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도 언젠가 죽는다는 걸 잊지 말라’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이다.

스티브 잡스는 스탠포드대학 졸업 축사에서, 암 투병을 통해 얻은 죽음과 삶에 대한 자신의 깨달음을 생생히 전했다. 그는 연설에서 우리는 곧 죽는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하며, 죽음은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하는 최종 목적지라고 말했다.

 

“제가 17세 때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매일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간다면, 당신이 분명히 올바르게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타인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지금부터 ‘여러분 인생에서 단 하루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24시간 뒤에 죽는다고 생각하면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남은 시간을 보내야 할지 생각하게 될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은 시간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철학 하면 왠지 따분하고 재미없게 느껴지곤 하는데,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우리가 왜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어떤 이는 철학 이야기에 ‘공자, 소크라테스가 밥 먹여 주냐?’라며 쓸모 없는 학문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철학은 매우 유용한 학문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철학을 소홀히 대하는 큰 이유는 당장 삶에 적용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철학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은 최대한 빨리 핵심만 공부해서 삶에 적용하고자 한다.

사유과정은 생략한 채 철학자들이 남긴 명제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결론만으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그들이 세상을 관찰하는 과정, 사유의 태도 등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삶에 큰 자극이 될만한 신선한 가르침을 얻게 될 것이다.

여기서는 생각의 깊이를 넓혀주고 삶의 무기로 삼을 수 있는 철학 사상 3가지만 살펴보자.

 

1) 타불라 라사 Tabula rasa

 

이것은 라틴어로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석판’이란 뜻이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사상가인 존 로크는 사람의 심성은 태어날 때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석판, 즉 타불라 라사와 같다고 생각했다.

 

당시 이 개념은 세습 왕권과 귀족 신분의 정당성을 뒤흔드는 기폭제가 됐다. 지금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고관이지만, 로크(1632~1704)가 살던 당시 사회에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누구나 태어날 때 상태가 ‘백지’라는 것은 인간에게 타고난 우열이 없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의 소양은 모두 태어난 후에 어떠한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고, 인간은 교육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로크는 현대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를 빼놓고 자유민주주의를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절대왕정 시대에 정부의 구성과 한계에 대해 뚜렷한 금을 긋고, 보다 확장된 대중의 권리를 천명한 그의 정치이론은 이후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다.

결국 로크의 이론은 영국의 명예혁명을 성공시켰고,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미쳤으며, 미국 독립선언서의 밑그림이 되었다.

 

존 로크는 ‘타고난 능력이란 없다. 경험을 통해 인간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의 주장처럼 우리가 ‘경험과 학습에 의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면 인생의 어느 시점에나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100세에 이르는 시대, ‘다시 새롭게 배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특히 오늘날처럼 기술의 발달이 급진적인 사회에서는 한번 배운 지식이 금세 진부해지고 마는 경향이 있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 자신의 경험을 초기화시키고 다시 백지 상태로 돌릴 수 있느냐가 인생 2막의 명제가 될 것이다.

 

 

2) 타자의 얼굴

 

철학에서는 남을 타자(他者)라고 부른다.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무엇보다 ‘타자’의 중요성과 가능성에 대해 논한 철학자다. 그가 말하는 ‘타자’는 ‘소통이 안 되는 사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에서 서먹한 상대, 소통이 안 되는 타자가 왜 중요한 것일까? 이에 대해 레비나스는 다음과 같이 간단히 답한다.

“타자는 깨달음의 계기다”

 

그는 자기중심적 전체성을 깨뜨리고 타자의 무한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들은 자기 시점에서 세상을 이해한다 해도 그것은 타자에 의한 세상의 이해와는 다르다. 물론 타자의 견해를 ‘네 생각은 틀렸어’라며 부정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인류에게 일어난 비극의 대부분이 자신은 옳고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타자는 틀렸다고 단정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나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른 타자를 배움과 깨달음의 계기로 삼는다면, 우리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관점의 가치관을 획득 할 수 있다.

 

일본 역사학자 아베긴야 교수는 안다거나 이해한다는 것은 ‘바뀐다’라는 뜻이라고 말한다. 즉 안다는 것은 그것에 의해 자신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레비나스는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타자와의 관계라 하더라도 얼굴을 마주함으로써 이해의 가능성을 교환하고 이로써 관계성을 파괴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정답인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답이 아닐 수 있다.

그가 말한 ‘타자’의 개념은 오늘날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3) Ressentiment

 

철학 책을 보면 ‘르상티망’이란 말이 나온다.

‘약자가 강자에게 품는 질투, 증오, 열등감 등이 뒤섞인 감정’이다. 한마디로 시기심과 질투로 번역할 수 있는데, 르상티망을 잘 관찰하면 비즈니스 기회가 보인다.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를 사례로 살펴보자.

어느 날 굶주린 여유가 잘 익은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포도나무를 보았다. 그 여우는 갖은 수단을 동원해 포도송이를 따먹으려고 시도해봤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포도송이는 여우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 매달려 있었다.

 

결국 여우는 허탈하게 실망하며 마음을 바꾸었다. 그리곤 중얼거린다. “이 포도는 엄청 신게 분명해. 이런 걸 누가 먹겠어!”라며 가 버렸다.

여우는 손이 닿지 않는 포도에 대한 분한 마음을 ‘저 포도는 엄청 시다’라고 생각을 바꿔 르상티망을 해소해 버렸다.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에 따르면 열등감에 사로잡힌 개인은 르상티망을 해소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하나는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기준에 순응하고 복종함으로써 그 감정을 해소한다고 한다. 또 다른 하나는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판단을 뒤바꾸면서 그 감정을 해소한다.

 

쉽게 말해 누군가는 명품가방을 구매함으로써 르상티망을 해소하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을 바꿈으로써 르상티망을 해소하는 것이다.

매년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는 기업들은 철저히 르상티망을 이용한다. 인간의 마음을 탐구함으로써 사업을 지속한다고 볼 수 있다.

 

기업이 르상티망을 관찰하여 돈을 벌 듯, 소비자 역시 자신이 무언가를 원할 때 그 욕구가 ‘진짜 자신’의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혹은 타인이 불러일으킨 르상티망에 의해 가동된 것인지를 분별해 볼 필요가 있다.

 

끝으로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는 <철학의 힘>이란 책에서,

‘철학의 힘은 현실에서 힘이 없다는 사실에서부터 나온다’라고 했다.

아무리 철학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바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권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는 ‘철학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바로 스스로 생각하는 힘입니다. 무엇이 쓸모 있고 없는지는 우리 스스로가 판단하는 것입니다. 철학만 공부하면 세상을 모르게 되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철학을 공부하고 다른 지식을 접붙이면 세상을 확연히 볼 수 있게 됩니다.

철학은 숲을 보는 학문입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지혜가 더 우러나오는 그런 학문입니다.”

야마구치 슈 저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북올림>을 참고

삼국지가 여전히 인기 있는 이유는 등장하는 인물들의 처세술과 리더십이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늘 새로운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국지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조명을 받는 인물도 계속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를 중심으로 제갈량, 조운 등이 주목 받다가, 조조로 관심이 옮겨가더니, 최근에는 사마의를 새롭게 떠올리고 있다.

