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도 언젠가 죽는다는 걸 잊지 말라’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이다.

스티브 잡스는 스탠포드대학 졸업 축사에서, 암 투병을 통해 얻은 죽음과 삶에 대한 자신의 깨달음을 생생히 전했다. 그는 연설에서 우리는 곧 죽는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하며, 죽음은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하는 최종 목적지라고 말했다.

 

“제가 17세 때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매일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간다면, 당신이 분명히 올바르게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타인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지금부터 ‘여러분 인생에서 단 하루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24시간 뒤에 죽는다고 생각하면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남은 시간을 보내야 할지 생각하게 될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은 시간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철학 하면 왠지 따분하고 재미없게 느껴지곤 하는데,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우리가 왜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어떤 이는 철학 이야기에 ‘공자, 소크라테스가 밥 먹여 주냐?’라며 쓸모 없는 학문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철학은 매우 유용한 학문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철학을 소홀히 대하는 큰 이유는 당장 삶에 적용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철학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은 최대한 빨리 핵심만 공부해서 삶에 적용하고자 한다.

사유과정은 생략한 채 철학자들이 남긴 명제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결론만으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그들이 세상을 관찰하는 과정, 사유의 태도 등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삶에 큰 자극이 될만한 신선한 가르침을 얻게 될 것이다.

여기서는 생각의 깊이를 넓혀주고 삶의 무기로 삼을 수 있는 철학 사상 3가지만 살펴보자.

 

1) 타불라 라사 Tabula rasa

 

이것은 라틴어로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석판’이란 뜻이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사상가인 존 로크는 사람의 심성은 태어날 때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석판, 즉 타불라 라사와 같다고 생각했다.

 

당시 이 개념은 세습 왕권과 귀족 신분의 정당성을 뒤흔드는 기폭제가 됐다. 지금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고관이지만, 로크(1632~1704)가 살던 당시 사회에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누구나 태어날 때 상태가 ‘백지’라는 것은 인간에게 타고난 우열이 없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의 소양은 모두 태어난 후에 어떠한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고, 인간은 교육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로크는 현대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를 빼놓고 자유민주주의를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절대왕정 시대에 정부의 구성과 한계에 대해 뚜렷한 금을 긋고, 보다 확장된 대중의 권리를 천명한 그의 정치이론은 이후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다.

결국 로크의 이론은 영국의 명예혁명을 성공시켰고,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미쳤으며, 미국 독립선언서의 밑그림이 되었다.

 

존 로크는 ‘타고난 능력이란 없다. 경험을 통해 인간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의 주장처럼 우리가 ‘경험과 학습에 의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면 인생의 어느 시점에나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100세에 이르는 시대, ‘다시 새롭게 배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특히 오늘날처럼 기술의 발달이 급진적인 사회에서는 한번 배운 지식이 금세 진부해지고 마는 경향이 있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 자신의 경험을 초기화시키고 다시 백지 상태로 돌릴 수 있느냐가 인생 2막의 명제가 될 것이다.

 

 

2) 타자의 얼굴

 

철학에서는 남을 타자(他者)라고 부른다.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무엇보다 ‘타자’의 중요성과 가능성에 대해 논한 철학자다. 그가 말하는 ‘타자’는 ‘소통이 안 되는 사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에서 서먹한 상대, 소통이 안 되는 타자가 왜 중요한 것일까? 이에 대해 레비나스는 다음과 같이 간단히 답한다.

“타자는 깨달음의 계기다”

 

그는 자기중심적 전체성을 깨뜨리고 타자의 무한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들은 자기 시점에서 세상을 이해한다 해도 그것은 타자에 의한 세상의 이해와는 다르다. 물론 타자의 견해를 ‘네 생각은 틀렸어’라며 부정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인류에게 일어난 비극의 대부분이 자신은 옳고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타자는 틀렸다고 단정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나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른 타자를 배움과 깨달음의 계기로 삼는다면, 우리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관점의 가치관을 획득 할 수 있다.

 

일본 역사학자 아베긴야 교수는 안다거나 이해한다는 것은 ‘바뀐다’라는 뜻이라고 말한다. 즉 안다는 것은 그것에 의해 자신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레비나스는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타자와의 관계라 하더라도 얼굴을 마주함으로써 이해의 가능성을 교환하고 이로써 관계성을 파괴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정답인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답이 아닐 수 있다.

그가 말한 ‘타자’의 개념은 오늘날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3) Ressentiment

 

철학 책을 보면 ‘르상티망’이란 말이 나온다.

‘약자가 강자에게 품는 질투, 증오, 열등감 등이 뒤섞인 감정’이다. 한마디로 시기심과 질투로 번역할 수 있는데, 르상티망을 잘 관찰하면 비즈니스 기회가 보인다.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를 사례로 살펴보자.

어느 날 굶주린 여유가 잘 익은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포도나무를 보았다. 그 여우는 갖은 수단을 동원해 포도송이를 따먹으려고 시도해봤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포도송이는 여우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 매달려 있었다.

