를 떠나 넷플릭스로 갈아타는 코드커팅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2013년 유료회원은 미국 최대 케이블방송 HBO의 가입자 수를 넘어섰다.

지금은 전세계 1억 3천만 명의 유료회원을 가지고, 2018년 5월에는 세계 최대 미디어 기업인 디즈니의 시가총액을 뛰어넘기도 했다.


넷플릭스는 다른 경쟁 동영상 서비스에 비하면 콘텐츠 수가 적다. 하지만 사용자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데,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빅데이터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시청자에게 영상을 본 뒤 별점을 매기게 하고 선호 영상을 분석해서, 다음 영상을 추천하는 알고리즘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 덕분에 쓸데없이 많은 콘텐츠보다는 적지만 유용한 콘텐츠를 확보하게 된다.

2013년 넷플릭스가 직접 제작한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House of Cards’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빅데이터를 분석해서 원하는 연출 스타일과 좋아하는 배우를 예측하는데,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연출과 케빈 스페이시가 주연을 맡는 것을 시청자들이 좋아한다는 결과를 얻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주말에 드라마를 몰아서 보고 주변에 입소문을 잘 낸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한 시즌을 한꺼번에 몽땅 공개했는데, 드라마를 본 시청자의 85%가 만족하는 초대박 콘텐츠가 탄생했다.

이 때문에 ‘인공지능이 시나리오를 쓰는 것 아니냐?’라는 루머까지 등장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우스 오브 카드가 대박이 터지자 더 적극적으로 콘텐츠 제작에 나서기 시작했다.

2019년까지 매년 20편 이상의 자체 콘텐츠를 제작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14년에 제작된 마르코 폴로는 시즌 당 9천만 달러 (1천억원)를 투자한 드라마로, 이 정도면 HBO의 왕좌의 게임과 맞먹는 규모라고 한다.


넷플릭스의 영향력이 커져감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 넷플릭스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생겨났다.

칸 국제 영화제는 2018년부터 넷플릭스 영화를 상영하지 않기로 한 바, ‘영화란 극장에서 상영되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넷플릭스에서 만드는 영화를 영화로 인정해주지 않으면서 벌어진 일이다.


유럽연합에서는 넷플릭스나 아마존 등의 OTT 서비스에 유럽 현지에서 제작하거나 투자한 콘텐츠 비중을 30% 이상으로 맞춰야 한다는 새로운 규제안을 발표했고, 독일과 프랑스 등의 국가들은 현지 수익의 2%를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는 발표를 했다. 우리나라도 넷플릭스 규제가 시작됐는데, 국회는 방송통신발전기금을 내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규제들 가운데서도 넷플릭스는 성장하고 있지만, 내년에는 넷플릭스에게 강력한 라이벌이 등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 미디어 기업 디즈니.

디즈니는 MLB가 설립한 비디오 스트리밍 플랫폼 뱀테크를 인수했으며, 2019년부터는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후 제작될 토이스토리4, 겨울왕국 후속편, 라이온킹 라이브 액션판 등 기대작들을 모두 유통할 계획이고, 자사 계열 브랜드 ESPN의 스포츠 영상도 스트리밍 할 예정이다.

독점 스트리밍을 위해 넷플릭스와의 계약은 중단할 것이라고 하니, 디즈니와 넷플릭스의 한판 승부는 어떻게 될까?


넷플릭스는 어떤 히든카드를 내밀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


<Zattwo ZVS> <세상의 모든 지식>을 참고



판타지는 우리 무의식의 표현이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가 억압하는 영역

즉, 무의식의 영역과 꿈의 세계를

가장 쉽게 반영한다.


2001년 영화로 재탄생, 무려 18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 글로벌 흥행 수익 60억 달러(6조원)의 기록.

1960년 영국 문화계가 주목한 한 편의 소설 <반지의 제왕 The Lord of the Rings>


J.R.R 톨킨은 소설이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가 아니었더라면 결코 <반지의 제왕>을 끝내지 못했을 겁니다."



놀랍게도 톨킨이 언급한 '그'는 바로,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C.S 루이스'였다.

1950년대 어린이 판타지 문학의 선구자 '루이스'와 판타지 문학의 전설 '톨킨', 둘 사이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 걸까?


당시 34살이었던 톨킨과 27살의 루이스는 옥스퍼드 대학 영문학 교수 다과회에서 처음 만난다.

공통점이 많은 둘은 운명처럼 서로를 존경하고 이해한다. 그렇게 톨킨과 루이스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톨킨의 슬럼프...

"내가 쓴 글들은 모두 쓰레기야!"