 

사마의가 대중적으로 재조명되며 다르게 평가된 계기는 중화TV에서 방영한, <사마의: 미완의 책사>와 그 후속작인 <사마의: 최후의 승자> 때문일 것이다.

중년남성 중심으로 많은 시청자가 사마의에 매료되었다는데, 삼국지를 색다르게 해석하며 다른 관점을 제시했기에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지난해 <결국 이기는 사마의>와 같은 사마의 평전이 새로이 출간되기도 했다.

 

여기서는 사마의의 인생을 통해 삶의 지혜, 방향과 선택 그리고 처세 등에 대해 살펴보자.

(다만 한가지, 병법서나 중국의 유명한 고전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전략, 전술, 술책 등의 근본 바탕이 다른 사람들을 기만하는 방법과 행동의 집합이라는 점은 항상 명심하고 웃으면서 소화해내자.)

 

1) 참을 때는 독하게 참아라!

사마의는 무엇보다 오래 기다리고 버틸 줄 아는 인내심의 대가였다. 중국 역사상 그에 필적할만한 사람은 없을 듯하다. 관련한 흥미로운 일화는 조조와의 수 싸움(통박)이다.

어느 날 조조는 사마씨 가문에 사람을 보내 출사 할 나이가 된 사마의에게 벼슬을 내렸다. 실력 있는 주인을 기다리던 그에게 조조의 부름은 보기 드문 기회였다.

 

하지만 사마의는 그 벼슬을 거절한다. 당시 조조의 말을 거절함은 곧 사망을 의미하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다. 왜 그는 조조의 명을 거절했던 것일까?

어렸을 때부터 비범했던 사마의는 일찌감치 조조라는 보스를 ‘쉽게 다룰 수 없는 사람, 모시기 힘든 보스’로 보았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조조의 부름에 그는 중풍에 걸렸다는 핑계를 대며 조조의 명을 피했다. 그렇지만 조조도 그리 쉽게 속아 넘어갈 상대는 아니었다.

조조는 웃으면서 ‘꾀병이라면 내가 원조여! 십대 때 중풍에 걸린 척해서 숙부를 골탕 먹인 나를 네깟 게 속일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리고는 부하를 시켜 사마의를 몰래 정탐하게 했다.

정탐을 끝낸 사자는 조조에게 사마의가 틀림없이 중풍으로 병상에서 꼼짝도 하지 못한다고 보고했다.

 

사마의 역시 조조가 자신을 계속 주시하며 감시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몸을 사렸다. 그의 아내 장춘화는 정탐꾼이 떠났다며 이제 일어나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는 시종일관 환자 행세를 하며 조조의 눈을 피했다.

사마의는 참을 때는 독하게 참고, 감출 때는 깊숙이 숨기는 성격이었다. 이 때문에 중풍이 나을 때까지 그 후로 몇 년 동안 병상에서 꿈쩍도 하지 않으며 자신을 철저히 숨겼다.

 

삼국지 인물들의 성격을 이야기할 때 이렇게 표현한다.

만약 새가 울지 않는다면, 조조는 울게 만들고, 유비는 울어달라고 청하며, 사마의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고 말한다.

 

몇 년 후 조조는 다시 사마의를 부른다.

<진서(晉書) 선제기>에는, ‘사마의는 조조가 두려워 나아가 직무를 맡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마의는 더 이상 거절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마침내 부름에 응한 것이다.

조조는 그를 곁에 두었지만 신하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을 인물로 여겨 늘 경계했다.

 

 

2)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 놈이다!

사마의는 73세까지 장수하며 조조, 조비, 조예, 조방까지 4대를 보필했다. 각 보스 밑에서 언제나 핵심 인사였고, 4대에 걸쳐 원로 역할을 수행하며 결국 서진 건국의 기초를 닦았다.

제갈량과 비교되며 2인자에 머물렀던 그였지만, 결과적으로 손자인 사마염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달성하며 최후의 승자가 된다.

 

비록 전술적 측면에서 제갈량이 한 수 위였을지 몰라도, 전략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사마의가 앞섰다고도 볼 수 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호걸들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던 사마의, 과연 그는 어떻게 난세에서 살아남으며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일까?

 

조조는 후계자인 자신의 아들 조비에게, ‘사마의는 낭고의 상 (이리가 뒤를 돌아보는 상)이라 믿으면 안 된다. 그는 절대 남의 밑에서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일러주었다.

조조는 사마의를 경계했고, 언제든 제거할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사마의 역시 조조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매사 신중하게 행동하며,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심어주려 노력했다.

 

진서 선제기에도, ‘사마의는 직무에만 몰두하여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열심히 일했고, 풀을 뜯고 방목하는 작은 일도 모두 다 물어보고 시행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성실하게 땀 흘리는 책략을 사용하며 조조를 안심시키는 전략을 사용했다. 처세술의 기본인 자세를 낮추고 겸허하게 자신의 공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며 위기를 돌파해 나갔다.

 

조조 사후에는 그의 아들 조비를 보필하며 사실상 2인자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조비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면서, 그의 아들 조예가 황제로 즉위한다. 사마의는 의심 많고 변덕스러운 조예를 보필하면서 때론 내부의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하고, 한편으론 단호하게 행동하며 위기를 모면해 나갔다.

 

 

3) 평상심을 지키고, 인재를 활용하라

사마의는 평상심을 유지하는 고수였다.

오장원 전투에서 그는 제갈량의 촉군에 비해 우세했지만, 지구전을 펼치는 전략을 사용했다. 조급해진 제갈량은 사마의에게 사자를 시켜 선물을 보낸다. 긴장한 사자를 보며, 사마의는 제갈량이 보낸 상자를 흥미롭게 살펴본다.

 

상자 안에는 비단으로 싸인 것이 있었는데 감촉이 보들보들했다. 싸인 비단을 풀자 여인의 옷과 장신구가 나왔다. 체면을 중시하는 보통의 장수라면 크게 자존심이 상해서 흥분하고 뛰쳐나가 제갈량의 묘수에 걸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마의는 오히려 제갈량의 급한 마음을 알아채고, 반대로 선물을 들고 온 사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제갈 승상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는가? 잠은 잘 주무시는가?”

사자는 기뻐하며 이 기회에 제갈 공명의 훌륭한 인품을 제대로 선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승상께서는 매일 수탉보다 일찍 일어나시고 부엉이보다 늦게 주무시며, 공무를 처리하느라 늘 바쁘십니다.’

“참 부지런하시구나. 그런데 다른 직급의 공무도 승상께서 직접 처리하시는가?”

사자는 더욱 의기양양해하며 자랑하듯 말했다.

‘곤장 20대 이상의 일은 직접 관장하십니다.’

사마의는 고개를 끄덕이며 또다시 묻는다.

“그럼 매끼 식사는 얼마나 드시는가?”

‘매끼를 절반 정도밖에 안 드시는데, 그것도 제때 못 챙겨 드실 때가 많습니다.’