 

결국 여우는 허탈하게 실망하며 마음을 바꾸었다. 그리곤 중얼거린다. “이 포도는 엄청 신게 분명해. 이런 걸 누가 먹겠어!”라며 가 버렸다.

여우는 손이 닿지 않는 포도에 대한 분한 마음을 ‘저 포도는 엄청 시다’라고 생각을 바꿔 르상티망을 해소해 버렸다.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에 따르면 열등감에 사로잡힌 개인은 르상티망을 해소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하나는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기준에 순응하고 복종함으로써 그 감정을 해소한다고 한다. 또 다른 하나는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판단을 뒤바꾸면서 그 감정을 해소한다.

 

쉽게 말해 누군가는 명품가방을 구매함으로써 르상티망을 해소하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을 바꿈으로써 르상티망을 해소하는 것이다.

매년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는 기업들은 철저히 르상티망을 이용한다. 인간의 마음을 탐구함으로써 사업을 지속한다고 볼 수 있다.

 

기업이 르상티망을 관찰하여 돈을 벌 듯, 소비자 역시 자신이 무언가를 원할 때 그 욕구가 ‘진짜 자신’의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혹은 타인이 불러일으킨 르상티망에 의해 가동된 것인지를 분별해 볼 필요가 있다.

 

끝으로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는 <철학의 힘>이란 책에서,

‘철학의 힘은 현실에서 힘이 없다는 사실에서부터 나온다’라고 했다.

아무리 철학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바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권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는 ‘철학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바로 스스로 생각하는 힘입니다. 무엇이 쓸모 있고 없는지는 우리 스스로가 판단하는 것입니다. 철학만 공부하면 세상을 모르게 되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철학을 공부하고 다른 지식을 접붙이면 세상을 확연히 볼 수 있게 됩니다.

철학은 숲을 보는 학문입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지혜가 더 우러나오는 그런 학문입니다.”

야마구치 슈 저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북올림>을 참고

요즘은 정신력을 말할 때 주로 멘탈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힘들거나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도 할 일을 해내거나 지치지 않는 사람들에게 멘탈이 강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멘탈이 강한 사람들의 특징은 뭘까?

의학적으로 멘탈에 중요한 요소는 ‘회복탄력성’이다. 영어 ‘Resilience’의 회복탄력성은, 역경과 좌절에 굴하지 않고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요인에 대항해서 스스로를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다른 말로는 ‘마음의 근육’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즉, 개인의 회복탄력성에 따라 어떤 사람들은 삶의 어려움을 잘 견디고 회복하는 한편, 어떤 사람들은 쉽게 회복하지 못한다. 최근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그레고리 밀러 박사와 그의 연구팀이 실시한 뇌 이미징 연구는, 회복탄력성과 뇌의 관계를 보다 자세히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의 여러 연구들은 폭력이나 범죄율이 높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사증후군, 천식, 수면부족 등 전반적으로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밀러 박사 연구팀은 시카고 시의 다양한 지역에 거주하는 220명 청소년 참가자를 모집했고, 각 지역은 살인률과 폭력 범죄율에 따라 차등 분류되었다.

 

그리고 연구팀은 인슐린 내성검사, 비만도 측정, 대사증후군 검사 등을 포함한 참가자들의 심혈관 질환 위험도를 측정했다. 그다음 참가자들의 fMRI에서 뇌활동도를 관찰했다.

 

예상대로 폭력범죄율이 높은 지역에 사는 청소년들은 전반적으로 건강상태가 좋지 못했지만, 그 중에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 청소년들은 뇌신경망 네트워크인 중앙집행기능 네트워크 부위가 서로 더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중앙집행기능 네트워크는 우리가 집중하거나 어떤 일을 수행할 때 활성화되는 부위로서, 위험한 상황을 해석하거나 자기통제력을 수행할 때, 그리고 부정적인 감정의 연상을 억제하는 일을 담당하는 부위로도 잘 알려져 있다.

즉, 범죄율이 높은 지역에 사는 것과 같은 높은 스트레스에 노출되었어도, 높은 회복탄력성을 가진 사람들은 뇌의 중앙집행기능 네트워크 부위가 더 강하게 연결되어 있어 스트레스에 효과적으로 대응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연구로 뇌의 중앙집행기능 네트워크가 회복탄력성에 대해 신경생물학적 차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를 통해 뇌의 중앙집행기능 네트워크 부위 연결을 강화시켜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멘탈이 약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하버드대 의학박사이며 심리학자인 조앤 보리센코는 위와는 반대로, 회복탄력성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도록 가로막는 장애물에 관한 연구를 했고, 다음 3가지 생각을 제시했다.

1) 비관적 사고

2) 자기중심적 사고

3) 과거에 집착하는 사고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우리는 불안, 우울,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들에 사로잡히게 된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감정에 집착하는 것은 곧 ‘나’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으로, 긴장감과 자기 파괴적인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필요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사랑, 감사, 연민 같은 긍정적인 감정으로 자신을 해방시키고 자아가 확대되면서 긴장도 이완된다.

 

달라이 라마는 다른 사람을 도움으로써 자기 자신도 구원하는 이러한 전환을 ‘현명한 이기주의 Wise Selfish’라고 불렀다.

