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도 끝도 없는 노력을 강조하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개인 의지력을 탓하고, 인생 선배인 듯 따끔한 혼도 내주고, 그러고는 부담 없는 위로 메시지까지 던져주는 신변잡기식 자기계발서는 읽을 때뿐이지만 마약의 약발처럼 아주 그럴듯하다.

 

실천보다는 자기계발서 중독에 빠져서 늘 비슷한 희망을 품고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은, 로또 판매점에서 기분 좋은 상상과 함께 로또 여러 장을 구입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런 내용이 실제 행동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고작 3일, 운이 엄청 좋으면 3주 정도일 뿐이다.

 

 

 

제임스 클리어의 책 <아주 작은 습관의 힘 Atomic Habits>은 흔한 자기계발서와는 달리 작은 습관들에 주목한다.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려면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아닌, 삶의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지론이다.

 

흔히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목표 그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야구선수를 예로 들어보자. '3할 타자되기', '20승 투수가 되는 목표'가 의미가 있을까?

모든 선수의 목표는 같다. 팀의 승리와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기록을 원한다. '더 많이 치고 더 많이 이기는 것!'

 

기업은 어떨까?

마찬가지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익을 내기를 당연히 바란다. 올해 이익이 500억원이니 내년에는 10% 상승한 550억으로 목표를 잡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목표 달성이 예상되면 대충 해도 되고, 달성을 하지 못하면 최선을 다해도 비난받아야 하는 것일까?

 

기업의 진짜 목표 역시 가능한 한 최대의 이익과 실적을 내는 것이다.

결국 목표 설정을 통한 평가와 반성을 하는 것보다는, 현재의 시스템을 점검하여 계속 최적의 상태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 진짜 목표를 달성하도록 만든다.

 

지금 현재는 작더라도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지속적으로 시스템을 개선한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물론 과정의 초기와 중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몇 달 노력했는데도 아무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낙심하곤 한다.

그래서 다들 좀 해보다가 그만둔다.

 

매일 1%씩 성장한다면 1년 후 37배 성장하지만, 매일 1%씩 퇴보할 경우 결국 3%만 남게 된다.

그 초점은 원대한 목표 설정 따위가 아니라 일상의 작은 습관들이다.

매일 하는 습관이 조금만 바뀌어도 우리 인생은 전혀 다른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 1%는 그 당시에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그런 순간들이 평생 쌓인다면 궁극적으로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습관이란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반복하는 행동이다.

우리의 뇌는 새로운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새로운 정보를 해석하고 처리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신경 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습관적 행동들은 별생각 없이 무의식적, 자동적으로 행한다.

 

습관은 우리 삶의 효율성을 위해 존재한다.

매번 모든 순간을 처음 마주하는 것처럼 산다면, 뇌는 쉼 없이 가동되면서 삶은 매우 피로해질 것이다.

그러니 좋은 습관을 만들어만 놓으면, 별다른 노력과 의지력이 없이도 자연스럽게 성장의 길을 걷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사실 좋은 습관이 중요하다는 것과 나쁜 습관이 해롭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기존 습관을 변화시킬 수 있느냐이다.

그동안 습관을 바꾸기 어려웠던 이유는 우리가 변화시키려는 대상을 어떤 결과나 과정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뀌어야 할 것은 결과나 과정이 아니라 정체성이어야 한다.

 

사람들은 날씬한 몸매라는 결과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다이어트 과정만을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은 습관을 형성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정체성이다.

'나는 날씬한 사람이야!'라는 정체성이 자리 잡고 이에 자부심을 가진다면, 평소 적게 건강한 음식을 먹는 습관을 갖게 된다.

 

뚱뚱한 사람들은 혹독한 다이어트를 하다가 실수로 과식하게 되면, '역시 난 돼지야!'라고 말하면서 모든 걸 놓아버린다.

예전 습관에서 형성된 정체성이 바뀌지 않은 채, 억지로 다이어트를 마지못해 하는 것은 결코 오래갈 수 없다.

 

우리의 정체성은 사실 습관에서 나온다.

매일 아침 운동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의 정체성은 운동하는 사람이다. 식사 후 담배를 매번 피우는 사람의 정체성은 흡연자이다. 부모님께 매일 안부인사를 드리는 사람의 정체성은 효자이다.

반복되는 습관은 정체성에 대한 증거다. 그 증거가 쌓일수록 정체성은 더욱 강화된다.

 

정체성을 변화하고 새로운 습관을 새로 만들기 위해서는 다음의 2가지 단계가 필요하다.

1)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결정하고,

2) 그와 관련된 정체성을 강화하는 작은 단계들을 밟아 나가면 된다.

 

습관은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우리의 정체성은 습관을 형성한다.

책을 읽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1주일에 책 한권을 읽자'라는 목표 설정보다는, 외출할 때 꼭 책 한권을 들고 나가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 효과적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안에서 혹은 친구를 기다릴 때 책을 읽게 된다.

 

책을 들고 다니니 사람들 역시 나를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본다.

그렇게 나는 책 읽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고 나의 취미는 책 읽기가 된다. 그러니 서점이나 도서관에 자주 들리고 다른 책들을 탐독하게 된다.

외출할 때 책 한권을 챙기는 작은 습관이 시간이 흐르면서 다독가로 만들어주는 원리인 셈이다.

 

오늘만 특가! 품목 모음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은 습관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면서, 좋은 습관을 장착하고 나쁜 습관을 버리는 여러 가지 기술들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지금의 나는 연초에 세웠던 계획과 의지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행했던 작은 습관들이 모여서 만들어졌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오늘 하루의 모든 행동과 습관들을 천천히 뜯어보면, 미래의 나의 모습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이제 노력과 의지력의 부족을 자책하지 말고, 오늘 하루 나의 작은 습관들을 점검해보는 것은 어떨까?

제임스 클리어 저 <아주 작은 습관의 힘 : 최고의 변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BetterLife>를 참고

미래의 인생 차이, 작은 습관과 시스템 원리

공산당 1당 독재하의 중국의 정치체제는, 대부분의 독재국가들처럼 권력의 견제 기능이 떨어져 당연히 부패가 만연하다. 또한 유난히 관계를 중시하는 ‘꽌시 문화’ 때문에 뇌물과 향응이 사업에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뇌물 없이 사업하는 것은 사업을 안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중국이 진정한 글로벌 리더로 발돋움하고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부정부패를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차고 넘친다.