 

사자가 떠나자 사마의는 부장들에게 말했다.

“제갈량은 하는 일은 많고 먹는 건 적다는데 어찌 오래 살 수 있겠는가?”

사마의는 제갈량이 과로로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을 예감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들어맞았음을 확인하고 제갈량이 나가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사마의는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제갈량, 어쩌면 나 혼자서는 당신을 당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사람마다 자기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게 하고, 여러 사람의 지혜와 힘을 모을 수가 있다. 반면에 당신은 뛰어난 재능과 지혜를 믿고 남의 도움 없이 무슨 일이든 직접 하려고 한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실수는 하게 마련이다.’

 

사마의는 근심하고 고생하며 아침저녁으로 애쓰는 제갈량의 심신이 오래 버틸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갈량은 고된 군무에 쓰러지게 되고, 군중에서 54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4) 큰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신언수구(愼言修口)’하라!

‘나무는 조용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한다’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려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나와 비교하고, 내가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나와 경쟁한다. 만약 하고 있는 일이 잘 풀린다면, 누군가는 이를 시기하고 질투하며 방해까지 할 것이다.

 

사마의가 승승장구하자 수많은 경쟁자들이 호시탐탐 그를 노리게 된다. 그는 그 위기를 어떻게 돌파해 나갔을까?

사마의는 무엇보다 말을 조심했다.

옛사람들은 큰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신언수구(愼言修口)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을 할 때는 신중해야 하고 절대로 아무 말이나 막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마의는 관직 생활을 함에도 감정이나 자신의 대우에 관해 결코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설령 업무를 말할 때에도 비교적 겸손한 태도로 요지만 간략하게 언급할 뿐 개인적 감정은 표현하지 않았다.

그는 지위가 높아질수록 자신의 입을 잘 관리했다. 성공할수록 목소리를 낮추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적을 만들기 쉽고, 다른 사람 원망을 사기도 쉽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화는 입에서 나온다고 한다.

신중하지 않은 한마디나 적절하지 않은 말로 인해 별일 아닌 일이 큰일로 변해 종종 수습할 수 없는 국면을 초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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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실력이 곧 생존이다!

사마의의 가장 중요한 무기는 무엇보다도 뛰어난 실력이었다.

말에 올라서는 칼을 잘 휘두르고 내려서는 붓도 잘 휘둘렀다. 무력으로는 공명과 싸우고, 맹달을 사로잡고, 요동을 격파했으며, 문으로는 미관말직과 황제의 비서 역할을 10여 년씩 하며 무슨 일이든 잘 해내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인재가 되었다. 곧 실력으로 생존을 보장받은 셈이다.

 

조조가 사마의를 제거할 수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도 어쩌면 그가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부귀(富貴)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반드시 능력과 수양이 뒷받침되어 있어야 한다.

 

부귀를 추구할 때 정말 생각해야 할 것이 바로, ‘내가 이 엄청난 재산과 권력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일 것이다. 권력이 재능보다 높으면 반드시 욕됨이 있게 마련이고, 위엄이 덕성보다 높으면 꼭 화근이 뒤따른다고 한다.

그래서 인생의 부귀의 길에 서 있는 사람은 지나친 탐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마의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인생의 지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친타오 저 <결국 이기는 사마의>, 자오위핑 저 <자기 통제의 승부사 사마의 : 자신을 이기는 자가 최후의 승자가 된다> <북올림>을 참고

일단 태어났으니 사는 인생이라지만, 한 번은 묻고 싶다고?

행복이란 게 있나…? 이 나라에…?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

 

행복은 한 가지 욕망이 충족된 상태와 새로운 욕망이 형성되는 상태, 그 중간에 존재한다. – Caed Budris –
행복은 단지 욕망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행복은 일시적인 것이다. 늘 새로운 욕망이 따르기 때문이다. – James Clear -

 

행복은 고난과 고통을 초월하여 힘의 고양과 충만을 경험하는 것이다. 바로 힘이 증가되고 있다는 느낌, 저항을 극복했다는 느낌을 말한다. 행복한 인간이 되기 위해 자신의 의지와 생명력을 강하게 단련해야 한다. – 니체 –
진정한 의미의 행복한 인간은 고난과 고통이 없기를 바라지 않고, 그런 것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평정과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 야스퍼스 –

 

1) N포 세대, 헬조선은 어디에서 왔을까?

 

가난하고 추웠던 1960~70년대를 지나, 따뜻한 물이 쏟아지고 고개를 돌리면 상점과 편의시설들이 천방지축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왜 행복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1인 국민소득은 영국, 프랑스와 비슷해졌고 촛불시위를 지나 민주화는 꽃을 피웠는데, 왜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가난한 것일까?

왜 N포 세대가 등장해 결혼, 육아, 취업을 포기하며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걸까?

지금 한국은 민주화의 역설, 풍요의 역설에 빠져있다.

 

2) 절망의 나라에서 산다는 것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이전 세대들보다 많이 배웠으며, 많은 스펙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취업률은 현저히 줄고 있으며,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줄고 있다.

 

과거 1960~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이루던 시기, 가난하고 배우지 못했던 당시 세대들은 고도성장기의 분위기와 함께 급격하게 성장하며 성취감을 맛봤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경제 성장은 더뎌졌으며, 대학졸업자의 수에 비해 그들이 일할만한 일자리는 절반에 불과하다.

이제 우리 사회에는 본격적인 조정과 혁신이 필요하다.

 

3) 해답은 ‘사회의 품격’에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살만한 한국이 될까?

어떻게 해야 ‘포기 없는 대한민국 클라스’를 만들어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 여기서 클라스는 ‘품격’을 말한다. 따라서 품격을 높이면 가능한 일이 되는 셈이다.

 

사회의 품격을 높이면 분노를 줄일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는 연대 있는 사회가 가능하다.

‘비로소 다시 태어나도 한국에 살고 싶습니까?’라는 물음에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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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갖기를, 그러나 ‘바꿀 수 있는 것’은 과감히 바꾸는 용기를 발휘하기를, 아울러 ‘이 둘을 구별하는’ 예리한 지혜를 갖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 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 -

 

‘아픈’ 대한민국에 사회학이 보내는 치유의 메시지.

이재열 저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 : 한강의 기적에서 헬조선까지, 잃어버린 사회의 품격을 찾아서 서가명강 4> <Knowledge Talk>를 참고

‘속물 근성’이란 말은 1820년 영국에서 처음 사용됐다.
이 단어는 일반 학생과 귀족의 자제를 구별하기 위해, 일반 학생 이름 앞에 ‘작위가 없다’라는 뜻으로 적어 놓았다는데…
그러니까 속물은 원래 높은 지위를 갖지 못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지금은 속물이라는 말의 의미가 정반대의 뜻을 가지게 됐다. 즉 상대방에게 높은 지위가 없으면 불쾌해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속물은 인간의 가치와 사회적 지위를 똑같이 본다. 사회적 지위가 곧 그 인간의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은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으로는 그들을 통제할 수 없다.
아무리 솔로몬의 지혜를 갖고 있는 존재라도 그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되지 못한다.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윌리엄 새커리 William M. Thackeray는 영국인이 높은 지위와 귀족 계급에 매달리는 원인이 궁극적으로 신문에 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매일 작위 있거나 유명한 사람이 존엄한 존재라고 역설하는데, 이는 결국 보통 사람들은 시시하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류사회 사람들의 파티, 휴가, 생일, 죽음을 다루는 신문 기사들이 눈앞에 놓여있으면, 어떻게 속물이 되지 않을 수 있겠냐는 것. 그리고는 속물 근성을 만들어내고 퍼뜨리는 신문을 타도하라고 말한다.