이타주의가 회복탄력성에 실제 도움이 된다는 증거는, 타인을 도울 때 우리 몸에서 엔도르핀이 정상치의 3배 이상 분비되고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는 현저히 낮아진 것으로 입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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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끊임없이 곱씹으며 후회하고 원망하는 습관은 자신만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붙들고 불평하는 것은 자신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를 그만 놓아주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현실을 수용하고 과거의 경험에서 긍정적인 점, 배울 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힐링TV> <HM헬톡멘톡>을 참고

일단 태어났으니 사는 인생이라지만, 한 번은 묻고 싶다고?

행복이란 게 있나…? 이 나라에…?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

 

행복은 한 가지 욕망이 충족된 상태와 새로운 욕망이 형성되는 상태, 그 중간에 존재한다. – Caed Budris –
행복은 단지 욕망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행복은 일시적인 것이다. 늘 새로운 욕망이 따르기 때문이다. – James Clear -

 

행복은 고난과 고통을 초월하여 힘의 고양과 충만을 경험하는 것이다. 바로 힘이 증가되고 있다는 느낌, 저항을 극복했다는 느낌을 말한다. 행복한 인간이 되기 위해 자신의 의지와 생명력을 강하게 단련해야 한다. – 니체 –
진정한 의미의 행복한 인간은 고난과 고통이 없기를 바라지 않고, 그런 것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평정과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 야스퍼스 –

 

1) N포 세대, 헬조선은 어디에서 왔을까?

 

가난하고 추웠던 1960~70년대를 지나, 따뜻한 물이 쏟아지고 고개를 돌리면 상점과 편의시설들이 천방지축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왜 행복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1인 국민소득은 영국, 프랑스와 비슷해졌고 촛불시위를 지나 민주화는 꽃을 피웠는데, 왜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가난한 것일까?

왜 N포 세대가 등장해 결혼, 육아, 취업을 포기하며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걸까?

지금 한국은 민주화의 역설, 풍요의 역설에 빠져있다.

 

2) 절망의 나라에서 산다는 것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이전 세대들보다 많이 배웠으며, 많은 스펙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취업률은 현저히 줄고 있으며,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줄고 있다.

 

과거 1960~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이루던 시기, 가난하고 배우지 못했던 당시 세대들은 고도성장기의 분위기와 함께 급격하게 성장하며 성취감을 맛봤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경제 성장은 더뎌졌으며, 대학졸업자의 수에 비해 그들이 일할만한 일자리는 절반에 불과하다.

이제 우리 사회에는 본격적인 조정과 혁신이 필요하다.

 

3) 해답은 ‘사회의 품격’에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살만한 한국이 될까?

어떻게 해야 ‘포기 없는 대한민국 클라스’를 만들어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 여기서 클라스는 ‘품격’을 말한다. 따라서 품격을 높이면 가능한 일이 되는 셈이다.

 

사회의 품격을 높이면 분노를 줄일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는 연대 있는 사회가 가능하다.

‘비로소 다시 태어나도 한국에 살고 싶습니까?’라는 물음에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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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갖기를, 그러나 ‘바꿀 수 있는 것’은 과감히 바꾸는 용기를 발휘하기를, 아울러 ‘이 둘을 구별하는’ 예리한 지혜를 갖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 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 -

 

‘아픈’ 대한민국에 사회학이 보내는 치유의 메시지.

이재열 저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 : 한강의 기적에서 헬조선까지, 잃어버린 사회의 품격을 찾아서 서가명강 4> <Knowledge Talk>를 참고

여기 당신이 상상하고 요구하는 모든 것을 이뤄주는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스티브 심스’, 바로 블루피시 Bluefish의 창업자다.

당신의 고객이 만약 이런 소원을 말한다면?
‘진짜 록스타와 함께 공연해보고 싶어요.’
‘안드레아 보첼리가 축가를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블루피시와 비슷한 회사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바로 사람들의 꿈을 이뤄주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고객들은 스티브 심스를 ‘맡은 일은 무엇이든 완수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도대체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길래, 그리고 어떻게 사람들의 꿈을 이루어주는 걸까?

 


책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통해 그는 말한다.
‘저는 런던 동쪽에 사는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나 벽돌 나르는 일을 해왔습니다. 매일 벽돌을 나르는 생활이 죽을 만큼 하기 싫었지만 벗어날 길이 없었죠.

당신도 런던 동쪽에 살고 있었다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살았을 겁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고? 꿈도 꾸지마! 그건 다른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지, 우린 평생 그런 삶을 살 수 없어!’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은 그렇게 한계를 지을 필요는 없었죠. 스스로 한계를 만드는 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짓입니다.
제 한계를 벗어나겠다고 결심한 뒤로, 지금의 스티브 심스가 될 수 있었죠.