2012년 11월 중국 공산당 총서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그리고 국가주석을 위임 받아, 명실공히 중국의 최고지도자에 오른 시진핑은 강력한 반 부패정책을 시작했다.
약 6년 반이 지난 현 시점에도 중국은 1949년 정권 수립 후 가장 강력한 반 부패운동의 소용돌이에 싸여 있다.

지금까지 100만명 넘는 공무원들이 징계를 받았고, 고위 관료도 수천 명이 처벌을 받았으며, 압박 때문에 자살한 관리만 수백 명이다.
2014년 밥 데이비스 Bob Davis 월스트리트저널 중국경제편집장은, 중국의 반 부패운동은 시진핑의 권력 강화를 위한 숙청작업인 동시에, 부패를 뿌리뽑기 위한 진정한 노력 두 가지를 모두 의미한다고 말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시진핑은 정적들을 정조준하고 있었으며, 라이벌이던 보시라이는 부패혐의로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권력 양대 산맥을 이루었다가 하루아침 무기징역으로 평생 감옥살이를 하게 된 것이다.
과거 마오쩌둥과 장쩌민 역시 정적을 반부패라는 이름으로 제거했다. 그러나 정적을 제거하면 그것으로 끝냈다.

그렇지만 지금은 더욱 빡세고 광범위하게 반 부패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국가부주석 왕치산은 반 부패운동을 직접 지휘하고 있는데, 그는 시진핑의 오른팔이자 유능한 경제관료로 경제개혁 문제에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왕치산은 반 부패운동을 3단계로 구분한다.
1단계 : 겁주기 단계
2단계 : 상호견제와 시스템 도입
3단계 : 청렴한 자만이 공직을 담당

일당 체제의 특성상 상호견제와 시스템을 구비하는 것이 매우 어려우니 쉬운 개혁이 아님을 잘 알고 있으며, 중국은 현재 1단계인 겁주기 단계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일당 독재체제에서 청렴한 나라를 만든 싱가포르처럼 되고자 목표한다.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조사한 2017 아시아-태평양 부패인식조사 결과, 부패가 늘어났다고 느껴지는 국가 1위에 중국이 올랐다. 오랫동안 그 난리를 쳤음에도 전혀 개선되지 않은 모습이다.
응답자의 3/4이나 중국의 부패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고, 기본적인 서비스 이용에도 뇌물을 준 적이 있다는 사람의 비율이 응답자의 26%에 달했다고 한다. 오히려 부패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2018년말 시진핑은 그 동안의 강도 높은 반 부패운동의 결과 압도적인 성과를 거뒀다고 스스로 평가했지만, 객관적 자료나 실제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정황은 찾아보기 힘들다.
2012년부터 2018년 동안의 부패인식지수도 별로 변동이 없었고, 세계 80위였던 부패순위가 87위로 더 안 좋아졌다. 아직 진행 중이라지만 현재까지 나아진 것이 없다.
결국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정적을 제거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좀 더 타당한 해석으로 보인다.

중국의 역사와 그들의 권력 유지 전략을 살펴보면, 과거의 거의 모든 반 부패운동이 실제 개혁보다는 정적 제거와 권력 강화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역사 2천년을 분석하면, 진나라부터 청나라까지 49개 왕조를 거친 282명의 황제가 중국을 통치했다. 여기서 몇 가지 교훈을 짚고 넘어가자.

1) 영원히 존재하는 왕조는 없다
평균 존속기간은 70년으로 3년만에 사라진 후한(947~950)부터, 289년간 이어진 당나라(618~907)도 있었다. 중국 공산당은 1949년 정권을 잡았으니 현재 70년이 되었다.

2) 왕조 몰락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정치 엘리트의 반란이었다
외적 침입이나 민중의 반란이 아닌, 정치 엘리트에 의해 왕조가 바뀌었다. 이는 한국의 역사를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중국이나 한국이나 농민 반란군이 끊임없이 봉기했고 많은 지지를 받았음에도 정권 탈취는 실패했다.

3) 제 명에 물러난 황제는 절반밖에 안 된다
나머지 절반은 살해, 퇴위 강요, 자살 강요 등 비정상적이고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다. 황제 폐위의 원인이나 왕조의 몰락 이유는 서로 비슷했다. 사회 내부나 외적이 아닌 정권 내부의 엘리트에 의해서였다.

결론을 정리하면, 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가장 큰 위협 요소인 정권 내부의 엘리트 집단을 단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천안문사태 때 엄청난 민중들이 들고 일어났지만, 공산당은 꿈쩍하지 않았고 민주화는 실현되지 못했다. 결국 권좌를 차지한 입장에서는 주변 엘리트들을 잘 관리하고 이들이 엉뚱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단속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시진핑은 권력을 잡자마자 반 부패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공안황제로 불리던 저우융캉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또 라이벌이던 보시라이 충칭시 당서기를 비롯해 수만 명의 관료들을 처벌했다. 특히 장쩌민 쪽 사람들인 상하이방 관료들이 많았다.

장쩌민은 1993년부터 2003년까지 중국공산당 제3대 주석으로 당과 정부의 최고지도자였다. 그는 임기가 지나 공직에서는 은퇴했으나 여전히 막후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장쩌민 쪽 인사들이 주요 타깃이 되었던 것이다.

시진핑은 중국 5천년 역사에서 배운 그대로 주변 엘리트들과 라이벌들을 반 부패정책을 통해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것으로 투명한 사회를 만들고 개혁을 이루고자 할 수 있겠으나, 실제 국가 청렴도를 높이지 못할 경우 오히려 정적 제거에 대한 부작용으로 새로운 정적들이 와신상담하며 때를 기다릴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정치적 반대파가 지금은 잠복해 숨죽이고 있으나 민심의 변화가 나타나면 태세를 전환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권력 집중을 위해 반 부패운동을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로 그 칼이 자신의 목을 겨눌 수도 있다. 모든 정책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 부패운동을 나쁘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패는 국민을 힘들게 하고, 각종 부조리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온 나라를 불행하게 만든다.