잘 비교해보면 1800년대의 영국과 지금의 대한민국이 크게 다르지 않다.
신문과 뉴스에서는 지위가 있거나 이름있는 유명한 사람들에 대해서 다룬다. 유명인이 어디서 파티를 열었는지, 누구와 데이트를 했는지, 결혼을 누구와 하는지, 출산은 했는지, 일반인과는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은 화려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우리라고 어떻게 속물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속물은 시대에 따라 군인, 주교, 시인, 농민 등 여러 특정 집단에 아첨하며 따라다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시대에는 돈이 우리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한다. 그리고 속물은 역시 부자들을 쫓고 있다.
IMF를 거치면서 물질을 향한 욕망이 커졌고, 심지어 돈이면 다 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어렸을 때 우리는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무조건적인 사랑과 애정을 받았다.
음식을 다 흘리고 묻히며 먹어도 괜찮고, 기분이 안 좋으면 소리를 질러도 별 문제 없고, 돈을 못 벌어도 됐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무조건적인 애정은 조건적으로 바뀐다.

성취하는 조건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다든지, 명성을 얻는 다던가, 좋은 직장을 얻어 돈을 많이 번다던가, 남들이 하는 것보다 더 잘해야 하고 뛰어나야 인정과 사랑을 받는다. 결국 우리는 남의 사랑을 받기 위해,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위해 사랑한다.
속물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기 위해 살아간다는 말이다.

한번씩 모든 걸 다 갖춘 것 같은 유명인이 우울증에 걸렸다거나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겉으로 보기엔 모든 걸 다 갖춘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도 바쁠 것 같은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 할까?
아마도 그들이 받는 사랑은 성취와 관련된 조건적인 사랑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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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깊숙한 곳에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다.
훌륭한 행동이나 성취를 통해 받는 사랑 대신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 사랑 받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닐까?

알랭 드 보통 저 <불안> <북튜브>를 참고

사형 선고를 받은 한 남자가 있었다.

이릉(李陵)이라는 죄 없는 젊은 장수를 변호하다가, 황제의 미움을 산 게 원인이었다. 이릉은 漢나라의 뛰어난 무장으로 보병 5천 명을 거느리고 그 열 배가 넘는 흉노군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화살과 무기는 모두 바닥 났고 흉노군에 투항하고 만다. 이 일로 漢武帝는 매우 진노했다.


황제의 눈치를 살피던 대부분의 신하들은 하나같이 이릉의 일에 침묵했다. 그 와중에 오직 한 사람만이 이릉을 변호하고 나섰다.


‘이릉은 충신입니다. 그의 충절은 이미 수많은 전투에서 증명되었고, 집안 대대로 漢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명문가입니다. 어찌 그가 오랑캐 흉노에게 항복할 수 있겠습니까? 이릉은 어쩔 수 없이 거짓 항복을 한 것입니다.’




이릉을 변호하던 그 남자는 결국 옥에 갇히게 되었고, 사형선고까지 받게 된다.

당시의 법으로 사형을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50만전의 막대한 돈을 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궁형을 받아 내시가 되는 방법이었다.


그는 하급관리로 많은 돈이 있을 리 만무했고, 생식기를 제거 당하는 궁형은 사대부에게 죽음보다 무서운 치욕의 형벌이었다. 그는 선택의 기로에서 최고의 능욕인 궁형을 자청한다.

죽음보다 더 수치스러운 궁형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과업인 ‘사기 史記’를 완성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사마천’이다.

그는 기원전 145년 중국 섬서성 용문에서 태어났다. 황제 측근으로 각종 기록을 담당하던 아버지 사마담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학문에 정진했다.


10살 때부터 경전을 암송하고, 17살 즈음 당대 최고의 대유학자 동중서의 문하생이 되어 ‘춘추’등의 역사철학을 배운다.

20대에는 아버지 권유로 역사 유적지를 찾아 중국 천하를 방랑하는데, 이는 훗날 <사기> 저술의 큰 밑거름이 된다.


38살 때인 기원전 108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만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관으로서 역사서를 편찬하는 일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사관 집안으로 자부심이 강했던 아버지 사마담이 죽기 전 남긴 유언, ‘역사서의 완성’을 평생 자신의 사명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40대에 접어든 사마천은 조정의 일과 <사기> 저술이라는 두 가지 일을 해내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그의 기구한 운명이 시작되었다. 그의 나이 47살이 되던 해에 일생일대의 큰 사건, 바로 이릉 변호 건으로 황제에게 바른 말을 하다가 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상황은 갈수록 꼬여만 가더니, 결국 이릉이 흉노에게 벼슬까지 받고 병법을 가르쳤다는 근거 없는 소문마저 돌았다. 이성을 잃은 한무제는 이릉의 가족을 몰살시킨 다음, 역적을 옹호한 죄로 사마천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사마천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대로 억울하게 죽기보다 치욕스럽지만 궁형을 자청한 것이다. 그는 이 시기 꼭 올바른 사람이 승리하는 것도 대접받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지난날 일어났던 역사적인 일들을 되돌아봄으로써, 붓으로 세상의 부조리와 인간적 가치를 되살려 후세에 전하려 했다.


궁형을 당한 이후 <사기>의 저술 방향은 크게 바뀐다.

漢나라와 황제를 칭송하던 그가 황제에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고, 권력층의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하며 세태를 풍자했다. 또한 사회적 약자, 민중의 삶을 역사의 전면에 끄집어냈다.


2100년 전 당시 민중을 역사의 전면에 끌어냈다는 점은 파격적인 발상으로, 이는 사마천이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현실의 부정부패를 과감히 비판하고 정의와 의리를 칭송하는 내용은, 사마천 이후의 역사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는 <사기>를 읽으며 인생의 의미와 처세의 태도, 그리고 인간관계 등에 대해 깊이 사색할 수 있다.

<史記>는 130권, 총 52만 6천 500자로 그 양이 방대하다.

전설 속 중국의 시조인 황제부터 요.순 임금, 하-은-주 왕조, 춘추전국시대, 진시황의 천하통일, 7년에 걸친 楚漢쟁패, 유방이 세운 한나라까지 3000년의 역사를 기록했다.