제가 하는 비즈니스의 핵심과 성공 비결은 단순합니다. 그저 사람에 집중하는 거죠. 고객이 무엇에 열광하는지, 그들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잘 들어봐야 합니다.
질문만으로도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아낼 수 있죠. 이것은 윈-윈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한 번은 이탈리아의 근사한 호텔에 묵은 적이 있었습니다.
룸 서비스를 주문하자 담당자가 칵테일 메뉴를 방으로 가져다주더군요. 그런데 메뉴 뒷면에 그 호텔에만 갖고 있는 칵테일 제조 방법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데스크로 내려가 물었죠.

‘혹시 칵테일 메뉴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직원은 몇 개가 필요한지를 물었고, 저는 500개라고 대답했습니다. 좀 말이 안 되는 요구였기에, 직원은 재고가 그렇게 많지 않다며 저의 주문을 거절했죠. 여기까지는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반응입니다.

 

 


저는 매니저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곳 칵테일 메뉴와 레시피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제 고객 500분에게 이 메뉴를 한 부씩 보내드리고 싶은데요? 메뉴에는 이 호텔 이름이 그대로 명시되어 있을 것이고, 발송은 제가 다 책임질 겁니다. 호텔에서는 아무것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 일을 성사시키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아마 매니저는 손님으로부터 말도 안 되는 부탁을 듣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는 대신 500명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공짜로 광고를 하게 되었으니,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제 고객들에게 기분 좋은 깜짝 선물을 할 수 있었죠.

당신이 원하는 일을 해야 할 타당한 이유를 설명할 수만 있다면,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만큼 상대방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윈-윈입니다.
이런 정신과 자신감 있는 태도로 협상에 들어간다면, 대부분 놀라울 정도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만 특가! 품목 모음


제가 비즈니스에 있어 세운 원칙이 있다면, 언제 어떤 상황이든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득이 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현재 저의 성공은 그 고민의 결과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그만큼 엄청난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당신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까?

스티브 심스 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 한계를 넘어 최고의 결과를 만드는 태도>를 참고

호주의 방송인 론다 번은 2006년 책 <시크릿>을 발표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불과 2년이 채 안된 기간에 2천만권 가까이 전세계에 팔았고, 또 그녀는 눈이 좋아진다는 상상만으로 안경을 집어 던질 수 있었다고 한다.

더구나 식이조절 없이 그저 날씬한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고 말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끌어당김의 법칙’에 열광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체험적 성공담을 말했다.

 


가장 완벽한 끌어당김의 법칙이란 바로, 자신의 어설픈 꿈을 사람들에게 여러모로 떠벌리는 것이다.
‘야~ 유튜브 영상 콘텐츠 시작했어! 이거 완전 대박이야! 좋아하는 일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어. 너무 좋지 않아?’
‘우리도 스타트업 같이 하자. 앱 하나만 제대로 터져주면 그냥 완전 대박이야! 부의 추월차선을 금방 탈 수 있을 거야!’

요란한 빈수레 같이 주구장창 사람들에게 자신의 꿈을 떠들어대면, 아마도 비난과 조롱, 비웃음 그리고 상당한 악플을 재빠르게 확실히 끌어당길 수 있다.

그렇게 열심히 떠벌리지 않아도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유튜브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앱 하나로 인생을 완전히 뒤집을 수 있다는 것.
그렇지만 구독자 100명도 안 되는 당신이 성공을 말하고, 코딩 하나 다룰 줄 모르면서 스타트업을 떠들면, 아주 쉽게 남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전세계 90%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직업적으로 하는 일과 감정적으로 단절된 느낌을 갖고 있다고 한다. 직업은 성취의 근원이 아니라 좌절의 원천이 되어버린 셈이다.
박봉에 감사하며 버틸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날마다 다른 사람의 꿈을 빌리고 그들의 소작인이 되어 오늘도 묵묵히 밭을 갈고 있다.

매일 같은 업무와 동일한 좌절감을 끌어당기고 있지만, 꿈을 떠들다가 창피를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정말 이것이 합리적인 끌어당김일까?

 

 


어쩌면 색다른 업무나 기쁨을 끌어당기기 위해서는 좀 요란하지만 꿈이라도 떠벌려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거기엔 비난이 있고 창피함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회라는 것은 변화 없이는 절대 주어지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곳은 바로 당신의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다. 상상이 행동을 일으키는 생각으로 변하려면, 반드시 믿음이라는 에너지가 먼저 마음을 채워야 한다.

꿈을 소유한다는 것.
새로운 행동을 일으킨다는 것.
가장 완벽한 끌어당김의 법칙이란 자신이 무엇인가 정말로 할 수 있다고 믿고, 그 꿈의 주인이 되어 지금 당장 한 발을 내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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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품고 무언가 할 수 있다면, 지금 즉시 시작하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 당신의 천재성과 능력과 기적이 모두 숨어 있다.

나폴레온 힐, 월레스 워틀스 공저 <성공으로 이끄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참고

우리는 유창하게 말하는 것을 높게 평가하곤 한다. 말이 유창하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아는 것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머릿속 생각들을 음성으로 내뱉을 수 있는 순발력을 지녔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좋은 언어능력을 훈련 받아왔다. 언어를 익히도록 화면 속의 뽀로로는 쉴새 없이 재잘거렸고, 부모들은 입을 떼는 아이에게 관심과 주의를 기울였다.
학교에서는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똑똑하다고 인정되었고, 직장의 면접에서도 말솜씨가 뛰어난 사람들이 유리했다.