모두가 부패한 사회에서는, ‘부패’라는 무기가 권력자들간의 무기로 자주 돌변한다. 털면 먼지가 천지사방 떨어지기 때문이다.
개인적 일탈과 부도덕함을 스스로 간직한 채, 정적 혹은 경쟁자를 제거하는 행위는 비단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더 저렴한 건강식품


현재 중국의 반 부패운동은 이를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사회에 만연한 부패를 체제의 문제로 보지 않고 그저 개인의 부도덕과 일탈로 본다면, 진정하게 청렴한 사회로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의 구조 내에 부패를 조장하는 요인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공식적인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저 부패 대상을 찾아서 벌주는 데만 급급하다.
시진핑 이하 중국공산당의 반 부패운동에 대한 판단은 아직까지 이른 듯하다. 그럼에도 시진핑은 이미 상당 기간 지속해 온 반 부패운동을 성공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BetterLife>를 참고

맘에 드는 사람이 있는데 말 한마디 걸지 못할 때, 어떤 제스처를 발휘해야 호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이럴 땐 다음과 같은 '작은 부탁'을 하는 게 좋다고 한다.

'잠시만 도와주시겠어요?'

'이것 좀 잠깐 봐주실래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범준 씨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자기를 도와준 사람보다는 자기가 도와준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벤저민 프랭클린 효과'라고 합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과학자였던 벤저민 프랭클린은 틈만 나면 자신을 험담하는 어떤 의원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상대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었지만 비굴하게 몸을 굽혀 호감을 사기는 싫었고, 적당한 말로 화해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이때 프랭클린은 한 가지 묘수를 생각해 냈다. 그 사람이 대단히 희귀한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 책을 빌려달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는 일주일 후에 감사하다는 편지와 함께 책을 돌려주었을 뿐이었는데, 상대는 이전보다 훨씬 정중한 태도로 프랭클린을 대했고, 이후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각별한 우정을 나누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런 명언을 남겼다.

적이 당신을 돕게 되면 나중에는 더욱더 당신을 돕고 싶어 하게 된다.


이런 효과가 발생하는 이유는 보통 심리적 갈등이 생겼을 때 없애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싫어하는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면 그 사람은 마음에 혼란이 온다.

'나는 저 사람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왜 부탁을 들어주는 거지?


이렇게 행동과 마음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면 대부분 이 갈등을 없애고 싶어 하며, 이럴 경우 부탁을 거절하거나 상대를 싫어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사소한 부탁을 거절하면 소심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으니, 사람들은 부탁을 거절하기보다는 상대를 호의적으로 대하는 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적당한 제스처를 발휘하면 아무리 껄끄러운 적이라도 자신을 돕는 친구로 만들 수 있다.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에게도 이 방법은 효과적이어서, 나를 향한 관심과 호감을 동시에 얻을 수도 있다. 그리고 호의는 또 다른 호의를 부르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사람은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좀 더 어려운 부탁도 선뜻 들어주는 경향이 있는데, 호의에 보답하는 것만큼 자연스럽고 정당한 이유도 없다.

'저번에 도와줘서 고마워요. 제가 밥 한 끼 사도 될까요?'


이런 제스처를 발휘해 부탁이 오가다 보면, 상대는 더 큰 부탁을 들어줄 수도 있고 당신과 더 많은 교류를 이어갈 수도 있다.


미워하는 사람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접근하면 결국은 상처를 내는 파괴적 결론만 나온다. 특별히 호의를 베푼 것도 아닌데 호의를 베푼 것처럼 느끼게 하는 제스처를 발휘해야, 당신에게 호의적이지 않던 사람의 마음까지 흔들 수 있게 된다.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면, 당신을 미워하는 사람과 화해하고 싶다면, 이제 용기를 가지고 이렇게 말해보자.

'부탁드릴 게 있는데 말씀드려도 될까요?'

김범준의 <저도 눈치 없는 사람과 대화는 어렵습니다만>



주변에 보면 뭘 해도 잘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다지 열심히 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들은 늘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도대체 어떤 능력이 숨어 있기에 그런 결과를 만들어 내는 걸까요?

이 답과 관련된 책 <실행이 답이다>를 살펴보겠습니다.


1)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뭘 해도 잘되는 사람들은 어떤 결심이 서면 이를 공개적으로 선언합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목표를 누군가에게 공개할 경우, 번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죠. 그러니 의도적으로 외부의 힘을 활용해서 자신을 통제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거꾸로 보통 사람들은 목표를 세우더라도 자신의 마음속으로만 다짐합니다. 설사 그 목표가 흐지부지 되더라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매번 작심삼일로 끝을 맺습니다.




심리학자 스티븐 헤이스 Steven C. Hayes는 목표 공개 여부가 학생들의 성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으로 살펴봤습니다.


학생들을 3그룹으로 나누고, 첫째 그룹에겐 본인이 받고 싶은 목표 점수를 다른 학생들에게 공개하도록 했습니다. 둘째 그룹은 목표 점수를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게 했고, 셋째 그룹은 아예 목표 점수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실험 결과 본인의 목표 점수를 공개했던 첫째 그룹은 둘째/셋째 그룹보다 현저히 점수가 높았습니다.


이처럼 말이나 글로 자신의 생각을 공개하면 끝까지 그 생각을 지키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공개선언 효과 Public Commitment Effect’라고 합니다.

말과 행동이 다를 경우 무책임하다거나 이중인격자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 같은 부정적인 평가를 극도로 꺼리죠. 이런 심리를 역이용해서 자신의 행동과 삶의 변화를 시도해보시기 바랍니다.


2) 당장 실천한다


잘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당장 행동한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위대한 성취는 행동함으로써 이루어지고,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철저히 믿습니다.


경영 컨설턴트인 혼다켄은 부자들의 생활습관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 국세청 고액납세자 명단을 확보해서 그 중 백만장자 1만 2천 명을 대상으로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조사결과 부자들의 재미있는 특성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바로 고소득자일수록 설문조사에 대한 응답시간이 매우 빨랐다는 것입니다. 부자들이 한가해서 그랬을까요? 어차피 할 일이라면 빨리 처리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공한 기업가들은 대부분 새롭게 구상한 일이 있으면 24시간 이내에 뭔가를 실행한다고 합니다. 반면 일반인들은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꾸물거리면서 미루고, 굳게 결심한 다짐도 슬며시 회피합니다.