사마천은 <사기>를 통해 성공과 실패의 법칙, 부와 권력의 비밀, 인간과 사회에 관한 모든 것을 밝혀내려 했다. 여기서 ‘모든 것’이란 말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사기>에는 황제나 고관대작, 영웅과 권세가뿐 아니라 상인과 농사꾼, 심지어 자객과 도굴꾼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종류의 인간 군상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펼치는 생생한 언행은 마치 우리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리고, 언제든지 자신의 처지에 대입하여 삶의 지혜를 얻어낼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특히 사마천 본인이 절실하게 경험했듯,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좌절과 시련을 어떻게 돌파하고 위대한 삶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지 풍부한 사례와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3천년 역사에서 찾은 지혜의 보고 <사기 인문학>을 한 번 읽어보면 어떨까?


한정주 저 <사기 인문학> <북올림>을 참고




아담 스미스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시장경제의 원리가 그 나라의 부를 증대시킨다고 했던,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학자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상징으로 대접받는다.

 

아담 스미스는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우리는 그에 대해 잘 모른다. 조금 비틀어지고 그럴듯한 아래의 내용만 반복해서 들었을 뿐이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건 푸줏간 주인, 술집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생각 덕분이다. 우리는 그들의 박애심이 아니라 자기애에 호소하며, 우리의 필요가 아닌 그들의 이익만을 그들에게 이야기할 뿐이다.”

 

그는 사람들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체제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모두에게 만족을 주고, 모든 이들의 부를 증대시킨다고 주장한다. 이기심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면서, 모두를 이롭게 하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급진적인 자본주의자들 혹은 각종 규제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일부 세력들은 자신들의 이기심과 탐욕을 긍정하고 변호한다.

자신들의 탐욕이 모두를 이롭게 하고 있다면서, 내가 돈 버는데 방해 좀 하지 말라고 그 욕심을 정당화한다. 또 사회가 자신들의 탐욕을 방해한다면서, 아담 스미스를 인용해 자유경제를 주장한다.

 

그러나 시장의 원리를 말하기 전에 매우 중요한 전제가 하나 빠져있다.

우리는 국부론의 이기심보이지 않는 손만 보았지, 그가 말한 도덕철학과 정의는 배운 적이 없다그의 첫 번째 저서 <도덕감정론>에서 이야기하는 사회질서는 어떤 원리로 작동되는지 알아보자.

 

우리 사회는 나름대로 질서 있게 돌아간다.

아담 스미스는 무엇이 사회질서를 만드는지 고민했고, 그 원리는 인간의 감정에 근거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이기적이라 하더라도 그 천성이 타인에게 관심을 가진다. , 나는 타인에게 관심을 갖고, 반대로 타인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역지사지 해본 다음 타인의 감정과 행동의 타당성을 판단한다. 이를 공감 sympathy’이라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타인도 나를 역지사지하고 나의 감정과 행동을 판단한다.

 

타인의 인정은 나를 기쁘게 하고, 부정은 나를 불쾌하게 한다. 당연히 나는 부정보다는 인정을 받기 원하기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잇는 행위를 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타인이 아니기 때문에 타인의 마음을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를 통해서 타인의 입장이 되어본다.




, 우리는 경험을 바탕으로 공평한 관찰자를 마음속에 만들고, 그 공평한 관찰자가 나의 행동이 옳았는지 잘못되었는지 판단함으로써, 우리의 행위를 스스로 평가하고 타인의 행동도 판단한다.

그러나 세상은 불확실함으로 가득 차있다. 좋은 마음으로 했던 행동의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고, 나쁜 마음으로 한 행동의 결과가 좋을 때도 있다.

 

한편 실제 세계에서는 결과만을 보고 칭찬하거나 비난이 주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를 통해 우리 스스로를 위로한다.

열심히 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우리는 졌지만 잘 싸웠다고 위로하고, 부득이하게 불운이 닥쳤을 때는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위로한다.

 

우리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면서 묵묵하게 자기 길을 걷는 사람을 지혜롭다고 칭찬하지만, 타인의 평가에만 목을 메고 과정보다 결과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을 살고 있다.

이들은 자기 마음속의 공평한 관찰자를 무시하고, 결과에 기반한 타인들의 평가에만 집중한다.

 

아담 스미스의 도덕사상은 간단하다.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의 공감에 충실 하라는 것이다. 그는 제한 없는 이기심을 허용하지 않았다. 제한 없는 이기심은 공평한 관찰자의 공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은 노동운동을 보더라도 공평한 관찰자의 공감이 다르게 작용함을 느낀다.

1970년대 기계만도 못한 취급을 받던 재봉틀 공장 노동자들의 분노에는 공감하지만, 21세기 연봉 1억원의 귀족 노조들의 투쟁에는 공감하지 않는다.


인간은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의 판단을 일반적 규칙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고려하는 감각 곧 의무감 sense of duty’ 혹은 도덕감을 형성한다. 그리고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가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행위에 대해서는 법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이를 정의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들은 아담 스미스에 대해 이기심을 조장하는 최초의 경제학자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는 내면의 공평한 관찰자의 공감이 전제되어야 함을 강조했고, 정의를 해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가 법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개인의 무한한 이기심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 적은 없다.

 

먼저 정의와 도덕감이 전제된 이후에 시장경제를 논하는 것이 아담 스미스 사상의 핵심일 것이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가 내 속에서 잘 작동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쫓지는 않는지, 나의 모든 행동이 양심껏 거리낌이 없는지 등,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가 정말 공평해지도록 타인의 입장을 이해해보는 습관, 그리고 삶을 다양한 경험으로 채우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BetterLife>를 참고



중국 마지막 왕조인 청(淸)나라 때 ‘재물의 신’이라 불렸던 사람이 있다.

이름은 광용, 자는 설암으로, 보통 ‘호설암’이라고 부른 인물이다.

그는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겨우 글을 읽고 쓰는 정도를 배웠지만, 청나라 최고의 부자가 된다. 그가 어떤 인물이었길래 14억 중국인들로부터 가장 칭송 받는 부자가 된 것일까?


1) 현재 처한 어려움은 일시적이다


호설암은 12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그의 어머니는 호설암을 항주의 금융기관인 신화전장에 도제로 보낸다. 당시의 도제란, 심부름이나 청소 등 각종 허드렛일을 하는 사실상 노예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힘들고 더러운 일을 하면서도, 사람들을 항상 웃음으로 대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배우는 데 최선을 다했고, 똑 같은 일도 남들보다 훨씬 빨리 끝내면서 아주 성실하게 일했다.

3년의 시간이 흘렀고, 전장 주인은 그의 성품과 능력을 인정해 정식 직원으로 발탁했다.

호설암은 현재의 처한 고난을 묵묵히 견디며 부를 얻기 위한 그릇을 키우고 있었다.




2) 이윤이 많은 장사는 사람에 대한 투자다


호설암은 전장 수금사원으로 일하면서, 사람들의 성격과 인물 됨 등을 빠르게 파악하는 능력을 배워갔다. 시간이 흘러 그가 20살이 되었을 때, 일을 마치고 자주 가던 찻집에서 떠돌이 선비인 왕유령을 만나게 된다.

당시 왕유령은 행색이 별 볼일 없었지만, 그는 대화를 하던 중 왕유령이 비범한 인물임을 발견한다. 돈이 없어 관직에 나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은자 500냥을 아무 조건 없이 건네준다.