그렇게 말을 하도록 강요 받았고, 그게 맞는 것인 줄 알았다.
사람들은 끝없이 스피치 학원을 찾고, 대화법 책은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서로가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고 과시하고 표현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그런 뛰어난 말솜씨를 가진 친구들과의 대화가 즐거웠던가?
나의 현란한 말재주로 입이 움직이고 있을 때, 상대방은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는가?
TED에서 최고 조회수를 기록한 대화의 연금술사 셀레스트 헤들리는 그녀의 저서 <말센스>를 통해, 말을 잘하고 싶다면 말하고 싶은 욕구를 참으라고 말한다.

 


우리는 상대와 대화를 나누기보다 자기하고 싶은 말하기에 바쁘다.
제니는 지금 강아지를 잃고 슬픔에 빠져있다. 친구인 지수는 제니를 위로하고 싶어 이렇게 말한다.
‘나도 어릴 적 3살짜리 강아지를 교통사고로 잃어본 적이 있어.’

위로하고자 했지만, 제니가 슬픔의 주인공이어야 하는 상황에 지수는 본인의 이야기로써 주인공이 되고자 한다. 진정으로 대화를 하고 싶다면,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주인공이 되려는 것을 멈춰야 한다.
물어보지도 않은 것들을 길게 설명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첫째 그 심리는 상대에게 충고나 조언을 함으로써 그 사람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주로 부모, 선생님, 직장상사가 그렇다.
한편 관심병이 있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거나 관심 받고 싶어 말을 길게 늘어놓는 경우도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 주로 그렇다.

특히 사람들은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학력이 낮거나, 가난하거나, 지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충고나 조언을 하려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고 모두가 평등하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는 자신보다 못하거나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자꾸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인정받고, 타인을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생활 식사 자리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임직원이 모인 회식자리에서 사장님은 일장연설을 한다. 실컷 떠들고 기분이 좋아진 사장님은 ‘너희들끼리 한잔 더해’라는 말을 하며 사라지고, 그 다음부터는 부장님의 쇼타임이 시작된다.
부장님 일장연설 뒤에 ‘과장님’, 그리고 집에 가는 택시는 ‘대리님’의 연설로 가득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만 실컷 하고 전화를 끊는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다. 열심히 떠든 친구는 기분 좋은 대화를 했다고 느끼지만, 듣기에 열중한 친구는 그 친구의 전화를 서서히 받지 않기 시작한다.
실제 연구로 자기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 두뇌의 쾌락 중추를 활성화시키며, 이는 섹스, 코카인, 설탕 같은 쾌락물질에 대한 반응과 유사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하기를 좋아한다.
불안감에 휩싸였을 때 말을 쏟아내든가, 특정 주제에 관한 자신의 지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거나, 단순히 듣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책 <말센스>에서는 우리가 자주 실수하는 대화습관과 어떤 사람과도 마음이 통할 수 있게 하는 말센스에 대해 다루는데, 그 중 몇 가지를 알아보자.

먼저, 대충 아는 것을 잘 아는 척 하지 말라.
시즌만 되면 본인이 그 분야 전문가도 아니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자들이 많다. 심지어 모두 틀린 정보다.
또한 가본적도 없는 여행지에 대해 마치 가보기라도 한 것처럼 조언하곤 한다. 

아는 척해야만 상대방이 나를 존중해준다는 생각이 대화를 망치고 있다. 잘 모를 때는 ‘잘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것이 정보를 왜곡시키지 않고 진실된 관계로 나아가게 한다.
머릿속의 생각은 그대로 흘려 보내야 한다.

대화를 하다 보면, 우리는 계속해서 다른 생각에 사로잡힌다.
‘나라면 이랬을 텐데…’ ‘그땐 이랬었는데…’ ‘왜 그런 생각을 고집할까?’ 등이다.
그래서 상대의 말에 집중하지 않고, 본인이 끼어들 타이밍만 지켜보면서 한마디 할 생각만 한다. 이런저런 생각이 나더라도 흘려 보낼 줄 알아야 한다.

말할 타이밍만 보고 있는데, 어떻게 상대의 말에 집중할 수 있겠는가?
특히 정치적인 이야기, 본인의 생각과 의견, 자신의 지적 견해를 표출하고 싶다면, 지금 바로 앞에 있는 사람에게 하지 말고 블로그에 글을 쓰면 된다.

지금 앞에 있는 대화 상대방은 당신이 지금 푹 빠져있는 주제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통의 달인들은 의외로 말솜씨가 유창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들의 말은 절제되어 있고, 과도한 제스처도 쓰지 않으며, 오히려 들어주는 것에 능숙하다.