어떤 결심이 섰다면 우물쭈물하지 말고 24시간 내에 바로 행동하는 습관을 들여보면 좋겠지요.


3) 작게 시작한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너무 어려워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섣부르게 예단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행동을 하기도 전에 꿈을 포기합니다.

반면 뭘 해도 잘되는 사람들은 다르답니다. 그들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당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찾아내려고 노력합니다.


결국 이들은 작은 일부터 시작해서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큰일을 해내고 맙니다.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 있다면, 일단 작은 일부터 시작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때는 엉망으로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살다 보면 아무리 큰일이라도 시작만하면 그 다음부터는 수월하게 풀리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의욕이 있건 없건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하면, 대뇌가 흥분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그 일에 몰두할 수 있게 됩니다.



4) 관찰하고 기록한다


자신의 활동을 기록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목표를 이룰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심리학 서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 행동을 관찰하거나 기록하기만 해도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지는데, 이를 심리학에서 ‘반응성 효과 Reactivity Effect’라고 부릅니다. 반응성을 유도하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하게 해서 행동을 수정하는 기법이 있는데, 이를 ‘자기감찰 기법 Self-Monitoring Technique’라고 합니다.


뭘 해도 잘되는 사람들은 이런 심리 기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기법을 활용해 시간관리, 저축, 운동 등 바람직한 행동을 늘리고 반대의 행동은 감소시킵니다.


일기장이나 메모장과 같이 자기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행위를 하면 행동에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행위를 관찰하는 것 자체가 그 행동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일단 기록하게 되면 자신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보다 유리한 전략을 수립할 수도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그토록 기록에 목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5) 무조건 열심히만 하지는 않는다


어느 평범한 40대 직장인의 하소연입니다.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취업 후에는 투잡, 쓰리잡으로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살았습니다. 한눈 팔지도 않았고 성실하게 일만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도 좀처럼 돈이 모이지 않았고, 여전히 통장 잔고는 바닥입니다.


이토록 열심히 일해도 여전히 힘들게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농경시대에는 성실하게 일하면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그저 열심히 한다고 더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남보다 열심히 하면 얻는 것이 많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착각일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열심히 하면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지만, 뭘 해도 잘되는 사람들은 이 같은 생각에 반기를 듭니다.


이들은 효율성과 효과성을 엄격하게 나눕니다.

효율적으로 일한다는 것은 일을 경제적으로, 즉 노련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일이 성과를 내는 일인지 가치 있는 일인지와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반면 효과적으로 일을 한다는 것은 성과나 기여도를 높일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효과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열심히 만 일합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죽도록 일하고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서 그 일을 누구보다 노련하게 해내지만 정작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면, 그건 가치나 기여도가 낮은 일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효율성과 효과성의 차이를 인식하는 순간 여러분에게 더 많은 성과가 날 것입니다.

세상에는 더 적게 일하면서도 더 많은 것을 얻어내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효율성보다는 효과성을 먼저 생각합니다.


이민규 저 <실행이 답이다> <북올림>을 참고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는 무엇일까?

먹고 살기 위해서 그리고 미래를 위해 저축해놓는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겁니다. 맞습니다.

돈이 있어야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고, 이성을 만나 데이트도 하고, 자식 교육에 힘쓸 수 있고, 부모에게 효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돈 걱정 없을 정도로 충분한 부를 쌓은 사람들 역시, 돈을 더 벌기 위해서 투자에 힘쓰고 사업에 매진합니다. 왜 그럴까요?

부를 쟁취하고자 하는 인간의 동기는 유명한 경제학 고전 <유한계급론>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소스타인 베블런 Thorstein Veblen의 <유한계급론>은 부 그리고 부자에 대한 감춰진 속사정을 다룬 책으로, 1899년 미국 서점가를 강타했습니다.

그는 제도학파라는 새로운 경제학파를 창시한 사람인데, 행동심리학, 실용주의, 진화론 등을 경제학에 접목시켜 기존의 아담 스미스 고전파 경제학을 비판합니다.


그는 유한계급론을 통해 유명인사가 되긴 했지만, 그의 팩트폭력에 불편해했던 많은 세력들로부터 견제를 받았고, 괴팍한 성격인 그는 거의 잊혀진 존재로 시골 오두막집에서 초라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종래의 경제이론에서 부를 얻고자 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생존 또는 편안함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쌀을 사기 위해서, 자동차를 사기 위해서, 자식 교육을 위해서 등 궁극적으로 소비를 위해 즉, 돈을 쓰기 위해서 부를 축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블런은 부 그 자체를 위해서 부를 획득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부는 사람들의 선망과 부러움을 사는 명예의 표시이기에 부를 축적하려고 한다는 것이죠.

물론 노동에 종사하면서 생계기반도 불안하고 모아놓은 재산도 없는 계층이라면, 당장 먹고 살기 위해 또 미래를 대비해 돈을 모읍니다.


최초의 사회는 평화로운 미개한 공동체였습니다. 이 사회에선 사유재산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남의 것을 빼앗는다는 개념조차 없었지요. 일을 잘하거나 효율적인 사람은 능력 있는 사람으로 추대되었습니다.


그러다 인류는 약탈사회로 이행합니다.

타 부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일을 잘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해졌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측이 약탈품을 전리품으로 보유하면서 재산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전리품으로 여성을 데려오기도 하고, 여성들이 만든 생산물품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전리품이 많으면 그만큼 전쟁에서 승리한 경험이 많은 사람으로 인정했고 명예를 얻었습니다.


인류는 진화했고, 약탈활동은 생산활동에 다시 자리를 내줍니다.

힘으로 타인의 것을 빼앗아 재산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물건을 만들어 시장에서 거래하면서 재산을 형성합니다.


축적된 금전이 ‘약탈에 따른 전리품’을 대신해 우월함과 성공을 대표하는 상징이 됩니다. 산업이 성장하면서 금전은 명성과 존경을 부르고, 상대적인 중요성과 효력을 획득합니다.