이후 왕유령은 호설암의 도움을 받아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고, 절강성 재정을 관리하는 절강염대사직에 오른다. 자신을 믿고 돈을 빌려줬던 호설암을 다시 찾게 되고, 절강성 정부자금을 관리해줄 것을 부탁한다.

왕유령의 도움으로 부장전장을 연 호설암은 본격적으로 금융업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장은 20여 개로 늘어난다. 그리고 사업은 나날이 번창해 절강성 제1의 부자가 된다.


3) 의(義)에서 재물을 구하라


이후 호설암은 항주에 거금 20만냥을 투자해 ‘호경여당’이라는 약방을 설립한다. 가난한 탓에 약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죽은 남편이 못내 아쉬웠던 어머니가 약방 개업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는 사람의 목숨과 직접 관련 있는 약국 경영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윤 추구보다는 손님에 대한 신용과 진심이라고 판단했다.


호경여당에는 항상 구급약이 상비되어 있었고, 이 구급약은 약방이 문을 닫거나, 한밤중에 찾아오는 사람, 돈이 없는 서민이나 걸인에게 무료로 내어주었다.

몇몇 약방은 이를 시기한 나머지 담합을 통해 호설암을 무너뜨리려 했다. 사람들은 싼 가격으로 약을 판매하는 다른 약방을 이용했지만, 아내 약의 품질에 차이가 나는 것을 알아채고 다시 호경여당을 찾게 된다.


호설암은 義에서 재물이 나온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의란 의리와 신의를 말하는 것으로, 그는 신의가 서지 않으면 재물을 얻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4) 위험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청나라 말기는 서양 열강들의 침탈과 농민반란 등으로 큰 혼란의 시기였다.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고 그의 사업도 평탄치만은 않았다. 서양 상인들의 담합으로 위기에 몰리기도 했고, 이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다시 부를 쌓기도 했다.


그는 위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위험이 없는 사업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 어떻게 두각을 나타낼 수 있겠느냐?’


위험이 따르지 않는 사업은 누구든 할 수 있고, 그만큼 이윤도 작다고 보았다. 성공을 위해서는 칼날에 묻은 피를 핥을 수 있을 만큼의 배짱을 지녀야 하며, 전 재산을 날리는 한이 있더라도 과감하게 밀고 나아가야 부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5) 세상에 완전한 인재는 없다


호설암은 ‘사람의 가장 큰 능력은 사람을 쓰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사람을 쓰려면 우선 사람을 볼 줄 알아야 하고, 그 사람의 성격, 기질, 품덕 등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안목과 재능을 겸비한 재목을 찾아내 활용할 수 있다면, 성공은 이미 손에 쥔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았다.


‘세상에 완벽한 인재는 없다’라고 말하며, 세상의 편견에 좌우되지 않는 자신만의 혜안을 가지고 인재를 찾으려 노력했다. 그의 주변에 특출한 인재들이 많았던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인재란 어느 한 부분에서 특별한 강점을 보이는 동시에, 다른 부분에서는 치명적인 결점을 드러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뛰어난 경영자라면 단점보다는 장점을 살리면서 그 능력에 맞는 성과를 거두는 안목이 필요하다. 큰 재목은 크게 쓰고, 작은 재목은 작게 쓰면 된다는 말이다.


6) 손해가 때론 득이 되어 돌아온다


호설암은 세상을 살다 보면 한쪽에서 이득을 보고 다른 쪽에서 손해를 보는 일을 피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손해를 보는 것이 득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손해를 본다는 것은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베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러한 베풂은 기회가 되면 적절한 보답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손해를 보는 것을 매우 기분 나쁘고 때로는 치욕으로 여기기까지 한다. 하지만 호설암은 모든 현상과 사물에는 양면성이 있듯이, ‘어떤 현상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돌아선다’라고 보았다.

어떤 물건의 귀함이 극에 이르면 다시 천해지고, 천함이 극에 이르면 다시 귀해진다는 것이다.


7) 부는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


호설암의 부강전장은 전국에 지점망을 설치했고, 자산이 무려 2,000만냥을 넘어서게 된다. 한 때 그가 쌓은 부는 한 나라의 부와 견줄만 했으며, 하계청, 황종한, 좌종당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인맥은 황궁에까지 파고들었다.


호설암은 정1품 관직에 홍색정대를 매고 황마패 모자를 쓸 수 있는, 상인으로서는 최고의 명예인 홍정상인(紅頂商人)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하지만 부는 얻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일까?

활재신(活財神, 살아있는 재물의 신)이라고 불렸던 그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좌종당과 중국 최고의 권력을 놓고 싸우던 이홍장이 호설암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홍장은 좌종당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우선 좌종당의 돈줄을 끊기로 작전을 세우고 호설암의 부강전장을 무너뜨릴 계략을 세운다. 호설암의 든든한 배경이었던 좌종당 역시 이홍장과의 권력투쟁에서 패하여 물러나 죽고 만다.


이후 최후의 보루였던 잠사(蠶絲) 사업이 망하고, 중국 각지의 부강전장이 잇달아 문을 닫으면서 결국 호설암도 파산하고 만다.

호설암이 망하지 않을 기회는 많았다. 파산에 이르지 않고 더욱 더 많은 돈을 모을 수도 있었다. 정관계에 많은 인맥을 갖고 있던 호설암이 좌종당과 이홍장의 10여 년의 권력투쟁에서 청나라 정계의 판세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그가 돈만을 중시하는 평범한 상인이었다면, 좌종당을 배신하고 이홍장이라는 든든한 새로운 후원자를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좌종당을 배신하지 않고 사람에 대한 믿음과 신의를 지키면서, 결국 파산의 길을 선택했다.


뒷수습을 함에도 재산을 은닉하지 않고 소액채권자의 돈을 먼저 갚는 등 2년에 걸쳐 마지막 신의를 지키려 노력했다. 훗날 호설암의 여러 선행들이 밝혀지면서 중국인들은 살아서는 ‘활재신(活財神)’으로, 죽어서는 ‘상업(商業)의 신’으로 평가하며 모든 중국인들의 추앙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중국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루신(魯迅)은 호설암을 ‘봉건사회의 마지막 위대한 상인’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호설암은 이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그가 보여준 뛰어난 상인의 자질과 지혜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중국인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중국사 인물열전> <상경><북올림>을 참고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다양한 결정의 순간들을 만납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올바른 판단을 하고 싶지만, 미래에 대한 확신은 없고 주변 여건 때문에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친구나 선배들을 찾아 조언을 구합니다.


그들은 성심 성의껏 이야기를 들어주지만, 우리와 크게 다를 바는 없죠. 어떤 이들은 인터넷 게시판에 고민을 올리기도 합니다만, 익명의 사람들은 무책임한 댓글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알 수 없는 인생살이는 오늘 날만의 일은 아닙니다. 옛날 사람들 역시 점을 봐서 기후를 예측하고 적절한 대비책을 마련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인간은 자연의 변화에 어떤 일정한 질서가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런 깨달음은 구전으로 대물림 하며 내려오다가, <주역>이란 책의 기록으로 남겨졌습니다.