대화는 인간이 터득하기 어려운 두 가지 기질을 요구한다. 바로 ‘인내’와 ‘집중력’이다.
그래서 진정한 대화로 이끌 수 잇는 자들은 세상에 많지 않다.
종합해보면 좋은 대화를 하고 말을 잘하고 싶다면, 역설적으로 말하고 싶은 욕구를 참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오늘만 특가! 품목 모음


좋은 대화는 말을 하고픈 욕구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고 창의력까지도 키울 수 있다. 상대방의 뇌 속에는 나의 뇌가 가지지 못한 지식, 통찰력, 공감력, 창의력, 유머감각, 표현력이 무궁무진하다.

좋은 대화를 나누지 않는 것은 그 많은 보물을 버리는 것과 같다. 대화를 통해 인간은 지금껏 발전하고 진보할 수 있었다.
좋은 대화가 만들어지고 사람들로부터 마음을 열게 하는 사람이 되는 순간은, 말재주가 아닌 말센스를 갖춘 순간부터이다.

책 <말센스>와 함께, 행복한 대화법을 익혀 모두가 기분 좋은 대화만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셀레스트 헤들리 저 <말센스 : 흥분하지 않고 우아하게 리드하는> <BetterLife>를 참고

1966년 미국 연방수사관(FBI) 학교의 한 교수가, 식물도 고통을 느끼는 생물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는 거짓말 테스트 전문가였던 클리브 백스터 박사였다.


그는 어느 날 강의가 후 호기심으로 근처에 있던 화초에 거짓말 테스트기를 연결했다. 곧바로 잎사귀에 불을 붙이기 위해 성냥을 가져왔는데, 갑자기 거짓말 탐지기 기계의 눈금이 거칠게 움직이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그는 식물이 위협을 느껴서 움직인 것으로 생각하고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게 되는데, 잠시 후 놀라운 현상을 발견한다.


화초 앞에서 종이에 불을 붙인다는 생각을 하고 성냥을 켜면 평온한 상태를 유지했지만, 화초에 불을 붙이려는 생각을 하고 성냥불을 켜면 탐지기의 눈금이 거칠게 움직였다.

즉, 식물이 인간의 생각을 읽을 수 있으며, 자신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탐지기의 눈금이 거칠게 움직이고 있을 때, 박사가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다시 평온한 상태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후 그는 생물학 교수들에게 연락해서 본격적으로 실험을 진행했고 그 결과, 식물들은 인간의 생각만으로도 위험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심각한 문제가 있다. 끝까지 읽어보자.)

또 다른 실험에서는 한 화분만 물을 주고 다른 화분을 죽게 만들었더니, 물을 잘 주었던 화분도 곧 말라서 죽었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감지한 듯, 물을 줘도 좋아지지 않았고 며칠 뒤 시들었다.


1968년 박사는 자신의 연구보고서를 뉴욕의 신문사에 전달했고, 당시 커다란 논란을 일으켰다.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었지만, 실험결과를 보고 식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최근 2018년, 식물도 고통을 받으면 위험하다는 신호를 몸 전체에 보낸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밝혀졌다???

미국 위스콘신대의 연구팀이 밝혀낸 사실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들은 잎에서 경고신호를 만드는 칼슘이온이 증가하면 형광색이 나타나도록 조치했는데, 통증이 발생하자 칼슘이온이 증가하면서 형광 물질이 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식물이 반응하는 시간은 통증이 발생하고 2초 후였고, 신호는 1초당 1mm를 이동했다.


그리고 식물이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하게 되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자스몬산이 공중으로 방출된다는 것도 알아냈는데, 방어태세에 돌입한 식물은 곤충들이 먹어도 소화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식물의 세포벽도 두껍게 변화된다. 따라서 곤충은 씹기 어렵고 소화가 안 되는 식물을 떠날 수밖에 없다.


식물이 고통을 느끼고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주장했던 백스터 박사의 연구 결과.

어쩌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인간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식물은 어떻게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일까?

그런데~, 이 결과가 충격에 대한 단순한 전기신호 반응으로 실험 오류이며, 결과를 정해놓고 짜맞추기 실험을 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뜬금없이 2018년의 실험 결과만 툭 튀어나오는데, 좀 이상하다. 그 긴 세월 동안 식물 감정연구에 대해 아무것도 눈에 띄는 게 없다.

누구나 자신이 키우는 식물로 실험해보고 식물마다 또 꽃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식물의 감정’에 대한 책들도 많이 나올만하고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알며, 각자가 식물이나 화분 선택에 써먹었을 텐데…?


상상을 좀 해보자.

코미디와 개그에 잘 반응하는 벚꽃, 슬픔에 감응하는 수선화, 소음과 소리를 좋아하는 개나리, 수줍음을 잘 타는 나팔꽃, 외로움을 즐기는 백합의 성격 등, 그 얼마나 다양한 소재와 인간과의 감성 소통이 많을까? 왜 이런 것들이 알려지지 않았을까?

결론적으로, ‘위의 실험은 엉터리고, 백스터 박사도 개구라!’라는 확신이 든다.


야채나 식물을 재배할 때 음악을 틀어주면 자라는 속도가 빨라지는 경우는 많이 보고되고 있는데, 이런 경우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 소리에 의한 공기 진동과 그 진동의 연속성이 식물에 전달되어, 줄기의 상부로 물과 양분을 전달하는 과정을 도와주기 때문으로 설명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경찰한테 인기 좋은 ‘거짓말 탐지기’.