부는 성공의 증거로서 최애템으로 인정됩니다.



한 개인이 정신적 안정감을 얻으려면, 그와 친숙한 주변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재화를 가져야 합니다.

능력 없는 의사가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돈을 훨씬 잘 버는데도 불구하고, 의사들 사이에서 돈을 적게 번다는 사실은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고 불만을 가진 채 살게 합니다.


한편, 능력 있는 편의점 알바생은 그 능력을 인정받아 최저임금보다 20% 높은 시급을 적용 받고 있습니다. 그는 편의점 알바생 모임에 나가면 단연 연봉 1위입니다. 그는 기쁩니다.

타인과의 재산비교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인 사람들은 자신의 불운을 탓하며, 만성적인 불만 속에 살아갑니다.


또 다른 한편, 사회에서 인정해주는 어느 정도의 재산을 축적한 사람들은, 더 격차를 벌리기 위해 끝없는 긴장에 시달리게 됩니다. 또한 부를 추구하는 욕망을 만족시킬 개인은 거의 없으며, 부가 아무리 광범위하게 혹은 평등하게 혹은 공정하게 분배되고, 또 사회 전체적인 부가 아무리 많이 증가하더라도,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자 하는 욕망을 결코 충족시키지는 못합니다.


본질 자체가 차별적인 비교에 바탕을 둔 명성을 위한 경쟁이기 때문에 최종 목표에 도달할 가능성은 결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베블런은 부를 축적하는 동기가, 단지 남보다 우월한 재력을 갖추어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려는 욕망이 전부인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가난에서 벗어나 안락과 안정을 추구하는 욕망도 돈을 모으는 하나의 이유이고, 돈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욕망도 하나의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베블런은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를 돈 그 자체가 명예와 부러움의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서 돈을 버는 이유를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찾기 어렵죠. 타인보다 우월해지기 위해 돈을 번다는 생각이 사회적, 윤리적, 종교적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게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스테디셀러로 100년이 넘게 읽히고 아직까지도 언급되는 것을 보면, 베블런의 통찰은 뼈를 때리는 레알 팩트폭력이 아닐까요?


소스타인 베블런 저 <유한계급론>를 참고




어떤 사람들은 타고난 재능이 한정되어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연구에 의하면, 타고난 재능보다는 꾸준한 노력이 성공에 있어서 더 중요한 요소라고 하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우리가 노력을 통해 능력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믿음과 사고를 지녔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지만 모든 성공을 노력과 의지의 문제로만 생각한다면, 자칫 함정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한 친구가 결혼식 사회를 맡게 되어, 흥미롭게도 자신의 살을 빼고자 결심합니다.

처음엔 자신만만하게 말하더군요.

“살 빼는 게 뭐가 어려워? 식단 조절하고 운동을 병행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니야?”


그는 식단 조절로 밥을 반공기만 먹기로 했지만, 식사를 마치면 밥그릇은 깨끗이 비어있었고, 친구는 ‘또 글렀군!’하면서 패배감으로 운동마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충고했죠.

“이래서는 효과가 없어. 너한테는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해!

밥을 반만 먹고 싶으면 처음부터 반 공기만 달라고 해봐! 아니면 미리 반을 포장해 달라던가...”


하지만 친구의 대답은,

“아니, 나는 강해져야 돼! 의지력이 부족해서 이런 거야!”

그런데 노력만 강조하는 걸로는 다이어트를 지속할 수 없었고, 몇 번 이상한 방법으로 체중이 줄어들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이전보다 체중이 더 불어나 다이어트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성공을 위해서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내가 의지력이 충분하다면, 반드시 변할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건 거꾸로 말하면 다음과 같죠. ‘내가 의지력이 충분치 않다면, 변화는 불가능한 일이야!’


나중에는 노력과 의지도 소진되고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런 생각도 할 겁니다.

“노력도 재능이야. 의지력도 타고나는 거라고!”


그러나 의지력이란 마음대로 가졌다 말았다 하는 게 아니라네요. 지겹고, 귀찮고, 힘든 과정을 묵묵히 해 나가는 마음이 바로 의지력입니다. 따라서 타고 나는 것도 아니지요.

세상에 하기 싫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 같은 건 없습니다. 누구나 당신만큼 하기 싫어하죠. 그렇지만 참고 견뎌내야 하기 때문에 ‘노력’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노력마저 재능이라고 말한다면, 당장은 마음이 편해질 수 있겠지요. 타고난 능력이라면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고, 당신은 타고난 게으름의 희생자가 될 수 있겠죠.

당신의 능력이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당신이 노력하는 자세도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5Km를 뛰었다면, 한 달 후에는 10Km를 뛰게 될 겁니다.


처음에는 정말 하기 싫은 일이더라도, 습관이 되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노력이 수월해지는 동안 당신의 능력은 성장하게 됩니다. 나아가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기 위해 올바른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살을 빼자.’ ‘책을 읽자.’

이런 건 계획이 아니라 희망 사항이죠.

책을 읽겠다면 무슨 책을, 얼마나, 언제 읽을 것인지,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설계해야 비로소 진정한 계획이 됩니다.


노력은 힘들여 애쓰는 일이기 때문에 ‘노력’이라고 부릅니다.

의지력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과정 속에서 키워가는 겁니다.

무작정 ‘노오오~오력’을 외치다가 함정에 빠지기 전에, 노력을 위한 과정을 개선하고 성장하기 위한 계획을 제대로 설계하세요.


설령 노력마저 타고난 능력이라 해도 여러분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능력은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캐럴 드웩 저 <마인드셋> <Change Ground>를 참고




사람들은 왜 근거 없는 소문을 진짜로 받아들일까?

사람들이 카더라 통신을 쉽게 믿게 되는 이유는 ‘수면자 효과’ 때문이라고 한다.

수면자 효과 Sleeper Effect :

신빙성이 낮은 출처에서 나온 메시지가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적으로 설득력이 높아지는 현상


심리학자인 니콜라스 디폰조 Nicholas DiFonzo (1959~)는 로체스터 공과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6일에 걸쳐 다양한 장소에서 6가지의 소문을 여러 번 들을 수 있도록 실험을 기획했다.