이 책은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모든 책을 불태웠던 때에도 살아남았습니다. 실용서로 분류된 만큼 모두에게 필요했던 책인 모양입니다.




주역을 한자로 표기하면 ‘周 주나라 주 易 변할 역’입니다. 역이란 변화를 의미하므로 항상 변화하는 자연의 원리를 설명한 것입니다.

즉, 주나라 시대에 완성한 변화의 자연 원리를 ‘주역’이라고 부릅니다.


유교 경전에도 포함됩니다. 사서삼경의 ‘삼경’ 중 ‘역경’이죠.

사서 :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삼경 : 시경, 상서, 주역

옛날의 필수 교과과목이었던 책입니다.


유학자와 유생들은 왜 점치는 책을 공부했을까요? 주역은 점보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지만, 결국 세상의 이치를 알 수 있게 하는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주역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안타깝게 사람들은 주역점이나철학관을 떠올립니다.


주역을 한 번 펼쳐보면 우선 놀랍습니다.

한자 때문에 놀라고, 이상한 문양과 표식들 때문에 또 놀랍니다. 심오한 고대 마법 책을 보는 듯합니다.

몇 가지 원리를 파악해보면, 주역은 64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역의 기본 컨셉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태극’이 있습니다. 태극은 만물을 생성시키는 근원입니다. 이 태극에서 ‘음과 양’이 나옵니다. 주역은 세상의 모든 것을 음과 양으로 구분하죠. 음은 그늘을 의미하고, 양은 햇볕을 의미합니다.


음양은 ‘대대 관계’라고 하는데, 반대/대립 관계와는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대대 관계에서는 하나가 없어지면 나머지 하나도 없어집니다. 그늘이 없다면 햇볕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관계를 말합니다.

음과 양은 막대기로 표현됩니다. 이를 효(爻)라고 부릅니다. 양효는 긴막대기로 표시되고, 음효는 작은 두개의 막대기로 표시합니다.


2가지 막대기를 3개씩 결합하여 총 8개의 자연물을 표시합니다. 이를 소성괘 혹은 3획괘라고 합니다.

8괘 : 하늘, 산, 물, 우레, 바람, 땅, 연못, 불이 표현됩니다.

태극기의 건곤감리도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8개의 괘들 중 두 개를 골라 위아래로 가지런히 놓으면 64괘가 됩니다.

위에 있는 3획괘를 상괘, 아래의 3획괘를 하괘라고 합니다. 이들의 경우의 수는 8 x 8 = 64개가 나옵니다.

두 가지 자연물의 결합은 하나의 상황을 상징합니다.


각각의 괘는 우리가 인생을 살다가 마주치는 개별 상황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결국 주역은 64가지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 책인 셈이죠. 각각의 괘는 총 7줄로 구성됩니다.

괘에 대한 중심 이야기인 괘사와, 각 효에 대한 6개의 세부 이야기인 효사로 구성됩니다.


실제 주역 책을 보면 조금 복잡하게 생긴 한자 책입니다.

먼저 막대기들로 구성된 이미지인 괘상이 있고, 그에 대한 이름인 괘명이 나오고, 중심 이야기인 괘사, 세부 이야기인 6개의 효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만 들어보겠습니다.

주역의 ‘권력’에 대한 이야기인 진괘입니다.

먼저 괘상입니다. 땅 위에 불이 있습니다. 괘명은 ‘진 晉’이며, 권력을 말합니다.

다음은 괘사입니다. ‘권력자는 강후의 직위와 많은 마필을 상으로 받고, 하루에 세번 천자를 배알하는 사람이다.’


다음은 효사 6줄입니다.

- 권력자가 반대파를 꺾으면 끝까지 길하다. 굴복한 적수가 신뢰할 수 없더라도 관대해야 허물이 없다.

- 권력은 근심이 있어야 끝까지 길하니 왕모로부터 그 복을 받을 것이다.

- 민중의 지지가 있어야 후회가 없다.

- 권력이 들쥐와 집쥐와 함께 하면 끝까지 위태롭다.

- 후회가 없다면 권력을 잃고 얻음에 근심하지 말라. 그래야 길하다.

- 더 큰 권력을 탐하여 이웃을 침범하면 결과가 좋더라도 끝내는 어려워질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권력의 속성에 대한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은유적 표현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보통의 주역 서적에서는 자세한 뜻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주역은 ‘A해야 B하다’ 혹은 ‘A하면 B하다’라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즉, A라는 전제 조건 아래서 결과 값이 B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일종의 조건문으로 영어로 치면 If 구문입니다. 전제 조건은 결국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니, 길흉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따라 달라진다는 논리입니다.


주역이 점치는 책으로 익숙하고, 주역을 다룬 책들이 워낙 난해하게 쓰여져 있기는 합니다. 주역 본문은 몇 줄 안 되는데, 십익이라는 주역의 주석이 어렵고 난해하죠. 도전할 엄두가 안 나도록 기를 죽이고 약도 올립니다.

거기에 우리는 한자보다 영어가 익숙하죠. 그래서 주역은 더욱 어려운 책처럼 보입니다.


물론 주역을 학문의 영역에서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더 큰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주역을 3,000년간 전해 내려온 보편적인 지혜가 담긴 64가지의 이야기 책으로 본다면 어떨까요? 소설책 읽듯이 술술 읽어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세상사가 압축된 64개의 ‘에세이’로 봐도 좋을 듯합니다.


흔한 자기계발서, 처세술 책, 치유를 위한 심리학 책들보다 더 많은 지혜와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BetterLife>를 참고


요즘 젠더 간의 갈등이 한창이다.

남성 혐오주의와 여성 혐오주의가 일상적으로 뉴스에 단골 손님으로 등장하며, 과격 시위뿐 아니라 폭력까지 발생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자신들의 성별이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똘끼 충만한 자들도 나타나고 있다. (우기면 더 우월해지나?ㅋㅋ) 젠더 간의 충돌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인류의 과거 양상과는 꽤 다른 모습이다.

인류는 많은 갈등과 싸움을 거치면서 역사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그 갈등과 싸움의 원인이 지금처럼 성별이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지배계층은 남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여성은 수동적인 위치에서 조용히 역할을 다 하고 있었다. 정치인, 고위 관료, 법관, 성직자 등 사회의 상류층은 거의 남성의 차지였다. 이는 서구세계뿐만 아니라 유교 중심인 동양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현대에는 많은 국가에서 남존여비 사상이 사라졌다. 대놓고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말하는 경우도 별로 없다. 이런 차이의 원인을 문화적, 종교적 영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문화적, 종교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위에 있다라는 개념이 계승되면서, 우리들의 관습과 행태에 뿌리깊게 박히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수만 년간 유라시아 대륙, 단절되어 왔던 아메리카 신대륙, 그리고 태평양의 많은 섬들의 원주민 사회 대다수도 남성 중심 사회였다.

즉, 인류가 나타난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남성이 더 우월한 지위를 갖춘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남성이 더 사회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던 세 가지 이유와, 이에 대해 유발 하라리가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말한 반박까지 함께 살펴보자.