이제는 과학적으로 그 효과가 부정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혀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법원의 재판에서도 거짓말 탐지기 결과는 대부분의 경우 법정 증거로 채택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거짓말 탐지기는 수사관들이 범인을 겁박 내지 협박, 좋은 말로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효율적인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할까?


<Better Mr.> <Amazing Story>의 공갈 내용을 참고




어떤 사람들은 타고난 재능이 한정되어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연구에 의하면, 타고난 재능보다는 꾸준한 노력이 성공에 있어서 더 중요한 요소라고 하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우리가 노력을 통해 능력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믿음과 사고를 지녔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지만 모든 성공을 노력과 의지의 문제로만 생각한다면, 자칫 함정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한 친구가 결혼식 사회를 맡게 되어, 흥미롭게도 자신의 살을 빼고자 결심합니다.

처음엔 자신만만하게 말하더군요.

“살 빼는 게 뭐가 어려워? 식단 조절하고 운동을 병행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니야?”


그는 식단 조절로 밥을 반공기만 먹기로 했지만, 식사를 마치면 밥그릇은 깨끗이 비어있었고, 친구는 ‘또 글렀군!’하면서 패배감으로 운동마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충고했죠.

“이래서는 효과가 없어. 너한테는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해!

밥을 반만 먹고 싶으면 처음부터 반 공기만 달라고 해봐! 아니면 미리 반을 포장해 달라던가...”


하지만 친구의 대답은,

“아니, 나는 강해져야 돼! 의지력이 부족해서 이런 거야!”

그런데 노력만 강조하는 걸로는 다이어트를 지속할 수 없었고, 몇 번 이상한 방법으로 체중이 줄어들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이전보다 체중이 더 불어나 다이어트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성공을 위해서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내가 의지력이 충분하다면, 반드시 변할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건 거꾸로 말하면 다음과 같죠. ‘내가 의지력이 충분치 않다면, 변화는 불가능한 일이야!’


나중에는 노력과 의지도 소진되고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런 생각도 할 겁니다.

“노력도 재능이야. 의지력도 타고나는 거라고!”


그러나 의지력이란 마음대로 가졌다 말았다 하는 게 아니라네요. 지겹고, 귀찮고, 힘든 과정을 묵묵히 해 나가는 마음이 바로 의지력입니다. 따라서 타고 나는 것도 아니지요.

세상에 하기 싫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 같은 건 없습니다. 누구나 당신만큼 하기 싫어하죠. 그렇지만 참고 견뎌내야 하기 때문에 ‘노력’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노력마저 재능이라고 말한다면, 당장은 마음이 편해질 수 있겠지요. 타고난 능력이라면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고, 당신은 타고난 게으름의 희생자가 될 수 있겠죠.

당신의 능력이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당신이 노력하는 자세도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5Km를 뛰었다면, 한 달 후에는 10Km를 뛰게 될 겁니다.


처음에는 정말 하기 싫은 일이더라도, 습관이 되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노력이 수월해지는 동안 당신의 능력은 성장하게 됩니다. 나아가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기 위해 올바른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살을 빼자.’ ‘책을 읽자.’

이런 건 계획이 아니라 희망 사항이죠.

책을 읽겠다면 무슨 책을, 얼마나, 언제 읽을 것인지,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설계해야 비로소 진정한 계획이 됩니다.


노력은 힘들여 애쓰는 일이기 때문에 ‘노력’이라고 부릅니다.

의지력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과정 속에서 키워가는 겁니다.

무작정 ‘노오오~오력’을 외치다가 함정에 빠지기 전에, 노력을 위한 과정을 개선하고 성장하기 위한 계획을 제대로 설계하세요.


설령 노력마저 타고난 능력이라 해도 여러분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능력은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캐럴 드웩 저 <마인드셋> <Change Ground>를 참고




1) 의지력만 있으면 된다는 믿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병수는 상담 후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말씀은 잘 알겠지만, 마음의 문제는 제 의지로 고쳐볼게요.”

“우울증도 의지의 문제래요. 의지력으로 떨쳐볼게요.”


사람들은 자신이 충동을 잘 억제하는 의지력을 가졌다고 믿는 경향, 즉 ‘통제편향 Restraint Bias’이 있다. 이때 통제편향에 휘둘려 자신의 통제력을 과신하면, 거꾸로 욕구에 굴복하거나 충동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커진다.


잘 생각해보자.

우울한 기분일 때 ‘지금부터 기분 좋아지겠어!’라고 아무리 강하게 마음 먹어도 기분이 바뀌지는 않는다. 또한 이런 감정이나 정서를 억제하거나 다른 형태로 바꾸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데, 과하게 의지력을 쏟아 부으면 자아 고갈 상태에 빠져 반대의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의지력으로 내 안의 우울을 제거하려다 오히려 사소한 문제에도 화가 치밀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목표를 세워 스스로를 들볶고 있진 않은지, 요즘 들어 좀 예민해진 게 통제편향 때문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보자.