하지만 문제 되지 않는다. 톨킨에게는 하나뿐인 친구 루이스가 있었으니까... 톨킨은 루이스의 격려와 칭찬 덕분에 힘든 슬럼프를 극복한다. 그렇게 오랜 세월에 걸쳐 완성된 작품, <반지의 제왕>


그런데 정확히 1년 후 톨킨이 루이스에게 보낸 건, '강한 분노'였다. 도대체 왜?

다름 아닌 루이스가 쓴 <나니아 연대기> 때문이었다.


<반지의 제왕> 출판을 앞둔 어느 날, 톨킨보다 먼저 출판된 <나니아 연대기>

루이스가 쓴 작품은 자신의 형과 함께 다락방에서 놀았던 어린 시절의 경험과 판타지 세계를 접목한 것이었다.


하지만 톨킨은, '내 아이디어를 훔쳐서 판타지 소설을 썼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니아 연대기>는 출판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어린이 필독서로 선정되었다.

톨킨은 그런 그를 못마땅해 하고 그에게 모진 말도 내뱉는다.

"글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설상가상으로 대중과 평론가들로부터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처음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저게 뭐야?' '작품이 왜 이 모양이야?' '별로여~' '루이스가 낫지' '이게 소설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톨킨의 작품을 옹호하고 극찬하는 유일한 사람은 루이스였다.

"시간이 지나면 톨킨의 명성이 나를 뛰어넘을 겁니다. <반지의 제왕>은 최고의 소설입니다."


그러나 루이스의 그런 모습에 더 상처받은 톨킨으로 인해 두 사람의 우정은 끝난다.



세월이 흘러 루이스의 말대로 사람들 사이에서 재평가 받으며,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 <반지의 제왕>. 그렇지만 회복되지 않은 두 사람의 우정. 심지어는 루이스가 죽어 장례식 추도사를 부탁해도, 톨킨은 단번에 거절했다.


루이스가 죽고 얼마 후 톨킨에게 도착한 카드 한 장, 그는 내용을 보고 충격에 휩싸인다. 카드 속에 담긴 것은 루이스가 죽음을 앞두고 톨킨에게 쓴 마지막 편지였다.

'슬픔도 있었고 어둠은 짙어갔지만, 위대한 용기와 위협이 허사는 아니었다.'

카드 속에 쓴 글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한 것이었다.


뒤늦은 톨킨의 후회 그리고 반성...

"루이스는 항상 나를 향해 아낌없는 격려를 해줬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톨킨은 자기 불신에 시달린 끝에 81세 나이로 사망했다. <반지의 제왕> 이후 써온 소설을 끝마치지도 못한 채...


작품만큼 단단하고 빛나는 우정을 나눈 세계 판타지 거장 톨킨과 루이스.

톨킨은 자신에게 아낌없는 신뢰와 우정을 보여준 루이스에게 인터뷰를 통해 이런 메시지를 남긴다.

"나는 그에게 갚을 길 없는 큰 빚을 졌습니다. 오랫동안 그는 나의 유일한 청중이었지요. 그의 끊임없는 관심과 다음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재촉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반지의 제왕>을 끝까지 완성하지 못했을 겁니다."


톨킨의 책은 <반지의 제왕>으로 끝나지 않는다. 루이스도 인정한 거장 톨킨의 가치가 궁금하다면,

<반지의 제왕 The Lord of the Rings>

<호빗 The Hobbit>

<후린의 아이들 The Children of Hurin>

<실마릴리온 The Silmarillion>

톨킨의 훌륭한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자.


톨킨 John Ronald Reuel Tolkien


20세기 영미문학 10대 걸작으로 The Times가 선정한 <반지의 제왕>의 작가이자 C.S. 루이스 등과 함께 영국 3대 판타지 작가로 꼽힌다. 자기가 쓴 이야기들이 인기를 얻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아이들에게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지어내 들려 주기를 좋아한 자상한 아버지였다. 영문학 교수이자 언어학자인 그는, 판타지의 세계에 언어의 고찰과 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다.  


1892년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나 네 살 때 가족과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버밍햄의 킹 에드워드 학교에서 중세 영어와 고전에 대한 소양을 키웠으며, '요정'들의 언어를 만들면서 그의 언어학적 재능을 개발했다. 옥스퍼드 대학 엑시터 칼리지 영문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톨킨은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영국군에 복무했다.


그는 참전 후 회복 기간 동안 신화와 민간전승에 기반, 스스로 기획한 우화 시리즈를 쓰기 시작했다. 뒷날 <실마릴리온>으로 알려진 신화적 연대기 <잃어버린 이야기들 The Book of Lost Tales>를 집필한 것이다. 그의 작품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전쟁이 그의 작품 세계를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즉 그가 가혹한 20세기의 전쟁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판타지를 선택했다는 것. 