1) 근력의 차이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힘이 세기 때문에 남성이 완력으로 여성을 굴복시켰거나, 남성이 더 힘든 일을 함으로써 더 큰 영향력을 가져갔다는 분석이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논리지만, 유발 하라리는 육체적 힘과 사회적 권력은 서로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비판한다.


오히려 과거 여성들은 근력이 필요 없는 정치인, 성직자, 법률가라는 직업보다는 신체 노동이 많은 가사일, 수공예, 들일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20~30대 청년들이 60~70대 연장자들보다 힘이 훨씬 셈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힘은 연장자들에게 있다.



2) 남성의 공격성과 폭력성

이런 공격성으로 인해 남성은 전쟁을 일삼았고, 전쟁에서의 영향력을 자연스럽게 사회적 영향력으로 가져가면서 남성 중심의 사회가 펼쳐졌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는 군대에서의 지휘관과 사병의 필요 덕목이 다른 점에 주목한다. 군대에서의 장교나 지휘관은 체력이나 공격성보다는 조직력, 협동력, 유화책 등의 지혜로움이 더 중요시 된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군대에서 지휘관은 거의 귀족, 부유층 등에서 잘 교육받은 자들의 몫이었고, 하층민들이 주로 사병 역할을 맡았다. 공격적이고 폭력적이어야만 지휘관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3) 출산과 관련한 번식 전략의 차이

남성은 여성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해야 하고, 그런 경쟁에서 이긴 남성의 유전자만이 살아남는다. (인간도 하나의 유전자 운반체라는 개념이 포함됨.) 반면 여성은 임신기간과 양육기간에 식량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식량을 가져다 줄 남성에게 의존적일 수밖에 없고, 헌신적이고 순종적인 유전자가 후대에 전해진다는 이야기다.


남녀의 생존전략이 달랐기 때문에 남성은 야심 있고 경쟁적인 성향을 띄는 반면, 여성은 아이를 돌보고 키우는 경향이 컸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동물들의 세계를 보면 수컷과 암컷의 생존전략에도 불구하고 모권 중심 사회가 나타난 종이 많다고 한다.


암컷들은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회적 기술을 발달시켜, 협력과 설득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서로 돕고 새끼를 키운다. 그러나 수컷들은 싸우고 경쟁하는데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결국 협력적인 암컷 위주의 강력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자기중심적이고 비협력적인 수컷들은 변방으로 밀려난다는 분석이다.


그러면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다소 허무한 결말이지만, 유발 하라리는 ‘모르겠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한 출판사가 진행한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흔히 질문으로 시작은 하지만, 곧바로 자신만의 이론을 개발하여 자신이 물었던 질문보다는 자신의 이론을 방어하는데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즉,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고, 그 답을 방어하기 위해 논리와 이유를 전개한다는 것.

모르는 것은 그냥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명확성이 배가되고, 무지를 덮기 위한 구차한 설명은 시작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장 현명한 철학자로 기억되고 있으며, 공자 역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누구의 말이 보다 타당성이 있어 보이나?


<BetterLife>를 참고




[SNOWFOX Grab N Go 도시락 Cafe]

스노우폭스 김승호 회장은 해외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인 사업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1987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 7번의 사업 실패를 딛고 일어나, 세계 최대 도시락 회사를 탄생시켰다. 현재 그의 회사는 국내 10곳, 전 세계에 1,400여 지점으로 성장했으며 연간 4천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특이한 점은 그가 소유한 모든 회사는 부채가 단 한 푼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그가 책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과 강연에서 ‘돈의 속성’에 대해 말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면 부자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돈 버는 능력과

모으는 능력,

쓰는 능력,

불리는 능력,

유지하는 능력

이 각기 다름을 이해해야 합니다.

돈만 많이 벌면 부자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돈을 유지하고 불릴 수 없습니다."




돈에 대한 그의 생각을 살펴보자.


1) 돈은 인격체다

돈에도 생명이 있다. 단순한 물질적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해야 한다. 돈을 소중히 여기고 합당하게 대우해주면, 돈도 그 사람을 좋아한다. 또 옳은 곳에 쓰면 다른 친구들을 데려오기도 한다. 결국 이렇게 여기는 돈은 자신을 떠나지 않고 함께 모여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돈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사람은 돈도 그 사랑에 지쳐 도망가게 된다. 반대로 돈을 너무 무시하는 사람은 돈도 그 사람을 무시하고 찾아가지 않는다. 아낄 때는 아껴주고 보낼 때는 흔쾌히 보내주는 사람으로, 돈을 지혜롭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 돈을 인품을 가진 인격체로 여기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2) 돈은 중력과 같다

중력은 무게가 무거울수록 더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이다. 돈에는 중력과 같은 힘이 작용한다. 무게감이 크면 클수록 다른 돈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일례로 우리가 10억을 목표로 할 때 먼저 1억이라는 돈을 모아야 한다. 1억을 모을 때까지의 노력이 100이라 가정할 때, 사람들은 다음 1억을 벌 때도 똑같이 100의 노력이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돈에는 중력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늘어나는 게 아니라, 배수 증식의 단계로 순식간에 불어나게 된다. 결국 종자돈을 만들어 불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3) 일정한 수입은 일시적 큰 돈보다 힘이 세다

일정하게 들어오는 돈은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힘을 갖는다. 큰돈은 작은 돈보다 분명 중력이 세다. 그런데 일정하게 들어오는 돈은 한 번에 몰려다니는 돈보다 힘이 더 강하다.


매달 100만원씩 버는 사람은 어쩌다 한 번에 1000만원씩 버는 사람보다 힘이 세다는 것이다. 이를 ‘현금흐름 Cash Flow’이라 부르는데, 일당으로 하루 30, 50만원을 한번에 버는 사람들은 구조적으로 돈을 벌기가 힘들다. 그 이유는 일정하게 돈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이를 관리하고 모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일정하게 들어오는 돈은 그 돈 자체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그 돈은 조직화된 돈이고, 그 돈은 다른 돈들을 이긴다.


4) 고생해서 번 돈은 공짜 돈보다 힘이 세다

현재 보여지는 가치가 동일한 돈일지라도, 돈을 버는 과정에 따라 그 돈의 무게가 전혀 달라진다. 고생해서 번 돈의 무게가 100Kg이라면, 누군가가 준 돈은 1Kg도 안 되는 것이다.

갑자기 복권당첨이나 땅값이 올라 큰 부자가 되더라도, 꾸준히 모은 적금하고는 전혀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생하지 않고 번 돈은 가볍게 날아가 버리고 그냥 흩어져 버린다. 고생해서 번 돈은 공짜 돈보다 그 힘이나 중력 자체가 전혀 다른 역할을 한다.


5) 한 사람의 성공 이면에는 많은 사람들의 슬픔과 고생이 가시처럼 얹혀있다

이 가시를 다독이지 않으면 결국 그 가시는 성공한 몸을 찌르게 되며, 많은 돈을 벌더라도 다시 흩어져 버린다. 이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업가나 창업가들은, 단지 몇 년 만에 혹은 순식간에 다시 바닥으로 내려앉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김승호 저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 <북올림>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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