2) 쉼 없는 자기계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 자기계발에 중독되었을 확률이 높다. 우리 뇌는 생각을 만들어내는 기계라 ‘나’에 대한 생각이 시작되면 끊임없이 ‘나는 ~한 사람이다’와 같은 언어로 규정하기를 바란다.

‘나는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사람이야’

‘나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사람이야’와 같이 더불어 ‘좋다’ 또는 ‘나쁘다’라는 판단이 뒤따른다.


모든 상황에서 자기계발 욕구를 불태우며 스스로를 판단하려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고, 힘든 일을 겪어도 화를 내지 못하게 된다. 또한 스스로 분석하려는 심리가 강할수록 스트레스에 노출되기 쉽다.


SNS에 끊임없이 나를 노출하는 경우 역시,

‘내 모습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럴 듯 한지’

‘다른 사람들에 비해 괜찮게 살고 있는지’를 관찰하며, 나를 분석하고 더 나아지려 애쓰는 것이다.


사소한 것까지 모두 분석하는 것으로 정말 내 마음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있을까? 우울함만 더 키우는 건 아닐까?




3) 복잡한 감정은 나쁘다는 편견


사람이 느끼는 감정 중에 ‘양가감정’이라는 게 있다.

사람이나 사물을 두고 선택의 순간에 놓일 때 심플하게 정리되지 못하고, 동시에 상반된 두 가지 이상의 복합적인 느낌이 들 때를 두고 하는 말이다.


부모님을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는 무심함에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해로운 음식이라는 걸 알면서도 먹으면서 드는 행복감을 포기할 수 없을 때 드는 양가감정은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다.

생각해보면 감정이라는 건 긍정과 부정이 함께 올 때가 많다.


이상한 게 아니다. 그 때문에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이 심란한 동시에 즐겁고 흥분될 수 있을까? 물론이다.

한 곳으로만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균형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며, 감정이 복잡한 것 역시 뇌의 자동 조절장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인생은 복잡해서 힘든 게 아니다.

한 가지 역할만 하도록 강요 받기 때문에, 단순한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하는 환경 때문에, 복잡한 감정을 힘들게 느끼는 것뿐이다.


그러니 다양한 자아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으로 나를 데려가 보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자아를 발견한 기쁨에 스트레스는 자연스레 치유될 것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 찰리 채플린 -


김병수 저 <마음의 사생활 : 마음을 압박하는 심리에 관한 고정관념들> <지식을 말하다>를 참고



오늘도 사람들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당신.

‘혹시 내가 말실수 한 건 아닐까?’

‘내가 너무 부담스럽게 했나?’

상대방의 작은 표정 변화에도, 혹시 기분 상하게 만든 건 아닌지 걱정되는가?


우리가 인간관계에 이토록 신경 쓰는 이유는, 그게 행복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 한다.

연구에 의하면, 행복한 사람들의 상위 10%는 한 사람 이상과 친밀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의 상위 25%는 타인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방의 생각에 신경 쓰는 건 자연스럽지만, 타인의 말에 과하게 신경 쓰는 건 도리어 우리의 행복을 해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신경 쓰지 말아야 하는 5가지 이유를 알아보자.


1) 사람들의 생각은 계속 바뀐다

흔히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확실하며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철학자들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의견은 계속 변한다는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다.

당신에게 조언하는 누군가가 미래에도 같은 의견일지는 장담할 수 없고, 누군가가 당신을 나쁘게 생각할지라도 미래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사람들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2) 그들은 어떤 게 당신에게 최선인지 모른다

남들은 당신 삶에 대해 당신만큼 생각하지 않으며, 당신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기 때문에 최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당신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는 오직 당신만이 알 수 있다. 실패하면 남 탓을 하는 게 아닌, 스스로 선택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질 때, 우리는 제대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3) 다른 사람들에게는 맞는 것이 당신에게는 틀릴 수도 있다

누군가의 의견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기반한다는 걸 잊지 말자.

우리는 저마다 독특한 존재이므로 다른 사람에게는 좋은 것이 당신에게는 최악이 될 수도 있다. 무엇이 좋은지는 자신만이 알 수 있으니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자.


4) 결정에 영향을 받는 사람은 당신뿐이다

누군가 전망이 좋은 주식을 사라고 제안해서 투자를 했는데 결국 손해를 보게 되었다면, 내키지 않았음에도 내면의 소리를 듣지 않고 투자한 것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당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당신에게 조언을 한다면, 정말 주의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5) 타인의 시선을 걱정하면 사람들은 당신에게서 멀어질 수 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주면 좋겠다’와 같은 생각에 빠지면, 그것이 당신의 행동을 지배할 수 있다. 당신이 사랑 받기 위해 하는 행동은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을 꺼리게 만들 수도 있다.

줏대 없는 생각, 과도한 아부 등은 당신을 매력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등을 돌리게 만들지만, 남들을 신경 쓰지 않고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 된다면 오히려 사람들이 당신 곁에 있어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너무 신경쓰다보면 당신의 삶을 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모든 이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자.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신경 쓰면,

당신은 늘 죄수가 될 것이다.

- 노자 -


<Change Ground>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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