잠시 '뉴 잉글리시 딕셔너리'사에서 근무하며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찬과 관련한 일을 했고, 1920년에 리즈 대학교에서 가르치다가 5년 뒤 다시 옥스퍼드로 돌아왔다. 1925년 옥스퍼드 대학교수로 선임된 뒤 문헌학자로서 명망을 쌓아 가던 톨킨은, 그의 신화적 상상력을 좀 더 가정적인 주제와 연관시켜 보라는 가족들의 주문에 따라, 뒷날 책으로 나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호빗> 이야기를 만들어 가족들에게 들려주었다.


그의 아이들을 위해 써 두었던 이 책은 그의 데뷔작으로, 처음에는 그저 가족들을 위한 일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어른 독자들까지도 매료시킴에 따라 출판사에서 후속작을 내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톨킨은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3부작 대서사 <반지의 제왕>을 집필하게 된다.  



가족 모두가 개신교 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가톨릭 신자로 살았던 그의 종교관과 전공인 문헌학은 그의 작품세계를 창조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고대 영어로 쓰인 <베오울프>와 중세 영어로 쓰인 초서 시대의 영어를 자주 강의했는데, 북유럽의 언어 중에는 핀란드어와 핀란드 민족의 대 서사시인 <칼레발라 Kalevala> 등을 통해 이들 언어와 유사한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를 사용하며 살아가는 종족들의 신화적 세계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는 <반지의 제왕>에서 새로운 세계로 완벽하게 재구성되며, 이후 판타지 영역의 틀을 만든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대학시절 옥스퍼드 대학 내 문학작품을 읽고 낭독하는 모임인 잉클링스의 멤버로 C.S. 루이스와 매우 각별했다. 이 모임은 그의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12년에 달하는 창작 기간 내내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1955년 반지의 제왕 3권을 모두 출간 후, 1959년에 톨킨은 교수직에서 퇴임했고, 1965년에는 미국의 에이스 북스에서 해적판을 발간하면서, 소위 미국 사회에서 <반지의 제왕> 캠퍼스 숭배 현상이 일어났다. 이후 톨킨의 작가로서의 명성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반지의 제왕>은 당대의 수많은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인용되고 언급되는 불후의 명작으로, 매년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한 삽화가 곁들여진 달력이 각국에서 간행되며, 이 책을 위한 사전이 따로 출판되는 등 대중적 인기는 물론, 그 학문적 가치를 인정받는 판타지 문학의 고전이 되었다.


평생 동안 쏟아부은 지식과 창작욕, 그리고 완벽주의에 기인한 끊임없는 수정으로 인해, 톨킨이 창조한 시간과 공간은 지극히 치밀하고 정확하다. 그는 방대한 이야기를 엮어 나가면서도 세부 사항들까지 완벽한 정확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특히 연대기와 지형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가 창조한 수많은 인물들 또한 선과 악이 공존하며 대치하는 존재의 이면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정교함을 바탕으로 하는 리얼리티로 인해 이 작품은 상상을 초월한 가공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창작물이 아닌 실재했던 역사의 장으로까지 인식되며 독자들의 무한한 감동을 이끌어 내고 있다. 


톨킨의 추종자들은 그의 작품을 흉내 내려 했지만, 그는 언어학자로서 신화와 서사시를 연구하고, 북유럽의 언어와 잃어버린 게르만 언어와 같은 수준의 언어를 창조해 나간 것이었다. 그가 일생 동안 가장 열중한 일은, 고대의 신비가 담긴 아름다운 엘프어를 창작하는 것이었다. 북유럽 신화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반지의 제왕>의 상상력의 원천은 북유럽 신화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옛 문헌에서 처음 발견한 단어의 의미를 탐구하듯 머릿속에 떠오르는 엘프어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을 법한 어형 변화를 유추하여 차츰 언어학 체계를 세워나갔다. 그중 하나가 <벨렌과 루시안>이다. 톨킨의 창작 신화 중에서도 완성도가 높고 그가 가장 사랑한 작품이었다. 애처가였던 톨킨은 아내와 함께 묻힌 묘비에 '루시안, 에디스 메리 톨킨(1889~1971) / 벨렌, 존 로날드 로웰 톨킨(1892~1973)'이라고 새겨 넣었다. 사후에 <반지의 제왕>의 앞 이야기 격인 <실마릴리온>이 아들 크리스토퍼 톨킨에 의해 묶여져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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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9 - [자기계발] - 하늘 땅의 신화, 톨킨의 판타지 반지의제왕과 호빗


<지식을 말하다>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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