그 결과 소문을 처음 들었을 때는 신뢰도가 40%였는데, 동일한 소문을 6번 반복해서 들었을 경우는 신뢰도가 60%까지 증가했다.


이렇게 진위가 불확실함에도 불구하고 반복효과로 인해 진실처럼 여기는 것을 ‘오류적 진실 효과 Illusory Truth Effect’라고 부르는데, 도대체 근거도 없는 소문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사회 심리학자인 고든 올포트 Gordon Allport (1897~1967)와 레오 포스트먼 Leo Postman (1918~2004)은 소문의 법칙을 이렇게 정리했다.

R = l x a  (R : Rumor, I : Importance, a : ambiguity)

즉, 소문은 전달 내용이 중요할수록 그리고 상황이 불확실하면 할수록 세기가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결국 불안할수록 우리는 소문에 더욱 민감하고, 믿고 싶은 것을 더 믿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악성 루머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뭣보다 빠른 반박이 중요하다고 한다.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 칼 호블랜드 Carl Hovland의 실험을 통해, 이슈와 시간과의 관계를 알아보자.

1951년 호블랜드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총 4가지의 이슈를 전달했다.

이 이슈는 신빙성이 높은 출처에서 전달된 것과 함께, 낮은 출처에서 전달된 것 2가지씩으로 나뉘었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빠른 시일 내에 원자력 잠수함의 설계가 가능한가?’라는 1950년대의 이슈에 대해, 한쪽은 핵물리학자의 의견으로 또 다른 한쪽은 잡지에 실린 내용이라는 식으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즉시 측정했을 때는 보다 전문성 있는 핵물리학자의 의견에 많은 실험 참가자들이 동의 했지만, 그로부터 4주 후 같은 메시지에 대해 얼마나 동의하는지 다시 측정했을 때, 핵물리학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비율은 16% 감소한 반면, 잡지의 의견에 동의하는 비율이 13.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시간이 지나며 출처에 대한 기억이 잊혀지면서, 메시지에 대한 의견이 긍정적으로 변한 결과다.


1974년 작가 빌 케이싱 Bill Kaysing (1922~2005)이 제기한 음모론도 ‘수면자 효과’의 적절한 사례이다.

그는 본인의 저서 <우리는 결코 달에 가지 않았다 We Never Went To The Moon>을 통해, 달 착륙에 대한 음모론을 제기하면서 자신이 아폴로호의 개발에 참여한 것처럼 포장했지만, 알고 보니 문서 작업에만 참여한 인물이었고 우주공학에 대한 교육도 전혀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 실정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메시지의 출처에 신경쓰기보다는 오히려 부정적인 메시지를 신뢰하게 되는데, 이것이 수면자 효과의 함정이다.

<EBSCulture&Life>를 참고




1800년대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체의 관점에서 자연을 설명했지만, 1970년대부터 현대 진화론은 유전자의 관점에서 자연을 설명한다.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에 가장 적합한 특성을 가진 종이 생존한다!’라는 혁명적인 이론으로 자연에서 일어나는 많은 미스터리를 해결한 다윈은, 이 이론으로도 생물체의 행동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음을 깨달았다.


생물체는 도대체 왜 협동을 하는가!?

왜 그들은 자신의 생명이 위험할 것을 알면서도 서로를 돕는 것일까? 일례로 일벌들은 침입자가 나타나면 왜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 싸우고, 더 나아가 자신의 번식은 포기한 채 여왕벌의 알만 보살피며 여왕벌의 번식만을 도울까?


침입자에 맞서 희생하고 자식도 낳지 않으면 일벌들은 서로를 도와서 얻는 게 없지 않는가? 그들은 왜 내가 아닌 남을 돕는 것일까?

이 수수께끼를 연구하며 현대 진화생물학계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는데, 그 해답이 바로 유전자에 있었다.

생물체는 유전자의 ‘탈 것’ 또는 ‘운반체’라는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들의 <이기적 유전자>.

왜 유전자를 이기적이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감이 잡히는가?

생물체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일벌의 희생적인 협력 행위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유전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런 행위들이 쉽게 이해가 된다.


일벌의 자식은 일벌 유전자의 50%만을 공유하지만, 여왕벌이 낳은 자식 즉, 일벌 자매의 유전자는 자기 자신과 유전자를 75%나 공유한다. 유전자의 50%밖에 공유하지 않는 자식을 직접 낳는 것보다, 여왕벌의 자식을 기르는 것이 유전적으로 더 이득인 것이다!


우리 몸의 자가치유 능력은 엄청나게 효율적이다. 세월이 흘러가며 손상된 세포들을 치유해가며, 인간이라는 정밀한 기계를 끊임없이 재정비해 나간다. 이런 이유 덕분에 인간은 수십 년씩 오랜 기간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신체의 자가치유 능력은 정말 강력하고 효율적이어서, 이론적으로는 평생 자신을 치유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불로불사를 이룰 수 있지만, 우리 몸은 늙어 죽는 길을 택한다.

신체는 왜 죽어야만 하는가?

왜 수명에는 끝이 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우리 몸의 주인이 우리가 아닌 유전자이기 때문이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우리 몸은 유전자를 운반하는 운반체다. 생물체라는 운반체를 타고 유전자는 오랫동안 영생을 누린다. 내 유전자는 신체를 늙어 죽지 않게 하고 평생 내 몸에서만 살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위험하다. 내가 다른 수컷과 싸우다 죽든, 포식자에게 잡아 먹히든, 익사하든, 굶어 죽든, ‘나’라는 연약한 몸뚱어리 하나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 투자하기에는 위험성이 너무 큰 것이다.


현명한 유전자는 분산투자로 위험성을 낮춰야 한다. 그래서 운반체인 생물체에겐 성인이 되어 유전자를 번식할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만 투자해 자식을 여럿 나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유전자를 여기저기 다른 몸뚱어리에 뿌리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분산투자 방법이다.


불로불사는 운반체인 내 몸뚱어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에 탄 유전자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성별에 따라 수명에서 차이가 날까? 인간뿐만이 아니다. 침팬지, 고릴라, 긴팔원숭이, 오랑우탄까지 모두 암컷이 수컷보다 더 오래 산다. 암컷, 수컷 모두 유전자 운반체라면, 암컷 운반체가 더 오래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암컷과 수컷의 서로 다른 번식 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수컷 유전자와 암컷 유전자는 서로 다른 투자 전략을 취하고 있다. 우선 초기 투자부터가 다르다.

인간을 보면 남자는 365일 정자가 2억 마리씩 수도꼭지 튼 것처럼 콸콸 나오지만, 여성의 난자는 한 달에 한 번밖에 나오지 않는다.


또 난자와 정자가 어렵게 여성의 뱃속에서 수정되면, 여성은 장장 9개월에 걸쳐 뱃속의 아이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해야 하고, 그만큼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남자에 비해 처음부터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오래 뱃속에서 키운 후 산부인과도 없는 숲에서 목숨 걸고 애를 낳아야 한다.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수개월에 걸쳐 젖을 먹이고, 걸어 다닐 때까지 업고 다니며 아이가 스스로 앞가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유리병 같은 아이에게 헤아릴 수 없는 노력과 시간을 들인다.


이렇게 뱃속에서 정자와 난자가 만난 순간부터 그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엄청난 노동과 생물학적 자산을 투자한 엄마는 자식을 대하는 마음마저 특별해진다. 엄마는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식을 지키고 지키고 또 지켜낸다.


그렇다면 왜 여자가 남자보다 더 오래 사는 것일까?

여성은 50세가 넘어가면 폐경에 접어들고 번식을 할 수 없게 된다. 나이든 여성이 또다시 9개월간 임신을 하고 출산의 고통을 견디기에는 위험성이 너무 높은 것이다.


따라서 직접 자식을 낳는 것보다는 이미 낳아 놓은 자식이 또 자식을 낳을 수 있도록 돕고, 그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돌봐주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할머니의 손자 손녀들은 할머니 유전자의 25%를 공유하고 있으니까.


그만큼 수컷은 번식 활동에 있어서 육체적 부담이 거의 없고 죽을 때까지 번식 능력을 고이 간직하다가 번식 능력이 떨어지면서 죽음에 이르지만, 번식 전략이 다른 여성들은 나이가 들면 직접 번식을 포기하고 손주들을 보살펴 자신의 유전자가 최대한 많이 생존할 수 있도록 끝까지 돕는다.


많은 투자가 들어간 자식을 지켜내고, 또 그 자식이 낳은 자식까지 보살피는 것이 여성이 유전자를 남기는 방법이다. 여성의 폐경 시기가 자식 세대의 번식 시기와 비슷하다는 사실과, 그들의 수명은 손자 손녀가 성인이 되는 시기와 비슷하다는 사실은 아마도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여성의 수명은 더욱 늘어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오래 살며 끝까지 해야 할 임무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유전자에게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 없었다는 건 아니다.

현재도 수렵채집 생활을 하고 있는 부족을 보면, 아버지 없이 자란 아이는 아버지와 함께 자란 아이보다 키나 골격이 왜소했고, 아버지는 외부 침입자로부터 가정을 지켜내는 역할을 했으며, 사냥으로 영양소가 풍부한 고기를 구해오는 일도 아버지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아들이 성장해 성인이 되고 나면 상당 부분 대체 가능한 일이었고, 꼭 사냥을 하지 않아도 채식으로 생계유지를 하거나 다른 남성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인생은 얼마나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인 모양이다.


출처 : <1분과학>




나이 들어가면 누구나 시간에 대해 말하는 공통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시간이 점점 빠르게 흐른다.’

인간의 유한한 삶 속에서 시간이 점점 빠르게 흘러간다는 느낌은 별로 반가운 이야기는 아니지요. 그런 느낌이 드는 이유를 알아보고,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이유를 알아보려면, 우리의 뇌가 시간을 인지하는 몇 가지 재미진 인지심리학 현상들을 살펴봐야 합니다.


1) 15~25세 사이의 경험을 더 잘 기억한다

‘회고절정 이론 Reminiscence Bump’이라 부르는 현상으로, 이는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의 시기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기간이자, 새로운 경험을 가장 많이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첫 키스, 첫사랑, 첫 직장, 처음으로 부모와 떨어지는 여행, 군대생활 등의 새로움은 늘 기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때 읽은 책, 영화, 음악 등도 평생 동안 기억에 남아 인생의 동반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2) 단조로움, 공허함, 익숙함은 시간을 축약시킨다

만약 다리를 다치거나 감기에 걸려 회복되기를 기다릴 때, 시간의 느낌은 아주 천천히 흘러간다. 하지만 나은 후 되돌아보면 며칠 간 아팠던 일은 기억 속에 거의 남지 않는다. 아팠다는 사실은 기억하지만, 집에서 1주일을 누워있었기 때문에, 새로울 것 없는 기억은 잊혀진 한 주처럼 느껴진다.


군대에서 1시간, 하루하루는 대단히 천천히 흘러가지만, 몇 년이 지나 군대시절을 떠올려보면 2년이 후딱 지나가서 금세 전역하게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이런 현상을 하나로 종합하면 ‘홀리데이 패러독스 Holiday Paradox’라는 개념으로 정리되고,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클라우디아 해먼드의 책 <어떻게 시간을 지배할 것인가>에 소개된 내용을 살펴보죠.


휴가를 즐겁게 보내고 있을 때는 시간이 금세 지나가는 것 같지만, 휴가를 마치고 막상 돌아오면 한참 만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또 반대로 어린아이들을 키울 때면 하루하루가 매우 더디게 흘러가는 것 같은데도, 어느새 1년이 금방 지나가 버린 것 같은 느낌입니다.


즉 홀리데이 패러독스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경험으로 가득 찬 시간은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 볼 때는 길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어린아이들은 성인이 휴가를 보낼 때처럼, 하루 종일 몰입하면서 머리 속을 새로운 기억들로 가득 채웁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이 실제보다 긴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20살 대학생의 개학 첫날에 있었던 일들을 회상해보라고 하면, 수십 가지 에피소드들이 떠오를 겁니다. 첫 수업, 친구와 처음으로 클럽에 간 일, 동아리에 새로 가입한 일 등 수많은 일들이 떠오릅니다. 정신 없이 한 달을 지냈지만, 되돌아보면 꽤 오랜 시간을 보낸 듯하죠.


그런데 40살 회사원에게 비슷한 질문을 한다면, 지난 달에 회사에 출근하고 퇴근했던 기억 외에는 떠오르는 게 별로 없습니다. 하루하루 겨우 버텼는데, 어느새 달력은 한달 이 지나 버리지요.

나이가 들수록 생활이 단조로워지고 점점 새로울 것 없는 루틴이 반복됩니다.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일까요?

당연히 매 순간이 빠르고 재미있게 지나가면서, 뒤돌아보면 세월이 천천히 흐르고 있는 상태일 겁니다. 결국 나이가 들어도 세월이 천천히 흐르게 만들기 위해서는, 하루하루를 새롭고 흥미 있게 만들면 됩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계속한다면 세월이 너무 허망하게 지나가겠지요?


매일 지하철을 타고 출근 한다면, 내일 하루는 버스를 타고 출근하면서 바깥 풍경을 관찰해보는 작은 변화를 주거나, 똑 같은 멤버들과 점심을 먹는다면 오랜만에 새로운 친구와 약속을 잡아 식사를 하는 것이 새로운 생활을 가미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그리고 직장인들이라면 주말에는 TV와 영화, 쇼핑에서 벗어나, 그 동안 안 해본 새로운 경험을 시도하는 것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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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재미없는 한국 사람들에게, 재미와 행복이란?

https://blog.naver.com/ishipworld/221390271002


2018년이 모두 지나간 연말인데 시간의 흐름에 허무함을 느끼는 분들이라면, 올 한 해가 다소 심심하게 지나갔다는 징표일 수 있습니다.


다가오는 2019년에는 새롭고 다채로운 생활로 채워가는 의식적인 노력으로 의미 있는 기억들을 많이 남기고, 삶의 풍요로움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한 해로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클라우디아 해먼드의 <어떻게 시간을 지배할 것인가> <더나은삶>을 참고




우리는 지루함을 싫어한다.

잠시라도 지루할 틈이 생기려 하면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TV 채널을 돌리고, 인터넷을 검색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아무 일 없이 가만히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다’라는 말을 자랑처럼 하고 다닌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지루함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빈둥거리는 시간, 멍 때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루함을 회피하면 인생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삶을 맹목적으로 살게 되고, 창의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된다.


오늘의 주제는 ‘지루함’이다. 지루함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를 두 가지 책을 통해 지루하게 살펴보자.


<당신은 지루함이 필요하다>는 흥미롭게도 서울에서 2년 동안 아이를 가르쳤던 경험을 가진 캐나다인이 쓴 책이다. 그에게 서울은 너무나 바쁜 도시였다. 사람들은 항상 무언가에 몰입해 있었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공부하고, 학원을 가고, 야근을 하고 있었다.

서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도시였다고 저자는 토로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삶을 바쁜 행동으로 채운다. 잠시 충만감을 주던 여가 활동에 흥미가 사라지면, 또다시 기분이 좋아질 다른 무언가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삶을 더 많은 것들로 채울수록 마음속에는 무언가 빠져있다는 느낌이 강해진다.




저자는 말한다.

“가짜 만족을 주는 활동으로 늘 주의가 흐트러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삶을 진정성 있게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인생을 고찰하지 않을 때, 우리는 일차원적인 삶이 적절한지 따져볼 것도 없이 수동적으로 살아갑니다.”


지루함은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까지 내가 어떤 의미를 추구했는지, 무엇을 위한 삶을 살았는지 되돌아보게 해준다. 지루할 때 우리는 허무하다. 하지만 그 허무함이 세간의 가치에 얽매여 있는 기존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도록 해준다.


지루함을 통해 우리는 자신만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우리 삶이 늘 주의를 흩트리는 요소로 차 있으면, 의미가 끼어들 공간이 없어진다.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언제나 시간을 무언가로 채운다면, 인생의 참된 의미와 목적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을 영영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우리에게 지루함을 허락해보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려보고, 멍을 때려보자.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고독이 따르기 마련인 지루함의 대가로, 자기 자신과 자연에 더없이 깊이 침잠하는 그 15분을 얻는다. 지루함에 대해서 완전히 보루를 쌓은 자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보루를 쌓는 법이다. 자기 자신의 가장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가장 힘이 되는 생명의 물을 그는 결코 마시지 못할 것이다. 고된 노동을 사랑하고, 빠른 것, 새로운 것, 진기한 것을 추구하고 있는 당신들이여. 당신들은 모두 인내력이 부족한 자들이다. 당신들의 근면은 도피이다. 자기를 망각하려고 하는 의지이다.”


지금까지 지루함을 철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봤다면, 책 <심심할수록 똑똑해진다>는 지루함을 창의성과 연관하여 살펴보고 있다. 아무 자극 없는 지루한 상태가 창의력, 추진력과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샌디 만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전화번호부를 옮겨 적거나 20분 동안 소리 내서 읽게 하는 지루한 작업을 시켰다. 그 뒤 종이컵의 활용 방법을 다양하게 떠올리게 했다.

지루한 작업을 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다양하고 창의적인 종이컵의 용도를 생각해냈다.



책은 이렇게 말한다.

지루함을 느낄 때 우리는 몽상과 마음방황을 허용하고, 의식에서 벗어나 잠재의식적 사고를 하기 시작한다. 바로 그것이 창의성을 자극한다. 새로운 연결이 일어나게 한다.


지루함을 느낄 때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떠올리고, 자신의 본질을 깊이 묵상한다. 잠들기 전이나 샤워할 때, 숲 속을 거닐 때와 같이 어느 것에도 집중하지 않을 때,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루함을 통해 우리는 삶을 새로 시작하게 되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떠올릴 수 있다.


철학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두 책은 우리에게 지루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글 읽기가 끝나고 찾아오는 지루함을 15분 동안 온전히 느껴보는 건 어떨까?


<책그림> 채널, 누구나 삶의 섬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책 <당신은 지루함이 필요하다>

멍때림이 만드는 위대한 변화, 우리의 삶을 더 많은 호기심과 창의성으로 채워주는 지루함과 기발함의 책 <심심할수록 똑똑해진다>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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